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인의 인구위기 부수기] 한국 저출생 대응 정책의 역사 : 1~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공식 관리자
2025-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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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저출생 대응 정책의 역사 : 1~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1)

1) 해당 챕터의 정책 내용은 <대한민국 인구정책, 길은 있는가(이재인)>을 참고했다.


한국의 저출생 대응 정책은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을 제정함으로서 본격적으로 수립 및 실행됐다.(당시 합계출산율 1.09명)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제20조에 따라 “정부는 저출산•고령사회 중•장기 정책 목표 및 방향을 설정하고 이에 따른 기본계획을 수립•추진”해야 하고, “5년마다 기본계획안을 작성”해서 국무회의 심의와 대통령 승인을 얻어 확정하게 되어 있다. 이 법률에 따라 한국은 지금까지 4개의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과 2개의 수정계획(2008년 제1차 기본계획 보완본, 2019년 제3차 기본계획 수정본)을 수립했다.

 

대통령으로 분류하면 노무현 정부가 1차 기본계획을 수립했고, 이명박 정부는 1차 기본계획을 보완한 계획을 제출하고 그 다음 2차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박근혜 정부는 3차 기본계획을 수립했지만 정권 탄핵으로 인해 예기치 못하게 조기 종료됐으며, 이후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3차 기본계획에 대한 수정본을 발표하고 4차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각 기본계획마다 저출산•고령사회 정책의 방향성과 성격이 드러난다.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_새로마지20102)은 저출생 원인을 자녀양육교육비의 부담과 일•가정 양립의 곤란, 육아지원 시설의 부족 등으로 진단했다. 대책으로는 산전후 휴가와 육아휴직의 확대, 직장 어린이집의 확대, 일•가정 양립을 위한 환경 강화 및 여성의 경력단절 예방에 중점을 두었다. 5년 동안 관련 예산은 19.1조 원 규모이고, 재정 투입 대상은 저소득층으로 한정적이었다는 평가다. 비정규직이나 자영업자들에 대한 보호 장치들이 미비했다는 한계도 있었다.

2) 새로마지는 행복한 출산과 노후를 새롭게 맞이하자는 뜻으로 ‘새로 맞이’하자를 발음상 ‘새로마지’로 이름 붙였다.


제2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_새로마지 2015의 저출생 원인 진단은 1차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향후 15년 동안 OECD 국가 평균 수준의 출산율을 회복하겠다는 중장기적 의지를 표명했고, 집중 타켓인 맞벌이 가정의 정책 수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다자녀 가정의 양육비용 경감, 보육료 지원 대상 계층의 확대, 일•가정 양립을 위한 육아휴직제도의 정착, 국공립 어린이집 확대, 가족친화적인 기업문화 확산이 주요 내용이다. 예산지출 목표는 약 39.7조 원으로 증액 제시했다. 해당 시기인 2010년부터 2012년 동안 한국 합계출산율은 유일하게 연속 반등했다. 보육 예산에 대한 과감한 예산 투여의 효과라는 평가다.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_브릿지 플랜 2020부터는 합계출산율 1.3명 이하라는 초저출산 시대에 대한 절박함이 보다 반영되었다. 가임기 여성에 집중해왔던 정책 초점을 청년층 전체로 옮겨왔다. 저출생 현상 해결을 위해선 청년들의 삶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관점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청년 일자리와 주거 문제와 관련한 예산이 본격적으로 저출생 대응 정책에 포함됐다. 5년 동안 예산은 108.4조로 대폭 늘어났다. 저출생 현상을 거시적•구조적•장기적 문제로 보고 다학제 간 종합 연구와 이를 위한 전문 인력 양성 교육기관의 필요성을 제시하는 등 특기할 만한 점이 있었지만 정권 탄핵으로 인해 제3차 기본계획은 조기 종료됐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가 수립한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 대한 수정본을 수립했다. 이는 정책 노선에 대한 방향 전환의 성격이 큰 데, 실제 문재인 정부는 저출생 대응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선언했다. 출산율 지수가 아닌 삶의 질 재고가 기본계획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청사진으로 계층-성-세대 간 통합과 연대를 통한 포용국가로 가기 위한 전환을 제시했다. 또한 역대 정부의 저출생 대응 방식이 출산율 중심의 국가주의 혹은 성장주의 담론에 치중했고 여성을 출산의 도구화했다는 비판을 수용했다. 저출생 원인이 기혼가정의 출산 및 양육 어려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청년 실업-주택가격 상승 등 복합적 요인이라는 진단도 유의미했다.

 

이에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선 저출산 해소를 위한 출산 장려를 직접 목표로 삼기보다 전 생애에 걸친 삶의 질 제고를 목표로 했다. 그리고 인구 구조 변화와 관련한 사회 시스템의 조정을 중요한 과제로 수용했다. 교육 인프라, 군인력 구조개편, 주택 수급체계의 조정, 연금과 사회보험의 장기 지속을 관리하는 내용을 인구 정책으로 포함시킨 것이다. 예산은 출산 양육 분야만 5년간 195조 원으로 역시 크게 증액되었다.

 

약 20년 동안 한국 저출생 대응 정책은 빠르게 발전하고 확대되어 왔다. 서유럽 복지국가들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70년 동안 만들어온 출생과 양육에 대한 다층적 복지시스템을 우리는 20년 만에 해낸 것이다. 정치인들이 정쟁만 하고 일은 하지 않는다는 흔한 편견과 달리, 정권이 바뀌어도 저출생 해소라는 목표와 기조를 가지고 꾸준하게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한 결과다. 정책에 대한 결과적 평가나 성공 여부를 떠나 문재인 정부는 ‘사회개혁’이야말로 저출생 현상에 대한 근본적이자 장기적 대안이라는 비판적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까지 했다. 이 정도면 저출생에 대해 역대 정부들이 무능했다거나 노력이 부족했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평면적이고 온당치 못한 평가라 할 수 있다.

 

물론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이라는 큰 방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정책영역에서 일관성을 유지하는 못하는 측면도 있다. 4차 기본계획의 핵심기조가 출산율 상향이 아니라 삶의 질 제고에 있음에도, 이 기본계획을 실행해야 하는 윤석열 정부는 인구위기 비상사태를 선언하면서 합계출산율 상향을 구체적 목표로 제시했다. 일•가정 양립은 당연하게도 노동과잉사회인 한국에서 노동자들이 가정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임에도 불구하고, 2024년 서울시는 필리핀 가사 관리사 제도를 도입했다. 가정은 외국인 노동자에게 맡기고 직장에 더 많은 시간을 쓰라는 정반대의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한계에도 불과하고 한국 정치가 끊임없이 저출생 현상 해소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정치는 저출생을 해결할 수 있을까

 

정부뿐만이 아니다. 각 정당들 역시 저출생-초고령 사회에 대한 위기감을 공유하면서 주요 정책으로 발표하고 있다. 22대 총선에서 각 정당의 인구위기에 대한 대응 정책들을 살펴보자. 원내 진입 정당 중에서는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새로운미래가 저출생을 주요 분야로 설정하고 정당 공약을 발표했다. 개혁신당은 저출생 분야가 별도로 없고, 위성정당으로 원내에 진입한 진보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이 포함된 더불어민주연합 정당 공약에서도 저출생 분야는 찾아볼 수 없다. 원외 정당 중에서 저출생을 주요 분야로 설정하고 공약을 발표한 정당은 녹색정의당이 있다.3)

3) 녹색당과 진보당은 정당 공약을 별도로 발표했지만, 저출생을 주요 분야로 설정하진 않았다. 


먼저 저출생 관련 정책을 발표한 모든 정당은 공통적으로 ‘저출생’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그리고 일•가정 양립을 위한 육아휴직 확대와 사회적 돌봄 영역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기조를 사실상 합의하고 있다. 합계출산율 저하의 원인과 책임이 가임기 여성에 있지 않다는 점, 출산과 양육 어려움의 핵심이 일•가정 양립 불가 사회에 있다는 점은 각 정당별 이념과 견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눈에 띄는 키워드로 양당을 비교하면 국민의힘은 ‘격차해소’, 더불어민주당은 ‘결혼출산양육 드림패키지’이다.

 

국민의힘은 아이돌봄 영역의 격차해소를 위해 특고직, 예술인, 자영업자, 농어민 등 고용보험 미가입자의 일•가정 양립 지원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출산휴가 유급화, 육아휴직 신청만으로 자동개시, 연 5일의 유급자녀돌봄휴가, 임신 중 육아휴직 사용에 대한 배우자 허용 등으로 가정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도록 유인하는 공약을 냈다. 동시에 늘봄학교를 단계적 전면 무상으로 전환하여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노동환경 영역에서는 유연근무 확대 및 정착을 방향성으로 제시했고, 기업 특성에 맞춘 육아기 시차근무, 재택근무, 근로시간 단축, 혼합형 유연근무 등을 의무화하겠다는 내용이 중심이다. 특이한 점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가 ‘한부모 가정과 위기임산부’를 대상으로 한 공약을 별도로 설정하고 발표했다는 것이다. 한부모 가정 육아 지원 급여 인상 및 지원 대상 확대와 청소년 임산부 의료비 지원금 상향 및 만 24세까지 단계적 확대, 그리고 앞서 프랑스 제도로 소개했던 보호출산제도의 도입과 정착이 주된 내용이다.

 

더불어민주당의 결혼출산양육 드림 패키지는 헝가리식 출산장려정책을 한국에 도입하자는 내용이다. 모든 신혼부부에게 가구당 10년 만기로 1억 원을 대출해주고, 첫 자녀 출생시 무이자 전환, 둘째는 원금 50% 감면, 셋째를 낳으면 전액 탕감하겠다는 내용이다. 또한 우리아이 보듬주택이라는 이름으로 신혼부부 주거지원 대상을 확대하고, 2자녀-3자녀 가구에 33평형 분양전환 공공임대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우리아이 키움카드, 자립펀드를 통해 만 18세까지 자산을 축적할 수 있는 금융 정책도 담았다. 여기에 여성경력단절 방지 및 남성 육아휴직을 강화하고 아이돌봄서비스를 국가가 무한 책임지겠다는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조국혁신당은 저출생 관련 책임부처를 신설하고 정책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예산 도입과 육아친화사회와 어르신-장애인 통합돌봄보장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것이 주요 공약이다. 새로운미래는 연금개혁을 저출생 시대 핵심 공약으로 하고 있는데, 보험요율을 상향하고 수급율은 유지하겠다는 방향이다. 여기에 청년 교통비와 목돈마련 지원과 같은 금융 정책들을 함께 내보였다. 녹색정의당은 저출생 5대 요인으로 고용불안, 주거부담, 출산 및 육아부담, 교육경쟁 심화, 일•생활 조화 어려움을 선정하고 삶의 질 개선을 목표로 공약을 발표했다. 공공주택과 주거지원 월 60만원으로 주거부담을 해결하고, 자동육아휴직제 도입과 주4일제로 일•생활 조화 어려움을 해소하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정당별 공약 방향성의 차이는 현재 저출생 관련 제도 안의 차별과 불평등을 해소하면서 정책대상 범위를 확대하는 방식과 즉각적 대응으로 합계출산율을 올리기 위한 방식으로 나뉜다. 또한 전반적 특징을 보면 저출생 공약이 출산과 양육 지원을 넘어 주택과 연금, 자산 영역과 연결되어 있다. 이는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시스템이 존재한다는 신뢰가 있어야 출산과 양육 부담이 근본적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관점이 반영되어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플랜A는 인구증가가 아니다

 

한국 정부도, 정당들도 각기 저출생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대안들을 살펴보면 결과적인 저출생 현상 해소를 떠나, 사회에 필요하고 긍정적인 변화를 도모하는 것에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기도 하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 합계출산율은 0.7명대에 머물고 있고 더 내려갈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정책이 성공한다고 해도 합계출산율 2.1명대라는 대체출산수준을 회복할 수 있다고 전망하긴 어렵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 것일까?

 

출산과 양육은 사회와 개인의 ‘거래’가 아니다. 사회가 개인에게 “아이를 낳으면 이만큼 더 지원해줄게”라고 제안하고, 시장에서 흥정하듯 서로가 타협점을 발견해 일치점이 생기면 출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의 모든 제도와 정책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출산과 양육 정책 영역 역시 나머지 사회 영역들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예를 들어 스웨덴의 육아휴직제도는 90%에 가까운 소득대체율을 자랑하지만, 동시에 완전고용사회 지향이라는 스웨덴 사회의 노동시장 정책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한국과 같은 고용불안 사회에서 육아휴직제도가 실질적인 효과를 내기 어려운 이유다. 이렇듯 사회 전반에 대한 설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제아무리 출산에 대한 혜택을 강화한다고 해도 저출생 현상에 대한 제대로 된 대응이 될 수 없다.

 

여기서 질문은 어차피 저출생 현상 해소를 위해서 사회 전반을 재설계해야 한다면, ‘왜 굳이 저출생을 극복한 5천만 인구 사회를 전제로 재설계해야 하느냐’이다. 지금 당장 스웨덴 수준으로 합계출산율을 회복해도 대체출산수준을 넘지 못하고, 이미 총 인구 자체가 감소한 국면이라 합계출산율을 어느 정도 올려도 꾸준히 인구는 계속해서 감소할 것인데 말이다.

 

큰 틀에서 한국의 저출생 대응 정책은 합계출산율 상향이 아니라 삶의 질 제고에 있다는 관점까지 진일보해왔지만, 여전히 삶의 질을 높이면 합계출산율이 올라갈 수 있다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저출생 대응 정책이라는 포괄적 형태로 한국사회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5천만 인구를 목표로 한 시스템 안에서 각 개인들의 삶과 우리가 실제 마주할 인구감소사회 안에서 개인들의 삶은 그 구체적 형태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플랜A는 인구증가가 아니라, 인구감소사회를 준비하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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