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지방소멸 그리고 집 ②

콤펙트시-네트워크화 그리고 메가시티
물리적으로만 보면 국가 전체 인구가 줄어드는 조건에서 수도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한 지방 인구만 늘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발상을 약간만 달리해보자. 앞서 말했듯 국가의 인구와 지방의 인구는 다르다. 국가의 인구가 줄어들어도 지방의 인구 규모를 늘리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지방 행정을 개편하고 통합하는 것이다. 출생률을 높이거나 인구를 외부에서 유입하지 않더라도, 중소도시를 통합하면 해당 행정구역의 인구규모는 적정수준으로 늘어날 수 있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 있지만, 적정 인구규모가 갖추어지고 생활권과 산업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큰 조건의 변화다.
일본에서 추진하는 콤펙트시-네트워크화의 실험은 이러한 발상의 전환에서 출발한다. 콤펙트시는 도시가 기능하는데 필요한 핵심 기능을 한 곳으로 집약시키는 프로젝트다. 도시의 중심부에 상업시설, 의료시설, 복지시설, 문화시설, 공공기관 등을 집약시켜 도시의 효율을 높인다. 동시에 인접 지역을 공공교통망으로 연결해 하나의 생활권역을 형성함으로서 일정한 인구규모를 유지하겠다는 것이 네트워크화 전략이다. 이러한 규모의 확장을 통해 인구가 감소하더라도 상권과 지역 커뮤니티를 유지하겠다는 구상이다.
쉽게 말하면, 지방 도시 간 통합과 연결이다. 수도권 규모의 대도시로 중소도시를 통합하고, 주변 인접 소도시들을 대도시 거점 중심으로 연결하자는 것이다. 사실 이는 일본만의 고유한 실험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메가시티도, 중국의 징진시(베이징을 중심으로 톈진, 허베이성을 통합하는 메갈로폴리스 구상)도 유사한 주장이다. 이론적 배경은 앨버트 허시먼의 <경제개발 전략(1958)>에서 기원하는데, 국가경제 발전을 위해선 균형성장이 아니라 핵심 성장거점 몇 군데를 지정해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 주요내용이다. 이렇게 하면 초기엔 분극효과로 인해 거점으로의 인재와 자원 집중이 불가피하지만, 결과적으로 성장의 성취가 주변 지역으로 재분배될 수 있다는 낙수효과론이다.1>
1> 해당 문단은 <지방분권이 지방을 망친다(마강래)>를 참고했다.
우리나라의 메가시티 구상으로 설명하자면, 예컨대 부산과 울산이 따로 생존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부울경’이라는 대도시권 거점도시를 재설계하고 산업과 인구를 집중하자는 것이다. 양산이나 사천과 같은 부산 인접 소도시들은 부울경 메가시티의 생활권 소도시로서 그 효과를 나누어 누릴 수 있다. 지방과 지방을 연결하고 통합하면서, 수도권 규모의 대도시권을 형성함으로서 일정 규모의 안정적인 인구규모를 만들어내는 것을 시작으로 지방소멸을 극복하자는 것이다. 부울경뿐만이 아니라, 대구권-광주권-대전권 등 광역별 거점을 이런 방식으로 재설계할 수 있다.
이러한 선택과 집중이 지방자치의 측면에서 적절하지 못하다는 반론도 있다. 그러나 인구감소시대에 자립이 불가능한 지방에 자치의 권한을 부여하자는 것은 사실상 방치와 다름없다. 여기서 자치는 예산의 독립과 그 예산을 통한 자율적 경쟁 시대로 가자는 것인데, 모든 지방이 패배하는 결과만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일단 자치 이전에 자립 불가능한 지역이 다수다. 인구감소시대에는 인구 2~3만으로 유지되는 지역이 국토의 30%를 차지한다는데, 이는 인구 5만 명 정도의 중심시와 그 주변 소도시를 묶어야 하나의 자립 권역이 될 수 있다는 정주자립권에 못 미치는 숫자다. 사람은 적은데 예산만 많다고 실질적 성과를 낼 수 있을 리는 만무하다. 예산 사용처는 대부분 관광객 유치를 위한 행사 정도일 것이고, 만약 기업을 기초 지자체 단위로 유치해 일자리 확장을 도모한다고 해도 인구가 유입될 가능성은 낮다. 한국노동연구원 고영우 박사의 ‘지역의 인구유입과 일자리 창출의 상관관계’ 연구에 따르면, 일자리가 생기면 인구가 유입된다는 수요이론과 인구가 유입되면 일자리가 생겨난다는 공급이론 중 후자가 작동한다. 지역에서 아무리 일자리를 유치해도 적정규모의 인구가 확보되지 않으면, 인구유입이 어렵다는 의미다. 중소도시와 같이 작은 단위의 지역들끼리 인구유입 경쟁은 유의미하지도 옳지도 않다.
지방소멸은 지방의 위기이니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논리, 지방은 그러한 자격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주장 역시 오류다. 지방소멸은 특정 지방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문제다. 국가적 차원의 기획과 구상에 따른 예산분배를 중심으로 그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이미 한국의 총 조세(국세+지방세) 대비 지방세 비율은 24.7%로 OECD 평균인 19.7%보다 높다.(2021년 기준) 일부 연방제 국가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국가들은 중앙정부 중심으로 세수를 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지방 중심 예산 편성으로 바꾼다면 오히려 중앙정부가 지방소멸 대응 책임을 지자체에 떠넘기는 것이라 평가해야 한다. 지방소멸은 국토 전반의 재설계라는 국가적 구상으로 해소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아무런 구상이 없다고 고백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정주인구가 아닌 관계인구를 중심으로
그렇다면 인구감소시대를 마주해 중소도시 지방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 여기서 일본 정부가 주목하고 있는 관계인구의 개념을 참고할 수 있다. 기존의 지방소멸 극복 방안이 해당 지역에 정주하는 인구를 늘이기 위한 목표였다면, 해당 지방에 거주하지 않지만 생활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관계인구를 늘이는 것으로 목표를 재설정하는 것이다.
‘관계인구’란 여행 혹은 방문으로 해당 지역에 호감을 갖는 ‘교류인구’와,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정주인구’의 중간단계다. 일본 총무성에서 지방소멸 관련 정책을 담당하는 오다기리 도쿠미 교수는 관계인구를 ‘관심인구’와 ‘관여인구’가 합쳐진 탄생한 용어라 설명하기도 한다. 최근 들어 한국에서도 생활인구라는 유사한 개념을 적용해 다양한 정책들을 실험하고 있다. 지역마다 ‘한 달 살기’와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일본 총무성은 관계인구의 목표를, 관계되는 지역을 "고향, 제2의 고향"으로 설정하고 고향을 지지하는 "지역 외 인재"와의 지속적이고 복층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함으로써 자립적이고 지속적인 지역 만들기를 실현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면 서울에 거주하더라도, 통영을 제2의 고향으로 인식하는 인구를 늘려, 통영에 거주하지 않지만 생활적으로 교류하는 방식으로 지역재생을 고민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관계인구론 역시 결과적으로 정주인구를 유치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정주인구 확대에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보다 현실적인 방안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지역에 균일한 숫자의 인구가 살아갈 필요는 없다. 땅의 효용이 거주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전체 인구가 감소한다면 사람이 살아갈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으로 그 역할을 나누고,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예산 지원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국토의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합리적이다. 지금 당장은 정주 지역으로서 기능하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어떠한 모습으로든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으로서 지방을 바라본다는 관점에서 미래지향성이기도 하다.
인구감소시대의 ‘내집마련’과 수도권 과밀해소
한국 정부의 저출생 극복 방안은 내집마련 지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청년들이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는 집값에 대한 부담이 극심해 내집마련이 불가능하기 때문이고, 그래서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내집마련 비용을 지원해 결혼과 출산을 독려하겠다는 논리 구조다. 실제 결혼을 염두에 둔 청년들이 부동산 장벽에 막혀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신혼부부만을 특정해 세수를 투입한다는 것이 비혼 시민들에 대한 일종의 역차별이라는 점과 실제 정책의 효과로 자가를 마련할 수 있는 건 최소 중산층부터라는 한계가 명확히 존재한다.
그렇다고 모두가 자가를 구입할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을 할 수도 없다. 매년 약 20만 명의 30세 청년이 생겨나는데, 이들 모두에게 평균 5억 원의 주택을 구입해주려면 약 100조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한국 정부 1년 예산의 약 1/6이다. 집값을 내려 단숨에 해결하겠다는 발상도 위험하다. 한국 사회에서 집이 자산으로 기능한지는 오래됐고, 이를 단번에 해결하려 한다면 한국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중산층이 몰락할 것이다. 반대로 집값이 급격히 오르면 무주택 시민들의 삶이 고단해질 것이다. 한국의 부동산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는 요술방망이는 없다.
이런 현실에서 인구감소는 부동산 자산 경쟁을 수도권 중심으로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부동산 자산 경쟁에 뛰어들 수 있는 상층 계급이 아닌 다수의 시민들은 주거 안정성을 위협받고 불평등과 격차는 더 커질 것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선 집에 대한 사회적 관점을 전환시켜야 한다.
집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거주하는 곳이다. 모든 시민에게 집이 자산일 필요는 없고, 모든 시민이 집이라는 자산을 가질 필요도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내집마련이 아니라 세입자들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국가 정책이 유인해야 한다. 다수 선진국들의 자가거주율은 55~60% 수준으로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2> 문제는 나머지 40% 가까이 되는 무주택자들이 얼마나 안정된 주거생활을 보장받고 있느냐이다. 현재 한국의 무주택자들의 주요 거주형태인 전월세를 민간에서 사실상 전담하는 방식은 주거불안정성이 극심할 수밖에 없다. 공공임대주택을 국가적으로 투입하고 운영하려는 흐름이 중요한 이유다. 비록 ‘내 소유의 집’이 아니더라도, 평생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임대주택을 사회적으로 보장하는 방향으로 주거공공성을 확대해나가야 한다.
2> <어쩌면, 사회주택(최경호)>
여기서 한 가지 아이디어를 더 보태자면 수도권 과밀해소와 주택 문제를 연결해보자는 것이다. 인구감소시대에 부동산 경쟁의 정도는 심해질 가능성이 높지만, 동시에 그 공간은 수도권중심으로 더 협소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수도권 자가 소유를 억제하는 방식으로 부동산 정책을 구상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현재 청년주택 지원 예산을 비수도권으로 한정하는 것이다. 서울 도심 용적률 상향 등 주택에 대한 규제완화를 공공주택 용도로 제한할 수도 있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시민들은 공공주택으로, 지방에 거주하는 시민들은 자가소유로 점진적으로 유인해보자는 것이다. 수도권 과밀해소라는 측면에서도, 지방의 관계인구 확대의 측면에서도 유효할 수 있다.
인구감소시대에 인구는 줄어들지만, 인구가 살아갈 공간은 넓어진다. 인구 1명당 향유하고 활용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이 넓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가능성의 영역이 많아진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이 가능성의 영역을 빈 집과 황무지 그리고 극심한 자산경쟁의 장으로 만들 것인지, 아니면 안정적인 삶의 공간으로 꾸려나갈지는 우리 사회의 몫이다.
7장 지방소멸 그리고 집 ②
콤펙트시-네트워크화 그리고 메가시티
물리적으로만 보면 국가 전체 인구가 줄어드는 조건에서 수도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한 지방 인구만 늘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발상을 약간만 달리해보자. 앞서 말했듯 국가의 인구와 지방의 인구는 다르다. 국가의 인구가 줄어들어도 지방의 인구 규모를 늘리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지방 행정을 개편하고 통합하는 것이다. 출생률을 높이거나 인구를 외부에서 유입하지 않더라도, 중소도시를 통합하면 해당 행정구역의 인구규모는 적정수준으로 늘어날 수 있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 있지만, 적정 인구규모가 갖추어지고 생활권과 산업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큰 조건의 변화다.
일본에서 추진하는 콤펙트시-네트워크화의 실험은 이러한 발상의 전환에서 출발한다. 콤펙트시는 도시가 기능하는데 필요한 핵심 기능을 한 곳으로 집약시키는 프로젝트다. 도시의 중심부에 상업시설, 의료시설, 복지시설, 문화시설, 공공기관 등을 집약시켜 도시의 효율을 높인다. 동시에 인접 지역을 공공교통망으로 연결해 하나의 생활권역을 형성함으로서 일정한 인구규모를 유지하겠다는 것이 네트워크화 전략이다. 이러한 규모의 확장을 통해 인구가 감소하더라도 상권과 지역 커뮤니티를 유지하겠다는 구상이다.
쉽게 말하면, 지방 도시 간 통합과 연결이다. 수도권 규모의 대도시로 중소도시를 통합하고, 주변 인접 소도시들을 대도시 거점 중심으로 연결하자는 것이다. 사실 이는 일본만의 고유한 실험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메가시티도, 중국의 징진시(베이징을 중심으로 톈진, 허베이성을 통합하는 메갈로폴리스 구상)도 유사한 주장이다. 이론적 배경은 앨버트 허시먼의 <경제개발 전략(1958)>에서 기원하는데, 국가경제 발전을 위해선 균형성장이 아니라 핵심 성장거점 몇 군데를 지정해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 주요내용이다. 이렇게 하면 초기엔 분극효과로 인해 거점으로의 인재와 자원 집중이 불가피하지만, 결과적으로 성장의 성취가 주변 지역으로 재분배될 수 있다는 낙수효과론이다.1>
1> 해당 문단은 <지방분권이 지방을 망친다(마강래)>를 참고했다.
우리나라의 메가시티 구상으로 설명하자면, 예컨대 부산과 울산이 따로 생존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부울경’이라는 대도시권 거점도시를 재설계하고 산업과 인구를 집중하자는 것이다. 양산이나 사천과 같은 부산 인접 소도시들은 부울경 메가시티의 생활권 소도시로서 그 효과를 나누어 누릴 수 있다. 지방과 지방을 연결하고 통합하면서, 수도권 규모의 대도시권을 형성함으로서 일정 규모의 안정적인 인구규모를 만들어내는 것을 시작으로 지방소멸을 극복하자는 것이다. 부울경뿐만이 아니라, 대구권-광주권-대전권 등 광역별 거점을 이런 방식으로 재설계할 수 있다.
이러한 선택과 집중이 지방자치의 측면에서 적절하지 못하다는 반론도 있다. 그러나 인구감소시대에 자립이 불가능한 지방에 자치의 권한을 부여하자는 것은 사실상 방치와 다름없다. 여기서 자치는 예산의 독립과 그 예산을 통한 자율적 경쟁 시대로 가자는 것인데, 모든 지방이 패배하는 결과만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일단 자치 이전에 자립 불가능한 지역이 다수다. 인구감소시대에는 인구 2~3만으로 유지되는 지역이 국토의 30%를 차지한다는데, 이는 인구 5만 명 정도의 중심시와 그 주변 소도시를 묶어야 하나의 자립 권역이 될 수 있다는 정주자립권에 못 미치는 숫자다. 사람은 적은데 예산만 많다고 실질적 성과를 낼 수 있을 리는 만무하다. 예산 사용처는 대부분 관광객 유치를 위한 행사 정도일 것이고, 만약 기업을 기초 지자체 단위로 유치해 일자리 확장을 도모한다고 해도 인구가 유입될 가능성은 낮다. 한국노동연구원 고영우 박사의 ‘지역의 인구유입과 일자리 창출의 상관관계’ 연구에 따르면, 일자리가 생기면 인구가 유입된다는 수요이론과 인구가 유입되면 일자리가 생겨난다는 공급이론 중 후자가 작동한다. 지역에서 아무리 일자리를 유치해도 적정규모의 인구가 확보되지 않으면, 인구유입이 어렵다는 의미다. 중소도시와 같이 작은 단위의 지역들끼리 인구유입 경쟁은 유의미하지도 옳지도 않다.
지방소멸은 지방의 위기이니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논리, 지방은 그러한 자격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주장 역시 오류다. 지방소멸은 특정 지방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문제다. 국가적 차원의 기획과 구상에 따른 예산분배를 중심으로 그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이미 한국의 총 조세(국세+지방세) 대비 지방세 비율은 24.7%로 OECD 평균인 19.7%보다 높다.(2021년 기준) 일부 연방제 국가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국가들은 중앙정부 중심으로 세수를 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지방 중심 예산 편성으로 바꾼다면 오히려 중앙정부가 지방소멸 대응 책임을 지자체에 떠넘기는 것이라 평가해야 한다. 지방소멸은 국토 전반의 재설계라는 국가적 구상으로 해소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아무런 구상이 없다고 고백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정주인구가 아닌 관계인구를 중심으로
그렇다면 인구감소시대를 마주해 중소도시 지방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 여기서 일본 정부가 주목하고 있는 관계인구의 개념을 참고할 수 있다. 기존의 지방소멸 극복 방안이 해당 지역에 정주하는 인구를 늘이기 위한 목표였다면, 해당 지방에 거주하지 않지만 생활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관계인구를 늘이는 것으로 목표를 재설정하는 것이다.
‘관계인구’란 여행 혹은 방문으로 해당 지역에 호감을 갖는 ‘교류인구’와,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정주인구’의 중간단계다. 일본 총무성에서 지방소멸 관련 정책을 담당하는 오다기리 도쿠미 교수는 관계인구를 ‘관심인구’와 ‘관여인구’가 합쳐진 탄생한 용어라 설명하기도 한다. 최근 들어 한국에서도 생활인구라는 유사한 개념을 적용해 다양한 정책들을 실험하고 있다. 지역마다 ‘한 달 살기’와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일본 총무성은 관계인구의 목표를, 관계되는 지역을 "고향, 제2의 고향"으로 설정하고 고향을 지지하는 "지역 외 인재"와의 지속적이고 복층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함으로써 자립적이고 지속적인 지역 만들기를 실현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면 서울에 거주하더라도, 통영을 제2의 고향으로 인식하는 인구를 늘려, 통영에 거주하지 않지만 생활적으로 교류하는 방식으로 지역재생을 고민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관계인구론 역시 결과적으로 정주인구를 유치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정주인구 확대에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보다 현실적인 방안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지역에 균일한 숫자의 인구가 살아갈 필요는 없다. 땅의 효용이 거주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전체 인구가 감소한다면 사람이 살아갈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으로 그 역할을 나누고,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예산 지원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국토의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합리적이다. 지금 당장은 정주 지역으로서 기능하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어떠한 모습으로든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으로서 지방을 바라본다는 관점에서 미래지향성이기도 하다.
인구감소시대의 ‘내집마련’과 수도권 과밀해소
한국 정부의 저출생 극복 방안은 내집마련 지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청년들이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는 집값에 대한 부담이 극심해 내집마련이 불가능하기 때문이고, 그래서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내집마련 비용을 지원해 결혼과 출산을 독려하겠다는 논리 구조다. 실제 결혼을 염두에 둔 청년들이 부동산 장벽에 막혀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신혼부부만을 특정해 세수를 투입한다는 것이 비혼 시민들에 대한 일종의 역차별이라는 점과 실제 정책의 효과로 자가를 마련할 수 있는 건 최소 중산층부터라는 한계가 명확히 존재한다.
그렇다고 모두가 자가를 구입할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을 할 수도 없다. 매년 약 20만 명의 30세 청년이 생겨나는데, 이들 모두에게 평균 5억 원의 주택을 구입해주려면 약 100조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한국 정부 1년 예산의 약 1/6이다. 집값을 내려 단숨에 해결하겠다는 발상도 위험하다. 한국 사회에서 집이 자산으로 기능한지는 오래됐고, 이를 단번에 해결하려 한다면 한국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중산층이 몰락할 것이다. 반대로 집값이 급격히 오르면 무주택 시민들의 삶이 고단해질 것이다. 한국의 부동산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는 요술방망이는 없다.
이런 현실에서 인구감소는 부동산 자산 경쟁을 수도권 중심으로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부동산 자산 경쟁에 뛰어들 수 있는 상층 계급이 아닌 다수의 시민들은 주거 안정성을 위협받고 불평등과 격차는 더 커질 것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선 집에 대한 사회적 관점을 전환시켜야 한다.
집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거주하는 곳이다. 모든 시민에게 집이 자산일 필요는 없고, 모든 시민이 집이라는 자산을 가질 필요도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내집마련이 아니라 세입자들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국가 정책이 유인해야 한다. 다수 선진국들의 자가거주율은 55~60% 수준으로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2> 문제는 나머지 40% 가까이 되는 무주택자들이 얼마나 안정된 주거생활을 보장받고 있느냐이다. 현재 한국의 무주택자들의 주요 거주형태인 전월세를 민간에서 사실상 전담하는 방식은 주거불안정성이 극심할 수밖에 없다. 공공임대주택을 국가적으로 투입하고 운영하려는 흐름이 중요한 이유다. 비록 ‘내 소유의 집’이 아니더라도, 평생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임대주택을 사회적으로 보장하는 방향으로 주거공공성을 확대해나가야 한다.
2> <어쩌면, 사회주택(최경호)>
여기서 한 가지 아이디어를 더 보태자면 수도권 과밀해소와 주택 문제를 연결해보자는 것이다. 인구감소시대에 부동산 경쟁의 정도는 심해질 가능성이 높지만, 동시에 그 공간은 수도권중심으로 더 협소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수도권 자가 소유를 억제하는 방식으로 부동산 정책을 구상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현재 청년주택 지원 예산을 비수도권으로 한정하는 것이다. 서울 도심 용적률 상향 등 주택에 대한 규제완화를 공공주택 용도로 제한할 수도 있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시민들은 공공주택으로, 지방에 거주하는 시민들은 자가소유로 점진적으로 유인해보자는 것이다. 수도권 과밀해소라는 측면에서도, 지방의 관계인구 확대의 측면에서도 유효할 수 있다.
인구감소시대에 인구는 줄어들지만, 인구가 살아갈 공간은 넓어진다. 인구 1명당 향유하고 활용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이 넓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가능성의 영역이 많아진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이 가능성의 영역을 빈 집과 황무지 그리고 극심한 자산경쟁의 장으로 만들 것인지, 아니면 안정적인 삶의 공간으로 꾸려나갈지는 우리 사회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