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인의 인구위기 부수기]4장 인구감소사회를 준비하는 첫걸음 : 노동 ①

공식 관리자
2025-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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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인구감소사회를 준비하는 첫걸음 : 노동 ①



인구감소에 대한 공포와 인구 연령구조변화에 대한 공포는 그 성격이 다르다. 인구감소에 대한 공포의 실체가 노동력 감소로 경제가 침체될 것이라는 위기감이라면, 인구 연령구조변화에 대한 공포는 저출생-초고령 사회에서 고령인구에 대한 부양책임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다. 4장에서는 인구감소에 대한 대안으로서 노동의 변화를 제안하고자 한다.


이미 저출생 국면에서 태어난 출생아들이 성인이 되는 시기인 20~30년 후의 미래 인구 숫자는 이미 어느 정도 정해졌다. 중단기적으로 인구감소는 피할 수 없는, 결정된 미래다. 그러나 인구감소가 곧 노동인구의 감소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현 시점에서도 ‘생산연령인구=경제활동인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러 사회적 요인과 삶의 다양성을 이유로 일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일을 하진 않고 있다.


그렇다면 상상해볼 수 있는 대안의 방향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인구감소에도 불구하고 경제활동인구의 숫자가 줄어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보다 일하는 시민의 양적 규모가 늘어나면 사회는 지속가능성을 유지할 수 있다. 둘째, 기술혁신과 직업교육 등으로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셋째는 외국인 노동자로 노동시장 공백을 대체하는 것이다.


세 가지가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된다면 한국의 인구감소는 곧바로 노동력 부족과 생산성 저하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이 중 경제활동인구 증가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그리고 이것은 노동에 대한 개념의 변화를 주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동안 진보적 관점에서 노동이 계급 혹은 권리로서 인식되어 왔다면, 사회적 의무로서 노동에 대한 고민을 던지고자 한다.


실시간 전략 게임을 비유로 들어보자. 게임 진행을 위해선 일꾼 유닛과 전투 유닛을 생산해야 한다. 일꾼 유닛으로 자원을 채굴하고, 채굴한 자원을 모아 건물을 짓고 전투 유닛을 생산해 상대편과 싸워 이기면 승리하는 게임이다. 일꾼 유닛과 전투 유닛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운용할 것인지가 가장 기초적인 전략의 핵심이다. 그런데 만약 사회적 차별과 불평등이 심화되어 유닛 간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 격차가 걷잡을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 일꾼 유닛을 아무도 지원하지 않고 버튼을 눌러도 생산되지 않는다면? 자원을 채굴할 수도 없고 건물을 지을 수도 없다. 아무리 전투 유닛 지원희망자가 많아도 고용할 자원이 없으니 게임진행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처한 문제는 이와 닮았다.


일도 구직도 안 하는 대졸자가 2024년 상반기 400만 명으로 역대 최대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공개한 2018∼2022년 '청년 비경제활동인구 주요 특징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5년 동안 청년층(15~29세) 중 비경제활동 청년은 전체 청년 중 52.1%에 달한다. 청년 중 절반이 노동을 쉬고 있다는 뜻이다. 또한 통계청에 의하면 2023년 여성경제활동참가율은 55.6%에 불과하다. 스웨덴 여성경제활동참가율이 80.8%인 것에 비해 상당히 낮은 편이다. 반면 고령인구의 경제활동참가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1)

1) 한국의 65세 이상 고용률은 2021년 기준 34.9%로 OECD 평균(15%)보다 2배 이상 높다.


인구감소와 무관하게 한국사회는 비효율적으로 노동인구를 운용하고 있다. 인구부양비로 설명해보면, 우리 사회는 이미 청년 4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청년 2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고 있는 셈이다.


만약 청년들의 경제활동참여율이 100%에 가까워지는 완전고용사회를 상상해보면, 인구감소에도 불구하고 인구부양비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다. 2017년 기준으로 OECD 회원국 중 30-34세 경제활동참가율 상위 6개 국가는 슬로베니아(93.6%), 룩셈부르크(93.1%), 포르투갈(92.1%), 스위스(91.5%), 스웨덴(90.7%), 아이슬란드(90.6%)로 모두 90%가 넘는다.2) 청년층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이는 대안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인구감소를 운운하기 전에, 현재 노동시장의 비효율 구조부터 따져봐야 한다.

2) “경제활동참가율, 청년층은 OECD 최하위권·고령층은 최상위권”, 김수현 기자(연합뉴스, 2017.09.12.)


인구감소 시대의 답은 ‘인구’가 아니라 ‘노동’에 있다. 노동이 신성해서라거나, 오직 노동만이 가치를 창출한다는 클래식한 이유 때문이 아니다. 노동은 사회 구성요소로서 인구가 가지는 중요성을 상대적으로 완화하는 측면으로서 강한 보완력을 가지고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인구감소시대에 우리는 ‘출산’과 ‘노동’ 둘 중 어느 측면에 무게를 두고 사회를 운용해나갈지 선택해야 한다.


사회가 돌아가려면 누군가는 일을 하고 생산을 담당해야 한다. 인구증가와 기술혁신, 자본주의적 시장팽창 등은 이러한 노동의 책임을 분절하고 다양화시켜왔다. 그래서 사회구성원 각자가 지는 노동책임성이 차별적이고 불평등한 구조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구감소시대에 이러한 노동 구조는 적합하지 않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동책임성을 사회구성원 모두가 평등하게 나눠져야 한다.


그리고 그 방식은 지금보다 더 적은 시간, 더 효율적인 노동환경, 더 안전하고 더 정당한 급여를 받으며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사회적 의지와 합의를 바탕으로 노동시장을 개혁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인구감소시대라는 파고를 넘기 위한 도전은 우리 모두의 것이고, 마땅히 사회구성원 모두가 함께 감당해야 한다.


노동 공백을 막아야한다


인구감소시대에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선 노동인구가 감소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는 현재보다 일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야 한다는 뜻이고, 일하지 않는 사람들을 노동으로 유인해야 한다는 의미다. 청년과 여성의 노동 공백은 최소화해야 하고, 고령 인구의 노동할 권리 역시 더 폭넓게 보장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일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왜 일하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청년과 여성 절반은 왜 일을 쉬고 있는지, 정작 노인들을 왜 퇴직 이후에도 일자리를 찾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먼저 청년층이다. 2024년 고용동향 마이크로데이터(MD)의 조사에 의하면 ‘쉬었음 청년’(44만3000명) 가운데 무려 75.6%가 “일할 의사가 없다”고 답변했다. 구직 의사가 있는 청년들 중 답변 1위는 “원하는 임금 수준이나 근로조건이 맞는 일거리가 없을 것 같아서”였다. 일하지 않는 청년이 절반 가까이 되는데, 그 중 76% 가까이는 그냥 일할 생각 자체가 없고, 일할 생각이 있는 청년들은 원하는 수준의 직장에 취업할 수 없어서 쉬고 있다는 것이다.


청년실업은 더 이상 일자리가 없어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청년들이 취업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선진국이 됐다는 뜻이거나, 사회에 ‘좋은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의미다. ‘좋은 일자리’든 아니든 구직을 통해 생계 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 청년들과 그렇지 않아도 되는 나머지 절반의 청년들(좋은 일자리를 선택할 수 있는)로 계급적 분화가 뚜렷한 사회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어떻게 보든 한국 사회가 ‘좋은 일자리’가 아니면 취업 자체를 거부할 정도로, ‘좋은 일자리’로의 진입을 매우 강하게 유인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여기서 ‘좋은 일자리’란, 일반적으로 1차 노동시장(대기업-공공부문 정규직 등)을 말한다. 흔히 한국 사회를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심각하다고 표현하는데, 이는 고임금에 안정된 근무조건을 갖춘 1차 노동시장과 불안정한 저임금에 노출된 2차 노동시장으로 분절됐고 그 격차가 매우 심각하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기아차 정규직의 2019년 월 평균임금(성과일시금 제외)이 666만3358원인 반면, 사내하청은 404만7112원이다. 사실상 같은 일을 하고 근무강도는 오히려 더 센 편인데도, 사내하청은 정규직 대비 60~70% 수준의 임금을 받는다. 같은 자동차를 만드는 노동을 하는데, 완성차업체의 1차 사외하청 임금은 원청 정규직 대비 80%, 2차 사외하청은 64% 수준이다. 공공기관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철도공사 노동자는 평균 7001만원을 받지만 자회사 코레일네트웍스의 무기계약직은 3338만6000원을 받는다.3)

3) “노조여 세상을 바꾸려면 호봉제부터 바꿔라”(시사인, 전혜원 기자) 2021.01.25


구직자 입장에선 당연히 1차 노동시장을 희망하고 2차 노동시장은 피해야만 한다. 그리고 당장 비정규직 일자리에 취업하지 않아도 정규직에 계속해서 도전할 수 있는 계급에 속한 청년들과 아닌 청년들의 격차와 불평등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실제 현대•기아차와 같은 대기업이 생산직 채용 공고를 내면 커뮤니티에선 ‘킹산직(킹+생산직)’이라며 지원 대란이 일어난다. 2022년 기아차 생산직 경쟁률은 500:1이었다.


‘쉬었음 청년’들이 늘어나는 것은, 한번 진입하면 벗어나기 어려운 2차 노동시장이 아니라 1차 노동시장으로 진입하려는 생존 투쟁 현상이다. 상위 20%는 월 평균 948만 원을 버는데, 하위 20%는 월 평균 181만 원을 번다.4) 소득격차가 무려 5.23배에 달한다. 청년들은 이 상위 20%에 들어가기 위한 치열한 경쟁 속에 살고 있다. 극한 경쟁 역시 문제지만, 현재 하위 80%가 하고 있고 사회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노동 영역에서 공백이 커지고 있다는 현상을 주목해야 한다. 인구감소시대에 가뜩이나 일할 사람이 부족해지는데, 이러한 노동 수급 불균형이 강화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4) <저출산, 프랑스는 어떻게 극복했나(이상민, 박동열)> 中 2022년 소득 기준


반면 여성의 노동 공백은 청년과 그 성격이 조금 다르다. 성별임금격차와 경력단절, 유리천장 등 젠더불평등이 여성 노동 공백의 가장 큰 요인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성별임금격차는 이 조사가 추계되기 시작한 1992년부터 지금까지 30년간 부동의 OECD 1위다. 2023년 기준 OECD 성별임금격차 평균은 11.4%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29.3%로 약 2.6배 수준이다. 2021년 기준 한국 여성은 남성보다 31%나 임금이 적다.5) 차별과 불평등은 언제나 노동 기피 현상을 부추기는 법이다.

 5) <일할 사람이 사라진다(이철희)> 위즈덤하우스


보통 한국 여성의 연령대별 고용률 그래프를 M자형이라고 부르는데, 출산과 양육의 시기인 35∼39세에 고용률이 급감하는 모양세기 때문이다.6) OECD 회원국 전체의 여성 고용률이 25∼54세가 70%대를 유지하며 ‘역U자(∩)’형을 보이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는 한국사회가 여성에게 출산과 직장 중 어느 한 쪽으로의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라 봐야 한다. 국가가 여성을 저출생으로 안내하고 있으면서 저출생이 문제라고 설교하는 적반하장인 셈이다. 여성이 일•가정 양립할 수 없다면, 인구 문제도 노동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6)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여성 고용률이 가장 높은 연령대는 25∼29세(73.9%). 반면 10대와 60대 이상을 제외하고는 35∼39세의 고용률이 60.5%로 가장 낮음. 


청년과 여성의 노동 공백 문제가 심각한 것과 반대로, 고령층 경제활동참가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에 의하면 2024년 고령층 경제활동참가율은 60.6%로 1년 전보다 0.4% 포인트 올라 역대 최고치다. 고령층 취업자는 943만 6000명으로 사회의 노동 및 생산 영역에서 무시하지 못할 규모다.


이러한 한국 사회 노인들의 노동 참여엔 두 가지 시선이 공존한다. 가난한 노인들의 생계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7)이라는 불편한 진실과 엑티브 시니어 세대(젋게 살며 현역을 지향하는 노인)라는 긍정적 해석이다. 어느 쪽으로 해석하든 대안의 방향은 동일하다. 인구감소사회를 준비하기 위해선, 고령인구의 노동도 지금보다 더 늘어나야 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 노인들에게 일을 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20~30년 후의 고령인구는 현재의 고령인구와 다른 세대다. 점진적으로 사회가 고령인구가 일할 수 있는 기회와 산업 영역을 넓혀나가고, 노후보장 시스템 강화를 동시에 설계해야 한다.

 7) 2020년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0.4%로 OECD 회원국 평균인 14.2%보다 두 배 이상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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