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년의 위기’라는 표현 적절
민주주의의 위기를 이렇게 비유하는 런시먼의 얘기는 재밌고도 적절한 비유같다. 오늘 첫 번째 발표자는 세계 민주주의의 위기 속에서 “민주주의의 핵심 인프라로서의 노동운동”을 강조했다. 그런데 “노동의 특정 부분만이 정치적으로 시민권을 확보하여 주류가 된 현실”이 문제다.
대런 애쓰모글로우를 인용해서 노조를 “강한 사회를 구성하는 핵심적 제도”로 보는 것도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노동은 임금과 고용의 문제만이 아니라 삶의 형식이기도 하다. 그래서 노조는 경제적 목소리를 시민적 목소리도 전환시킨다. 민주주의의 공동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러면 노동은 양극화된 진영의 한 편이 아니라 공동체의 균형추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발표자의 주장이었다.
노동삼국시대
노조는 이익단체지만, 특수한 이익단체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늘 노조를 이익단체로 낙인찍는 것(그러면 기업과 뭐가 다른가)을 많이 뫘다. 노조는 개인들의 경쟁이라는 자본주의적 경제원리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집단으로 뭉쳐서 교섭을 통해 노동 조건을 결정하는 사회적 원리로 움직인다.
노동시장에 대해서는 ‘이중구조’라는 표현이 익숙할 수 있지만 현실은 이미 그 수준도 지나갔다. 직고용과 간접고용이라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이항적 구분을 너머서 고용 자체가 없는 1인 독립노동이 비정규직 규모를 넘어서 869만(2024년 국세 3.3 기준)이라고 한다. 참여자들은 노동3국이 된 현실에 대해 공감을 모았다. 그래서 새로운 노동담론은 노동삼국시대를 배경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
노동삼국시대에 목소리(voice)를 내는 노동이 있지만 이탈(Exit)하게 되는 노동이 있다. 민주노조가 과거에는 국가권력에 대한 저항 주체이면서도 민주주의를 확장하는 주체였다. 1인 노동이 증가한 이 시대에 노조란 사회의 형성 주체, 고립과 독립사이에 놓인 프리랜서와 같은 노동시민들의 사회를 형성하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3국은 누구와 연대하나
기존 노조 비판이 그들이 실리적이고 경제적이라는 것보다 그들의 구린 정치적 노선에 대한 비판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과거에는 이기적집단이니 귀족노조 수준에서 이제는 킹산직이나 갓산직이라는 용어까지 나오는 것은 정치노선 비판일까. 실리주의, 이기적 집단 등 이런 류의 비판은 노조의 민주주의 확장자, 사회형성의 주체로서 역할을 못하는 측면을 드러낸다. 그런데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을 다루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우리를 둘러싼 더 강력하고 가까운 환경의 막은 지구행성이라는 것보다 자본주의라는 욕망체계가 아닌가. 소위 MZ노조가 민주노총 등의 정치성향을 비판했지만, 그들도 내적으로는 자기이익을 위한 활동을 중심에 두기에 사실 사회적 정당성을 갖기 어려운 내적 모순을 보여주었고, 언론이 띄우려 해도 세대노조의 지속가능성은 없었다.
노동삼국시대에 3국은 2국과 연대해야 하나, 1국과 연대해야 하나, 아니면 1,2국을 하나로 보아야 하나. 고용이 없는 3국에 간접고용 같은 정규직 고용이 아닌 2국이 가까워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그들은 1국을 선망하고 지향하는 모습을 강력하게 가지고 있다. 직접고용이든 간접고용이든 고용이라는 기준으로 보면 2국은 3국보다 1국에 훨씬 가깝다. 그러니 1,2국을 하나로 보아야 한다는 시각도 있었다. 이런 토론도 하나의 주제로 깊게 끌고 가면 꽤 재밌는 얘기들이 나올 것 같았다.
무통제 프리랜서 당근 없다
두 번째 발표는 프리랜서를 위한 질문이었다. 발표 내용은 생략한다. 몇 가지 질문 혹은 토론이 이어졌다. 1인 독립노동을 하는 프리랜서라고 하더라도 통제가 없냐고 묻는다고 없을 리가 없다. 위치기반 플랫폼 프리랜서는 물론 그렇고 독립계약 프리랜서에게도 마감시간을 비록한 통제는 늘 있는 것이다. 다른 고용된 노동과는 굉장히 다를 뿐이다.
프리랜서의 조직모델로 기체적 유동층과 액체적 참여층과 고체적 운영층이 결합된 융합모델을 얘기했더니 그건 어디에나 있는 코어와 중간층, 비조합원층과 다를게 없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었다. 어떤 조직이든 그런 방식으로 구분할 수는 없을 것이지만, 기업에 고용된 노동자들는 하나의 단위로 묶여 있지만 프리랜서는 조합원 자체가 산개해 있고 이런 측면에서 조직 구성과 운영원리도 그 특성을 반영해야 할 것이다.
20개의 질문을 관계성이나 정체성 등 몇 개로 범주화해야 하지 않냐는 의견도 있었다. 질문을 보면 그렇게 몇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다른 곳에서 논의할 때도 그렇게 범주를 구분해서 논의하고 있는 중이다. 노조라면 노동력 공급에 대한 통제를 생각해야 할 텐데, 가장 극적인 노동력 통제가 파업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일하는 사람 기본법에서도 표준계약서나 경력증명제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경력증명을 누가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노동력공급에 대한 당사자 결사체의 개입도 달라진다. 아마 일하는 사람 기본법이 통과된다면 그에 따라 설치될 재단과 일하는 사람들의 당사자 결사체 사이에 긴장과 경합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노동회의소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약간 달라졌다는 얘기도 있었다. 당사자 결사체가 원칙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데 일하는 사람 기본법 초안에는 당사자 조직의 단체교섭권 같은 것이 언급되지 않았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전에 작년에 다룬 사회적 지위와 계약의 문제가 중요한데 이 책의 번역은 늦어질 것으로 보인다)
새로 만난 개념
오늘 논의에서 한가지 주목할 것은 ‘모빌라이저’라는 개념이다. 영어 좀 그만 쓰라는 주문이 있었지만, 플랫폼사업자를 모빌라이저, 그러니까 노동력 동원자로 얘기한 것이다. 이는 흩어진 노동들을 사업자가 플랫폼을 통해 모아서 클라이언트와 매칭 시키고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것을 의미한다. 일하는 사람 기본법에서는 우리 같은 독립노동자를 ‘노무 제공자’라고 표현했는데(썩 내키지 않는 용어고 나같은 독립계약 프리랜서를 포함하는지 의문스러운 개념이지만), 노무제공자가 있다면, 플랫폼 사업자는 노무동원자, (가령 배달라이더를 활용하는 식당주인과 같은) 노무활용자, (음식 배달을 요청한 고객인) 노무 수용자와 같은 개념을 생각할 수 있겠다.
노동1국에서는 노동자와 사용자가 있다. 노동2국에서는 하청노동자와 하청사용자 및 파견업체 등으로 약간 다변화 되는데 그런 범주는 결국 원청이든 하청이든 사용자와 원청이든 하청이든 노동자로 구분된다. 그런데 노동3국에서는 고용관계가 모호해서 권리의 요구 주체와 권리의 수용 책임자가 모호해진다. 이 때문에 ILO를 비롯한 국제적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플랫폼 사업자를 개인으로 확장해서 볼 것인지 한정된 사업자로 볼 것인지, 이는 일하는 사람 기본법에서도 개인을 포함한 사람에게 노무를 제공하는지, 사업을 위해 노무를 제공하는지에 대한 개념 논란이 있다. 그런데 개념만이 아니라 권리의 요구와 수용의 책임 당사자를 규명하기 위한 논의를 하는데 노무제공자, 노무동원자, 노무활용자, 노무수용자와 같은 개념을 사용한다면 더 쉬운 논의가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검토해볼 필요가 있겠다.
다양체로서 결사체
프리랜서의 결사체에 대한 얘기도 있었다. 꼭 노조여야 할까. 프리랜서 개인은 1인이지만 다양한 협업을 한다. 그래서 고정된 단일체라고 하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프리랜서의 결사체도 단일하게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체로 보아야하지 않을까. 협회, 협동조합, 노조, 유니온과 같은 이름만 다양한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적 역할과 권리보호 역할 등을 내부에 포용하는 그런 다양체.
프리랜서는 기업을 넘어선 사회적인 존재, 사회성을 가지는 존재일까. 이 질문도 있었다. 물론 자연발생적으로 프리랜서는 사회성이 높은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다만 프리랜서는 기업별 복지와 같은 것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사회적 복지와 같은 사회적 경로를 찾아야 하는 측면이 있다.
그렇다고 프리랜서가 경제적 이익에 집착하지 않는 사회적 유형의 신인류라고 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런 가능성을 품고 있지 않은가를 기대하는 측면이 있다. 기업에 속한 사람들이 기업별의식을 가진 것처럼 프리랜서는 사회성과 또 다른 개인성을 강하게 띨 수 있다는 점도 잊어선 안될 것이다.
프리랜서일수록 집, 주거가 중요한 것 같다는 의견도 있었다. 작업공간을 스스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연공서열적 사회에서 그에 맞춘 주택정책의 문제도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이 있다. 한국에서는 고용지위에 따라 대출 규모도 달라진다. 대기업에 다니면 대출이 그만큼 쉽다. 그런데 프리랜서는? 이 문제는 경력인증과 연결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어나더 레벨
고용된 노동이라는 측면에서 정규직과 간접고용인 비정규직 그리고 그 다음의 노동이라는 발상보다는 다른 노동이라는 차원에서 노동3국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넥스트 레벨’보다는 ‘어나더 레벨’이 필요한 것이 노동삼국시대라는 점을 강조했다. 쉬운 일이 아니다. (의지와 욕망이 아니라 현실이 그렇게 요구하는 것 같은데) 너무 어려운 어나더 레벨수준이 아니라 넥스트레벨 수준에서라도 구체적 정책이 필요하지 않냐는 의견이 나왔다. 사실 이런 정책에 대한 논의는 계속 있었고 진행중에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프리랜서 결사를 위해 중요한 것은 서사라고 생각. 물론 그것만이 아니라 경제적 요구로 조직될 수도 있다)
대출, 공제회, 직접 손에 쥐어주는 수요, 오히려 그런 구체적 필요에 대한 조직들에 대해 야기하면서도 그래서 더 서사가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런데 서사를 구성하는 문제는 사실 굉장히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프리랜서 몇 당사자를 만났을 때는 그런 서사야말로 가능성이자 자부심을 구성하는 것이라는 반응이 있었다). 활동가를 비판하거나 정치인을 비판하면서 당사자성을 강조하는 경향들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서사와 이데올로기
오늘 논의를 정리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본다. 과거의 이념적 지향의 향수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왜 단군신화, 박혁거세, 주몽설화 같은 것이 필요했을까. 중세에는 왜 종교가 국가의 이데올로기 구성과 왕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했을까. 근대의 민족국가들은 왜 민족서사를 필요로 했을까. 그것은 건국이념과 헌법정신으로 수용되었다.
현대에 과학적 근거를 가진, 혹은 사회적 근거를 가진 서사를 구성한다. 광주항쟁의 광주와 같은 지역서사, 86세대와 같은 세대서사, 페미니즘도 젊은 여성들을 구성하는 하나의 서사였고 이대남도 사회적 맥락속에서 서사를 가진다. 과거의 계급투쟁론은 사회과학적 근거에 의해 뒷받침된 매우 강력한 사회적 계급서사였다. 그것은 세계적 변화를 불어왔고 노동자국가의 성립으로 이어졌지만, 그 국가들이 실패하면서 그 서사들은 이데올로기로 드러났다.
지금 나는 프리랜서 서사를 생각한다. 이 또한 과거의 계급운동을 해 온 낡은 관성의 연장은 아닌가를 되돌아 본다. 물론 지난 3년간 약 200여명의 프리랜서를 만나면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구체적 변화이기도 하면서 우리가 하나임을 느낄 서사에 대한 열망도 강렬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고민 중이다.
새로운 노동담론을 위한 공개토론
2026년 새로운 노동담론을 위한 공개토론회를 추진해보자는 의견을 모았다. 이 과정에서 회원을 확대하는 문제를 포함해 구체적인 토론회 기획안을 가지고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이와 함께 오늘 토론에서 나온 얘기를 비롯해 이후 더 발전시켜야 할 쟁점도 다음번에 논의하기로 했다.
뒷풀이에서 노동문제를 다루면서 왜 기후위기를 언급하지 않냐는 얘기가 나왔다. 토론할 때에 오늘날 노동은 기후위기와 AI등장과 같은 것들에 연관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오늘 첫 번째 발표는 민주주의와 노동의 관계를 중심에 두고 있었지만, 기후나 기술 문제와 연관된 측면은 다루지 않았다. 그런데 기후위기에 대해서는 발표자가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있었다.
기후정의 운동하는 사람들이 기후위기를 즐기는 느낌? 과거의 혁명론에 필수적이었던 파국론을 기후위기를 통해 발견하기 때문에 기후위기를 즐기는 것 같다는 얘기가 있었다. 과도하다는 것. 나는 체제전환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과거의 변혁론에 녹색칠만 한 느낌이 들곤 했다. 물론 그들이 그렇다고 기후위기가 없는 것이 아니며, 기후위기의 시대에 노동의 윤리와 맥락은 달라져야 한다. 아마 소비하는 에너지 중에 가장 많이 소비해 에너지의 하나가 노동에너지 아닐까. 노동에너지 소비가 늘수록 탄소배출도 늘어왔다.
(뒷풀이 마치고 새로운 노동담론, 이런 주제는 새로운 사람들이 발표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나 같은 사람 말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토론에서 노무동원자와 같은 개념은 새롭게 만난 개념이다. 노동삼국시대라는 것을 오늘 토론에서 하나의 컨센서스로 공감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중년의 위기’라는 표현 적절
민주주의의 위기를 이렇게 비유하는 런시먼의 얘기는 재밌고도 적절한 비유같다. 오늘 첫 번째 발표자는 세계 민주주의의 위기 속에서 “민주주의의 핵심 인프라로서의 노동운동”을 강조했다. 그런데 “노동의 특정 부분만이 정치적으로 시민권을 확보하여 주류가 된 현실”이 문제다.
대런 애쓰모글로우를 인용해서 노조를 “강한 사회를 구성하는 핵심적 제도”로 보는 것도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노동은 임금과 고용의 문제만이 아니라 삶의 형식이기도 하다. 그래서 노조는 경제적 목소리를 시민적 목소리도 전환시킨다. 민주주의의 공동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러면 노동은 양극화된 진영의 한 편이 아니라 공동체의 균형추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발표자의 주장이었다.
노동삼국시대
노조는 이익단체지만, 특수한 이익단체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늘 노조를 이익단체로 낙인찍는 것(그러면 기업과 뭐가 다른가)을 많이 뫘다. 노조는 개인들의 경쟁이라는 자본주의적 경제원리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집단으로 뭉쳐서 교섭을 통해 노동 조건을 결정하는 사회적 원리로 움직인다.
노동시장에 대해서는 ‘이중구조’라는 표현이 익숙할 수 있지만 현실은 이미 그 수준도 지나갔다. 직고용과 간접고용이라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이항적 구분을 너머서 고용 자체가 없는 1인 독립노동이 비정규직 규모를 넘어서 869만(2024년 국세 3.3 기준)이라고 한다. 참여자들은 노동3국이 된 현실에 대해 공감을 모았다. 그래서 새로운 노동담론은 노동삼국시대를 배경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
노동삼국시대에 목소리(voice)를 내는 노동이 있지만 이탈(Exit)하게 되는 노동이 있다. 민주노조가 과거에는 국가권력에 대한 저항 주체이면서도 민주주의를 확장하는 주체였다. 1인 노동이 증가한 이 시대에 노조란 사회의 형성 주체, 고립과 독립사이에 놓인 프리랜서와 같은 노동시민들의 사회를 형성하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3국은 누구와 연대하나
기존 노조 비판이 그들이 실리적이고 경제적이라는 것보다 그들의 구린 정치적 노선에 대한 비판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과거에는 이기적집단이니 귀족노조 수준에서 이제는 킹산직이나 갓산직이라는 용어까지 나오는 것은 정치노선 비판일까. 실리주의, 이기적 집단 등 이런 류의 비판은 노조의 민주주의 확장자, 사회형성의 주체로서 역할을 못하는 측면을 드러낸다. 그런데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을 다루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우리를 둘러싼 더 강력하고 가까운 환경의 막은 지구행성이라는 것보다 자본주의라는 욕망체계가 아닌가. 소위 MZ노조가 민주노총 등의 정치성향을 비판했지만, 그들도 내적으로는 자기이익을 위한 활동을 중심에 두기에 사실 사회적 정당성을 갖기 어려운 내적 모순을 보여주었고, 언론이 띄우려 해도 세대노조의 지속가능성은 없었다.
노동삼국시대에 3국은 2국과 연대해야 하나, 1국과 연대해야 하나, 아니면 1,2국을 하나로 보아야 하나. 고용이 없는 3국에 간접고용 같은 정규직 고용이 아닌 2국이 가까워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그들은 1국을 선망하고 지향하는 모습을 강력하게 가지고 있다. 직접고용이든 간접고용이든 고용이라는 기준으로 보면 2국은 3국보다 1국에 훨씬 가깝다. 그러니 1,2국을 하나로 보아야 한다는 시각도 있었다. 이런 토론도 하나의 주제로 깊게 끌고 가면 꽤 재밌는 얘기들이 나올 것 같았다.
무통제 프리랜서 당근 없다
두 번째 발표는 프리랜서를 위한 질문이었다. 발표 내용은 생략한다. 몇 가지 질문 혹은 토론이 이어졌다. 1인 독립노동을 하는 프리랜서라고 하더라도 통제가 없냐고 묻는다고 없을 리가 없다. 위치기반 플랫폼 프리랜서는 물론 그렇고 독립계약 프리랜서에게도 마감시간을 비록한 통제는 늘 있는 것이다. 다른 고용된 노동과는 굉장히 다를 뿐이다.
프리랜서의 조직모델로 기체적 유동층과 액체적 참여층과 고체적 운영층이 결합된 융합모델을 얘기했더니 그건 어디에나 있는 코어와 중간층, 비조합원층과 다를게 없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었다. 어떤 조직이든 그런 방식으로 구분할 수는 없을 것이지만, 기업에 고용된 노동자들는 하나의 단위로 묶여 있지만 프리랜서는 조합원 자체가 산개해 있고 이런 측면에서 조직 구성과 운영원리도 그 특성을 반영해야 할 것이다.
20개의 질문을 관계성이나 정체성 등 몇 개로 범주화해야 하지 않냐는 의견도 있었다. 질문을 보면 그렇게 몇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다른 곳에서 논의할 때도 그렇게 범주를 구분해서 논의하고 있는 중이다. 노조라면 노동력 공급에 대한 통제를 생각해야 할 텐데, 가장 극적인 노동력 통제가 파업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일하는 사람 기본법에서도 표준계약서나 경력증명제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경력증명을 누가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노동력공급에 대한 당사자 결사체의 개입도 달라진다. 아마 일하는 사람 기본법이 통과된다면 그에 따라 설치될 재단과 일하는 사람들의 당사자 결사체 사이에 긴장과 경합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노동회의소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약간 달라졌다는 얘기도 있었다. 당사자 결사체가 원칙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데 일하는 사람 기본법 초안에는 당사자 조직의 단체교섭권 같은 것이 언급되지 않았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전에 작년에 다룬 사회적 지위와 계약의 문제가 중요한데 이 책의 번역은 늦어질 것으로 보인다)
새로 만난 개념
오늘 논의에서 한가지 주목할 것은 ‘모빌라이저’라는 개념이다. 영어 좀 그만 쓰라는 주문이 있었지만, 플랫폼사업자를 모빌라이저, 그러니까 노동력 동원자로 얘기한 것이다. 이는 흩어진 노동들을 사업자가 플랫폼을 통해 모아서 클라이언트와 매칭 시키고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것을 의미한다. 일하는 사람 기본법에서는 우리 같은 독립노동자를 ‘노무 제공자’라고 표현했는데(썩 내키지 않는 용어고 나같은 독립계약 프리랜서를 포함하는지 의문스러운 개념이지만), 노무제공자가 있다면, 플랫폼 사업자는 노무동원자, (가령 배달라이더를 활용하는 식당주인과 같은) 노무활용자, (음식 배달을 요청한 고객인) 노무 수용자와 같은 개념을 생각할 수 있겠다.
노동1국에서는 노동자와 사용자가 있다. 노동2국에서는 하청노동자와 하청사용자 및 파견업체 등으로 약간 다변화 되는데 그런 범주는 결국 원청이든 하청이든 사용자와 원청이든 하청이든 노동자로 구분된다. 그런데 노동3국에서는 고용관계가 모호해서 권리의 요구 주체와 권리의 수용 책임자가 모호해진다. 이 때문에 ILO를 비롯한 국제적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플랫폼 사업자를 개인으로 확장해서 볼 것인지 한정된 사업자로 볼 것인지, 이는 일하는 사람 기본법에서도 개인을 포함한 사람에게 노무를 제공하는지, 사업을 위해 노무를 제공하는지에 대한 개념 논란이 있다. 그런데 개념만이 아니라 권리의 요구와 수용의 책임 당사자를 규명하기 위한 논의를 하는데 노무제공자, 노무동원자, 노무활용자, 노무수용자와 같은 개념을 사용한다면 더 쉬운 논의가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검토해볼 필요가 있겠다.
다양체로서 결사체
프리랜서의 결사체에 대한 얘기도 있었다. 꼭 노조여야 할까. 프리랜서 개인은 1인이지만 다양한 협업을 한다. 그래서 고정된 단일체라고 하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프리랜서의 결사체도 단일하게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체로 보아야하지 않을까. 협회, 협동조합, 노조, 유니온과 같은 이름만 다양한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적 역할과 권리보호 역할 등을 내부에 포용하는 그런 다양체.
프리랜서는 기업을 넘어선 사회적인 존재, 사회성을 가지는 존재일까. 이 질문도 있었다. 물론 자연발생적으로 프리랜서는 사회성이 높은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다만 프리랜서는 기업별 복지와 같은 것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사회적 복지와 같은 사회적 경로를 찾아야 하는 측면이 있다.
그렇다고 프리랜서가 경제적 이익에 집착하지 않는 사회적 유형의 신인류라고 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런 가능성을 품고 있지 않은가를 기대하는 측면이 있다. 기업에 속한 사람들이 기업별의식을 가진 것처럼 프리랜서는 사회성과 또 다른 개인성을 강하게 띨 수 있다는 점도 잊어선 안될 것이다.
프리랜서일수록 집, 주거가 중요한 것 같다는 의견도 있었다. 작업공간을 스스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연공서열적 사회에서 그에 맞춘 주택정책의 문제도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이 있다. 한국에서는 고용지위에 따라 대출 규모도 달라진다. 대기업에 다니면 대출이 그만큼 쉽다. 그런데 프리랜서는? 이 문제는 경력인증과 연결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어나더 레벨
고용된 노동이라는 측면에서 정규직과 간접고용인 비정규직 그리고 그 다음의 노동이라는 발상보다는 다른 노동이라는 차원에서 노동3국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넥스트 레벨’보다는 ‘어나더 레벨’이 필요한 것이 노동삼국시대라는 점을 강조했다. 쉬운 일이 아니다. (의지와 욕망이 아니라 현실이 그렇게 요구하는 것 같은데) 너무 어려운 어나더 레벨수준이 아니라 넥스트레벨 수준에서라도 구체적 정책이 필요하지 않냐는 의견이 나왔다. 사실 이런 정책에 대한 논의는 계속 있었고 진행중에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프리랜서 결사를 위해 중요한 것은 서사라고 생각. 물론 그것만이 아니라 경제적 요구로 조직될 수도 있다)
대출, 공제회, 직접 손에 쥐어주는 수요, 오히려 그런 구체적 필요에 대한 조직들에 대해 야기하면서도 그래서 더 서사가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런데 서사를 구성하는 문제는 사실 굉장히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프리랜서 몇 당사자를 만났을 때는 그런 서사야말로 가능성이자 자부심을 구성하는 것이라는 반응이 있었다). 활동가를 비판하거나 정치인을 비판하면서 당사자성을 강조하는 경향들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서사와 이데올로기
오늘 논의를 정리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본다. 과거의 이념적 지향의 향수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왜 단군신화, 박혁거세, 주몽설화 같은 것이 필요했을까. 중세에는 왜 종교가 국가의 이데올로기 구성과 왕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했을까. 근대의 민족국가들은 왜 민족서사를 필요로 했을까. 그것은 건국이념과 헌법정신으로 수용되었다.
현대에 과학적 근거를 가진, 혹은 사회적 근거를 가진 서사를 구성한다. 광주항쟁의 광주와 같은 지역서사, 86세대와 같은 세대서사, 페미니즘도 젊은 여성들을 구성하는 하나의 서사였고 이대남도 사회적 맥락속에서 서사를 가진다. 과거의 계급투쟁론은 사회과학적 근거에 의해 뒷받침된 매우 강력한 사회적 계급서사였다. 그것은 세계적 변화를 불어왔고 노동자국가의 성립으로 이어졌지만, 그 국가들이 실패하면서 그 서사들은 이데올로기로 드러났다.
지금 나는 프리랜서 서사를 생각한다. 이 또한 과거의 계급운동을 해 온 낡은 관성의 연장은 아닌가를 되돌아 본다. 물론 지난 3년간 약 200여명의 프리랜서를 만나면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구체적 변화이기도 하면서 우리가 하나임을 느낄 서사에 대한 열망도 강렬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고민 중이다.
새로운 노동담론을 위한 공개토론
2026년 새로운 노동담론을 위한 공개토론회를 추진해보자는 의견을 모았다. 이 과정에서 회원을 확대하는 문제를 포함해 구체적인 토론회 기획안을 가지고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이와 함께 오늘 토론에서 나온 얘기를 비롯해 이후 더 발전시켜야 할 쟁점도 다음번에 논의하기로 했다.
뒷풀이에서 노동문제를 다루면서 왜 기후위기를 언급하지 않냐는 얘기가 나왔다. 토론할 때에 오늘날 노동은 기후위기와 AI등장과 같은 것들에 연관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오늘 첫 번째 발표는 민주주의와 노동의 관계를 중심에 두고 있었지만, 기후나 기술 문제와 연관된 측면은 다루지 않았다. 그런데 기후위기에 대해서는 발표자가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있었다.
기후정의 운동하는 사람들이 기후위기를 즐기는 느낌? 과거의 혁명론에 필수적이었던 파국론을 기후위기를 통해 발견하기 때문에 기후위기를 즐기는 것 같다는 얘기가 있었다. 과도하다는 것. 나는 체제전환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과거의 변혁론에 녹색칠만 한 느낌이 들곤 했다. 물론 그들이 그렇다고 기후위기가 없는 것이 아니며, 기후위기의 시대에 노동의 윤리와 맥락은 달라져야 한다. 아마 소비하는 에너지 중에 가장 많이 소비해 에너지의 하나가 노동에너지 아닐까. 노동에너지 소비가 늘수록 탄소배출도 늘어왔다.
(뒷풀이 마치고 새로운 노동담론, 이런 주제는 새로운 사람들이 발표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나 같은 사람 말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토론에서 노무동원자와 같은 개념은 새롭게 만난 개념이다. 노동삼국시대라는 것을 오늘 토론에서 하나의 컨센서스로 공감한 것도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