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발전소란, 재미있게 살려고 하는 모임 (김병철 노동발전소 모임지기)

공식 관리자
2026-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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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발전소란, 재미있게 살려고 하는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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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회고하며]

실패의 강도와 모습은 저마다 다르다. 하지만 20대에 실패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이 서툴기에 좌절의 고통을 더 예민하게 겪어야 했던 그 시절을 지나온 이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20대의 미숙함 덕분에 실패조차 아름다운 도전이 될 수 있었고, 그 실패를 발판 삼아 비로소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나 역시 뼈아픈 실패를 겪은 후 잠시 멈춰 서 있던 때가 있었다. 노동운동가로서 인생의 한 장이 속절없이 막을 내리던 시기였다. 고작 스물일곱의 나이에 말이다. 돌이켜보면 조직의 대표로서 마주한 고차방정식을 슬기롭게 풀어내기에 나의 경륜은 턱없이 부족했고, 리더십은 채 여물지 못했다. 그렇게 청년유니온 위원장이라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채 물러난 나는, 명백히 '실패한 노동운동가'였다.


모든 직책을 내려놓던 당시, 문재인 정부는 집권 3년 차 중반을 지나고 있었다. 나는 화려하게 출범했던 노사정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의 노동계 위원이었다. 노사 양측 모두가 탐탁지 않아 했던 ‘계층별 위원 제도’가 대통령의 강한 의지로 관철되었고, 그 결과 나는 청년 노동의 대표성을 인정받아 본위원으로 임명되었다. 이에 막중한 책임감과 열정, 순수성만 가득했다. 대통령의 곁에 섰다는 사실만으로도 주변의 선망과 질투, 경계가 뒤섞이고 있었단 것도 모른채.  


결과적으로 대통령은 사회적대화 1호 합의 의제로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를 요구했다. 우선 노동계의 양보를 요구한 셈이다. 이는 민주노총 내 강경파에게 경사노위 불참의 확실한 명분을 제공했고, 대통령의 1호 합의 요구를 마냥 반대할 수 없었던 한국노총 사이에서 나는 하나의 진영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한국노총은 단위기간을 1년에서 6개월까지 줄이는 합의를 만들어 냈고, 이제 본회의를 성사시키면 되었으나, 계층별 대표 3인의 불참 고수로 본회의는 끝내 열리지 못했다. 이에 청와대는 결단했고, 본위원회 파행에 책임을 물으며 상임위원, 공익위원 4인, 계층별 위원 3인을 해촉하며 마무리 되었다. 한 순간의 절정을 찍고, 순싯간에 떨어지던 벚꽃엔딩이었다. 

         

정작 나를 고통스럽게 했던 것은 대외적인 압박보다 내부의 결핍이었다. 일련의 과정과 고뇌를 함께 해석하고 위로해 줄 동료가 곁에 없었다는 점이 진정한 문제였다. 함께 청년유니온을 이끌던 동료들 역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고, 나의 요동치는 감정을 받아낼 여력이 없었다. 당면한 다른 사업들을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벅찼기에, 경사노위의 현안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조직적인 평가조차 제대로 이뤄질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임기를 마치는 것은 고역이었다. 가슴 속엔 억울함이 가득 찼고, 이대로 멈춰 서지 않으면 더 큰 화를 부를 것만 같았다. 특히 정권의 이해관계와 진보 진영 내 예민한 노사 관계가 얽힌 사안이었기에 선배들조차 선뜻 나서지 못하거나 문제를 외면했다. 가장 아픈 대목이었다.


그 무렵 만난 '정치발전소'는 내게 특별한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모든 직에서 물러나 무너져 있던 나를 따뜻하게 품어준 곳이었다. 고통을 덜어낼 수 있었고, 한국의 사회적 대화가 왜 여전히 이 모양인지 함께 고민해 나갔다. 사람 하나 살린 셈이다.


정치발전소는 창립 때부터 민주주의와 노동을 늘 동시에 강조해왔다. 노동 배제적으로 성장해온 한국의 국가 시스템, 노동운동 또한 민주주의를 진영 논리로만 이해했던 한계를 동시에 지적한다. 이러한 이론적 기반이 갖춰져 있었기 때문에 한국의 노사정 사회적 대화 현 주소를 정치발전소와 함께 심층적으로 진단할 수 있었다. 이랬던 날 들이 더할 나위 없이 특별했고, 특히 성주형과 의선 국장님 등 여러 선배들에게 많은 신세를 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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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들을 호출시키며] 

2024년 11월 27일, 5명의 선배들을 정치발전소 사무실로 불렀다. 무작정 써갈긴 페이퍼를 사전에 공유하며, 제안의 의도가 담겨있던 회의였다. 페이퍼엔 과거 노동운동의 경험, 특히 사회적 대화를 바탕으로 늘 풀리지 않던 질문들이 담겨 있었다. 나의 주요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았다.


1) 사회적대화 찬성파는 항상 노동운동 내에서 해명을 하는 것만 같은 위치에 머물러 있음. 노동계가 사회적 대화에 참여한다는 건, 늘 양보하러 들어가는 것처럼 굳어져 있음. 그 결과 조합원들이 보기에도 사회적대화 반대파의 주장에 결국 설득이 되거나, 상층부 정파 간의 피로한 논쟁 속에서 관심을 꺼버리는 문제가 늘 반복.


2) 현 사회적 대화 구조는 한국노총이 정부와 정치적 거래를 하기 용이한 구조. 정부의 요구사항에 따르면 보조금이 보장되고, 국회의원직을 비롯해 고위직을 보장받을 수 있음. 이러한 기나긴 과정 속에서 한국노총 출신 국회의원이 상당 수 배출되었으나, 한국의 사회적 대화가 새로운 지평이 열리고 있는지 회의적. 


3) 청년유니온도 준비되지 못한 채 사회적 대화에 참여했던 한계가 노출. 경사노위에 참여해서 무엇을 얻어낼 수 있다는 건지 조합원들을 설득할 명분이 부족했음. 청년유니온만의 사회적 대화 담론 형성, 정책 준비, 주체 형성 모두 실패했음을 돌이켜봐야.


4) 정치발전소는 여태 최장집, 박상훈 두 거장의 이론을 공부하고 토론해옴. 그러나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확장적 이론과 시각이 필요한 시기이며, 새로운 노동운동 주체들을 발굴하는데 실천적 방법론까지 모색하는 등 다음 스텝이 필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노동운동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노동·정치 담론을 형성하기 위해 정치발전소의 사업 범위를 넓혀보자는 제안을 드렸다. 이에 선배들은 흔쾌히 동의하였다. 그리고 당장의 가시적인 성과에 급급하기보다, 핵심 멤버들이 꾸준히 모여 학습하고 유대감을 쌓아가는 것부터 시작하자는 논의로 회의는 마무리되었다.


뒤풀이 자리에서 고기를 구우며 오늘의 자리를 창립총회로 규정하며 나름 기념비적(?) 자리가 되었다. 이에 본사는 정치발전소이니, 우린 ‘노동발전소’라 부르기로 합의되었다. 설사 이 프로젝트가 실패하더라도, 소장인 내가 아닌 진짜 사장 조성주 대표가 책임지면 된다는 농담 섞인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이렇게 노동발전소가 시작되었다.


[답은 아직 모르겠지만, 지혜를 기르는 모임]

노동발전소를 하기로 결의한 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12.3 계엄이 터졌다. 수많은 시민들이 또 추운 겨울에 광장에 나섰고, 끝내 대통령은 탄핵되며 정권이 교체 되었다.


새 정부가 빠르게 들어선 만큼 노동운동 역시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 특히 노동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노란봉투법’이 법제화 되었다. 그리고 확신했다. 노란봉투법 제도화 이후의 새로운 노동 담론 형성이 필요하고, 이를 새로운 사람들이 이끌어 가야 한다는 것을. 


사실 노동문제 현안은 늘 산적해 있다. 젊은 사람들은 SK하이닉스처럼 성과급 잔치가 가능한 노조 조합원이 아닌 이상, 주식과 코인만이 자산 형성의 유일한 대안으로 굳어졌다는 것. 안그래도 고용 창출이 어려운 민간의 노동시장에서 AI가 깊숙이 들어와 채용의 문은 더욱 좁아졌다는 것. 내수가 돌지 않는 지방 소도시의 중소기업과 자영업의 폐업은 늘어가는데, 새로운 신산업이 도시를 지탱하며 인구를 유입할 기미는 안보인다는 것.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며 이미 돌봄노동 수요가 폭증하고 있으나, 저임금 구조는 여전히 고착화 되어 기피하는 일자리라는 것. 현 근로기준법이 모든 일하는 사람들을 포용하지 못하는 것 이전에, 한국의 노-사 관계 자체가 협소한 이해관계에서만 작동되고 있다는 것. 


산적한 과제들보다 더 치명적인 위기는 따로 있다. 노동 문제를 중심으로 변화를 만들어낼 활동가와 연구자 그룹이 하루가 다르게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단순히 ‘머릿수’가 줄어드는 문제가 아니다. 변화하는 노동 현장의 복잡다단한 맥락을 읽어내고 대안을 제시할 ‘안테나’가 부러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밑바닥을 지탱하던 헌신적인 활동가들이 소진되어 조직을 떠나는 일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잦아지고 있다. 나 역시 그런 과정을 겪었다. 젊은 세대에게 노동운동이 더 이상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지 못한다는 진단은 아프지만 부정하기 힘들다. 물론 이런 진단을 내리는 마음은 조심스럽다. 지금도 묵묵히 조직을 지키고 있는 소수의 활동가를 응원하지는 못할망정, 개인의 실패를 집단의 실패로 둔갑시키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당당히 반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더 이상 ‘비전의 빈곤’과 ‘사람의 빈곤’ 등 중첩된 위기를 더 이상 외면하지 않았으면 한다. 프리랜서와 돌봄 노동자 등 급증하는 노동 시민들의 세계관을 담아낼 담론을 만들고, 사회적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노사 관계의 길을 모색하며, 모두를 위한 문턱 낮은 노동운동을 고민하는 일들은, 위기를 정면으로 응시하지 않고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난제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노동발전소는 노동문제를 직시하고, 어디서도 꺼내놓기 어려웠던 의견들을 솔직하게 꺼내 놓고 토론하는 모임이라 자부한다. 토론을 거치며 내가 가졌던 기존의 문제의식조차 시효가 다했음을 깨닫고, 모두가 문제의 원인을 끝까지 파고들며 치열하게 문답한다. 아직 명확한 답은 찾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 지혜가 쌓여가고 있다. 이렇게 서로의 지혜를 모아낸다면, 분명 새로운 길이 보이지 않을까 싶다.


지난 한 해 동안 10여 명의 동료가 매달 모여 총 11차례의 만남을 가졌고, 지난달 워크숍을 거치며 올해부터 ‘노동발전소’를 공식화하기로 뜻을 모았다. 우선 상반기 중 공개 토론회를 기획하고 있다. 노동의 현재와 미래를 묻는 흥미로운 행사가 될 것임을 자부한다.


그래서 노동발전소란, 내가 재미있게 살려고 하는 모임이다. 올 해 역시 재미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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