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인구감소를 더 나은 교육을 위한 도약의 발판으로 ②

대학 붕괴 시나리오, 세컨드임펙트는 2050년
대학이 '벚꽃 피는 대로 망한다'는 예언은 이미 현실이다. 16년 전만에도 60만 수험생이라고 불리던 학령인구가 40만 명 선이 무너졌다. 2024년도 대입 선발 인원은 51만 명 선인데, 11만 명이나 부족하다. 2023년 정시에서 지방 소재 113개 대학 중 59곳은 경쟁률 3:1 이하인 '사실상 미달' 상태였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지방대학은 소멸되고 대학은 서울에서나 볼 수 있는 수도권패권주의의 상징이 될 것이다.
2023년이 '퍼스트임펙트'라면, ‘세컨드임펙트’는 2050년이다. 지금보다 학령인구가 20만 명이나 더 줄어들 예정이다. 그 사이 우리 사회가 대학구조개혁을 완료하지 못한다면 혼란은 피할 수 없다. 상식적으로 인구가 1000만 명이 줄어드는데, 대학 숫자가 그대로일 필요는 없다. 인구감소시대에 대학구조개혁은 필수 준비 과제다.
물론 어떤 방향으로의 대학구조개혁이냐가 중요하다.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는 대학구조개혁이 아니라, 교육공공성을 높여나가는 사회적 대학구조개혁이 필요하다. 방치와 방임이 대안의 전부라면 지방대학만 줄줄이 없어질 것이 뻔하다. 수도권 대학은 귀족들의 전유물이 될 것이다.
결론은 수도권 대학부터 정원감축과 통폐합을 진행하는 것이다. 개별 대학들의 생존하고자 하는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면, 모두를 만족시키는 대안은 불가능하다. 국가는 몇몇 명문대와 사학재단의 이해관계를 과감히 떨쳐내야 한다. 전체 고등교육 전반의 개혁을 위해선 양보와 희생이 필요하고, 지금까지 혜택을 누려왔던 수도권 상위권 대학들이 이제는 희생해야 할 때다. 그들이 한국 교육 개혁의 주춧돌과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구체적 방법이 한국사회에 제출된 지는 꽤 오래되었다. 매 선거 때마다 대학공공성 확보를 위한 사회적 대학구조개혁의 방향을 각 정당들은 공약으로 제출한다. ‘국공립대 네트워크’, ‘정부책임형 사립대학’, ‘서울대 10개 만들기’ 등 표현은 다르지만 사실상 유사한 구상을 변형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인구감소와 함께 대학 붕괴 시나리오가 진행 중인 현 시점에서, 이제는 그 구상들을 말이 아닌 실천으로 옮겨야 할 때다.
과거에는 서울대 폐지론과 대학평준화 주장이 강세였지만, 최근 교육담론의 중심은 대학 서열체제 완화로 옮겨왔다. 대학 서열 자체를 완전히 없앨 순 없지만 완화하는 방향으로 유인하고, 그 과정에서 국가의 교육책임성과 대학공공성을 높여나가자는 방향성이다.
대표적인 아이디어는 국공립대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다. 전국의 국공립대학교가 공동으로 운영체제를 만들고 수업 및 학점을 교류하며 하나의 대학으로 기능하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신입생도 공동으로 선발하고 졸업 학위도 국공립대학 학위로 동일하게 수여한다. 교수 또한 교환제도로 운영해 각 캠퍼스를 돌아다니며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 만약 한국대학서열체제의 정점인 서울대를 이 네트워크에 포함시킬 수 있다면, 사실상 서울대 정원이 대폭 늘어나는 셈이고 그 인프라 역시 다른 국공립대와 공유하는 것이니 입시경쟁은 상당히 완화될 수 있다.
사립대학의 경우 정부책임형 사립대(혹은 국가책임형 사립대) 방안이 있다. 소수 명문 사학들을 제외한 한국의 다수 사학재단들은 국가가 지원하는 예산과 등록금만으로 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사학재단이 내는 운영비용은 매우 미미한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지점을 파고들어 국가 예산이 학교 운영비용의 50%가 넘는 대학들의 이사회에 공공이사가 50% 이상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동시에 이러한 사학대학들이 많아질 수 있도록 예산을 과감히 확장하고 투여해야 한다.1) 그 다음 정부책임형 사립대학들 간의 권역별 네트워크를 구축해서 국공립대학 네트워크와 동일한 방식으로 운영하면 된다.
1) 대학교육연구소의 <정부책임형 사립대학 도입 방안>(연덕원·임은희, 2019)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사립대학 수입총액은 약 30조. 정부가 사립대학 재정의 50%를 지원하려면 약 15조원이 필요. 이 중 2017년 기준 국고보조금이 이미 7조 242억 원이 투입. 따라서 정부책임형 사립학교로의 전환에는 7조 9,851억 원이 필요.
대학 네트워크론은 지금처럼 각 개별대학들이 서로 생존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팀을 만들어냄으로서 새로운 경쟁체계를 구축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자력으로 생존이 가능한 몇몇 명문대학들은 이 네트워크에 들어오지 않으려 하겠지만, 새로운 경쟁체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등록금 완화 혹은 교육의 질 상향 등을 모색할 수밖에 없을 테니 현재보단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소멸 위기 대학을 통폐합하는 효과를 냄으로서 대학 붕괴 시나리오를 막아내는 측면도 있다. 적어도 망한 대학이 양산되고 빈 건물이 난무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진 않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대학까지 의무교육화를 시도해볼 수도 있다. 현재 중등교육까지 의무교육인 현실을 고등교육 의무교육화로 끌어 올리자는 것이다. 한국의 고등교육 이수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2) 한 때는 대학진학율이 80%까지 올라갔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다수의 시민들이 양질의 고등교육을 제공받을 수 있다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지금의 대학진학에 대한 교육열을 진정시키는 방안으로서, 모두를 대학에 진학시키는 접근방식을 제안하는 것이다. 대학이 의무교육 과정에 포함되면 국가재정을 더 투입하는 것이 당연하고, 교육전문가들의 숙원인 고등교육재정교부금3) 도입과 같은 주장들의 실현가능성도 높아진다. 등록금도 자연스럽게 무상화되면서, 실질적인 무상교육 시대에 진입할 것이다.4)
2) 한국의 만25-64세 기준 학사학위 소지자 비율은 32%에 달한다. 이보다 더 높은 나라는 아일랜드(35%) 정도 밖에 없다.
3) 한국의 고등교육 공공부문 투자 규모는 GDP 대비 0.7% 수준으로 OECD 주요국 평균인 1.1%에 크게 못 미치고 이마저도 국가장학금을 제외하면 약 0.4% 수준에 불과하다.
4) 2021년 전국 대학등록금 총액은 10조 9천억 원이고 2020년 정부 장학금 지원은 약 3조8,244억 원이다. 이에 매년 약 7조 원 가량을 추가 예산으로 편성하면 무상등록금이 가능하다.
사교육, 잡지 말고 국가가 책임지자
이번엔 사교육을 보자. 대학 개혁을 시작한다고 해도 지금 당장 입시제도 자체를 폐지할 수는 없다. 그러한 방식은 사회적으로 혼란만 일으킬 뿐이다. 일단 전체 학생들의 80% 가까이가 참여하고 있는 사교육을 하루아침에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학생과 학부모만의 문제도 아니다. 사교육을 없애자는 주장은 사교육 시장에서 일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을 해고하자는 말과 다름없기도 하다. “사교육 없어도 되는 사회”라는 이상이 허황되게 느껴지는 이유다. 그러한 이상에 도달하기 위한 과도기적 측면에서라도, 사교육에 대한 현실성 있고 실질적 대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방식은 사교육의 순기능은 살리고 역기능은 완화하는 것이다.
먼저 사교육의 순기능은 돌봄이다. 한국 사교육 시장의 비약적인 성장은 국가가 자녀 돌봄을 방치하는 동안 민간에서 자력으로 돌봄 시장을 형성한 것이라 봐야 한다. 부모 입장에선 자녀 돌봄 기능을 대신 수행할 기관으로 사교육을 선택한 것이고, 자녀 입장에서도 또래집단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꼭 입시가 아니더라도 사교육에 대한 요구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역기능은 비용이다. 사교육 비용을 온전히 각 개인들이 부담하다보니 자녀양육비의 1/3을 사교육에 써야 하는 것이다.
대안의 방향은 간단하다. 사교육의 돌봄 기능은 살리고 비용은 줄이면 된다. 이를 위한 사교육 준공영제라는 아이디어가 있다. 준공영제란 정부가 사교육 서비스 가격을 통제하는 대신, 보조금을 지원하는 시스템이다. 수도권 시내버스가 이런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지자체가 버스 요금을 정하는 대신 운영에 필요한 비용의 상당 부분을 보조한다. 학원비도 이런 방식으로 통제하고 지원하자는 것이다.5)
5) 현행 학원법 안에서도 교육청이 교습비 기준을 정하고 조정을 명령할 수 있다. 그러나 제대로 운영하고 있다고 평가하긴 어렵다.
각 학원마다 또 수업마다 질적 차이가 있는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냐는 반문에는, 병원 시스템을 예시로 들 수 있다. 병원도 질환과 서비스마다 질적 차이가 있지만, 의료수가 제도로 평균적인 비용을 정부가 통제하면서 환자 본인부담금을 최소화시키고 있다. 학원이라고 이렇게 운영 못할 이유는 없다.
물론 사교육 준공영제로 자녀 돌봄을 학원에 100% 위임하자는 것은 아니다. 국가와 사회의 자녀 돌봄 기능은 확대되고 더 강화되어야 한다. 다만 돌봄을 가지고 국가와 사교육이 경쟁하는 소모적인 갈등도 줄이는 측면과 자녀 돌봄의 국가책임성을 높이는 중간 단계에서 사교육 문제를 부분적으로 해소하자는 것이다.
초고령 사회와 평생교육시대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대학 정원 수 조정은 필수다. 단순 계산을 해보면 2050년경까지 약 20만 명 규모의 대학 정원을 줄여야 한다. 이를 완화하는 방법으로 수험생이 아닌 대학생을 모집함으로서 정원 공백의 일부를 충원하는 방식이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아이디어는 평생교육시대라는 조건과 함께 실현가능성이 더 높아지고 있다.
‘100세 시대’에선 퇴직 이후에도 약 30년의 시간을 살아가야 한다. 그 30년을 지금처럼 자영업으로 안내하는 사회는 암울하다. 일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 고령인구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여전히 자기계발과 성장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노인들을 위한 가이드라인도 필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평생교육시대라는 전망은 적절할 수 있다.
평생교육시대에는 그에 맞는 교육 시스템이 필요하다. 각 지자체마다 운영하는 소규모 프로그램들도 더 확대되고 체계화되어야겠지만, 대학이 그 일부를 담당할 수도 있다. 본래 유럽에서 처음 대학이 만들어지고 성장한 배경이 지역과 대학의 연결이었다. 당시 지역 상권과 문화의 중심지로서 대학이 기능했던 것처럼, 인구감소시대의 대학 정원 공백을 지역 주민들을 위한 교육으로 채워내자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대학에서 지역주민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제공하자는 것이 아니다. 비수험생으로 분류되는 지역 주민과 고령인구를 대상으로 실제 학위를 수여할 수 있는 수업과 체계를 운영하자는 것이다. 대학을 꼭 19살 수험생만 다니라는 법은 없지 않나.
이미 이와 유사한 발상으로 여러 정책들이 추진되고 있기는 하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촉발점이자 이화여대 시위의 계기였던 미래라이프 대학 사업도 취지 자체는 평생교육시대에서 대학의 역할에 대한 변화 요구였다. 하지만 실상은 대학의 재정수입을 위한 시장 확대 전략으로서 목적이 더 강했고, 그마저도 각종 비리 범죄와 연루되면서 그 취지가 묻혔다. 평생교육시대의 대학 교육을 더 폭넓게 제공하자는 취지가 사립대학의 학위 팔이로 오인되어선 안 된다. 이를 위해선 대학교육 무상화와 평생교육시대 설계가 적절히 연계되어야 할 것이다.
해외 사례로는 버락 오마바 대통령의 미국판 무상교육을 실현하기 위한 정책인 ‘커뮤니티 대학’이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재임시절 주립 2년제 대학 등록금을 전액 무상화하는 정책을 제시했다. 테네시 주의 2년제 커뮤니티 칼리지가 대표적인데, 테네시 주민의 55%가 2년제 대학 이상의 학위나 수료증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무상교육의 문을 고등학교 졸업생에서 전 성인으로 넓혔다. 비록 2년제 대학만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고 그 과정도 예산에 대한 포퓰리즘 논쟁으로 휩싸였지만, 양질의 고등교육을 시민들에게 무상으로 공유하고 이를 통해 시민들의 성장과 더 다양한 진로계획을 돕는다는 취지를 부정할 순 없다. 커뮤니티 대학을 통해 시민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교육을 제공받기도, 생애주기로는 늦었지만 4년제 대학으로 진입하기 위한 과정으로 삼기도 한다.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모든 초점이 대학으로 정점화되어 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초중고교가 향하는 시점이 대학서열로 맞추어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대학 체계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중등교육과 유아교육의 변화도 도모하기 어렵다. 혁신학교-시민교육과 같은 좋은 취지의 사업들이 난항에 부딪히는 이유의 핵심도 결국 입시경쟁에 있다. 입시경쟁과 대학 서열체계를 온전히 제거하진 못하더라도, 완화하면서 단계적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 일단 숨통이 트여야 그 다음을 준비할 수 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유보통합 등의 대안보다 대학을 중점으로 저출생-초고령 사회의 대안을 다룬 것은 이 때문이다. 대학을 바꾸어야 교육이 변화할 수 있고, 교육개혁은 인구감소시대의 사회위기를 대비하는 주춧돌이다.
6장 인구감소를 더 나은 교육을 위한 도약의 발판으로 ②
대학 붕괴 시나리오, 세컨드임펙트는 2050년
대학이 '벚꽃 피는 대로 망한다'는 예언은 이미 현실이다. 16년 전만에도 60만 수험생이라고 불리던 학령인구가 40만 명 선이 무너졌다. 2024년도 대입 선발 인원은 51만 명 선인데, 11만 명이나 부족하다. 2023년 정시에서 지방 소재 113개 대학 중 59곳은 경쟁률 3:1 이하인 '사실상 미달' 상태였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지방대학은 소멸되고 대학은 서울에서나 볼 수 있는 수도권패권주의의 상징이 될 것이다.
2023년이 '퍼스트임펙트'라면, ‘세컨드임펙트’는 2050년이다. 지금보다 학령인구가 20만 명이나 더 줄어들 예정이다. 그 사이 우리 사회가 대학구조개혁을 완료하지 못한다면 혼란은 피할 수 없다. 상식적으로 인구가 1000만 명이 줄어드는데, 대학 숫자가 그대로일 필요는 없다. 인구감소시대에 대학구조개혁은 필수 준비 과제다.
물론 어떤 방향으로의 대학구조개혁이냐가 중요하다.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는 대학구조개혁이 아니라, 교육공공성을 높여나가는 사회적 대학구조개혁이 필요하다. 방치와 방임이 대안의 전부라면 지방대학만 줄줄이 없어질 것이 뻔하다. 수도권 대학은 귀족들의 전유물이 될 것이다.
결론은 수도권 대학부터 정원감축과 통폐합을 진행하는 것이다. 개별 대학들의 생존하고자 하는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면, 모두를 만족시키는 대안은 불가능하다. 국가는 몇몇 명문대와 사학재단의 이해관계를 과감히 떨쳐내야 한다. 전체 고등교육 전반의 개혁을 위해선 양보와 희생이 필요하고, 지금까지 혜택을 누려왔던 수도권 상위권 대학들이 이제는 희생해야 할 때다. 그들이 한국 교육 개혁의 주춧돌과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구체적 방법이 한국사회에 제출된 지는 꽤 오래되었다. 매 선거 때마다 대학공공성 확보를 위한 사회적 대학구조개혁의 방향을 각 정당들은 공약으로 제출한다. ‘국공립대 네트워크’, ‘정부책임형 사립대학’, ‘서울대 10개 만들기’ 등 표현은 다르지만 사실상 유사한 구상을 변형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인구감소와 함께 대학 붕괴 시나리오가 진행 중인 현 시점에서, 이제는 그 구상들을 말이 아닌 실천으로 옮겨야 할 때다.
과거에는 서울대 폐지론과 대학평준화 주장이 강세였지만, 최근 교육담론의 중심은 대학 서열체제 완화로 옮겨왔다. 대학 서열 자체를 완전히 없앨 순 없지만 완화하는 방향으로 유인하고, 그 과정에서 국가의 교육책임성과 대학공공성을 높여나가자는 방향성이다.
대표적인 아이디어는 국공립대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다. 전국의 국공립대학교가 공동으로 운영체제를 만들고 수업 및 학점을 교류하며 하나의 대학으로 기능하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신입생도 공동으로 선발하고 졸업 학위도 국공립대학 학위로 동일하게 수여한다. 교수 또한 교환제도로 운영해 각 캠퍼스를 돌아다니며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 만약 한국대학서열체제의 정점인 서울대를 이 네트워크에 포함시킬 수 있다면, 사실상 서울대 정원이 대폭 늘어나는 셈이고 그 인프라 역시 다른 국공립대와 공유하는 것이니 입시경쟁은 상당히 완화될 수 있다.
사립대학의 경우 정부책임형 사립대(혹은 국가책임형 사립대) 방안이 있다. 소수 명문 사학들을 제외한 한국의 다수 사학재단들은 국가가 지원하는 예산과 등록금만으로 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사학재단이 내는 운영비용은 매우 미미한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지점을 파고들어 국가 예산이 학교 운영비용의 50%가 넘는 대학들의 이사회에 공공이사가 50% 이상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동시에 이러한 사학대학들이 많아질 수 있도록 예산을 과감히 확장하고 투여해야 한다.1) 그 다음 정부책임형 사립대학들 간의 권역별 네트워크를 구축해서 국공립대학 네트워크와 동일한 방식으로 운영하면 된다.
1) 대학교육연구소의 <정부책임형 사립대학 도입 방안>(연덕원·임은희, 2019)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사립대학 수입총액은 약 30조. 정부가 사립대학 재정의 50%를 지원하려면 약 15조원이 필요. 이 중 2017년 기준 국고보조금이 이미 7조 242억 원이 투입. 따라서 정부책임형 사립학교로의 전환에는 7조 9,851억 원이 필요.
대학 네트워크론은 지금처럼 각 개별대학들이 서로 생존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팀을 만들어냄으로서 새로운 경쟁체계를 구축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자력으로 생존이 가능한 몇몇 명문대학들은 이 네트워크에 들어오지 않으려 하겠지만, 새로운 경쟁체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등록금 완화 혹은 교육의 질 상향 등을 모색할 수밖에 없을 테니 현재보단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소멸 위기 대학을 통폐합하는 효과를 냄으로서 대학 붕괴 시나리오를 막아내는 측면도 있다. 적어도 망한 대학이 양산되고 빈 건물이 난무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진 않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대학까지 의무교육화를 시도해볼 수도 있다. 현재 중등교육까지 의무교육인 현실을 고등교육 의무교육화로 끌어 올리자는 것이다. 한국의 고등교육 이수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2) 한 때는 대학진학율이 80%까지 올라갔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다수의 시민들이 양질의 고등교육을 제공받을 수 있다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지금의 대학진학에 대한 교육열을 진정시키는 방안으로서, 모두를 대학에 진학시키는 접근방식을 제안하는 것이다. 대학이 의무교육 과정에 포함되면 국가재정을 더 투입하는 것이 당연하고, 교육전문가들의 숙원인 고등교육재정교부금3) 도입과 같은 주장들의 실현가능성도 높아진다. 등록금도 자연스럽게 무상화되면서, 실질적인 무상교육 시대에 진입할 것이다.4)
2) 한국의 만25-64세 기준 학사학위 소지자 비율은 32%에 달한다. 이보다 더 높은 나라는 아일랜드(35%) 정도 밖에 없다.
3) 한국의 고등교육 공공부문 투자 규모는 GDP 대비 0.7% 수준으로 OECD 주요국 평균인 1.1%에 크게 못 미치고 이마저도 국가장학금을 제외하면 약 0.4% 수준에 불과하다.
4) 2021년 전국 대학등록금 총액은 10조 9천억 원이고 2020년 정부 장학금 지원은 약 3조8,244억 원이다. 이에 매년 약 7조 원 가량을 추가 예산으로 편성하면 무상등록금이 가능하다.
사교육, 잡지 말고 국가가 책임지자
이번엔 사교육을 보자. 대학 개혁을 시작한다고 해도 지금 당장 입시제도 자체를 폐지할 수는 없다. 그러한 방식은 사회적으로 혼란만 일으킬 뿐이다. 일단 전체 학생들의 80% 가까이가 참여하고 있는 사교육을 하루아침에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학생과 학부모만의 문제도 아니다. 사교육을 없애자는 주장은 사교육 시장에서 일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을 해고하자는 말과 다름없기도 하다. “사교육 없어도 되는 사회”라는 이상이 허황되게 느껴지는 이유다. 그러한 이상에 도달하기 위한 과도기적 측면에서라도, 사교육에 대한 현실성 있고 실질적 대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방식은 사교육의 순기능은 살리고 역기능은 완화하는 것이다.
먼저 사교육의 순기능은 돌봄이다. 한국 사교육 시장의 비약적인 성장은 국가가 자녀 돌봄을 방치하는 동안 민간에서 자력으로 돌봄 시장을 형성한 것이라 봐야 한다. 부모 입장에선 자녀 돌봄 기능을 대신 수행할 기관으로 사교육을 선택한 것이고, 자녀 입장에서도 또래집단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꼭 입시가 아니더라도 사교육에 대한 요구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역기능은 비용이다. 사교육 비용을 온전히 각 개인들이 부담하다보니 자녀양육비의 1/3을 사교육에 써야 하는 것이다.
대안의 방향은 간단하다. 사교육의 돌봄 기능은 살리고 비용은 줄이면 된다. 이를 위한 사교육 준공영제라는 아이디어가 있다. 준공영제란 정부가 사교육 서비스 가격을 통제하는 대신, 보조금을 지원하는 시스템이다. 수도권 시내버스가 이런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지자체가 버스 요금을 정하는 대신 운영에 필요한 비용의 상당 부분을 보조한다. 학원비도 이런 방식으로 통제하고 지원하자는 것이다.5)
5) 현행 학원법 안에서도 교육청이 교습비 기준을 정하고 조정을 명령할 수 있다. 그러나 제대로 운영하고 있다고 평가하긴 어렵다.
각 학원마다 또 수업마다 질적 차이가 있는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냐는 반문에는, 병원 시스템을 예시로 들 수 있다. 병원도 질환과 서비스마다 질적 차이가 있지만, 의료수가 제도로 평균적인 비용을 정부가 통제하면서 환자 본인부담금을 최소화시키고 있다. 학원이라고 이렇게 운영 못할 이유는 없다.
물론 사교육 준공영제로 자녀 돌봄을 학원에 100% 위임하자는 것은 아니다. 국가와 사회의 자녀 돌봄 기능은 확대되고 더 강화되어야 한다. 다만 돌봄을 가지고 국가와 사교육이 경쟁하는 소모적인 갈등도 줄이는 측면과 자녀 돌봄의 국가책임성을 높이는 중간 단계에서 사교육 문제를 부분적으로 해소하자는 것이다.
초고령 사회와 평생교육시대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대학 정원 수 조정은 필수다. 단순 계산을 해보면 2050년경까지 약 20만 명 규모의 대학 정원을 줄여야 한다. 이를 완화하는 방법으로 수험생이 아닌 대학생을 모집함으로서 정원 공백의 일부를 충원하는 방식이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아이디어는 평생교육시대라는 조건과 함께 실현가능성이 더 높아지고 있다.
‘100세 시대’에선 퇴직 이후에도 약 30년의 시간을 살아가야 한다. 그 30년을 지금처럼 자영업으로 안내하는 사회는 암울하다. 일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 고령인구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여전히 자기계발과 성장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노인들을 위한 가이드라인도 필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평생교육시대라는 전망은 적절할 수 있다.
평생교육시대에는 그에 맞는 교육 시스템이 필요하다. 각 지자체마다 운영하는 소규모 프로그램들도 더 확대되고 체계화되어야겠지만, 대학이 그 일부를 담당할 수도 있다. 본래 유럽에서 처음 대학이 만들어지고 성장한 배경이 지역과 대학의 연결이었다. 당시 지역 상권과 문화의 중심지로서 대학이 기능했던 것처럼, 인구감소시대의 대학 정원 공백을 지역 주민들을 위한 교육으로 채워내자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대학에서 지역주민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제공하자는 것이 아니다. 비수험생으로 분류되는 지역 주민과 고령인구를 대상으로 실제 학위를 수여할 수 있는 수업과 체계를 운영하자는 것이다. 대학을 꼭 19살 수험생만 다니라는 법은 없지 않나.
이미 이와 유사한 발상으로 여러 정책들이 추진되고 있기는 하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촉발점이자 이화여대 시위의 계기였던 미래라이프 대학 사업도 취지 자체는 평생교육시대에서 대학의 역할에 대한 변화 요구였다. 하지만 실상은 대학의 재정수입을 위한 시장 확대 전략으로서 목적이 더 강했고, 그마저도 각종 비리 범죄와 연루되면서 그 취지가 묻혔다. 평생교육시대의 대학 교육을 더 폭넓게 제공하자는 취지가 사립대학의 학위 팔이로 오인되어선 안 된다. 이를 위해선 대학교육 무상화와 평생교육시대 설계가 적절히 연계되어야 할 것이다.
해외 사례로는 버락 오마바 대통령의 미국판 무상교육을 실현하기 위한 정책인 ‘커뮤니티 대학’이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재임시절 주립 2년제 대학 등록금을 전액 무상화하는 정책을 제시했다. 테네시 주의 2년제 커뮤니티 칼리지가 대표적인데, 테네시 주민의 55%가 2년제 대학 이상의 학위나 수료증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무상교육의 문을 고등학교 졸업생에서 전 성인으로 넓혔다. 비록 2년제 대학만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고 그 과정도 예산에 대한 포퓰리즘 논쟁으로 휩싸였지만, 양질의 고등교육을 시민들에게 무상으로 공유하고 이를 통해 시민들의 성장과 더 다양한 진로계획을 돕는다는 취지를 부정할 순 없다. 커뮤니티 대학을 통해 시민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교육을 제공받기도, 생애주기로는 늦었지만 4년제 대학으로 진입하기 위한 과정으로 삼기도 한다.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모든 초점이 대학으로 정점화되어 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초중고교가 향하는 시점이 대학서열로 맞추어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대학 체계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중등교육과 유아교육의 변화도 도모하기 어렵다. 혁신학교-시민교육과 같은 좋은 취지의 사업들이 난항에 부딪히는 이유의 핵심도 결국 입시경쟁에 있다. 입시경쟁과 대학 서열체계를 온전히 제거하진 못하더라도, 완화하면서 단계적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 일단 숨통이 트여야 그 다음을 준비할 수 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유보통합 등의 대안보다 대학을 중점으로 저출생-초고령 사회의 대안을 다룬 것은 이 때문이다. 대학을 바꾸어야 교육이 변화할 수 있고, 교육개혁은 인구감소시대의 사회위기를 대비하는 주춧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