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지방소멸 그리고 집 ①
2021년 행정안전부는 인구감소지역으로 98개 지자체를 발표했다. 연평균인구증감률, 인구밀도, 청년순이동률, 주간인구, 고령화비율, 유소년비율, 조출생률, 재정자립도 등을 다각도로 검토한 결과다. 인구감소지역은 우리나라 전체 지자체의 39%에 해당하는 규모로, 약 40%의 지역이 인구소멸 위기에 놓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
언뜻 보면 저출생 현상으로 인한 인구감소가 지방소멸로 이어지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저출생이 지방소멸의 원인으로 보이는 것은 착시효과다. 대한민국은 전 국토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52%의 인구가 몰려 사는 나라다. 저출생을 떠나 한국은 지방 간 인구불균형이 매우 심각한 나라이고, 저출생-초고령 사회를 맞이하면서 이러한 문제점이 표면화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 도시와 농촌의 격차가 심화되고, 도시화를 거부하거나 진입하지 못한 지역이 소멸하고, 또 도시 간 경쟁에서 패배한 도시가 소멸 위기로 내몰린다. 결과적으로 한국에선 ‘지방’이라는 공간 자체가 설 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처한 지방소멸이라는 위기의 근본적 원인이다.
합계출산율을 올린다고 해서 지방소멸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합계출산율이 오르지 않는다고 해서 지방소멸을 극복할 수 없는 것 역시 아니다.
미국 일리노이주의 소도시 이스트세인트루이스는 1950년부터 인구가 3분의 2이상 줄어들었다. 디트로이트는 2014~2020년 사이에 약 2만 채에 달하는 빈 건물을 철거하며 빈 공터가 10만 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이러한 도시 내 공터와 빈 땅을 활용할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가 수십 년 동안 지속되고 있다.1>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임기 시절 연방 재정까지 투입해 디트로이트의 빈 집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결과가 썩 만족스럽다고 보긴 어렵다. 미국판 지방소멸의 한 단면이다.
1> <축소되는 세계(앨런 말라흐)>
그런데 미국은 인구소멸위기 국가가 아니다. 합계출산율 1.7명(2022년 기준)으로 높다고 할 순 없지만, 꾸준히 유입되고 있는 이민자로 인해 매년 0.3% 정도의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2> 선진국 중 거의 유일하게 ‘인구증가 국가’인 미국에서 지방소멸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즉, 인구가 늘어나도 지방은 소멸할 수 있다.
2> 미 의회예산국(CBO)
지방소멸은 일반적으로 지방에 사람이 살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해당 지역 입장에서는 인구가 떠나기만 하고 태어나거나 유입되지 않으니, 인구감소가 맞다. 하지만 국가 입장에서는 다른 지역에 인구가 더 많이 살면 전체적으로 인구감소는 아닌 것이다. 지방소멸의 직접적 원인은 해당 지역의 인구감소가 맞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국가적 저출생 현상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만약 한국사회가 지금 그대로 유지된다는 전제 하에 합계출산율이 오른다면 지방소멸을 극복할 수 있을까? 아마도 지방에서 태어난 더 많은 자녀와 부모들이 수도권으로 진입하면서, 지방 간 불균형과 격차는 그대로이거나 더욱 심화될 것이다. 물론 합계출산율이 산업화 시대 고도성장기와 같이 치솟는다면 일종의 낙수효과로 인해 수도권 진입경쟁에서 패배한 인구가 지방으로 밀려나면서 지방인구가 늘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만큼의 유효한 합계출산율 증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이러한 측면에서 지자체 간 출산장려 경쟁은 적절하지 않다. 우리 지역에서 아이를 낳으면 지원금을 더 주겠다는 방식으로는 유의미한 출산율 증가도 어렵고, 지방소멸도 극복할 수 없다. 더 냉정하게 말하면 지방소멸은 지자체 차원에서 해결하거나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다. 국가 차원의 청사진과 정책이 필요하고, 인구증가가 아니라 산업정책과 행정구역 개편을 통한 거점도시 재설계를 중심으로 고민해야 한다.
모든 지방이 살아날 수는 없다
지방소멸의 엄혹한 미래를 상상하면 대략 이렇다. 아이는 태어나지 않고, 청년 인구는 유출될 것이며, 고령인구만 남을 것이다. 그리고 남은 고령인구가 수명을 다하고 나면, 해당 고령인구가 살던 주택의 매수희망자가 없는 부동산이 늘어날 것이다. 빈 집이 증가하는 것이다. 이렇게 빈 집으로 남는 부동산이 늘어난 지방은 시장경제가 순환되지 않는 지역으로 규정될 것이다. 해당 지역에서 부동산을 소유해도 더 이상 주택담보대출을 받기 어려워지는 지경까지 갈 것이고, 남은 집주인들은 재산세 미납을 통해 집 소유 자체를 포기할 수도 있다. 대다수 지자체는 마땅한 대안 없이 빈 집을 허물고 도시의 황무지와 공터가 늘어날 것이다.
부동산 신화가 패배한 적 없는 한국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미래이긴 하다. 설사 빈 집이 어느 정도 늘어난다고 해도, 전체적으로 집값 하락의 신호라 볼 수 있으니 ‘내집마련 사회’로 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반문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과 마찬가지로 수도권 과밀화가 심각한 수준이고3>, 부동산 신화가 매우 강했던 일본이 처한 현재 상황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3> 일본의 수도권으로 분류하는 1도 7현에는 약 4,400만 명이 산다.
2018년 기준으로 일본은 총 820만 채가 빈 집인데, 주택이나 아파트의 약 7분의 1이 빈 집인 꼴이다. 2040년까지 변수가 없다면 빈 집은 1500~2000채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전체 주택 중 약 3분의 1이 빈 집이 되는 셈이다. 그럼에도 주택 건설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 가구 수가 연 평균 30만 씩 증가하는 것에 비해 주택은 연 평균 90만 채씩 지어지고 있다. 빈 집은 늘어나는데 시장 논리로 새 집만 계속해서 짓고 있는 양상인 것이다. 새 집이 지어진다는 것은 그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것이고 새 집을 자산으로 소유하고자 하는 경쟁은 여전히 치열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으로 치면 지방에 빈 집이 늘어나는데, 서울에는 새 집을 지으며 서울에 살기 위한 경쟁이 더 치열해지는 현상이라 짐작할 수 있다. 지방소멸과 인구위기가 만나는 시점에, 적절한 대응책을 찾지 못하면 이런 미래가 충분히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
지방에 빈 집, 빈 땅, 황무지와 공터가 많아지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는 질문이 있을 수도 있다. 사람이 적게 살면 적은대로 살아가면 그만 아닌가? 하지만 사람은 혼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국가 전체 인구규모와 별개로, ‘생활권’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적정 수준의 인구 규모는 어느 정도 갖추어져야 한다. 예컨대 백화점이 들어서기 위해서는 30만 명의 배후인구가 필요하고, 대학을 유지하기 위해선 10만 명의 인구, 중증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3차 응급의료기관은 인구 5만 명을 필요로 한다.4> 만약 이러한 필수 서비스 기관을 민간에 위임하지 말고 국가단위에서 권리보장 측면으로 세금을 투입해 제공하면 된다는 주장이라면? 하루에 5명이 내원하는 병원을 유지하기 위해 세금을 쓴다면 국가 재정은 파탄날 것이다. 지방소멸 위기 지역에서의 행정 및 공공서비스 질적 하락과 공백이 문제가 되는 이유다.
4> <지방분권이 지방을 망친다(마강래)>
다시 일본 사례를 보자. 일본은 인구감소로 인해 지역공동체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지역을 과소지역이라 규정하는데, 병원이나 학교 등이 철수하고 대중교통수단이 사라져 주민들의 기초생활이 위협받는 곳이다. 2021년 과소지역으로 지정된 시정촌의 숫자는 830개에 달한다. 전국 시정촌의 47.7%, 즉 절반 가까이가 과소지역이다. 그런데 이 과소지역의 인구는 1,132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8.9%에 불과하다. 10%도 되지 않는 인구가 일본 영토 면적의 60.1%를 차지하는 광대한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어서 이들을 위한 행정력을 집중할 수 없는 비효율적 운영구조가 지방소멸을 가속화하면서 연쇄 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일본정부는 1970년부터 과소대책법을 제정해 2018년까지 약 110조 엔(약 1,033조 원)에 달하는 재정지원에 나섰지만 결과적으로 지방소멸을 막을 순 없었다. 5>이에 일본 정부는 지방소멸 대안의 방향성을 전환했다. 모든 지방을 살리자는 목표를 수정하고 ‘선택과 집중’을 하는 방식이다.
5> 일본 지방소멸 현황은 <인구위기국가 일본(정현숙)>을 참고했다.
인구감소 시대에 모든 지방이 예전과 같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넘쳐나는 곳으로 돌아가고 경제성장의 활기를 되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일부 지방이 소멸(여기서 소멸은 정주인구의 감소)한다 하더라도, 국가가 망하지 않을 순 있다. 지방 간 역할을 재분배하고 개편해나가면서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인구증가와 고도 성장기에서 지방의 역할과 인구감소시대에서 지방의 역할은 다를 수밖에 없다.
7장 지방소멸 그리고 집 ①
2021년 행정안전부는 인구감소지역으로 98개 지자체를 발표했다. 연평균인구증감률, 인구밀도, 청년순이동률, 주간인구, 고령화비율, 유소년비율, 조출생률, 재정자립도 등을 다각도로 검토한 결과다. 인구감소지역은 우리나라 전체 지자체의 39%에 해당하는 규모로, 약 40%의 지역이 인구소멸 위기에 놓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
언뜻 보면 저출생 현상으로 인한 인구감소가 지방소멸로 이어지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저출생이 지방소멸의 원인으로 보이는 것은 착시효과다. 대한민국은 전 국토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52%의 인구가 몰려 사는 나라다. 저출생을 떠나 한국은 지방 간 인구불균형이 매우 심각한 나라이고, 저출생-초고령 사회를 맞이하면서 이러한 문제점이 표면화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 도시와 농촌의 격차가 심화되고, 도시화를 거부하거나 진입하지 못한 지역이 소멸하고, 또 도시 간 경쟁에서 패배한 도시가 소멸 위기로 내몰린다. 결과적으로 한국에선 ‘지방’이라는 공간 자체가 설 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처한 지방소멸이라는 위기의 근본적 원인이다.
합계출산율을 올린다고 해서 지방소멸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합계출산율이 오르지 않는다고 해서 지방소멸을 극복할 수 없는 것 역시 아니다.
미국 일리노이주의 소도시 이스트세인트루이스는 1950년부터 인구가 3분의 2이상 줄어들었다. 디트로이트는 2014~2020년 사이에 약 2만 채에 달하는 빈 건물을 철거하며 빈 공터가 10만 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이러한 도시 내 공터와 빈 땅을 활용할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가 수십 년 동안 지속되고 있다.1>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임기 시절 연방 재정까지 투입해 디트로이트의 빈 집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결과가 썩 만족스럽다고 보긴 어렵다. 미국판 지방소멸의 한 단면이다.
1> <축소되는 세계(앨런 말라흐)>
그런데 미국은 인구소멸위기 국가가 아니다. 합계출산율 1.7명(2022년 기준)으로 높다고 할 순 없지만, 꾸준히 유입되고 있는 이민자로 인해 매년 0.3% 정도의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2> 선진국 중 거의 유일하게 ‘인구증가 국가’인 미국에서 지방소멸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즉, 인구가 늘어나도 지방은 소멸할 수 있다.
2> 미 의회예산국(CBO)
지방소멸은 일반적으로 지방에 사람이 살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해당 지역 입장에서는 인구가 떠나기만 하고 태어나거나 유입되지 않으니, 인구감소가 맞다. 하지만 국가 입장에서는 다른 지역에 인구가 더 많이 살면 전체적으로 인구감소는 아닌 것이다. 지방소멸의 직접적 원인은 해당 지역의 인구감소가 맞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국가적 저출생 현상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만약 한국사회가 지금 그대로 유지된다는 전제 하에 합계출산율이 오른다면 지방소멸을 극복할 수 있을까? 아마도 지방에서 태어난 더 많은 자녀와 부모들이 수도권으로 진입하면서, 지방 간 불균형과 격차는 그대로이거나 더욱 심화될 것이다. 물론 합계출산율이 산업화 시대 고도성장기와 같이 치솟는다면 일종의 낙수효과로 인해 수도권 진입경쟁에서 패배한 인구가 지방으로 밀려나면서 지방인구가 늘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만큼의 유효한 합계출산율 증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이러한 측면에서 지자체 간 출산장려 경쟁은 적절하지 않다. 우리 지역에서 아이를 낳으면 지원금을 더 주겠다는 방식으로는 유의미한 출산율 증가도 어렵고, 지방소멸도 극복할 수 없다. 더 냉정하게 말하면 지방소멸은 지자체 차원에서 해결하거나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다. 국가 차원의 청사진과 정책이 필요하고, 인구증가가 아니라 산업정책과 행정구역 개편을 통한 거점도시 재설계를 중심으로 고민해야 한다.
모든 지방이 살아날 수는 없다
지방소멸의 엄혹한 미래를 상상하면 대략 이렇다. 아이는 태어나지 않고, 청년 인구는 유출될 것이며, 고령인구만 남을 것이다. 그리고 남은 고령인구가 수명을 다하고 나면, 해당 고령인구가 살던 주택의 매수희망자가 없는 부동산이 늘어날 것이다. 빈 집이 증가하는 것이다. 이렇게 빈 집으로 남는 부동산이 늘어난 지방은 시장경제가 순환되지 않는 지역으로 규정될 것이다. 해당 지역에서 부동산을 소유해도 더 이상 주택담보대출을 받기 어려워지는 지경까지 갈 것이고, 남은 집주인들은 재산세 미납을 통해 집 소유 자체를 포기할 수도 있다. 대다수 지자체는 마땅한 대안 없이 빈 집을 허물고 도시의 황무지와 공터가 늘어날 것이다.
부동산 신화가 패배한 적 없는 한국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미래이긴 하다. 설사 빈 집이 어느 정도 늘어난다고 해도, 전체적으로 집값 하락의 신호라 볼 수 있으니 ‘내집마련 사회’로 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반문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과 마찬가지로 수도권 과밀화가 심각한 수준이고3>, 부동산 신화가 매우 강했던 일본이 처한 현재 상황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3> 일본의 수도권으로 분류하는 1도 7현에는 약 4,400만 명이 산다.
2018년 기준으로 일본은 총 820만 채가 빈 집인데, 주택이나 아파트의 약 7분의 1이 빈 집인 꼴이다. 2040년까지 변수가 없다면 빈 집은 1500~2000채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전체 주택 중 약 3분의 1이 빈 집이 되는 셈이다. 그럼에도 주택 건설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 가구 수가 연 평균 30만 씩 증가하는 것에 비해 주택은 연 평균 90만 채씩 지어지고 있다. 빈 집은 늘어나는데 시장 논리로 새 집만 계속해서 짓고 있는 양상인 것이다. 새 집이 지어진다는 것은 그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것이고 새 집을 자산으로 소유하고자 하는 경쟁은 여전히 치열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으로 치면 지방에 빈 집이 늘어나는데, 서울에는 새 집을 지으며 서울에 살기 위한 경쟁이 더 치열해지는 현상이라 짐작할 수 있다. 지방소멸과 인구위기가 만나는 시점에, 적절한 대응책을 찾지 못하면 이런 미래가 충분히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
지방에 빈 집, 빈 땅, 황무지와 공터가 많아지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는 질문이 있을 수도 있다. 사람이 적게 살면 적은대로 살아가면 그만 아닌가? 하지만 사람은 혼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국가 전체 인구규모와 별개로, ‘생활권’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적정 수준의 인구 규모는 어느 정도 갖추어져야 한다. 예컨대 백화점이 들어서기 위해서는 30만 명의 배후인구가 필요하고, 대학을 유지하기 위해선 10만 명의 인구, 중증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3차 응급의료기관은 인구 5만 명을 필요로 한다.4> 만약 이러한 필수 서비스 기관을 민간에 위임하지 말고 국가단위에서 권리보장 측면으로 세금을 투입해 제공하면 된다는 주장이라면? 하루에 5명이 내원하는 병원을 유지하기 위해 세금을 쓴다면 국가 재정은 파탄날 것이다. 지방소멸 위기 지역에서의 행정 및 공공서비스 질적 하락과 공백이 문제가 되는 이유다.
4> <지방분권이 지방을 망친다(마강래)>
다시 일본 사례를 보자. 일본은 인구감소로 인해 지역공동체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지역을 과소지역이라 규정하는데, 병원이나 학교 등이 철수하고 대중교통수단이 사라져 주민들의 기초생활이 위협받는 곳이다. 2021년 과소지역으로 지정된 시정촌의 숫자는 830개에 달한다. 전국 시정촌의 47.7%, 즉 절반 가까이가 과소지역이다. 그런데 이 과소지역의 인구는 1,132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8.9%에 불과하다. 10%도 되지 않는 인구가 일본 영토 면적의 60.1%를 차지하는 광대한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어서 이들을 위한 행정력을 집중할 수 없는 비효율적 운영구조가 지방소멸을 가속화하면서 연쇄 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일본정부는 1970년부터 과소대책법을 제정해 2018년까지 약 110조 엔(약 1,033조 원)에 달하는 재정지원에 나섰지만 결과적으로 지방소멸을 막을 순 없었다. 5>이에 일본 정부는 지방소멸 대안의 방향성을 전환했다. 모든 지방을 살리자는 목표를 수정하고 ‘선택과 집중’을 하는 방식이다.
5> 일본 지방소멸 현황은 <인구위기국가 일본(정현숙)>을 참고했다.
인구감소 시대에 모든 지방이 예전과 같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넘쳐나는 곳으로 돌아가고 경제성장의 활기를 되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일부 지방이 소멸(여기서 소멸은 정주인구의 감소)한다 하더라도, 국가가 망하지 않을 순 있다. 지방 간 역할을 재분배하고 개편해나가면서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인구증가와 고도 성장기에서 지방의 역할과 인구감소시대에서 지방의 역할은 다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