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저출생-초고령 사회의 노후보장 : 연금②

공식 관리자
2025-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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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저출생-초고령 사회의 노후보장 : 연금② 

국민연금, 정말 기금 고갈만이 문제인가


국민연금의 가장 큰 문제는 기금고갈이 아니다. 기금 고갈이 아니어도, 어쩌면 국민연금은 성공한 제도가 아닐 수 있다. 왜냐하면 국민연금의 가장 큰 장점이자 취지인, ‘사회연대’라는 원리의 설득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많은 시민들은 국민연금을 ‘사회연대’로 인식하지 않는다. 오히려 ‘투자’이자 ‘제테크’의 일환으로 이해하고 있다. 실제로 오랜 기간 동안 많이 낼수록 나중에 더 많이 받는 기본 시스템은 ‘노후 준비 제테크’로서 활용할 여지가 충분하기도 하다.


국민연금 납부를 위한 가장 빠른 설명은 “지금 매월 월급의 4.5%만 내면(나머지 4.5%는 기업이), 만 65세 이후에는 월마다 40%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덜 내고 더 받는 시스템이라는 유인에 사회연대 정신은 없다. 이미 다수의 시민들은 국민연금을 자신의 노후를 위한 투자처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연기금을 사회적 재원으로 활용하자는 주장에 반발하거나 투자실패에 그렇게까지 분노할 이유가 없다. 내 돈 모아서 허투루 쓰지 말라는 것이다. 연기금은 우리 사회 노인들의 복지를 위해 함께 마련한 재원이 아니다. 전 국민이 자신의 노후를 보장받기 위해 모아둔 이율 높은 상품일 뿐이다.


국민연금의 작동 원리•취지와 무관하게 납부와 수령 과정에서 국가와 사회의 역할은 시야에서 사라진다. 사람들은 자신이 낸 돈으로 자신의 노후를 부양한다고 생각하지, 국가와 사회의 보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노인들의 삶을 함께 책임진다는 연대의식보다, 다른 세대보다 덜 내고 더 받고 싶다는 욕망과 공정성의 논리가 더 강하게 작동하는 것이다.


소득재분배가 취지가 의도대로 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국민연금의 소득재분배 효과는 납부기간과 금액에 따른 결과적 수령액의 격차를 넘지 못한다. 대기업 정규직으로 취업해 40년 동안 매월 4.5%를 꼬박꼬박 납부한 사람과 국민연금 납부기간도 금액도 그에 비해 더 적은 비정규직의 국민연금 수령액은 천지 차이다.


국민연금 제도는 40년 동안 매월 4.5%의 소득을 안정적으로 납부할 수 있는 노동자가 아니면 불리한 제도다. 1차 노동시장으로 분류하는 대기업 정규직이나 전문직이 아니면 노후보장을 제대로 받기 어렵다. 단순히 소득대체율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한국 노동자 평균 근속연수가 5.9년이다. 평생직장 개념이 무너진 현대 사회에서 40년 동안 안정적으로 국민연금을 낼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이런 현실에서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만 높이자는 주장은 지금의 1차 노동시장이라는 성역을 더 공고히 하는 말과 다름없다.


이런 상황에서 소득대체율만 높이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대기업-공공부문 정규직들이 받는 연금수령액만 늘어나고, 납부기간이 짧고 적은 금액을 납부할 수밖에 없는 비정규직-영세자영업자-플랫폼노동자 등이 받는 연금수령액과 격차만 더 커질 것이다. 결과만 놓고 보면 국민연금 제도는 오히려 역진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은 국민연금 사각지대 해소와 다층적 연금체계가 있다. 국민연금 체제에 들어오지 못한 많은 사람들을 편입시키기 위한 각종 크레딧과 같은 대책, 기초연금과 퇴직연금 확대 및 강화 등으로 다층 체계를 설계해서 국민연금으로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계층을 다른 연금을 통해 보호하는 방법론이다. 이러한 대안들 역시 국민연금을 노후보장시스템의 중심에 놓고 있다는 점에서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국민연금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저출생 현상이 해소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국민연금이 ‘좋은 제도’가 되기 위해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플랫폼 노동과 영세 자영업자의 노동자성 인정, 납부기간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세수 투입, 소득격차 해소 등 여러 사회적 문제 해결이 동반되어야 한다. 하지만 완성된 모습의 이상사회를 설정하고 그 이상사회가 만들어진다면 국민연금이 좋은 제도가 될 것이라는 주장은 주객전도다. 현 시점 국민연금이 불평등한 제도인데 이걸 고치지 않고, 국민연금이 좋은 제도가 되기 위해선 평등한 세상을 만들면 된다니, 참 이상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국민연금이라는 좋은 제도를 지속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 저출생 현상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저출생-초고령 사회에 맞는 다른 노후보장시스템을 설계해야 한다.


국민연금이 아니라 다른 대안을 상상해야


국민연금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방식이 꼭 다수를 포괄하지 못하는 국민연금 제도에 다수를 편입시키는 방향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포괄하지 못하는 다수를 전제로 한 새로운 노후보장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국민연금의 기획의도는 ‘사회연대’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현 시점 연금개혁의 관심사는 사회연대가 아니라, 납부자들이 덜 내고 더 받는 시스템의 안정적인 지속가능성이다. ‘사회연대’는 없고 ‘투자안정성’만 남았다. 여기서 사라진 사회와 국가의 역할을 복원하자는 주장을 하고 싶다. 어차피 연기금 고갈에 세금으로 대응할 거라면, 깔끔하게 노후보장에 대한 목적세 시스템으로 전환해서 가난한 노인들을 대상으로 소득보장시스템을 설계하자는 것이다.


방법론은 다양할 수 있다. 기초연금을 강화해 하위 소득 고령인구를 대상으로 한 튼튼한 복지제도를 만들 수도 있다. 노인 기본소득을 제안할 수도 있다. 핵심은 노후보장 책임을 국가의 역할로 더 직접적이고 분명하게 재규정하자는 것이다.


연기금 고갈 시점인 2055년을 가정해보자. 현재 국민연금 납부 재원을 일종의 목적세로 걷을 수 있고, 노후보장시스템의 중심을 기초연금(현재 지급대상인 하위 70% 유지)으로 일원화한다는 상상이다. 2055년 전체 인구는 약 4400만 명이다. 이 중 생산연령인구 50.8%를 2200만 명이라 하자. 이들이 100% 경제활동참여를 한다고 가정하면, 2024년 5월 기준 국민연금 납부자인 2230만 명과 그 규모가 비슷하다. 현재 이들이 1년에 국민연금으로 납부하는 금액은 약 46조 원이다. 여기까지 보면 1년에 기초연금 재원으로 마련할 수 있는 금액은 46조 원이다. 문제는 고령인구 숫자인데, 2024년 5월 기준 연금수령자가 648만 명인데 비해 2055년 연금수령자는 전체 인구의 41%로 약 1,760만 명가량이다. 이 중 하위 70%인 1,232만 명에게 기초연금을 1/n 지급한다면 얼마씩 수령할 수 있을까? 계산 결과 약 373만 원이다. 현재 노후보장시스템 안에서 국민연금 평균 수령액인 55만 원과 기초연금 30만 원을 더한 85만 원보다 300만 원 가까이 더 받을 수 있다! 물론 완전고용사회라고 해서 100%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고, 실제 제도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국민연금 보험료 9%보다 더 타협적인 비율로 목적세를 설계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러한 상상이 현실이 된다면, 적어도 하위 70% 노인들은 지금보다 더 안정된 삶을 보장받을 수 있다.1)

1)<국민연금 가치선언(제갈현숙, 주은선, 이은주)>에서 언급한 2024년 5월 기준 국민연금 납부자와 수령자 자료를 활용했다.


기초연금 강화에 대한 흔한 반발 논리는 기초연금이 강화되면 누가 국민연금을 내겠냐는 것인데, 노후보장제도 간의 경쟁에서 국민연금이 기초연금을 이기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국민연금주의’에서 벗어나면, 국민연금이 아니어도 더 나은 노후보장시스템은 충분히 가능하다.


국민연금을 만들 때의 사회적 합의도 쉽지 않았는데, 그것이 되겠냐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차피 저출생-초고령 사회에 국민연금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우리는 저출생-초고령 사회를 기준으로 사회 제도 전반을 재합의해야하는 시점에 놓여 있다는 점을 냉정하게 인식하자. 그렇다면 더 나은 방향으로의 연금개혁을 만들고 해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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