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인구위기에 대한 선진국적 해법은 통했을까?②
프랑스와 스웨덴은 인구위기를 해결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아니다’에 가깝다. 중립적으로는 ‘부족하다’,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아직 실험 중이고 그 과정에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결과를 한 눈에 보기 위해 스웨덴과 프랑스의 합계출산율 추이를 보자.

1960년부터 10년 단위로 스웨덴과 프랑스의 합계출산율을 표시한 그래프이다. 그래프를 보면 알 수 있듯 스웨덴과 프랑스 모두 합계출산율 전체 추이가 전반적 하락세이다. 1960년 2.0을 넘었던 합계출산율은 2020년 2.0 이하를 기록하고 있다. 중간에 합계출산율이 일시적으로 올라간 적이 있긴 하지만, 그것을 일반적 추이라고 보긴 어렵다. 스웨덴은 1980~1990년 사이와 2000~2010년 사이가 합계출산율이 올라가는 시기였고, 프랑스는 전반적 하락세임에도 합계출산율의 하락 추이가 심하지 않은 수평선을 최대한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같은 유럽 사회이자 출산율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는 영국과 비교해도 전반 추이에 큰 차이가 없다.1)(그래프 참고)
1) 다만 영국의 가족분야 공공지출 예산 규모가 OECD 평균 이상인 점, 저출생 대응 정책과 별개로 무상보육 확대 등을 시행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스웨덴과 프랑스 모두 2.1명이라는 사회가 지속가능한 수치인 대체출산수준 이하이며, 2010년대 이후의 선진국을 중심으로 보이는 전 세계적 저출생 흐름에서 벗어나 있다고 보긴 어렵다. 그 규모는 다르지만 현 시점에서 똑같이 인구위기를 마주하고 있다는 것은 스웨덴이나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스웨덴과 프랑스 정부 역시 다른 국가들처럼 현 시점 인구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여러 대응책을 고심 중이다.
물론 상대적으로 스웨덴과 프랑스가 지구적 인구위기 시대에 ‘선방’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2017년 기준으로 전 세계 201개 국가 중 83개 국가에서 합계출산율이 인구대체수준 이하를 나타내고 있는데, 이러한 국면에 합계출산율 2.0에 근접하고 있다는 것은 국가적 인구감소를 막아낼 수 있는 조건으로서 청신호라 할 수 있다. 합계출산율이 1.0을 넘지 못하고 있는 한국 입장에서는 1.5를 안정적으로 넘고 있는 두 국가의 모델을 참고할 여지가 더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몇 가지 측면에서 더 고려해야할 지점이 있다. 일단 스웨덴과 프랑스의 저출생 극복 사회모델이 시작된 시점과 현 시점 인구위기의 양상이 다르다는 점이다. 두 국가 모두 저출생 현상을 처음 겪으며 사회적 대안을 모색하고 정책을 발동했던 시기는 1930~40년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전쟁피해 복구와 사회재건이 목표였던 시점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새마을 운동처럼 “잘 살아보세”와 같은 캠페인과 동시에 출산장려정책이 통용될 수 있었던 시기다. 또한 당시는 앞서 스웨덴 사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저출생이 사회일반의 현상이라기보다 경제적 상층계급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68혁명으로 대표되는 진보적 개인주의 사조 등장 이후 20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지금의 선진국형 인구위기와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저출생 극복의 구체적 목표 수치 또한 달랐다. 뮈르달 부부의 표현대로라면 “너무 많이 낳지는 말고, 한 가정 당 3명씩만 낳게 하자”는 것이었는데, 합계출산율 3.0이라는 목표에서 느껴지는 거리감이 딱 100년 전 인구위기와 현 시점 인구위기의 괴리이다.
저출생 대응 정책 예산이 규모만 크다고 좋은 것이냐는 효율성의 문제제기도 가능하다. 프랑스 가족정책 예산 규모인 GDP의 4% 수준을 우리나라로 대입하면, 한 해 약 88조(2023년 한국 GDP 4%)를 투입해야 한다. 한국 정부 1년 예산을 약 600조로 잡으면 15%에 가까운 수치다. 진보진영에서 과다하다고 비판하는 국방비가 한 해 50조 정도다. 심지어 한국의 저출생 관련 예산은 2022년에 51조 7천억 규모까지 늘어나 이미 그 이상이다.
문제는 예산의 규모가 아니라, 적절한 분배와 투입이다. 프랑스처럼 혹은 그 이상의 규모를 투입한다고 합계출산율이 올라갈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일시적으로 효과를 보인다고 하더라도 장기적 차원에서 국가 예산 분배가 오로지 합계출산율을 중심으로 편성되는 것이 지속가능할 수 있는지,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이 옳은 방향인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기할 수도 있다.
유럽사회와 한국의 문화적 차이가 크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스웨덴과 프랑스의 출산율을 견인하고 있는 것은 비혼 출산율이다. 2020년 기준 스웨덴 비혼 출산율은 55.2%, 프랑스는 62.2%에 달한다. 2020년 한국 비혼 출산율 2.5%와 비교하면 천지 차이다.2) 이는 한국이 그만큼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갇힌 사회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저출생 현상 대안에 대해 논의할 때는 고려해야할 현실 조건이기도 하다.
2) 2020년 OECD 가입국 비혼 출산율 평균은 41.9%
비혼 커플, 입양 가정, 한부모 가정, 외국인 부모를 둔 자녀에 대한 제도적•사회적 차별은 해소해야할 사회적 과제다. 그러나 이를 해결한다고 해서 합계출산율을 올릴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한국 사회에서 비혼 커플은 대부분 비출산에 대한 동의 혹은 출산에 대한 판단을 보류한 상태를 의미한다. 출산을 결심한 커플은 결혼을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해도 무방하다. 물론 이 결혼을 결심하기까지 경제적 여건 등 차마 넘어서지 못하는 벽들이 많지만, 어쨌든 결혼=출산의 경향성이 매우 높은 사회라는 것은 분명하다.
다른 사례를 들면, 현재 프랑스 합계출산율을 견인하는 또 다른 측면은 외국인에 있다. 2000년 이후 양친의 국적이 모두 프랑스인 출생아는 일관되게 감소하는 한편, 양친의 어느 한 쪽이 외국인이거나 모두 외국인인 출생아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3) 민족주의적 국민관이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이런 종류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설득력이 다소 떨어진다. 이렇듯 유럽과 한국의 문화적 차이를 고려한다면, 유럽식 모델을 그대로 구현한다고 해서 한국의 저출생 현상이 해소될지는 의문이다.
3) <인구위기 국가 일본> 정현숙
일본에서 보는 초고령 사회의 미래4)

하야카와 치에 감독의 영화 ‘플랜75’는 일본 초고령 사회에 대한 공포를 조명한다. 영화 배경에서 일본 정부는 플랜75라는 제도를 통해 75세 이상 고령자가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보장한다. 정부는 노인들의 안락사를 유인하기 위해 공익광고를 비롯한 홍보와 현금지원 등 각종 서비스를 동원한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고령인구에 대한 사회적 부담(부양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영화는 주인공 시점으로 플랜75 지원과 실행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면서 담담하게 다뤄낸다. 하야카와 치에 감독은 2016년 일본 가나가와 현의 장애인 시설에서 무차별 흉기 난동으로 19명을 살해한 범인이 재판과정에서 “나라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인간은 안락사 시켜야 한다"고 범행 동기를 밝힌 것을 보며 영화 제작을 결심했다고 한다. 범인이 말한 사회를 현실에서 구현해보면 이런 모습인데, 과연 어떠냐는 묵직한 질문이다. ‘플랜75’는 “고령인구가 사회공동체의 짐”이 되는 초고령 사회에 대한 공포를 직시하고 있다.
4) 해당 챕터의 사례와 통계 및 수치 등은 정현숙 교수의 <인구위기국가 일본>을 참고했습니다.
일본은 한국과 가까이 지리적으로 위치해 있기도 하고 유교문화권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일찍이 저출생-초고령 사회를 맞이한 인구위기의 상징 국가다. 그렇기 때문에 흔히 일본 사회를 보면 한국의 미래가 보인다고 말한다.
일본은 2010년에 초고령 사회(65세 이상이 총인구의 20% 이상)에 진입했다. 2020년 기준으로 고령화 비율이 무려 28.4%다. 과장을 보태면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 3명 중 1명은 노인인 셈이다. 반면 합계출산율은 1.2명(2023년 기준)으로 회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늘어나는 고령인구를 줄어드는 청년인구가 부양할 수 있을지에 대한 사회적 공포가 영화로까지 이어질 만하다.
이런 일본 초고령 사회의 모습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장면은 바로 토지와 부동산의 ‘공동화’다. 2013년 기준으로 820만호, 2033년을 예상하면 2150만호가 빈집이라고 한다. 세 집 중에 한 집은 빈 집인 꼴이다. 일본 전국에 있는 사유지의 약 20%는 소유자의 거주지나 생사를 알 수 없는 토지다. 농촌만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등기부상 소유자가 이미 수십 년 전에 사망했거나 상속 이전이 이루어지지 않아 방치된 것이 주된 이유다. 초고령 사회는 부동산 신화마저 깨부술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고령 인구 부담에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일본의 고령 인구 관련 지원 예산은 1975년부터 매년 1조 5천억 엔 이상 규모로 증가했는데, 2017년에는 사회보장급여비 예산의 66.3%가 고령 인구 관련(연금, 의료, 노인복지서비스 등)이라고 한다.5) 정책 지출 예산 중 고령 인구와 현역 세대의 비율이 지나치게 고령자 중심으로 편중되어 있다는 점도 문제다. ‘고령인구 : 현역세대’의 예산 비율이 프랑스(12.6% : 7%), 스웨덴(9% : 9%), 독일(8% : 6%)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것에 비해, 일본은 10% : 2.9%로 3배 넘게 차이가 난다. 게다가 사회보장급여비의 40.6%를 보험료가 아니라 공비로 부담하고 있는 구조인데, 덕분에 일본 재정은 파탄 직전이다. 2019년 시점에 일반정부 채무 잔고의 GDP 대비 비율은 238%로 세계 1위다.(한국은 41.9%)
5) <고령화 백서> 일본 내각부
그렇다고 일본 정부가 여태까지 놀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89년 합계출산율이 1.57명을 기록한 이후 일본 정부는 합계출산율을 올리기 위해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 출산축하금, 아동수당, 교육비지원금 제도 등 현금지원을 확대했다. 보육 서비스 확충을 위해 방과후 초등생 돌봄문제, 일가정 양립을 위한 근로방식 개혁, 육아휴직도 실시했다. 그러나 예산규모에 있어 소극적이었고(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가족분야 공공지출 규모가 OECD 평균 이하), 시기적으로도 늦었다는 평가다. 어찌됐건 일본의 저출생 대응 정책은 실패했고, 결과적으로 저출생-초고령 사회를 준비 없이 마주한 상황이다.
그런데 오늘날 일본 사회가 겪고 있는 여러 어려움의 원인이 ‘초고령 사회’ 그 자체에 있는지는 되짚어봐야 한다.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국가가 일본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국제 통계 전문 사이트 ‘글로벌노트’에 따르면 이탈리아(23.3%), 포르투갈(22.8%), 독일(21.7%), 프랑스(20.8%) 등 고령인구 비율이 20%가 넘는 국가들은 일본을 제외하고도 이미 다수 존재한다.6) 물론 이들 국가 역시 초고령 사회에 따른 여러 사회적 어려움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 사회만큼 극단적이진 않다. 중요한 것은 국가가 초고령 사회까지 오는 과정에서 어떤 사회적 준비와 국민적 합의를 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비전을 어떻게 제시하고 있는 지다.
6) 한국은 2023년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주민등록 인구(5132만5329명)의 18.96%로 아직 초고령 사회 진입 이전이다.
일본이 저출생 대응 정책에 실패한 주요한 이유는 사회적 합의에서 고령 인구의 권력 우위를 방치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2014년 일본 60세 이상 인구가 가지고 있는 금융 자산은 약 1천조 엔으로 개인금융자산 1,700조 엔의 약 60%에 달한다. 고령 인구가 경제력으로 권력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정치에서도 증세에 반대하는 흐름 주도하면서, 고령 인구에 대한 사회적•경제적 부담이 가중된 측면이 있다. 일례를 들면 일본의 퇴직한 고령자를 위한 연금특별회계는 70조2899억 엔에 달하는데, 현 시점 노동자들을 위한 노동보험특별회계 규모는 4조72억 엔에 불과하다. 7) 한국 역시 현 시점 고령 인구의 순자산이 전체의 46%에 달하고8), 증세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이 일본만큼 강한 사회적 여건이다. 이런 한국 상황을 비추어 봤을 때, 현 시점 저출생 대응 정책이 실패하고 합계출산율이 오르지 않는다면 일본 사회보다 더 부정적인 양상으로 초고령 사회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
7) “초고령사회, 일본의 미래가 우리의 미래다” 시사인 박철현 작가(2022.05.15)
8) 2021년 서울연구원이 세대별로 보유한 금융자산 (은행 예·적금에 전·월세 보증금)에 부동산과 자동차 등 실물자산까지 조사한 결과
저출생에 대한 극약처방은 통할까
저출생 대응 정책에도 유행이 있다고 한다면, 최근 가장 큰 화두는 헝가리에 있다. 헝가리는 2010년 합계출산율 1.26명으로 유럽 최하위 수준을 나타내면서 국가적 위기감이 고조됐다. 이에 2019년 헝가리 정부는 합계출산율 2.1명을 목표로 파격적인 정책들을 도입했다.
일단 결혼한 부부가 아이를 낳기로 ‘약속’만 해도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1000만 포린트(한화로 약 4000만 원)을 5년 만기로 대출해준다. 그리고 만기가 지나기 전에 아이를 낳으면 이자를 탕감해준다. 둘째를 낳으면 원금의 3분의 1을 탕감해주고, 셋째를 낳으면 원금을 전액 탕감해준다. 여기에 더해 4명 이상의 자녀를 낳아서 양육하는 여성에게는 평생 소득세를 면제해주고, 자녀가 3명 이상인 가족이 7인승 차량을 살 때는 250만 포린트(약 990만원)의 장려금을 준다. 보육 시설 신설, 주거비 보조, 국영 시험관 시술 기관 무료 지원 등의 정책도 시행하고 있다. 정책 효과는 아직까지 청신호다. 2020년 합계출산율이 1.56명으로 오른 것이다.
비출산 상태에서 ‘약속’만으로도 정책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꽤나 파격적이긴 하다. 하지만 실제 정책 내용을 자세히 보면 놀랄 정도는 아니다. 일단 헝가리에서 1000만 포린트가 노동자 평균 약 2년 치 연봉이라고 하니, 한국 물가로 치면 8천만 원 정도다. 9) 8천만 원을 그냥 주는 것도 아니고 대출이다. 전액 탕감을 받기 위해선 3명의 아이를 출산해야 한다. 따로 조사해보진 않았지만, 길거리에서 8천만 원을 줄 테니 아이를 세 명 낳아서 키울 생각이 있냐고 물어보면 아마 대부분 고개를 저을 것이다. 한국에서 아이 한 명 양육에 드는 비용이 대략 2~3억 정도라고 말하는데, 세 명에 8천만 원은 수지에 맞지도 않는다.
9) 국세청에 따르면 2022년 한국 직장인 평균 연봉은 4214만원이다.
돈을 받기 위해 아이를 낳는 사람은 없다. 만약 있다면 그것 역시 사회적 문제다. 경제적 여건이 어려워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회라고 진단한다면 그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해야지, 돈만 주면 된다는 단순한 발상은 정치가 아니다. 정치는 사회를 통해 시민의 삶을 끊임없이 재구성하는 행위이지, 시민을 사육하는 행위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출산을 유인하기 위한 포퓰리즘과 같은 극약처방 정책은 실행 자체가 어렵다. 애초에 출산은 사회가 강요할 수 없는 영역이고, 국가가 강요가 직접적으로 표면화 된다면 또 다른 사회적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일본 사회학자 아카가와 마나부는 “모든 저출산 대책은 결혼하지 않거나 아이를 낳지 않는 선택을 한 사람 입장에서는 국가가 행하는 차별이자 무자식에 대한 세금징수”라는 입장을 취한다. 과도해보일지 몰라도 일리가 없는 주장은 아니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예산 규모가 지나치게 확장된다면, 이는 비출산을 결심했거나 출산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시민들에 대한 역차별과 불공정이라는 논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불공정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 비용이 더 클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국가는 시민의 출산과 양육에 대한 요구도, 비출산에 대한 요구도 모두 포용해야 한다.
인구 정책의 핵심은 사회이념에 있다. 스웨덴과 프랑스, 일본과 헝가리 저출생 대응 정책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사회이념의 유무다. 스웨덴과 프랑스가 상대적으로 저출생 현상을 선방하고 있는 것은 국가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높기 때문이고, 이는 사회이념이 일관되고 설득력 있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스웨덴은 복지국가, 프랑스는 공화국 시민에 대한 권리와 의무라는 사회이념을 제시하고 있다.
반면 일본과 헝가리는 예산과 정책을 수단으로 ‘아이를 많이 낳으라’는 신호만 보내고 있을 뿐, 사회이념이 보이진 않는다. 이런 얕은 접근 방식은 국민적 동의를 얻기도,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기도 어렵다. 오늘날 한국의 저출생 대응 정책이 큰 효과를 보이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왜 저출생을 해결해야 하는가? 왜 시민은 출산과 양육의 부담을 감당해야 하는가? 오직 그것만이 지속가능한 사회공동체를 만드는 유일한 대안인가? 대한민국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회공동체인가? 다음 세대에게 부끄럽지 않은 공동체를 물려줄 수 있을까? 출산장려정책 이전에, 우리는 이 물음들에 답해야 한다.
2장 인구위기에 대한 선진국적 해법은 통했을까?②
프랑스와 스웨덴은 인구위기를 해결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아니다’에 가깝다. 중립적으로는 ‘부족하다’,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아직 실험 중이고 그 과정에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결과를 한 눈에 보기 위해 스웨덴과 프랑스의 합계출산율 추이를 보자.
1960년부터 10년 단위로 스웨덴과 프랑스의 합계출산율을 표시한 그래프이다. 그래프를 보면 알 수 있듯 스웨덴과 프랑스 모두 합계출산율 전체 추이가 전반적 하락세이다. 1960년 2.0을 넘었던 합계출산율은 2020년 2.0 이하를 기록하고 있다. 중간에 합계출산율이 일시적으로 올라간 적이 있긴 하지만, 그것을 일반적 추이라고 보긴 어렵다. 스웨덴은 1980~1990년 사이와 2000~2010년 사이가 합계출산율이 올라가는 시기였고, 프랑스는 전반적 하락세임에도 합계출산율의 하락 추이가 심하지 않은 수평선을 최대한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같은 유럽 사회이자 출산율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는 영국과 비교해도 전반 추이에 큰 차이가 없다.1)(그래프 참고)
1) 다만 영국의 가족분야 공공지출 예산 규모가 OECD 평균 이상인 점, 저출생 대응 정책과 별개로 무상보육 확대 등을 시행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스웨덴과 프랑스 모두 2.1명이라는 사회가 지속가능한 수치인 대체출산수준 이하이며, 2010년대 이후의 선진국을 중심으로 보이는 전 세계적 저출생 흐름에서 벗어나 있다고 보긴 어렵다. 그 규모는 다르지만 현 시점에서 똑같이 인구위기를 마주하고 있다는 것은 스웨덴이나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스웨덴과 프랑스 정부 역시 다른 국가들처럼 현 시점 인구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여러 대응책을 고심 중이다.
물론 상대적으로 스웨덴과 프랑스가 지구적 인구위기 시대에 ‘선방’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2017년 기준으로 전 세계 201개 국가 중 83개 국가에서 합계출산율이 인구대체수준 이하를 나타내고 있는데, 이러한 국면에 합계출산율 2.0에 근접하고 있다는 것은 국가적 인구감소를 막아낼 수 있는 조건으로서 청신호라 할 수 있다. 합계출산율이 1.0을 넘지 못하고 있는 한국 입장에서는 1.5를 안정적으로 넘고 있는 두 국가의 모델을 참고할 여지가 더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몇 가지 측면에서 더 고려해야할 지점이 있다. 일단 스웨덴과 프랑스의 저출생 극복 사회모델이 시작된 시점과 현 시점 인구위기의 양상이 다르다는 점이다. 두 국가 모두 저출생 현상을 처음 겪으며 사회적 대안을 모색하고 정책을 발동했던 시기는 1930~40년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전쟁피해 복구와 사회재건이 목표였던 시점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새마을 운동처럼 “잘 살아보세”와 같은 캠페인과 동시에 출산장려정책이 통용될 수 있었던 시기다. 또한 당시는 앞서 스웨덴 사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저출생이 사회일반의 현상이라기보다 경제적 상층계급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68혁명으로 대표되는 진보적 개인주의 사조 등장 이후 20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지금의 선진국형 인구위기와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저출생 극복의 구체적 목표 수치 또한 달랐다. 뮈르달 부부의 표현대로라면 “너무 많이 낳지는 말고, 한 가정 당 3명씩만 낳게 하자”는 것이었는데, 합계출산율 3.0이라는 목표에서 느껴지는 거리감이 딱 100년 전 인구위기와 현 시점 인구위기의 괴리이다.
저출생 대응 정책 예산이 규모만 크다고 좋은 것이냐는 효율성의 문제제기도 가능하다. 프랑스 가족정책 예산 규모인 GDP의 4% 수준을 우리나라로 대입하면, 한 해 약 88조(2023년 한국 GDP 4%)를 투입해야 한다. 한국 정부 1년 예산을 약 600조로 잡으면 15%에 가까운 수치다. 진보진영에서 과다하다고 비판하는 국방비가 한 해 50조 정도다. 심지어 한국의 저출생 관련 예산은 2022년에 51조 7천억 규모까지 늘어나 이미 그 이상이다.
문제는 예산의 규모가 아니라, 적절한 분배와 투입이다. 프랑스처럼 혹은 그 이상의 규모를 투입한다고 합계출산율이 올라갈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일시적으로 효과를 보인다고 하더라도 장기적 차원에서 국가 예산 분배가 오로지 합계출산율을 중심으로 편성되는 것이 지속가능할 수 있는지,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이 옳은 방향인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기할 수도 있다.
유럽사회와 한국의 문화적 차이가 크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스웨덴과 프랑스의 출산율을 견인하고 있는 것은 비혼 출산율이다. 2020년 기준 스웨덴 비혼 출산율은 55.2%, 프랑스는 62.2%에 달한다. 2020년 한국 비혼 출산율 2.5%와 비교하면 천지 차이다.2) 이는 한국이 그만큼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갇힌 사회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저출생 현상 대안에 대해 논의할 때는 고려해야할 현실 조건이기도 하다.
2) 2020년 OECD 가입국 비혼 출산율 평균은 41.9%
비혼 커플, 입양 가정, 한부모 가정, 외국인 부모를 둔 자녀에 대한 제도적•사회적 차별은 해소해야할 사회적 과제다. 그러나 이를 해결한다고 해서 합계출산율을 올릴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한국 사회에서 비혼 커플은 대부분 비출산에 대한 동의 혹은 출산에 대한 판단을 보류한 상태를 의미한다. 출산을 결심한 커플은 결혼을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해도 무방하다. 물론 이 결혼을 결심하기까지 경제적 여건 등 차마 넘어서지 못하는 벽들이 많지만, 어쨌든 결혼=출산의 경향성이 매우 높은 사회라는 것은 분명하다.
다른 사례를 들면, 현재 프랑스 합계출산율을 견인하는 또 다른 측면은 외국인에 있다. 2000년 이후 양친의 국적이 모두 프랑스인 출생아는 일관되게 감소하는 한편, 양친의 어느 한 쪽이 외국인이거나 모두 외국인인 출생아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3) 민족주의적 국민관이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이런 종류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설득력이 다소 떨어진다. 이렇듯 유럽과 한국의 문화적 차이를 고려한다면, 유럽식 모델을 그대로 구현한다고 해서 한국의 저출생 현상이 해소될지는 의문이다.
3) <인구위기 국가 일본> 정현숙
일본에서 보는 초고령 사회의 미래4)
하야카와 치에 감독의 영화 ‘플랜75’는 일본 초고령 사회에 대한 공포를 조명한다. 영화 배경에서 일본 정부는 플랜75라는 제도를 통해 75세 이상 고령자가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보장한다. 정부는 노인들의 안락사를 유인하기 위해 공익광고를 비롯한 홍보와 현금지원 등 각종 서비스를 동원한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고령인구에 대한 사회적 부담(부양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영화는 주인공 시점으로 플랜75 지원과 실행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면서 담담하게 다뤄낸다. 하야카와 치에 감독은 2016년 일본 가나가와 현의 장애인 시설에서 무차별 흉기 난동으로 19명을 살해한 범인이 재판과정에서 “나라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인간은 안락사 시켜야 한다"고 범행 동기를 밝힌 것을 보며 영화 제작을 결심했다고 한다. 범인이 말한 사회를 현실에서 구현해보면 이런 모습인데, 과연 어떠냐는 묵직한 질문이다. ‘플랜75’는 “고령인구가 사회공동체의 짐”이 되는 초고령 사회에 대한 공포를 직시하고 있다.
4) 해당 챕터의 사례와 통계 및 수치 등은 정현숙 교수의 <인구위기국가 일본>을 참고했습니다.
일본은 한국과 가까이 지리적으로 위치해 있기도 하고 유교문화권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일찍이 저출생-초고령 사회를 맞이한 인구위기의 상징 국가다. 그렇기 때문에 흔히 일본 사회를 보면 한국의 미래가 보인다고 말한다.
일본은 2010년에 초고령 사회(65세 이상이 총인구의 20% 이상)에 진입했다. 2020년 기준으로 고령화 비율이 무려 28.4%다. 과장을 보태면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 3명 중 1명은 노인인 셈이다. 반면 합계출산율은 1.2명(2023년 기준)으로 회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늘어나는 고령인구를 줄어드는 청년인구가 부양할 수 있을지에 대한 사회적 공포가 영화로까지 이어질 만하다.
이런 일본 초고령 사회의 모습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장면은 바로 토지와 부동산의 ‘공동화’다. 2013년 기준으로 820만호, 2033년을 예상하면 2150만호가 빈집이라고 한다. 세 집 중에 한 집은 빈 집인 꼴이다. 일본 전국에 있는 사유지의 약 20%는 소유자의 거주지나 생사를 알 수 없는 토지다. 농촌만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등기부상 소유자가 이미 수십 년 전에 사망했거나 상속 이전이 이루어지지 않아 방치된 것이 주된 이유다. 초고령 사회는 부동산 신화마저 깨부술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고령 인구 부담에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일본의 고령 인구 관련 지원 예산은 1975년부터 매년 1조 5천억 엔 이상 규모로 증가했는데, 2017년에는 사회보장급여비 예산의 66.3%가 고령 인구 관련(연금, 의료, 노인복지서비스 등)이라고 한다.5) 정책 지출 예산 중 고령 인구와 현역 세대의 비율이 지나치게 고령자 중심으로 편중되어 있다는 점도 문제다. ‘고령인구 : 현역세대’의 예산 비율이 프랑스(12.6% : 7%), 스웨덴(9% : 9%), 독일(8% : 6%)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것에 비해, 일본은 10% : 2.9%로 3배 넘게 차이가 난다. 게다가 사회보장급여비의 40.6%를 보험료가 아니라 공비로 부담하고 있는 구조인데, 덕분에 일본 재정은 파탄 직전이다. 2019년 시점에 일반정부 채무 잔고의 GDP 대비 비율은 238%로 세계 1위다.(한국은 41.9%)
5) <고령화 백서> 일본 내각부
그렇다고 일본 정부가 여태까지 놀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89년 합계출산율이 1.57명을 기록한 이후 일본 정부는 합계출산율을 올리기 위해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 출산축하금, 아동수당, 교육비지원금 제도 등 현금지원을 확대했다. 보육 서비스 확충을 위해 방과후 초등생 돌봄문제, 일가정 양립을 위한 근로방식 개혁, 육아휴직도 실시했다. 그러나 예산규모에 있어 소극적이었고(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가족분야 공공지출 규모가 OECD 평균 이하), 시기적으로도 늦었다는 평가다. 어찌됐건 일본의 저출생 대응 정책은 실패했고, 결과적으로 저출생-초고령 사회를 준비 없이 마주한 상황이다.
그런데 오늘날 일본 사회가 겪고 있는 여러 어려움의 원인이 ‘초고령 사회’ 그 자체에 있는지는 되짚어봐야 한다.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국가가 일본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국제 통계 전문 사이트 ‘글로벌노트’에 따르면 이탈리아(23.3%), 포르투갈(22.8%), 독일(21.7%), 프랑스(20.8%) 등 고령인구 비율이 20%가 넘는 국가들은 일본을 제외하고도 이미 다수 존재한다.6) 물론 이들 국가 역시 초고령 사회에 따른 여러 사회적 어려움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 사회만큼 극단적이진 않다. 중요한 것은 국가가 초고령 사회까지 오는 과정에서 어떤 사회적 준비와 국민적 합의를 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비전을 어떻게 제시하고 있는 지다.
6) 한국은 2023년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주민등록 인구(5132만5329명)의 18.96%로 아직 초고령 사회 진입 이전이다.
일본이 저출생 대응 정책에 실패한 주요한 이유는 사회적 합의에서 고령 인구의 권력 우위를 방치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2014년 일본 60세 이상 인구가 가지고 있는 금융 자산은 약 1천조 엔으로 개인금융자산 1,700조 엔의 약 60%에 달한다. 고령 인구가 경제력으로 권력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정치에서도 증세에 반대하는 흐름 주도하면서, 고령 인구에 대한 사회적•경제적 부담이 가중된 측면이 있다. 일례를 들면 일본의 퇴직한 고령자를 위한 연금특별회계는 70조2899억 엔에 달하는데, 현 시점 노동자들을 위한 노동보험특별회계 규모는 4조72억 엔에 불과하다. 7) 한국 역시 현 시점 고령 인구의 순자산이 전체의 46%에 달하고8), 증세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이 일본만큼 강한 사회적 여건이다. 이런 한국 상황을 비추어 봤을 때, 현 시점 저출생 대응 정책이 실패하고 합계출산율이 오르지 않는다면 일본 사회보다 더 부정적인 양상으로 초고령 사회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
7) “초고령사회, 일본의 미래가 우리의 미래다” 시사인 박철현 작가(2022.05.15)
8) 2021년 서울연구원이 세대별로 보유한 금융자산 (은행 예·적금에 전·월세 보증금)에 부동산과 자동차 등 실물자산까지 조사한 결과
저출생에 대한 극약처방은 통할까
저출생 대응 정책에도 유행이 있다고 한다면, 최근 가장 큰 화두는 헝가리에 있다. 헝가리는 2010년 합계출산율 1.26명으로 유럽 최하위 수준을 나타내면서 국가적 위기감이 고조됐다. 이에 2019년 헝가리 정부는 합계출산율 2.1명을 목표로 파격적인 정책들을 도입했다.
일단 결혼한 부부가 아이를 낳기로 ‘약속’만 해도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1000만 포린트(한화로 약 4000만 원)을 5년 만기로 대출해준다. 그리고 만기가 지나기 전에 아이를 낳으면 이자를 탕감해준다. 둘째를 낳으면 원금의 3분의 1을 탕감해주고, 셋째를 낳으면 원금을 전액 탕감해준다. 여기에 더해 4명 이상의 자녀를 낳아서 양육하는 여성에게는 평생 소득세를 면제해주고, 자녀가 3명 이상인 가족이 7인승 차량을 살 때는 250만 포린트(약 990만원)의 장려금을 준다. 보육 시설 신설, 주거비 보조, 국영 시험관 시술 기관 무료 지원 등의 정책도 시행하고 있다. 정책 효과는 아직까지 청신호다. 2020년 합계출산율이 1.56명으로 오른 것이다.
비출산 상태에서 ‘약속’만으로도 정책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꽤나 파격적이긴 하다. 하지만 실제 정책 내용을 자세히 보면 놀랄 정도는 아니다. 일단 헝가리에서 1000만 포린트가 노동자 평균 약 2년 치 연봉이라고 하니, 한국 물가로 치면 8천만 원 정도다. 9) 8천만 원을 그냥 주는 것도 아니고 대출이다. 전액 탕감을 받기 위해선 3명의 아이를 출산해야 한다. 따로 조사해보진 않았지만, 길거리에서 8천만 원을 줄 테니 아이를 세 명 낳아서 키울 생각이 있냐고 물어보면 아마 대부분 고개를 저을 것이다. 한국에서 아이 한 명 양육에 드는 비용이 대략 2~3억 정도라고 말하는데, 세 명에 8천만 원은 수지에 맞지도 않는다.
9) 국세청에 따르면 2022년 한국 직장인 평균 연봉은 4214만원이다.
돈을 받기 위해 아이를 낳는 사람은 없다. 만약 있다면 그것 역시 사회적 문제다. 경제적 여건이 어려워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회라고 진단한다면 그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해야지, 돈만 주면 된다는 단순한 발상은 정치가 아니다. 정치는 사회를 통해 시민의 삶을 끊임없이 재구성하는 행위이지, 시민을 사육하는 행위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출산을 유인하기 위한 포퓰리즘과 같은 극약처방 정책은 실행 자체가 어렵다. 애초에 출산은 사회가 강요할 수 없는 영역이고, 국가가 강요가 직접적으로 표면화 된다면 또 다른 사회적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일본 사회학자 아카가와 마나부는 “모든 저출산 대책은 결혼하지 않거나 아이를 낳지 않는 선택을 한 사람 입장에서는 국가가 행하는 차별이자 무자식에 대한 세금징수”라는 입장을 취한다. 과도해보일지 몰라도 일리가 없는 주장은 아니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예산 규모가 지나치게 확장된다면, 이는 비출산을 결심했거나 출산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시민들에 대한 역차별과 불공정이라는 논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불공정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 비용이 더 클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국가는 시민의 출산과 양육에 대한 요구도, 비출산에 대한 요구도 모두 포용해야 한다.
인구 정책의 핵심은 사회이념에 있다. 스웨덴과 프랑스, 일본과 헝가리 저출생 대응 정책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사회이념의 유무다. 스웨덴과 프랑스가 상대적으로 저출생 현상을 선방하고 있는 것은 국가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높기 때문이고, 이는 사회이념이 일관되고 설득력 있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스웨덴은 복지국가, 프랑스는 공화국 시민에 대한 권리와 의무라는 사회이념을 제시하고 있다.
반면 일본과 헝가리는 예산과 정책을 수단으로 ‘아이를 많이 낳으라’는 신호만 보내고 있을 뿐, 사회이념이 보이진 않는다. 이런 얕은 접근 방식은 국민적 동의를 얻기도,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기도 어렵다. 오늘날 한국의 저출생 대응 정책이 큰 효과를 보이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왜 저출생을 해결해야 하는가? 왜 시민은 출산과 양육의 부담을 감당해야 하는가? 오직 그것만이 지속가능한 사회공동체를 만드는 유일한 대안인가? 대한민국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회공동체인가? 다음 세대에게 부끄럽지 않은 공동체를 물려줄 수 있을까? 출산장려정책 이전에, 우리는 이 물음들에 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