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시작할 때부터 불은 항상 타오르고 있었다! - We didn’t start the fire – Billy Joel

세상이 시작할 때부터 불은 항상 타오르고 있었다!

We didn’t start the fire – Billy Joel / Storm Front / 1989

한 청년이 푸념한다.

“별 고생도, 어려움도 없이 살아온 당신들 세대는 잘 모르겠지만, 매일 매일 끔찍한 일을 겪고 사는 우리야말로 현대 미국 역사에서 가장 불행한 세대야.”

이 말을 들은 불혹의 팝스타는 이 21살 청년의 용감하고 무지한 푸념에 노래로 화답하게 된다. 그리고 그 노래는 자신의 세 번째 빌보드 차트 1위 곡으로 등극하며, 그래미어워드 ‘올해의 레코드’ 후보에 선정되는 등 많은 사랑을 받게 된다.

그 곡은 바로 <We Didn’t Start The Fire (우리가 불을 지른 게 아니야)>. 미국인이 가장 사랑 하는 가수 중 한 명인 빌리 조엘(Billy Joel)의 1989년 발매된 11번째 앨범 “Storm Front”에 실린 곡이다.

빌리 조엘은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 <Piano Man>, <The Stranger>, <Just The Way You Are>, <Uptown Girl> 등 수많은 히트곡을 보유한 미국의 대표적인 싱어송라이터다. 또한 여러 차례 그래미어워드 수상과 더불어 미국에서 가장 많은 앨범을 판매한 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 

<We Didn’t Start The Fire>는 앞서 얘기한 한 청년(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의 아들 숀 레논의 친구)과의 대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빌리 조엘은 이 곡에서 자신이 태어난 1949년부터 1989년까지 정치, 사회, 문화, 과학, 스포츠 등 굵직한 사건 119가지를 시간순으로 나열하여 노래한다. 그리고 그는 노래를 통해 말한다.

“우리가 불을 지른 게 아니야, 세상이 시작할 때부터 불은 항상 타오르고 있었지, 우리가 지른 불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 불에 계속 맞서 온 거야”

<음악으로 듣는 세상> 첫 지면으로 이 곡을 선정한 이유는 이 곡이 특정한 사건이나 정치, 사회적 주장을 담고 있는 노래는 아니지만, 냉전이라 불리던 시기, 장장 40년간 인류가 일구고 겪어온 여러 세계사적 사건을 반추하여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노래는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재임을 시작으로 중국의 공산주의 혁명, 매카시즘 광풍, 텔레비전의 보급, 수에즈 운하 분쟁, 쿠바 핵미사일 위기, JFK의 죽음 등 당대 세계사의 굵직한 사건을 다룬다. 또한 아이젠하워, 스탈린, 맬컴 엑스, 호치민, 리처드 닉슨 등의 정치인은 물론 조 디마지오, 헤밍웨이, 아인슈타인 등 다양한 분야의 역사적 인물을 호명한다. 여기에 더해 <호밀밭의 파수꾼>, <콰이강의 다리>, <벤허> 등 당대 대표적 문화 콘텐츠와 헤비메탈 논쟁, 콜라 광고 전쟁 등 역사에 족적을 남긴 여러 논쟁까지 녹여 내고 있다.

따라서 흥겹고 발랄한 이 노래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한 편의 세계사가 절로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 시대를 살아왔던 사람에게는 역사와 추억을 되새기는 재미가 있다. 혹여 모르는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서는 분명 그것을 찾아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일어날 것이다. 

참고로 이 노래에는 우리나라에 관한 언급도 4차례나 등장하는데, “North Korea”, “South Korea”, “Panmunjom”, “Seung Man Rhee”가 그것이다. 시기상 한국전쟁과 판문점 휴전 협상 그리고 이승만 전 대통령의 하야와 망명을 노래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한국과 관련된 가사 찾기, 과학과 관련된 가사 찾기, 야구와 관련된 가사 찾기 등 나만의 상식과 관심을 환기해 볼 수 있는 것도 노래가 주는 재미의 덤이다. 

사실 이 노래는 요즘 시각으로 “꼰대 라떼 타령”의 전형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빌리 조엘은 어떤 비장함이나 구구절절한 말이 아닌, 경쾌한 업비트의 리듬위에 자신이 헤쳐온 역사의 키워드를 나열하는 것만으로 자신들 세대가 살아온 세상도 만만치 않았음을 항변하면서 비관과 절망에 빠져 허우적대는 당대 젊은이들에게 세상은 원래 그런 곳이고, 누가 지른 불이던 그 절망과 막막함에 맞서 싸워온 것이 인류의 역사임을 노래한다. 

공교롭게도 이 노래가 발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이 붕괴하면서 빌리 조엘은 “의도적으로 냉전 시대를 노래로 기록하려 했는가?”라는 질문에 맞닥뜨린다. 하지만 빌리 조엘은 “(소련이 때마침) 가게 문 닫기를 결정한 것은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대답한다. 

빌리 조엘은 훗날, 이 노래의 상업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노래가 음악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의 견해와는 달리 이 노래는 그 후에도 많은 대중 문화 패러디의 기반과 영감이 되어 재 가공되고 있다. (영화 ‘어벤져스’ 캐릭터 들과 펑크 밴드 ‘폴 아웃 보이(Fall Out Boy)’의 패러디가 유명하다.)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기에 이미 많은 분 들이 이 곡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음악으로 세상을 얘기하기 위한 첫 여정으로, 우리가 살아온 역사를 이렇듯 한 번 훑어 내려가며 잔불을 피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오늘 퇴근길에는 오랜만에 빌리 조엘의 <We Didn’t Start The Fire>를 들어보자.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는 지금의 시대라지만, 우린 더 큰 어려움도 헤쳐오지 않았던가.

We didn’t start the fire – Billy Joel / Storm Front / 1989

Harry Truman, Doris Day, Red China, Johnnie Ray
South Pacific, Walter Winchell, Joe DiMaggio
Joe McCarthy, Richard Nixon, Studebaker, television
North Korea, South Korea, Marilyn Monro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