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발전소]노동삼국과 고용박스 - 조건준(노동발전소 / 아무나유니온 대표)

공식 관리자
2026-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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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삼국과 고용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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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업노동학회 주최로 열린 기획토론회 "이재명 정부 노동구조개혁 무엇을 할것인가?"에 실린 토론문을 공유합니다.]


 2025년 7월, 민주노총 출신 노동자가 고용노동부 장관이 되었다. 2026년, 마침내 메이데이가 법정 휴일이 되었다. 근로자라는 단어가 점차 노동자로 바뀌고 있다. 늦은 감도 있다. ‘근로자냐, 노동자냐’라는 쟁점이 별 의미가 없을 만큼 노동의 세계가 변했기 때문이다.

 고용계약 없는 ‘노무 제공자’ 영역에서 고용보험 적용, 기존 노동처럼 시공간이 명확하지 않은 업종에서 산재의 적용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초기업 교섭은 잘 될까. 기업이 기반인 양노총 노조들이 초기업적으로 생각하고, 초기업적으로 뭉치고, 초기업적으로 교섭할까. 쉽지 않다. 그들은 기업에 기반을 둔 자기 조건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지난 3월 19일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노동조합 조직률이 너무 낮은 건 사실"이라며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률을 최대한 좀 끌어올려보자"고 했다. 그런데 우리도 알고 대통령도 안다. 이미 공공부문이나 중견기업 이상에서 조직율은 낮지 않고, 영세사업장을 비롯한 무노조 영역에서 노조 설립 장애물은 여전해 조직율이 획기적으로 높아질 것 같지 않다. 

 기성 노동자에게 도달할 정년 연장은 중요하지만, 정년 없이 일하는 시민에게 의미 없다. 기존 노동자에게 도달할 노동시간 단축은 중요하겠지만, 노동시간이 들쭉날쭉한 시민에게 주 4.5일이든 4일이든 무의미하다. 비정규직에게 노조법 2조 개정이 도달했지만, 원청이든 하청이든 사용자가 없는 이들에게 별 볼 일 없다. 프리랜서 눈으로 보면 노동연구가 공허하다. 프리랜서 연구가 늘었지만, 결사를 촉진하는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일하는 사람 권리 기본법’(이하 ‘기본법’으로 표기)은 신상품처럼 보인다. ‘노무 제공자’는 일부 업종의 산재보험과 고용보험 적용을 위해 이미 쓰는 용어지만, 노동법 밖의 시민을 별도의 기본법을 만들어 호명하려는 점에서 이전과 다르다. 타법과 관계에서 기본법 지위가 명확하지 않다거나, 내용이 선언적이라 실효성이 부족하고, 입법과정에 당사자 관심과 참여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뒤따른다. 시작은 미약할지라도 나중을 창대하게 만드는 디딤돌이 될 수 있을까. 

 

 독립영역이 커졌다


 “비임금 노동자 수는 2022년부터 3년 연속 비정규직 노동자 수를 추월했다.” “특히 비임금 노동자 수는 2022년 처음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제친 이후 3년 연속 비정규직 노동자 수를 웃돌고 있다. 매년 8월을 기준으로 발표하는 국가데이터처의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를 보면, 2024년 비임금 노동자 수(869만명)는 비정규직 노동자 수(846만명)보다 23만 명 더 많았다.” 

 2026년 1월 14일 경향신문 보도다. 여기서 말하는 ‘비임금 근로자’는 특정 기업에 고용계약을 맺지 않고 일한 소득에 대해 3.3% 세금을 내는 사람이다. 이 기사에 ‘비임금 노동자’라는 단어가 등장하지만, 이 영역에 붙은 이름은 어지러울 정도로 많다. 비임금, 비정형, 비전형 등 잔여적 존재로 묘사하는 비(非)시리즈, 인적용역사업소득자, 정규직보다 더 종속(의존)적으로 보는 종속(의존)계약자, 정말 프리(Free)한지 의문이 붙는 프리랜서, 법에서 언급하는 ‘노무 제공자’, 고립은 아닌지 꼬리가 붙는 ‘독립노동,’ “차라리 가치중립적 숫자를 쓰자”며 한 프리랜서가 제안한 ‘1인노동’까지 다양하다. 

 이 토론문에서는 고용계약 없는 ‘고용으로부터 독립적’, 소속 기업이 없는 ‘소속으로부터 독립적’, 노동법 적용을 받지 않는 ‘기존 노동법으로부터 독립적’이라는 특징을 보이면서 ‘정규직이나 비정규직과 별도로 언급’된 점을 고려해 ‘독립영역’으로 지칭하겠다. 

 “에이, 그렇게 많지 않아” 독립영역이 비정규직 규모를 넘어선 869만 명이라고 하면 돌아오는 반응의 하나다. 물론 통계를 둘러싼 쟁점이 있다. 분류 기준에 따라 통계가 달라진다. 직장에 다니며 N잡으로 3.3% 세금을 내는 사람 등 중복집계를 빼면 규모가 줄고, 독립적 특성을 가진 노동자와 자영업자, 3.3% 세금으로 포착되지 않는 사람을 모두 포함하면 규모는 커진다. 

 추세에 따라 통계의 의미가 달라진다. 독립영역 증가를 곧 사라질 일시적‧예외적 현상으로 본다면 ‘869만 명’에 주목하는 것은 경솔하다. 디지털 경제와 AI의 영향 때문에 독립영역이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본다면 이 통계는 ‘필연적 혼자의 시대’1)에 대한 강력한 증거다.


 노동삼국 시대가 왔다


 추세를 따지지 않고 있는 통계 그대로 보면, ‘이중 노동시장’이라는 말은 ‘정규직-비정규직-독립영역’으로 나뉜 노동 세계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비현실적 개념이다. 현실은 노동3국 시대다. 이를 좀 더 명확히 드러내기 위해 아래의 비교표를 만들었다. 

분류

1국

2국

3국

구성

정규직

비정규직

독립직2)

규모3)

1,635만

846만

869만

고용관계

X

기업소속

X

통제된 노동시간

X(△)

통제된 노동공간

X(△)

임금

X

권리보장 법제도

X

결사 경로

1차 집결 ➝ 2차 조직

1차 집결 ➝ 2차 조직

1차 집결 X

결사체

노조

노조

다양체



 1국의 정규직과 2국의 하청노동자나 임시계약에게는 고용계약이 있지만, 독립영역은 고용계약이 거의 없다. 독립직들은 특정 기업에 소속되지 않기 때문에 직업은 있지만 고정된 직장이 없다. 정기적‧일률적‧반복적인 출퇴근은 시간 통제고, 공장‧직장에 모여서 일하는 것은 공간적 통제다. 독립영역에 이런 기존의 시공간 통제는 약해진다.4) 고용된 노동자는 임금을 받지만, 임금 없는 독립직에게 수수료를 비롯한 다른 이름의 소득이 있다. 

 1‧2국은 노동권을 법으로 보장하지만, 3국에는 그런 법 없다. 1‧2국 노동자들은 사용자들에 의해 1차로 회사에 집결한 후, 2차로 노조를 만들었다. 독립영역에는 회사 직원이 되어 소속감을 느낄 1차 집결이 없다. 3국에는 직장 동료가 아닌 업계 동료가 있다. 같이 출근하고 같이 먹고 같이 일하는 직장 동료는 내부 경쟁도 있지만, 한 덩어리로 뭉쳐 다른 회사와 경쟁한다. 한 회사로 묶이지 않은 업계 동료는 떨어져서 경쟁하고 협업하기 때문에 관계가 연결되는 형태나 갈등의 모습도 다르다. 

 노동자를 1차 집결시킨 기업은 영리 활동으로 이익결사체 역할을 하고, 노동자의 2차 조직화로 탄생한 노조는 권리결사체 역할을 한다. 1차 집결 없는 프리랜서는 이 모든 것을 직접 감당해야 한다. 노동하고 영업도 한다. 이 때문에 프리랜서들은 결사체에 직업적 정보의 공유와  비즈니스 지원, 사회적 권리 보호에 이르는 복합적 역할을 기대한다. ‘1차 집결 부재’가 만든 결과다. 뭉치고 교섭하고 집단행동으로 노동자의 사회적 지위를 갖도록 보장하는 장치가 노동법이다. 이런 제도가 없는 독립영역에서 노조처럼 대표성을 가진 결사체 등장이 어려워 협회, 협동조합, 커뮤니티, 노동공제회 같은 다양한 결사체가 나타난다. ‘제도의 공백’이 작동한 결과다. ‘1차 집결 공백’과 ‘제도 공백’이라는 이중 공백이 독립영역에 다양체를 낳은 배경이다.

 

 여기는 유체의 나라다


 3월 19일, 이재명 대통령은 “정규직 입장에서 해고는 죽음이라는 생각에 극단적으로 싸운다. 기업은 (고용이 경직돼 있어) 정규직을 최대한 안 뽑으려고 해 악순환이 된다. 고용유연성을 확보하는 대신 사회안전망을 튼튼하게 갖추면 선순환으로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이에 한국노총 위원장이 반론을 폈다.5) 이 자리에서도 보여준 것처럼 1국은 경직되었다며 유연성 공격을 받는 ‘고체의 영토’라면, 3국은 더 이상 유연할 수 없을 만큼 유연한 ‘유체의 영토’다

 독일의 사회철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가족, 종교, 계급, 국가와 같이 사회제도가 견고히 자리했던 산업사회를 ‘고체 근대’로, 이런 제도들이 힘을 잃으면서 구성원들의 삶이 유동적으로 변해가는 후기 산업사회를 ‘액체 근대’로 구분했다. ‘고체 근대’에는 가족·종교·계급·국가 등 견고한 사회제도가 작동하지만, ‘액체 근대’에는 제도의 힘이 약해지면서 삶이 유동화된다.6)

 산업과 사회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과거에는 산업단지와 주택단지가 분명하게 구분된 도시를 만들었다. 그런데 공장이 들어선 구로공단이 사라지고 아파트형 공장이 들어선 구로디지털단지로 바뀌는 변형이 일어났다. 더 나아가 플랫폼 경제에서 프리랜서들은 집이나 카페 등 사회 공간의 모든 곳에서 일한다. 직장과 집, 노동과 여가의 경계가 흐릿하다. 8시간 노동, 8시간 여가, 8시간 수면이라는 전기 산업사회에서 탄생한 노동문화가 흐릿해지고 있다. 쿠팡 새벽 배송 논란도 그 하나의 증상이다.

 독립영역을 얘기할 때 “노동법 밖” 혹은 “권리 밖”이라는 표현이 쓰인다. ‘밖의 세계’는 한자로 외계(外界)다. 프리랜서는 ‘외계의 노동’을 하는 ‘외계인’일까. 그렇다면 고용된 노동은 ‘원시(原始) 노동’을 하는 ‘원시인’일까. 1국의 노동은 자본주의와 함께 등장한 ‘원래 시작(原始)’ 때의 ‘임노동’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터무니없는 비유는 아닐 것이다.

 2026년 1월 26일자 매일노동뉴스 기사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은 “건설기계노조는 사업자 단체이자 노조”라는 취지의 판결을 했다. 이 판결이 있기 3년 전인 2022년 12월 29일, 문화일보는 사설을 통해서 건설기계노조가 노조의 탈을 쓰고 있다면서 공정거래법상 사업자 단체라고 본 공정거래위원회 판단을 두둔했다. 그런데 3년 후 법원은 건설기계노조를 사업자 단체이면서 노조라는 취지로 판결했다. 노조를 단일체가 아닌 복합체로 본 것이다.

 앞에서 인용한 경향신문 기사에 “프리랜서·특수고용직·플랫폼 노동자 등 비임금 노동자(인적용역 사업자) 규모가 2024년 870만명”이라는 대목이 있다. ‘비임금 노동자’에 괄호를 치고 ‘인적용역 사업자’라고 했다. 프리랜서·특수고용직·플랫폼 종사자는 노동자인가, 사업자인가.

 “노동자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죠” 프리랜서 인터뷰 참여자들에게 ‘프리랜서가 노동자냐’고 묻자 적지 않은 프리랜서가 이렇게 답했다. “프리랜서를 노동자라고 너무 협소하게 만드는 이런 질문이 싫어요” 한 사람은 이렇게 덧붙였다.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있다. 산 상태인지 죽은 상태인지 모른다. 빛은 파동일까, 입자일까. 빛은 파동이면서 입자다. 생사를 알 수 없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혹은 입자이면서도 파동인 빛처럼 양자의 세계에 중첩이 있다. 양자이론을 꺼내는 것이 엉뚱할 수 있다. 그런데 인류는 고전 물리학을 넘어 양자 물리학을 통해 세계를 더 깊게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는 양자 컴퓨터 개발까지 나아가고 있다. 이처럼 ‘사업자냐, 노동자냐’는 과거의 세계를 벗어나지 않으면 독립영역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까.


 그것은 모두의 미래가 될 수 있다


 노동삼국은 노동개혁을 휘어지게 한다. 정년 연장,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1국에 밀접한 이슈다. 정년 연장에 대한 논란도 그렇지만, ‘노동운동의 역사는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공감이 강하게 형성되지 않는다. 기득권처럼 보이는 노동1국에 대한 저항심리가 작동한다. 2025년에 마무리하려던 정년 연장은 미뤄졌다. 노동시간 단축은 민간에서 사례를 만드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노조법 2조 개정은 이재명 정부의 노동계혁에서 뜨거운 이슈였으며 특히 2국의 비정규직에게 ‘핫’했다. 그런데 법 개정으로 정점이 지났다. 원청과 교섭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현재의 상황은 정점을 찍은 후의 여파다. 

 3국에 더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이곳이 ‘취약계층’이나 ‘약자’의 나라이기 때문이 아니다. 취약계층이나 약자로 본다면, 외면해도 힘없는 곳이니 큰일 나지 않는 곳이거나, 그나마 신경을 쓰더라도 ‘강자의 보호 대상’으로 여겨진다. 3국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첫째로 모두의 미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파릇한 청년들은 취업 장벽에 막혀 알바, 프리랜서로 직업생활을 시작한다. 황혼이 다가온 고령자들은 돌봄 등 고용 없는 영역에서 일한다. 기묘하게도 입직기와 퇴직기에 3국 시민이 되고 있다. AI기술이 발전하면서 고용 없는 영역이 늘어나고 있다. 거대 플랫폼과 AI기술을 가진 빅테크 기술권력은 날로 커지고, 다수의 시민은 그들의 영토에서 소작농이나 농노처럼 살아가는 ‘기술봉건주의’가 올 것이라는 예측이 등장했다.7) 이런 추세라면 고용·소속·임금·권리 없는 3국의 현재는 모두의 미래다.

 둘째로 민주주의가 멈춰 선 곳은 공장 문 앞이 아니다. 산업과 직장의 민주주의를 강조하기 위해서 쓰는 유명한 문구가 ‘민주주의는 공장의 문 앞에 멈춰 선다’는 것이다. 예전 공장은 사회와 분리된 공업단지에 만들었다. 이제는 컨베이어 벨트가 깔린 공장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플랫폼에 접속해서 일하는 담 없는 사회 곳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늘었다. 이것이 후기 산업사회가 만든 ‘사회공장’이다.8) 사회공장에서 일하는 3국 시민은 노동법 밖의 존재, 권리 밖의 존재로 불린다. 민주주의는 사회 곳곳에서 멈춰 있다. 민주주의가 멈춘 곳에 고립된 영혼은 극단주의에 취약하다. 오늘날 민주주의의 위기가 시작되는 뿌리가 여기에 있다.

 셋째로 사회 재구성 때문에 3국에 주목한다. 김수영(2026)은 ‘1인가구’가 천만을 넘어선 ‘혼자의 시대’에 사회를 구성하려는 몇 사례를 보여준다. 젊은이들의 러닝크루를 비롯한 소모임, 다인가구를 겨냥한 제품을 공동으로 구매한 후 나누는 ‘소분모임’, 핵개인화 되어있는 사회에서 곤경에 처한 사람을 살리는 ‘핵사곤프로젝트’, 혼인과 혈연으로 맺은 ‘원가족’이 아닌 ‘비친족가구’ 등이다. 이와 유사한 경향을 노동3국에서 볼 수 있다. 기업복지가 없는 곳에 탄생한 풀빵노동공제연합은 중소사업장이나 프리랜서 회원들에게 기댈 언덕이 될 다양한 소모임을 장려하고 지원한다. 혼자 일하는 프리랜서들은 자조 모임을 비롯해 다양한 커뮤니티를 만들어 사회를 형성한다. 디지털화에 따라 ‘경험의 멸종’9)을 우려하고, 인간보다 AI와 더 많은 대화를 함으로써 관계의 실종을 걱정하는 다른 한편에서 사회가 재구성되고 있다.

 기업이라는 이익결사체는 임금과 기업복지는 물론 임직원이라는 인간관계를 제공하는 하나의 사회다. 1국의 정규직은 그 주어진 사회를 지키려는 성향이 크고, 2국의 비정규직은 ‘비’자를 떼고 1국으로 진입하고 싶은 ‘이민의 꿈’ 때문에 지금 있는 곳에 자기 사회를 만들 동기가 상대적으로 약하다. 3국은 이와 다른 영역이다. 노동약자나 취약계층 같은 ‘약자 서사’나 권리나 노조의 밖이라는 ‘외계 서사’를 벗어나 ‘사회 재구성의 씨앗을 품은 영토’라는 새로운 서사를 필요로 한다. 


 ‘고용박스’가 있다

 

 유럽의 산업화 과정에서 떠도는 부랑자를 처형까지 하면서 공장으로 들어가게 했다. 고용계약의 영토로 밀어 넣은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자본주의적 임노동은 고용계약을 맺고 임금을 받아 생존하는 강력한 틀, ‘고용박스’가 되었다.10)  

 1국에서 가장 단단한 ‘고용박스’를 볼 수 있다. ‘해고는 살인’이라는 구호는 고용 상자를 벗어나는 것을 죽음으로 여길 정도로 고용에 대한 집착이 이곳에서 나타난다. 노조는 고용을 흔든다면 기후정의든 AI든 모조리 반대할 태세다. ‘고용박스’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모습이 노조법 2조 개정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고용된 상자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려는 요구다.

 3국에는 ‘고용박스’가 없다. 고용 없는 ‘탈고용’, 기업 없는 ‘탈기업’, 임금 없는 ‘탈임노동’의 나라다. 3국은 ‘고용박스’에 갇히지 않은 독립된 영토다. 이 영역은 외주화를 추진해온 자본의 흐름, 디지털화 등 기술적 영향, 취직이 어렵거나 퇴직으로 인한 비자발적 선택, ‘맨박스’가 작동하는 기업집단을 벗어나고 싶은 자발적 선택이 뒤섞인 결과로 보인다.

 노동계에는 ‘고용박스’ 강화와 그것과 다른 독립을 지향하는 두 흐름이 있다. 후자에 중심을 두고 ‘고용박스’를 깨자고 하면, 1국의 반발은 빤하다. ‘고용박스’가 깨진다는 것은 해고의 공포를 자극하는 ‘고용 유연화’다. 그것은 자본가들이 노동을 공격하는 주장이라며 반발한다.11)

 그런데 이런 주장을 과감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 대통령이다. 2025년 12월 9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비정규직은 더더욱 적정 임금을 줘야 한다”며 “잠깐 쓰는 사람이 (정규직보다) 임금이 더 적은데 그 반대가 돼야 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각 부처는 고용할 때 일용직·비정규직의 경우 적정 임금을 줘야 한다”며 “똑같은 일을 하는데 비정규직 임금이 정규직의 50~60%밖에 안 되는데, 이게 우리 사회 발전 가능성을 가로막고 있다”고 했다. 

 4월 10일, 민주노총을 만난 자리에서도 대통령이 같은 취지의 발언을 했다. 고용이라는 상자 안에 있는 정규직보다 그 상자 밖으로 밀려날 수 있는 비정규직에게 임금을 더 줘야 한다는 레토릭만 보면 대통령이 어떤 활동가보다 급진적이다.

 모든 가짜 3.3을 없애고 노동자로 추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고용박스’를 향한 흐름이다. 노동자로 추정할 수 없는 사람을 겨냥한 ‘기본법’ 제정은 독립영역을 향해 있다. 노동사회를 1국 중심으로만 통일할 수 있을까. 코끼리 냉장고에 집에 넣기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들어갈 때까지 집어넣든가, 죽이고 자르고 말려서 넣을 수도 있다.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반대로 3국 중심으로 통일하려는 것이 적절할까. ‘고용박스 강화’와 ‘고용으로부터의 독립’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할까. 산에는 나무가 있고, 강에는 물고기가 살며, 하늘에는 새들이 난다. 1국에는 ‘고용박스’가 있고, 2국에는 ‘이민의 꿈’이 있다면, 3국에는 ‘독립의 길’이 있지 않을까.


 독립영역을 좋은 경험이 되게 하자


 첫째로 중요한 것은 좋은 경험을 갖는 것이다. “네델란드는 탄소를 줄이기 위해 자전거를 타야 한다는 당위가 아니라, 육아 중 여성이 자동차보다 아이를 자전거로 태우고 이동하는 것이 더 즐겁고 편한 경험이 되게 만들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이정희 박사는 유럽을 돌아보고 와서 이렇게 말했다. 이에 착안하면, ‘고용박스’에 갇힌 이들에게 고용유연화를 들이대기보다 ‘고용박스’를 벗어난 3국의 삶이 좋은 경험이 되게 만들어야 한다. 관성적 반발을 부르는 레토릭보다 새로운 탄력을 만드는 서사가 필요하다. 

 둘째로 새로운 권리목록을 작성해야 한다. 3국이 괜찮은 영토가 되려면 3국에 맞는 권리목록이 작성되고 그 실현 방법을 훨씬 두텁게 개발해야 한다. 남녀고용평등법은 고용 없는 사람에게 쓸모없고,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은 직장이 없는 사람에게 무용하며, 노동시간이 명확하지 않은 사람에게 노동시간 단축은 공허하고, 임금 없는 사람에게 최저임금이든 생활임금이든 딴 세상 얘기다. 정년 연장은 정년 없는 사람에게 아무 의미가 없으며, 퇴직이 없는 사람에게 퇴직금 제도는 공허하다. 그래서 3국을 위한 입직에서 퇴직까지의 권리목록과 그 실현 방법에 대해 종합적 논의가 있어야 한다. ‘기본법‘은 부족하다. 그래서 비판하고 반대할 수 있지만, 입법을 계기로 권리목록 작성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셋째로 개념의 재설계가 필요하다. ‘기본법’을 둘러싸고 특정한 사업에 노무를 제공하는 경우에 법을 적용할지, 사업만이 아닌 사람에게 노무를 제공하는 경우를 포함할지 논란이 있지만, 그 이전에 ‘노무 제공자’라는 개념도 살펴야 한다. 독립계약 프리랜서인 나는 클라이언트(고객)에게 노동력, 근로, 노무 등 뭐라고 부르든 그것들을 제공하지 않는다. 일한 결과물을 클라이언트에게 제공한다. 그렇다면 나는 ‘노무 제공자’에 속할까. 

 ‘사용자 책임‘은 민법만이 아니라 노동관계법에서도 중요하다. 사용자 책임을 펼치면, 노동자 동원, 노동과정 관리감독, 임금 등 보상과 후생복지,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받는 제 3자에 대한 책임까지 여러 측면이 있다. 사용자의 역할은 비정규직의 등장으로 분할되었다. 디지털 경제의 확산은 이를 더 분할했다. 노동자를 동원하는 역할을 플랫폼이 한다.12) 그러나 노동과정을 직접 관리감독하지 않는다. 

 노조법 2조 개정을 요구해온 비정규직 운동은 ‘사용자 책임’을 확장하기보다 ‘진짜 사장찾기’라는 과거의 연장선에서 하나의 원청사용자를 특정해 교섭을 요구한다. 그러나 사용자 역할이 프로젝트 매니저, 중간 플랫폼 사업자, 거대 플랫폼 사업자, 개인 클라이언트로 분산된 3국에서는 하나의 사용자를 특정할 수 없다. 3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결사체가 다양체로 나타나듯 사용자 또한 다양체일 수 있다. 사용자와 노동자 개념은 3국에서 재구성되어야 한다. 

 넷째로 독립영역의 결사체 개발이 필요하다. "기존 노동조합 바깥에서 기술을 이용해 협력하고 조직을 꾸리는 '연합 행동'이 크게 일어나고 있다" " 젊은이들은 노조를 적절한 대응책으로 보지 않는다" 그래서 "노동조합도 바뀌어야 한다. 바뀌지 않으면 죽음 뿐이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선임 연구원 대니얼 서스킨드의 주장이다.13) 그가 사는 영국의 노조들이 바뀔 가능성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지만, 한국에서 그럴 가능성이 잘 안 보인다. 기성노조가 게으르고 무능하기 때문이 아니라 ‘고용박스’ 안에 있기 때문이다. 양노총에는 일부 플랫폼 노조가 가입해 있지만 3국의 특징을 반영한 결사체로 보기 어렵고, 플랫폼프리랜서공제회는 당사자 결사체보다 복지서비스단체에 가까워 보인다. 

 노조 조직율을 높여보자고 말한 대통령이 독립영역의 결사체 개발에 발 벗고 나설 리 없다. 일각에서 노동회의소를 말하지만, 현실성이 없고 만들어도 당사자 결사체보다 국가의 노동서비스기구에 가까울 것으로 보인다. 결국 결사체 개발은 온전하게 3국에서 일하는 당사자의 책임일까. 이미 독립영역에 서로를 연결하려는 다양한 노력이 있다. 독립영역의 특성을 반영한 연결 방법을 더 발전시켜야 하지만, ‘제도의 공백’은 치명적이다. 

 산업적‧사회적 시민권이 없던 노동자들이 사회적 지위를 갖게 만든 장치는 단지 결사의 자유가 아니다.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이 있다. 프리랜서들이 노조를 만드는 것은 지금도 어렵지 않다. 하지만 교섭권이 없으면 각종 자격증을 발급해주고, 다양한 로비를 통해 관계와 정보를 가지고 있는 직능협회에 비해 효능감을 주기 어렵다. 노조로 가입할 동력이 떨어진다. 독립영역의 몇 노조 사례가 보여준다.

 무노조 기업에서 노조를 만들 때 노사협의회를 넘어서야 하는 경우처럼 독립영역에서 노조는 비노조 결사체와 경쟁해야 한다. 단체교섭권과 행동권을 가진 노조는 경쟁력이 있기에 노사협의회를 넘어서 대표 결사체가 된다. 독립영역에 그런 교섭권은 없다. 앞에서 언급한 ‘사용자 책임의 분할’과 연계해 독립영역의 교섭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이런 문제 해결 없이 노조 조직율을 높이자는 말은 허무한 ‘레토릭’에 그칠 것이다.

 다섯째로 연대는 순환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고체의 영토’인 1국에서 연대는 조직된 덩어리들의 만남, 특히 투쟁연대로 나타난다. ‘유체의 영토’인 3국에는 조직된 덩어리가 없고 그런 곳에서 나오는 자원이 없다. 간부 활동비나 사무실을 만들기 어렵다. 노동계의 자원 순환이 필요하다. 정부도 노동계의 자원 순환을 촉진할 제도와 지원 방안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좋은 사회가 좋은 국가를 만든다. 노벨상을 받은 두 경제학자 애쓰모 글루와 로빈슨이 세계 각국을 분석하고 내린 결론이다.14) 사회란 시민의 결사체다. 복지국가를 탄생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회가 노조였다. 그런데 기성노조의 영역은 기업복지에 민감하고, 3국에는 탄탄한 사회를 구축할 결사가 약하다. 1인노동, 1인가구에 조응하는 사회를 구성할 힘이 그만큼 약한 것이다. 이런 상태를 바꾸지 못하면 얼마 가지 않아 우리는 다시 후회할지도 모른다. 짧은 12.3 계엄보다 더 누적된 위험이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고용박스’ 없는 독립영역에서 새로운 서사를 만들 수 있다면, 복합위기를 맞은 세계에 사회 재구성의 길을 보여주는 모델이 되지 않을까.



1) 2026년, 김수영, ‘필연적 혼자의 시대’ 참조. 김수영은 전체 가구의 42%에 이른 1인가구를 후기 산업사회의 노동 형태에 조응하는 것으로 본다. 1인노동과 1인가구가 늘어난 ‘혼자의 시대’가 되었다. 

2) 정규직, 비정규직에 ‘직(職)’을 붙이듯 독립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독립직’으로 통칭했다. 

3) 김종진, 2026, ‘일하는사람기본법 제정 논의 필요성과 사회적 보호 검토’ 중 2024년 기준 통계 참조.

4) 인터뷰에 참여한 프리랜서 강사나 방송작가 중 지정된 시간과 장소에서 일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내 직장’이나 ‘우리 회사’에서 지속‧반복‧안정적 일상으로서 ‘근무시간’이라는 감각은 약했다. 

5) 2026.3.19.일자 한겨레신문 기사. “이 대통령 ‘고용 유연성’ 꺼내자…노동계 “지금도 수시 구조조정”“

6) 김수영의 같은 책

7) 계급투쟁의 역사라는 ‘계급결정론’에 비해 ‘기술결정론’이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술 또한 사회적 선택으로 달라지기 때문에 ‘사회결정론’은 중요하고, 기후위기라는 생태계 압력 때문에 산업을 재편해야 하는 생태계가 작동하는 ‘행성결정론’의 안목이 필요할 수 있다. 

8) 정흥준 외, 2025, ‘정의로운 노동 : 대전환기 노동의 제구성’, 14장 참조.

9) 크리스틴 로젠 저자, 이영래 번역, ‘경험의 멸종’, 2025, 어크로스 출판사.

10) ‘맨박스’에서 착안한 것이다. ‘맨박스’는 전기 산업사회에 탄생한 남성 중심의 직장‧임금‧가족 모델을 배경으로 ‘남자다워야 한다’는 온갖 압박으로 가득한 생각의 틀이다. 그런 산업과 그런 가족 모델은 무너지고 있다. ‘맨박스’에 갇히면 잃어버린 옛 남성성에 대한 박탈감으로 혐오에 빠져든다. 

11) '고용박스'에 집착하는 것이 과연 노동운동의 정신일까, '탈고용'이 오히려 노동해방을 향한 가능성을 더 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는 현재 노동계 역량으로 감당하기에 버거운 쟁점으로 보인다.

12) 노동연구원의 박명준 박사는 2026년 1월 노동발전소 토론회에서 ‘모빌라이저(mobilizer - 동원자)’라는 개념을 제기했다. 이는 플랫폼을 새로운 방식으로 볼 수 있는 발상을 주었다. 사용자의 역할 중 하나가 노동자를 일터로 동원하는 것인데, 디지털 경제에서 플랫폼은 이런 기능을 한다. 

13) 대니얼 서스킨드 지음, 김정아 옮김,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 2020. 와이즈베리 출판.

14) 대런 애쓰모글루, 제임스 A. 로빈슨 지음, 장경덕 옮김, 2020. ‘좁은 회랑’. SIGONGSA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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