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인의 인구위기 부수기] Prologue

공식 관리자
2024-12-03
조회수 584

*한국의 출생률이 전 세계 최저수준을 기록하면서 ‘인구위기’라는 단어는 한국사회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단어가 되었다. 정부도 전문가들도 모두가 입모아 ‘위기’라고 말하고 있지만 정작 인구가 줄어든다는 것, 고령화가 된다는 것이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인지 차분하게 돌아보는 시각은 드물다. 오래동안 청년운동과 정당정치에서 활동해왔던 정치발전소 김창인 회원(전 청년정의당 대표)가 인구구조 변화를 위기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에 맞는 사회로 우리가 적응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글을 썼다. 많은 분들과 함께 읽고 토론하고자 정치발전소 홈페이지와 뉴스레터에 연재를 시작한다. - 정치발전소


Prologue

 

1

 

“I am inevitable.(나는 필연적인 존재다)”

 

마블 영화 시리즈의 빌런 타노스는 우주 생명체의 절반을 없애 우주를 구원하겠다는 과격한 신념을 가졌다. 관객은 그의 강함과 무서움을, 물리적인 힘보다 신념에 대한 확신에서 느낀다. 지구의 자원을 낭비하고 환경을 망치며 같은 종족을 빈곤과 차별로 몰아넣는 인류를 보면서 느끼는 기시감 때문이다. 그 때문에 언젠가 어떠한 ‘필연’적인 이유로 인류가 심판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발로다. 타노스의 ‘필연’ 타령은 결코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

 

타노스의 모티브인 토머스 멜서스는 <인구론(1798)>를 통해 인구증가를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멜서스는 식량과 자원의 공급이 늘어나는 인구수를 따라잡지 못해, 결과적으로 인류가 빈곤으로 파멸할 것이라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그래서 빈곤을 해소하는 복지를 반대하고, 전쟁이나 전염병으로 발생하는 죽음을 방치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펼쳤다.

 

멜서스가 세계에 끼친 영향은 지대했으며 아직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인구정책(산아제한 혹은 출산장려)을 펼치고 있는 국가들이 인구를 통제해야 하고 할 수 있다고 믿는 까닭과 인구증가가 기후위기와 정비례된다는 개념 등은 멜서스주의와 완전히 동떨어져 있지 않다. 그럼에도 오늘날 멜서스의 주장에 온전히 동의하는 입장은 찾아보기 어렵다. 인류는 인구증가에 상응하는 식량 문제를 그다지 어렵지 않게 해결했고, 어떤 위기가 닥치든 기술의 진보가 해결해줄 것이라 자신했다.

 

그런데 멜서스의 망령과 타노스의 필연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찾아왔다. 핵전쟁도, 기후위기로 인한 해수면 상승도, 식량 멸종도 아니었다. 인류 스스로가 인구 숫자를 줄이고 있는 것이다. 인구위기가 상상하게 만드는 미래는 그 어떤 디스토피아보다 공포감을 불러일으킨다. 조용하고 천천히 다가오면서, 개개인들의 자발적 의지가 개입되었기 때문에 막을 수조차 없다. 그렇게 타노스는 정말 필연적인 존재가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다.

 

2

 

어느 시골 초등학교 전교생이 10명보다 적다. 그래서 학년을 합쳐서 다 같이 수업을 받고 이렇게 지방부터 점차 소멸되는 것이 우리의 미래다. 나이 든 노인이 나와서 “라떼는(자신이 어렸을 때는) 학 학급이 100명쯤 돼서 친구 이름도 다 못 외웠다”며 비교하고 아이들이 우리의 미래인데 큰일이라는 인터뷰를 한다. 인구위기에 관한 가장 뻔한 레퍼토리다.

 

‘1인당 부양부담’의 증가는 인구위기 공포론의 핵심이다. 생산가능인구 1인당 부양해야하는 노인과 어린이의 숫자가 많아진다는 것인데, 현재 1인당 0.4명인 수준에서 2072년이 되면 1.2명으로 높아진다는 예측이다.1) 세대와 연령으로 단순화해보자. 지금은 청년 3~4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고 있었는데, 2072년이 되면 청년 1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한다는 뜻이다. 방식은 아마도 세금이 될 가능성이 높고, 고령인구 부양을 위해 세금을 3~4배 정도 더 내야 한다는 의미다.

1)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의하면 15∼64세인 생산연령인구 100명 당 0∼14세 유소년과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을 뜻하는 총부양비는 2022년 40.6명에서 2058년 100명을 넘어선 뒤 2072년에는 118.5명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국가 차원의 경제침체도 피하기 어렵다는 전망이다. 한국경제학회장 이종화 고려대 교수는 '2023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인구가 감소하는 성장모형과 한국 경제에의 적용' 논문을 통해, 2050~60년 연평균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0.9%, 1인당 GDP 증가율은 2.3%로 추정했다. 생산가능인구의 감소와 고령화가 노동과 생산, 투자와 소비 모두를 위축시킨다는 예상 때문이다. 이렇게 장기적 저성장 시대가 개막할 것이다.

 

이러한 국면에서 발생하는 여러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할 비용마저 부족해진다. 인구수가 급감하면 세수 또한 줄어들 것이고, 복지 등 사회정책비용을 현재와 같은 수준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먹고 살기는 점점 어려워지는데, 국가와 사회에서 보장하는 복지는 줄어든다.

 

사회 인프라의 방만 역시 예상할 수 있다. 부동산 공실이 많아지고, 대학은 벚꽃 피는 순서대로 지방에서부터 사라지면서 놀고 있는 텅 빈 건물이 늘어날 것이다. 지방부터 점차 소멸되는 위기는 서울과 수도권 집중이라는 극단적 편향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대학 수가 줄어들어 입시경쟁이 완화되는 것이 아니라, 적은 수의 명문대에 진입하기 위한 경쟁이 더 치열해지는 방식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때는 저출생 현상으로 학령인구가 줄어든 세대가 대학에 진입하는 2020년대에 들어서면 사교육 시장이 축소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지만, 현 시점 사교육 시장은 더욱 팽창했다.2)


2) 2021년 초·중·고교생 사교육비 총액은 23조4000억원으로 역대 최대치. 사교육비 총액은2016년 18조606억원, 2017년 18조6703억원, 2018년 19조4852억원, 2019년 20조9970억원으로 매년 증가. <매일경제> “교육 예산 쏟아부어도…사교육시장 23조 역대 최대” 이상헌•진창일 기자(2022.09.08)

 

60만 장병 시대도 끝났다. 분단국가라는 조건에서 국방력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인 한국 정부에겐 큰 곤혹이 아닐 수 없다. 줄어드는 노동인구는 외국인에게 맡긴다 하더라도, 국방을 외국인과 로봇에 전부 위임할 순 없는 일이다. 약화되는 병력이 국방력 약화로 그리고 안보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공포감은 인구위기 시대에 큰 위협요인이다.

 

“체제 붕괴 수준의 출산율이라니 가슴이 웅장해진다.” 초저출생을 다룬 어느 다큐멘터리에 달린 유튜브 댓글이다. 헬조선이라 자조하는 청년들은 이렇게 다 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심정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인구위기로 인한 체제 붕괴의 과정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오히려 더 극단적인 헬조선으로 치달을 것이다. 인구위기 시대는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계급과 낳을 수 없는 계급을 분리할 것이고, 두 계급의 격차는 더 불평등한 방식으로 커질 것이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계급 안에서도, 자녀 교육과 생활양식에 대한 불평등 격차가 더 심화될 것이다.

 

지옥문이 열릴 것만 같은 전망이다. 이러니 어떻게 해서든 인구증가를 통해 이 위기를 돌파하자는 주장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모든 전제는 ‘지금 이대로’ 인구위기를 맞이했을 경우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다가올 위기 시점이 예상보다는 더 느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우리가 예상하는 인구위기의 노동감소 시나리오에 대해 위로가 되는 전망을 제시한다. 앞으로 15년~20년 동안 ‘총량’에서 노동인력 부족은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OECD 국가 평균보다 낮은 한국의 여성과 장년 인구 경제활동참가율이 높아질 것을 기대해본다면 노동 감소 경향성을 상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과도기-완충 시기에 대한 언급이다. 장기적 대안과 해법이 없다면 노동력의 고령화, 청년 노동인구 부족은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자,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 경우의 수는 세 가지이다.

 

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인구위기가 불러올 비극적 전망을 받아들이거나,

② 인구증가에 모든 것을 걸어 성공하면 헬조선 유지-실패하면 극단의 헬조선으로 가거나,

③ 다른 대안적 접근을 통해 인구감소사회를 준비하거나.

 

3

 

문항에 대한 보기는 세 가지인데 모두가 입을 맞춘 것처럼 인구증가만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인구위기 앞에선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다. 특히 급격하게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한국의 경우, 너나 할 것 없이 출산장려정책을 모색하고 있다. 각자가 자신의 방식대로 하면 청년들이 아이를 더 많이 낳을 것이라 말한다. 누구는 돈을 주자고 하고, 다른 누구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면 출산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그런 세상에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굳이 인구감소를 꼭 막아야 할까?”

 

1930년대에 스웨덴 인구정책 기본이념을 만든 뮈르달 부부가 당시 좌-우파 모두와 논쟁했던 것처럼, 뮈르달 부부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진보와 보수 모두에게 질문하고 논쟁하고자 한다. 인구위기의 대안은 ‘인구증가’에 있지 않고 ‘인구감소사회’라는 청사진을 준비하는 것에 있다. 국가와 사회라는 보수적 세계관에 근거해서, 대안사회의 방향은 진보적 관점으로, 방법론은 보수정치의 주장을 차용해 진보적으로 해석해보려는 작업을 시도하고자 한다. 이것은 변종일 수도, 변증법일 수도 있다.

 

<1장 인구위기 공포마케팅>에선 인구위기가 인구감소와 인구 구조변화라는 두 가지 현상을 말하고 있으며, 이 변화들이 실질적인 위협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과 오히려 사회변화를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을 담았다. 인구위기 공포론의 모순을 지적하는 것이다.

 

<2장 인구위기에 대한 선진국적 해법은 통했을까>는 흔히 인구위기를 해결했다고 알려진 스웨덴과 프랑스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인구위기에 놓여 있다는 점을 서술했다. 그리고 일본 사회를 통해 초고령 사회의 미래를 살펴보고, 헝가리식 극약처방의 한계도 소개한다.

 

<3장 저출생 대응 정책, 의의와 한계를 넘어서>에선 한국 정부의 저출생 대응 정책을 평가한다. 한국 역대 정부의 저출생 대응 정책 발전 과정을 다루며 그 성과와 한계를 살펴보고, 우리에겐 인구감소사회라는 다른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4장부터 7장은 대안을 주제로 한다. <4장 인구감소사회를 준비하는 첫걸음 : 노동>은 인구감소사회의 답은 ‘인구’가 아니라 ‘노동’에 있으며,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중심으로 노동공백을 막아내고 채워내기 위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5장 저출생-초고령 사회의 노후보장 : 연금>은 초고령 사회의 노후복지시스템에 대한 질문이다. 한국 노후보장시스템의 근간인 국민연금이 저출생-초고령 사회에는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더 나은 노후보장제도를 설계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6장 인구감소를 더 나은 교육을 위한 도약의 발판으로>에선 인구감소가 교육개혁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대학까지 의무교육화와 사교육 준공영제를 중심으로 우리가 마주한 학령인구 감소를 극복하기 위한 방향성을 제안한다.

 

<7장 지방소멸 그리고 집>은 지방소멸과 저출생을 별개의 문제로 해석해야 하며, 따라서 현재의 지자체별 출산장려 경쟁은 지방소멸 극복 방안이 될 수 없다고 설명한다. 지방을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과 주거 공공성 확보를 통해, 저출생-초고령 사회에서 시민들이 살아갈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8장 세대론으로 바라보는 인구위기>는 86세대와 저출생 세대 사이에 낀 지금의 청년세대가 인구감소사회라는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아무런 대비 없이 이대로 인구위기를 마주한다면, 지금의 청년세대는 ‘고립세대’이자 ‘버림받은 세대’가 될 것이라는 경고 또한 던지고자 한다.

 

물리적 방법으로 인구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점진적으로 인류 스스로가 줄어드는 현상이라면, 그래서 줄어드는 인구를 기반으로 지금보다 풍요롭고 더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면, 굳이 타노스를 거부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타노스(인구위기)와 싸우지 않을 것이다. 타노스를 이용할 것이다.

인구위기 그 자체가 긍정적인 현상이라는 찬양이 아니다.

그렇게 만들 수 있다는, ‘사회’가 가진 힘을 믿는 낙관이다.

5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