“노조쇼핑”과 “펨코형 노조”의 출현 - 노동조합과 민주주의의 변형에 대하여 (조성주 정치발전소 상임이사)

공식 관리자
2026-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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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쇼핑”과 “펨코형 노조”의 출현

— 노동조합과 민주주의의 변형에 대하여

조성주 (정치발전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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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사회를 흔들었던 삼성전자 초기업노동조합을 둘러싼 논쟁은 대부분 성과급 규모와 배분을 둘러싼 문제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단순한 임금·성과급 갈등을 넘어, 오늘날 한국 노동조합이 구현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성격, 그리고 그것이 사회 전체 민주주의와 맺고 있는 관계를 다시 묻게 만드는 계기이기도 하다. 


노동조합은 역사적으로 두 가지 의미에서 민주주의의 핵심 제도였다. 하나는 사회적 차원에서 자본과 노동 사이의 권력 불균형을 교정하는 민주주의의 엔진으로서의 역할이며, 다른 하나는 작업장 내부에서 노동자들이 스스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민주주의의 학교’로서의 역할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노동조합 민주주의의 단순한 약화가 아니라, 그 성격 자체의 변형인지도 모른다.


1. “야수화된 민주주의”와 노동조합

오늘날 민주주의는 더 이상 단순히 제도적 틀로 작동하지 않는다. 디지털 환경과 결합한 민주주의는 점점 더 즉각적이고, 감정적이며, 분절된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이를 일종의 “야수화된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250년전 프랑스의 사회학자 토크빌이 미국 민주주의 초기의 모습을 보고 “민주주의라는 야수에 잡아먹힐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길들여” 자유와 번영의 미래로 함께 나아갈 것인가를 고민했다고 한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규범의 파괴와 정치적 분열 속에서 고삐가 풀린채 점차 야수화되어가고 있으며 이 야수화된 민주주의는 우리 사회의 각 영역에 큰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렇게 변화된 오늘날 민주주의의 경향성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첫째, 대표보다 즉각적 반응을 요구한다. 그리고 둘째, 집단보다 개별적 이해관계를 우선하게 되고 이로 인해 연대보다 경쟁과 비교라는 경향을 강화한다. 마지막으로 느리고 지루한 숙의의 과정보다는 즉각적 반응을 요구하는 동원과 압박이라는 형식이 중심이 된다. 

문제는 이러한 민주주의의 변화가 더 이상 정치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작업장과 노동조합 내부까지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삼성전자 성과급 논쟁과 노동조합의 행동양태는 그런 현상의 한 면을 잘 보여준다.  


2. 삼성전자 성과급 논쟁 사례가 보여준 것

삼성전자 성과급 논쟁에서 드러난 것은 단순한 고임금 노동자의 이익 요구가 아니라 오히려 다음과 같은 변화된 노동조합의 모습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첫째, 사회적 민주주의와의 단절이다.
성과급을 둘러싼 논쟁은 협력업체 노동자, 하청 노동자, 그리고 반도체 산업 외부의 시민들을 배제한 채 진행되었다. 이는 노동조합이 더 이상 사회적 연대를 매개하는 조직이 아니라, 특정 집단의 이해를 극대화하는 조직으로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둘째, 대표성의 변형이다.
많은 언론기사에도 드러났듯이 ‘삼성전자 초기업노조’는 7만명이 넘는 규모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대의기구와 대의원을 두고 있지 않다고 한다. 5-6명의 집행부가 7만명이 넘는 조합원들의 이해와 요구를 직접민주주의적 방식으로 대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는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일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책임과 숙고는 없이 다수의 욕망을 즉각적으로 반영하는 ‘동원형 민주주의’에 가깝다. 노동조합 집행부가 사실상 ‘온라인 커뮤니티’의 ‘운영진’처럼 활동하고 있다는 말일 수 있다. 이는 현재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위기와 정확히 겹친다. 


셋째, 노동조합 그 자체가 ‘시장화’되는 것이다.
복수노조 체제 속에서 조합원들은 자신의 이해에 맞는 노조를 선택했다가 다시 손절하는 일종의 ‘노조쇼핑’을 하게 된다. 마치 어떤 주식이 단기간에 최대의 이익을 줄 수 있는지 계산하고 단기매매 처럼 상황에 따라 복수의 노조들을 수천명 때로는 수만명씩 가입했다 탈퇴하기를 반복한다. 이때 노조는 더 이상 정치적 결사체가 아니라, 버튼을 누르면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자판기’나 자신이 가져올 이익을 최대한으로 포장해서 투자자들에게 선전하는 ‘헤지펀드’과 같이 기능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실제 이번 협상이 끝나자마자 수만명의 조합원들이 또 다시 다른 각자의 노조로 이동하고 있다. 


3. 노동조합 민주주의의 역사적 변형

이러한 변화가 2026년 오늘에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니다. 사실 한국의 노동조합 민주주의는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변형되어 왔다. 

권위주의 독재 시절과 민주화 초기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이 여전히 남아있던 1980년대와 1990년대까지 노동조합의 민주주의는 노동현장에서 자본의 통제로부터 자율성 획득이 중요한 목표였으며 이는 평등과 연대의 논리에 기초했다. 조직의 운영은 외부의 탄압에 맞서기 위해 “민주집중제”라는 형식을 취했었다. 당시의 “민주집중제”는 다원적 민주주의와는 맞지 않지만 탄압에 맞서고 투쟁을 조직하기에는 최적의 운영원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몇번의 정권교체가 가능해지면서 정치와 사회의 민주화가 진전되던 2000년대에 와서 노동조합은 사회변화에 맞게 대의제 민주주의를 도입하여 안정된 운영체제를 확립하게 된다. 이는 대의원이라는 기구를 통해 조합원들의 다양한 이해요구를 모아내고 이들이 조합원들에게 최선이 되는 결정을 책임지는 구조였다. 하지만 한편에서 이러한 대의원들을 배후에서 장악하여 노동조합에 영향을 행사하는 현장조직이나 정파조직들의 문제점이 제기되기 시작한 시기이다. 

디지털환경의 변화, 사회의 다원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던 2010년대 노동조합 민주주의는 또 다른 변화를 맞이한다. 특히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복수노조 체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복수노조 체제는 노조간 경쟁을 심화되었다. 정치와 사회에서 직접민주주의 경향이 확대되면서 노동조합에도 직접민주주의 경향이 함께 유입되었다. 총연맹 직선제 등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향속에서 일각에서는 노동조합이 다루어야 하는 공적갈등이 아닌 조합원들의 사적갈등과 민원에 즉각적으로 반응해야 하는 “자판기 노조” 경향도 함께 나타났다. 그리고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능력주의 경향이 강화되면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노동조합의 직접민주주의 경향 강화는 기존에 문제가 되던 ‘정파조직’들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기도 했다.

2020년대에 들어서서는 더 극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기존의 대의제, 정파조직, 상급단체라는 주류시스템에서 완전히 벗어난 말그대로 ‘온라인 커뮤니티형 노조’가 등장하고 있다. 복수노조체제는 정파간 경쟁이 아니라 오히려 조합원들이 노조를 수익률이 좋은 주식을 고르는 것처럼 쇼핑하는 현상으로 대체되고 있다. 사실 문제점이 많기는 했지만 정파조직이나 현장조직들은 노동조합 내부에서 ‘정당’과 유사한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집단적 의사를 모으고 이를 필터링하며 결과에 책임지고 대안을 가지고 상대와 경쟁하는 효과를 가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등장한 ‘온라인 커뮤니티형 노조’에서는 그러한 조직들의 필요가 줄어든다. 오히려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누가 어그로를 더 잘 끌어내는가가 여론형성의 중심이 되고 결과에 대한 책임 역시 조합원들이 집행부와 함께 공유하지 않는다. 집행부 역시 중장기적 안목으로 좋은 결과를 만들내기 보다 게시판에 올라오는 댓글에 더 신경써야 한다. 누군가 조합원 게시판이나 카톡방에서 어그로를 만들면 그에 대응하는 것이 사측에 대한 대응이나 조합원들의 의사를 모으는 것보다 우선시 되기도 할 것이다. 아직 다수의 노조가 이렇게 변형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유사한 현상이 다른 노조들에서도 나타나고 있음은 충분히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이 변화는 단순히 노동조합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 민주주의의 변화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한국 노동조합 민주주의의 변형>

시기

작업장 민주주의 경향

1980 – 1990년대

현장에서의 자본의 노동에 대한 통제로부터 자율성 확보

평등의 논리. 지도부에 권한이 집중된 <민주집중제>

2000년대

안정적인 노조 운영체제 확립. 대의제 민주주의 안착. 

대의원 중심으로 조직내부 민주주의 원리 작동. 

대의원 및 집행부들의 실질적 대표 역할 작동. 

대의원을 장악히여 조직에 영향력을 미치는 <정파조직> 문제 대두.

2010년대

복수노조 경쟁 시작. 조직운영에서 직접민주주의적 경향 심화. 

대의원 및 집행부들의 묘사적 대표 역할 심화 

조합원들의 민원에 반응해야 하는 <자판기 노조> 경향 등장. 

능력주의 경향 확대. 현장에서 <정파조직> 영향력 약화.

2020년대 ∼

대표제/정파조직/상급단체 등 기존 주류 시스템이 붕괴된 채 온라인 커뮤니티 운영과 유사한 <커뮤니티형 노조 민주주의> 등장.

복수노조 체제와 개별이익 추구 심화로 인해 조합원들의 <노조쇼핑> 현상 확대. 



4. ‘온라인 커뮤니티형 노조’의 등장

이러한 변화 속에서 우리 눈앞에 나타난 새로운 형태의 노동조합은 ‘온라인 커뮤니티형 노조’이다. 여기서 말하는 ‘커뮤니티형 노조’는 일본이나 한국에서 일부 시도되었던 ‘지역 커뮤니티 유니온’이나 ‘청년유니온’과 같이 특정 사업장이 없는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커뮤니티 유니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말그대로 온라인에 존재하는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들을 의미한다. 노동조합이 ‘펨코’나 ‘디시인사이드’,  ‘루리웹’ 등의 온라인 커뮤니티처럼 작동하고 운영된다는 것이다. 혼돈을 피하기 위해 억지로 이름붙이면 ‘펨코형 노조’, ‘디시인사이드형 노조’와 같은 용어가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노조는 과거처럼 강한 이념이나 조직적 규율로 결속되지 않는다. 대신 온라인 커뮤니티들과 유사한 특징을 가질 것이다. 먼저 강한 결속보다는 느슨한 네트워크 형태를 가질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참여보다 ‘소속감’ 중심으로 작동하게 되며 정치적 정체성보다 실용적 이익이 중심이 된 활동이 더 강하게 추동될 것이다. 노동조합의 전략 역시 장기적 전략보다 단기적 성과 중심으로 집중될 수 밖에 없다. 

희망적으로만 본다면 이것은 새로운 가능성일지도 모른다. 기존에 일부 정파 중심 노조가 배제했던 다양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포괄할 수 있을지 모른다. 또는 기업단위에서 조직하기 힘든 프리랜서 노동자나 플랫폼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형식으로서 ‘직업적 공동체’의 가능성도 내포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러한 조직은 심각한 위험을 함께 내포한다.

그것은 첫째로 연대의 붕괴다. 조합원 개인들이 각자가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는데에만 골몰하고 같은 사업장 내에서의 연대와 협력 역시 기능하기 어렵게 만든다. 두번째는 집단적 책임의 약화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게시판에 어그로성 글을 올려서 여론을 만들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가져온 결과에 대한 책임을 누구도 지지 않는다. 노동조합의 활동이 이런 방식이 된다면 결과가 맘에 들지 않을 때 소수의 지도부 몇명을 매번 갈아치우면 그만일뿐 조합원들은 어떤 책임도 공유하지 않게 된다. 지나치게 부정적인 전망만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간 노동조합 민주주의의 변형의 과정을 복기해본다면 이러한 전망이 기우가 아닐지도 모른다.


5. 노동운동 혁신의 쟁점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운동이 직면한 핵심 질문은 고전적이지만 결국 “민주주의란 무엇인가?”가 될 수 밖에 없다. 

가장 먼저 작업장 민주주의, 아니 민주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노동운동 스스로의 재정의와 학습이 필요하다. 단순한 참여가 아니라 숙의와 책임을 포함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고민을 심화시켜야 한다. 민주주의란 버튼을 누르면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노동운동의 주체들도 제대로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즉각적 요구가 아니라 집단적 결정 구조가 더 중요하다. 민주주의는 개인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이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치의 붕괴를 가져오고 있는 직접민주주의나 디지털 민주주의와 같은 것들이 아니라 고전적일 수 있지만 오히려 “결사체 정치”의 복원에 대한 문제의식이 필요하다. 노동조합은 서비스 제공조직이 아니다. 노동조합은 민주주의 조직이며 정치적 조직이다. 개별화된 조합원을 다시 집단적 행위자로 조직하고 노동조합의 주체들도 역시 정치적으로 재구성 하는 과정이 시급하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민주주의를 다시 묻는 과정이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더 이상 사회의 제도 속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작업장 안으로 들어왔고, 노동조합 내부를 급격하게 변화시키고 있다. 문제는 오늘날의 야수화된 민주주의가 더 나은 방향으로 작동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분열을 확대하고, 격차를 강화하며, 연대를 약화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질문은 이것이다. 노동조합은 이 변화된 민주주의의 경향성에 어떻게 적응하고 또 저항할 것인가? 그리고 민주주의를 다시 구성할 것인가. 노동조합이 다시 민주주의의 엔진이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내부의 민주적 절차를 넘어 사회적 민주주의를 만들어내는 조직으로 자신을 재정의해야 한다. 그것이 “노조쇼핑”의 시대를 넘어 다시 노동조합을 민주주의의 핵심 제도로 복원하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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