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저출생-초고령 사회의 노후보장 : 연금①

공식 관리자
2025-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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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저출생-초고령 사회의 노후보장 : 연금① 



2024년 한국의 중위연령은 46.1세다. 45세면 어린 축에 속한다는 이야기다. 2056년에는 중위연령이 60.2세로 60세를 넘어선다. 예측대로라면 1995년생 출생아들은 노년이 되어도 중위연령을 넘을 수 없는 세대다. 아마 기대수명에 가까워 생을 마감하기 직전이라면 중위연령을 넘어설지도 모르겠다.


저출생-초고령 사회의 모습은 노인이 절반인 나라다. 좋든 싫든 지금보다 고령 인구의 삶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책임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고령인구의 노동과 사회참여, 문화생활 등 영역을 넓혀나가는 것과 그들의 생계를 부양하기 위한 노후복지시스템을 준비해야 한다.


현재 한국 노후보장시스템의 중심은 국민연금에 있다. 그런데 저출생-초고령 사회라는 전망과 함께 국민연금 기금은 고갈될 위기에 놓여있다. 기금 고갈에 대한 공포로 연금개혁은 언제나 정치의 화두이고, 그 방법론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국민연금 지속가능성에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지 또 그것이 옳은 방법론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자 한다. 국민연금은 경제성장과 안정된 인구 연령구조를 전제로 만든 시스템이다. 그 공식이 깨진 저출생-초고령 사회에는 그에 맞는 노후보장시스템을 새롭게 구상해야 한다.



“왜 부자들을 돕는 것은 "투자"라고 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은 "비용"이라고만 말하는가” 


브라질 대통령 룰라의 유명한 연설이다. 이를 저출생-초고령 사회에 맞게 인용해보면 이렇다.


“왜 청년을 지원하는 것은 ”투자“라 하고, 노인을 돕는 것은 ”비용“이라고만 말하는가”


우리 사회는 노인 부양을 책임이자 권리라고 말하지만, 어쩔 땐 비용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더 강하기도 하다. 그래서 노인 문제는 대부분 노인 부양을 위한 비용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노인들을 부양하는 비용은 그들이 청년세대일 때 기여한 사회적•경제적 활동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책임감의 발로이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앞으로 노인들이 사회에 기여하는 측면은 적을 것이기 때문에 내심 아깝기도 하다는 심정이다. 그래서 노후보장제도 논의에선 그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 동반되곤 한다.


때로는 선거 시기 고령 세대의 강력한 요구로 기초연금 확대 등이 논의되고 정치인들이 이를 수용하면, 노인 포퓰리즘이라 비판하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우선순위 논의가 아님에도 표를 얻기 위해 노인들을 선동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인들을 위한 정치와 정책은 비단 노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현 시점 노인들을 어떻게 대우하는지는 모든 사회구성원이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그 사회구성원 대다수는 언젠가 노인이 될 사람들이다. 자신이 노인이 되었을 때 사회가 어떻게 책임지고 부양하는지를 상상하며, 우리는 현실의 삶을 살아간다.


따라서 저출생-초고령 사회에서 노인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관점은, 저출생 세대가 고령인구를 어떻게 부양하는지가 아니라, 저출생 세대에게 어떤 국가와 사회를 경험하게 할 것인가가 중점이어야 한다. 노인 부양비용은 곧 저출생 세대의 사회 신뢰 회복 비용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중요한 것은 ‘비용’이 아니라, ‘관점’이다.



저출생 시대와 국민연금


국회 예산정책처는 연기금(국민연금 기금)이 2039년을 흑자에서 적자로 전환되고, 2055년엔 기금이 고갈된다고 한다. 1990년생이 만 65세가 되어 연금을 수령하는 시점이다. 기금 고갈의 주요 원인은 저출생이다. 2024년 5월말 기준으로 국민연금이 약 1113조원의 기금을 운용하고 있다는데 이렇게 큰 재원이 30년 만에 바닥난다니 그 충격이 놀랄 만하다. 매번 재정계산을 할 때마다 기금 고갈 시점이 앞당겨지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더 빠르게 소진될 가능성도 없진 않다.1)

1) 2013년 3차 재정계산에서 2060년으로 예측한 기금 고갈 시점은, 2018년 4차에선 2057년, 2023년 5차에선 2055년으로 앞당겨졌다.



국민연금은 의무 보험이다. 노동자라면 매월 4.5%를 꼬박꼬박 의무적으로 납부해야 한다. 나머지 4.5%는 기업에서 납부하는데, 이렇게 9%를 매달 40년 동안 적립하도록 만드는 것이 국민연금 재원 마련의 원리다. 그리고 만 65세에 연금수령 시점이 오면, 소득대체율 40%의 수령액을 매달 받을 수 있다.2) 4.5%씩 내던 돈이 10배 가까이 늘어나 40%를 받을 수 있다니 안 낼 이유가 없다. 이런 연금이 고갈되고 파산해서 여태까지 냈던 돈을 못 받을 수 있다는 공포는 압도적일 수밖에 없다. 연금개혁이 매번 이슈가 되는 이유는 기금이 고갈돼서 “나라가 내 돈을 떼먹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구심과 위기감에 있다.

2) 소득대체율은 2024년 42%이고 해마다 0.5%씩 낮아져 2028년부터 40%로 고정


연기금 고갈이 예측되는 이유의 핵심은 저출생-초고령 사회에 있다. 연금을 받아야할 고령인구는 늘어나는데, 연금 재원을 내야할 청년세대 인구는 줄어든다. 여기에 더해 국민연금은 애초에 ‘덜 내고 더 받는’ 시스템이다. 덜 내는 사람은 적어지고, 더 받는 사람들이 많아지는데 기금 고갈이 안 되는 것이 이상하다.


여기서 국민연금 설계자들의 구상을 이해해보자. 국민연금을 처음 만들 때 ‘덜 내고 더 받는’ 시스템이 어떻게 지속가능할 것이라 예상하고 설계했냐는 것이다. 더하기 빼기만 할 줄 알아도 덜 내고 더 받는 것은 지속불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 설계자들은 이것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방법을 인구 구조에서 찾아냈다.


대강 통 크게 단순화해보자. 평생 100만원 월급을 받는 노동자가 있다. 이 노동자는 매월 9만원씩 내면 노후에 40만원을 받을 수 있다. 9만원은 어떻게 4배로 불어날 수 있을까. 먼저 국민연금 납부기간은 최장 40년이다. 그런데 기대수명이 만 85세라고 치자. 만 65세부터 만 85세까지 수령하니 돈을 내는 기간보다 받는 기간이 2배 더 적다. 일단 이렇게 2배를 줄인다. 그리고 현 시점에도 노년부양비가 4.6명 수준이니, 아무리 저출생이 심각해져도 노년부양비 2.0명 수준까지는 맞출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 납부자가 수령자보다 2배 많으니 총 연금 납부액은 지급액보다 2배 많다. 보험료율 9%-소득대체율 40%는 납부자가 2배 많고, 납부기간이 수령기간보다 2배 많다는 인구 연령구조에 의존하는 시스템인 것이다. 만약 불확실한 위험요소가 조금 있더라도, 경제성장으로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계산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합계출산율 1.0명 미만이 지속되면서 노년부양비가 1:1로 귀결되는 동시에 기대수명은 점점 더 늘어나는 미래를 마주하게 됐다.3) 경제 또한 당분간 저성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전망이다. 인구위기로 인해 국민연금 초기 구상에 빨간 불이 들어온 것이다.

3) <연금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전혜원, 오건호)>에 의하면 노년부양비 전망은 2020년 4.6명, 2030년 3.6명, 2040년 2.6명, 2050년 1.7명, 2060년 1.3명, 2070년 1.0명이다.


국민연금 취지 자체는 나쁜 제도가 아니다. 소득재분배 효과를 위해 누진적으로 설계되기도 했고, 재원마련 방식도 실제 운영원리를 보면 적립(저축 개념)이 아니라 부과식이다. 현재 경제활동인구(노동자, 청년세대)가 고령 인구 부양을 책임지는 세대별 연대와 자본(기업)과 노동이 보험료를 나누어 감당하는 사회연대의 정신도 들어가 있다.


그래서 이 저출생-초고령 사회의 파고만 넘으면 앞으로도 유효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모든 정치인들과 전문가들이 머리를 싸매고 달려드는 것이다. 연금개혁에 대한 다양한 방법론을 내며 국민연금을 한 번 살려보자는 주장이다.


소득보장론 vs 재정안정론


연금개혁의 대표적인 논쟁 지형은 ‘소득보장론’과 ‘재정안정론’의 대립이다.


먼저 소득보장론은 국민연금 수령액이 대부분 용돈 수준에 그치기 때문에, 소득보장율을 높여 실질적으로 노후를 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 시점 국민연금 평균 수령액은 55만 원 정도인데 노후를 살아가기에 부족한 형편이긴 하다. 노인빈곤율이 OECD 국가 최고 수준인 한국사회 특성까지 고려하면 국민연금만으로 노후를 대비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보험료율로 일정 수준으로 높이되, 소득보장율을 더 높여 ‘조금 더 내고, 더 많이 받자’는 주장으로 귀결되곤 한다.


재정안정론은 기금고갈 전망을 근거로 반박한다. 더 주고 싶어도 향후 20년 전후로 연기금이 고갈될 텐데, 여기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보험료율을 올리고 소득보장율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현 세대가 ‘더 내고 덜 받아야’ 미래 세대가 국민연금의 취지를 계승해 안정적으로 노후를 대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에 의하면, 연금고갈 이후 시점 1996년생~2037년생이 내는 보험료로만 연금을 충당한다면, 그들은 월 소득의 약 1/3을 보험료로 내야 한다. 이와 같은 우려가 현실이 된다면 사회적 갈등과 저항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나마 일하는 인구가 더 많은 지금부터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연기금 고갈 문제에 대해 소득보장론은 국민연금은 사회보험이기 때문에 ‘손익 계산’ 문제로 봐선 안 된다며 기금이 고갈된다면 세수를 투입하면 그만이라는 입장이다. ‘손익 계산’ 문제로 보지 말자면서 적게 내고 많이 받자는 ‘수익비 상향’ 주장이 어떻게 가능한지 잘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세금 또한 미래세대가 내는 재원이다. 국민연금 수령액 부족분을 연금 보험료로 내든 세금으로 내든 똑같이 더 걷어야 하는데, 기금 고갈에 대한 합리적 대응이라 보긴 어렵다.


보험료율 인상이 국민연금의 신뢰를 하락시켜 결과적으로 사적연금에 길을 열어주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한다. 의료민영화-철도민영화와 유사한 연금민영화를 막아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차분히 생각해보면 사적연금은 의료민영화와 질적으로 다르다. 의료민영화는 영리병원과 비영리병원 나누고 영리병원에 양질의 의사들이 몰리면서, 계급 간 의료서비스의 격차와 불평등을 야기하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상위계급만 건강해지고, 평범한 사람들의 질병은 방치하는 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금은 ‘돈’을 어떻게 다룰 지에 대한 문제다. 의료서비스의 질적 차이를 연금으로 치면 수익비 문제에 불과해지는 것이다. 어차피 지금도 상위계급으로 갈수록 사회의 노후보장시스템은 그들과 상관없는 일이다. 사적연금이 횡횡하든 말든, 국가는 불안정한 노후를 살아가는 노인들의 삶을 안정화시킬 수 있는 노후보장제도를 운영하면 그만인 것이다.


논쟁지점이 다양한 만큼, 대안 또한 여러 가지다.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의 인상비율, 수급연령 등 세부 내용을 조정하는 모수개혁 방식과 아예 신연금을 만들어 구연금과 분리해 운영하자는 주장, 현재 노후보장제도에서 국민연금 중심성을 조금 내려놓고 각종 크레딧과 기초연금 등을 강화해 다층적으로 설계하자는 주장 등이다.


이런 치열한 논의와 화제성에도 불구하고 MB정부 이후 연금개혁에 진전은 없었다. 그러다 2024년 윤석열 정부가 노후보장제도에 대한 대수술을 예고했다. 국민연금뿐만이 아니라 기초생활보장제도, 기초연금, 국민연금, 퇴직연금, 주택 및 농지 연금 등 다층 구조로 이뤄진 노후보장제도 전반을 함께 개혁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소득하위 70%에 지급하는 기초연금의 금액을 인상하고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42%로 높이겠다고 한다. 기금 고갈에 대해 자동으로 납부액을 올리고, 수급액을 줄이는 자동안정화 장치도 설계한다. 핵심내용 중 하나는 세대별 보험료율 차등화다. 기금고갈에 대배한 보험료율 인상을 연령대별로 다르게 하겠다는 것인데, 장년층은 더 내고 청년층은 덜 내는 방향이다.


이를 통해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주장이다. 기존의 연금개혁 방향이 모수개혁에 그치면서 연기금 수명을 7~8년 연장하는 수준이라면, 정부안은 국민연금의 30년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것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일단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모두를 높이겠다는 입장, 보험료율 인상에 대한 저항을 줄이기 위해 세대별 차등화라는 방안을 제시했다는 점, 국민연금의 장기 지속가능성에 대한 전망 등을 봤을 때 정부가 연금개혁에 대해 꽤 고민을 많이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이 있다. 꼭 이렇게까지 해서 국민연금의 수명을 연장해야 할까? 8년이든 30년이든 국민연금 수명을 연장한다고 해서, 국민연금이 지속가능한 노후보장제도가 될 수 있을까? 국민연금이 그렇게까지 고집할 만큼 좋은 제도일까? 더 나은 대안을 상상하고 도입할 수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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