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인의 인구위기 부수기] 2장 인구위기에 대한 선진국적 해법은 통했을까?①

공식 관리자
2024-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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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뮈르달 부부 / 출처 : 한겨레]



2장 인구위기에 대한 선진국적 해법은 통했을까?①

 

한국에선 문제가 생기면 모두가 해외를 바라본다. 해외 선진국들의 해결책과 모습을 보며 이상으로 삼고, “우리도 저렇게 하면 해결할 수 있다”있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이 잇따른다. 그렇게 각종 문제에 대한 수많은 독일주의자, 프랑스주의자, 미국주의자, 남미주의자들이 미디어에 등장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해당 국가들에서 예기치 못한 문제점이 발생하고, 이번엔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다른 국가의 모델이 소개된다.

 

인구위기에 있어 모범국가는 스웨덴과 프랑스 정도다. 그리고 최근에는 헝가리의 저출생 대응 정책이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과연 해당 선진국들이 저출생 현상을 해결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한국이 그 모범사례를 따라가면 인구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동일한 유형의 사회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 세상엔 동일한 문제에도 다른 원인이 존재하기도 하고, 원인을 해결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저출생 극복의 선진국 모범사례들이 만능이 아니라는 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고할 수 있는 지점을 살펴보자.

 

저출생 현상이 문제가 아니었을 때가 있었다. 오히려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였고 그래서 산아제한정책이 중점이었던 시기였다. 경제적으로 ‘인구보너스’라고 부르는 시점이다. 인구보너스는 저출생과 고령화 현상이 만나는 지점을 말한다. 낮은 출산율로 인해 생산가능인구의 부양부담이 낮은 수준으로 지속되는 현상이다. 쉽게 말하면 사회에서 일할 수 있는 인구 숫자가 먹여살려야할 인구 숫자보다 많다는 뜻이다. 한국의 경우 2010년까지를 인구보너스 시기로 잡고, 그 이후를 인구오너스(Onus·부담) 시기로 규정한다.1)

1) <저출산•고령사회와 그 적들>에서 정재훈 서울여대 교수는 2016년과 2017년 사이 한국의 총부양비가 36.2에서 36.8로 상승했고 인구보너스 끝났다고 설명한다.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인구보너스가 인구오너스로 전환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산업화 진입 과정에서 국가는 출산율과 사망률이 모두 높은 상황에서 출산율을 유지하면서 사망률이 낮아지는 단계를 거친다. 그 다음 출산율과 사망률 모두가 낮아지는 상황에 직면하는데, 보통 이 시기를 인구보너스로 잡는다. 생산연령인구가 가장 많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후 자연스럽게 고령화와 저출생 현상이 일반화되면서 인구오너스로 전환된다.

 

그래서 한국보다 앞서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국가들은 저출생 국면을 일찍이 맞이했다. 이에 대한 다양한 대응책들을 시도했고 성공사례도 실패사례도 있다. 이들의 저출생 현상에 대한 다양한 접근방식과 해결방향을 살펴보면, 인구위기의 현재와 미래를 파악할 수 있다. 비록 정답까진 아니더라도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참고는 될 것이다. 먼저 저출생 극복 사례의 모범이라 일컬어지는 스웨덴부터 살펴보자.

 

보수주의 vs 신멜서스주의 vs 뮈르달 부부

 

자유와 사회적 권리보다 저출생 극복이 최우선이라면 정치와 제도는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아마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방법은 피임 금지일 것이다. 이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현실화한 나라가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게다가 인권과 복지의 대명사인 스웨덴이라면? 스웨덴은 1910~40년대 당시 최악의 출산율(1935년 합계출산율 1.7명)를 마주한 충격으로 저출생 논쟁에 불이 붙었다.

 

보수주의자들은 출산장려를 위한 피임금지법을 만들고 시행까지 성공했다.2) 물론 당시 윤리와 현대 윤리의 기준이 다르긴 하지만, 꽤나 충격적인 요법이다. 반대로 좌파 정치세력은 출산을 장려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인구가 줄어들면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이 향상될 것이라 전망한 것이다. 이런 격렬한 논쟁 속에서 두 주장 모두를 격파하면서 인구정책에 대한 통합적 흐름을 견인해낸 인물이 있었는데, 그들이 바로 뮈르달 부부다.

2) 1910년 보수파인 자유국민당 정권은 피임 기구의 광고나 판매를 억제하는 법률을 제정


사회주의 사상에 <자본론>과 칼 맑스가 있고 경제학에 <국부론>과 애덤 스미스가 있다면, 인구 문제에는 <인구위기>3)와 뮈르달 부부가 있다. 군나르 뮈르달과 알바 뮈르달 부부는 1930년대 최악의 출산율과 경제적 빈곤에 시달리던 스웨덴을 복지국가 모델로 이끈 선구자격 인물이다. 군나르 뮈르달은 1974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고 알바 뮈르달은 1982년 노벨 평화상을 받기도 했으며, 두 사람 모두 장관과 국회의원을 역임하는 등 현실 정치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을 설계하고 만들어 왔다.

3) 원제는 「인구 문제의 위기」(Crisis in the Population Question) 


<인구위기>는 뮈르달 부부가 1934년 출간한 책이다. 우리가 2020년대에 처한 인구위기의 상황을 1930년대에 일찍이 경험하면서 문제에 대한 해법과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많은 인구위기에 대한 대안들이 이 책의 범주 안에서 자유롭지 않기도 하다. 인구위기 모범국가라는 스웨덴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이 책을 다루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뮈르달 부부는 당시 스웨덴의 인구문제에 대한 두 가지 사상 조류와 싸웠는데, 하나는 도덕과 규범을 중요시하는 보수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주로 좌파들이 받아들인 신멜서스주의이다.4) 보수주의자들은 저출생 원인을 개인의 과도한 사치나 이기주의라고 규정했다. 전통적 가족상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 핵심 문제이며, 비혼이나 피임은 죄악(?)이라고 주장했다. 여성은 결혼 이후 가사노동에 전념해야 하며, 기업의 기혼 여성 고용을 반대했다. 반면 사회민주당이 지지했던 신멜서스주의는 사회의 부양능력을 초과하는 과잉인구가 빈곤을 초래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현실적인 문제와도 결부됐는데, 당시 스웨덴은 소득이 높은 계층이 낮은 출산율을 보이는 반면 소득이 낮은 계층에서는 높은 출산율을 나타내는 구조였다. 이에 좌파들은 저소득층의 빈곤에 대한 부담을 낮추기 위해 산아제한정책을 지지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인구 규모와 상관없이 중요한 것은 생산과 분배에 대한 사회구조에 있다는, 좌파 고유의 세계관 역시 신멜서스주의를 수용한 큰 이유였다.

4) 멜서스는 인구를 억제하는 적극적 요소(전쟁과 재난 등)와 예방적 요소(피임 등)가 있다고 설명한다. 산아제한이라는 목표로 가는 과정에서 멜서스주의가 적극적 요소에 대한 완화조치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방식(가난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사회적 보호가 사라지면 인구는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으로 주장한다면, 신멜서스주의는 예방적 요소에 주목해서 인구를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뮈르달 부부는 둘 모두에 반대했다. 먼저 저출생 원인은 개인의 도덕성이 아니라 사회구조의 변화에 있다고 규정했다. 산업화 이후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 자녀양육에 대한 경제적 어려움 등이 저출생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수주의자들이 말하는 피임 금지나 도덕성 회복은 대안이 될 수 없다. 또한 출산율 저하가 소비와 생산을 축소하면서 사회 전반이 축소하게 될 것이라 예견했다. 그렇기 때문에 좌파들이 말하는 산아제한정책은 결과적으로 그들이 대변하고자 하는 저소득층 삶의 토대가 되는 사회시스템 자체를 흔들 것이라 단언했다. 이렇게 두 입장을 모두 비판한 뒤, 뮈르달 부부는 국가 인구정책의 필요성을 설파하고 ‘자발적 부모 되기’로 대표되는 대안을 제시했다.

 

뮈르달 부부는 저출생 현상이 개인의 이익(자녀를 갖지 않음으로서 발생하는 생활여건 개선과 여유 등)과 사회적 이익(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이 충돌하며 갈등하고 있는 구조라는 것을 냉정하고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국가는 사회적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인구정책을 발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러한 인구정책이 민주적 규범과 자유주의적 질서를 침해해선 안 된다는 단서를 붙였다. 자녀 출산은 개개인들의 자발적 선택이어야 하지, 국가가 강요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국가는 부모가 되려고 하는 개인의 자유 역시 보장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친다. 이런 관점에서 출산을 원하는 개인들의 경제적•사회적 양육부담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사회적 양육’에 대한 정책 수립이 가능해진 것이다.

 

스웨덴식 해법 : 복지국가로 사회개혁

 

뮈르달 부부가 제시한 저출생 현상에 대한 해법은 ‘사회개혁’이었다. 현금 지원, 다자녀가구에 대한 세금 혜택 등 단편적인 출산장려정책은 잠시 동안 긍정적인 효과를 보일 순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보조금 정책이 아니라, 소득이 각기 다른 가정들 사이의 자녀양육부담에 대한 급진적인 재분배 정책을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녀 양육 전반을 국가-기업-개인이 나누어 책임지는 ‘양육의 사회화’를 통해, 자녀출산과 양육에 대한 개인 부담을 대폭 줄이자는 발상이다.

 

구체적으로는 모든 아동에 대한 무상의료, 무상 점심 급식, 무상교육, 공공유아원와 탁아소 및 유치원, 방과후 교실의 질적 향상과 무상제공, 출산에 필요한 비용의 국가 지급 등이다. 전 세계에서 스웨덴이 가장 먼저 시행했고, 90%에 육박하는 소득대체율을 자랑하는 대표정책인 부모보험(육아휴직)도 있다. 현행 가족정책에선 육아휴직이 480일인데, 부모 중 어느 한 명은 의무적으로 3개월을 사용하도록 단서를 달았고, 반반을 나눠 사용하면 보너스를 인정하면서 실질 사용률을 높이도록 하고 있다. 저출생에 대한 스웨덴식 처방이란 소득격차에 따른 자녀양육에 대한 불평등 구조를 완화하면서, 여성의 노동시장에서 경력단절과 유리천장 문제를 해소하는 방식을 말한다. 그야말로 당시의 사회시스템 전반을 뜯어 고친 것이다.

 

그럼에도 스웨덴 정부의 공식입장은 출산율에 국가가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처럼 자유주의적 전통이 강한 나라들이 일반적으로 출산율에 국가가 개입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는데, 스웨덴의 국가철학 역시 비슷하다. 실질적으로 출산율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들을 광범위하게 펼치더라도, 그 철학적 기조가 자녀 출산에 대한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한다는 관점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아이를 많이 낳게 하기 위한 목적의 정책이 아니라, 아이를 낳고자 하는 개인들이 차별받지 않고 평등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의미다. 이렇게 ‘모든 아이는 모두의 아이’라는 관점으로 구성된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은 약 반세기 동안 출산율을 큰 폭으로 증가시켰다고 평가받는다. 그 정점인 1990년에는 합계출산율이 2.13명까지 치솟았다.

 

프랑스식 해법 : 공화국 시민으로서 권리보장

 

이번엔 스웨덴과 함께 저출생을 극복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프랑스를 살펴보자. 프랑스는 국가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이라는 점에서 출산율 추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합계출산율을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에 꽤 만족스러워하는 국민정서를 보인다. 프랑스의 광범위하고 다양한 가족 정책에 대해, “우리는 이만큼 가족과 개인을 존중하는 공동체를 만들었다”는 일종의 자부심도 가지고 있다.

 

프랑스 가족 정책은 크게 두 가지 특징을 가지는데, 첫째는 압도적인 가족분야 공공지출이다. 프랑스는 GDP 대비 3.5~4%에 육박하는 예산을 가족정책으로 지출하고 있다. 스웨덴 역시 가족분야 공공지출이 GDP의 3.4% 수준으로 매우 높은 편이지만, OECD 1등은 단연 프랑스다. 이러한 막대한 예산을 통해 다층으로 구성된 가족수당을 지급하고 있는데. 2021년 기준으로 프랑스의 가족수당은 그 종류가 9가지나 된다. 2004년부터 일관적으로 통합한 ‘아기맞이 지원금’ 체계를 보면, 출산장려금(입양장려금), 기초수당, 육아휴직, 출산 시 필요한 의료비와 검사비 지원, 자녀교육보조금 지원, 보육시설 지원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녀 출산 및 양육을 국가가 책임지고 있다. 자녀 출산과 양육에 드는 비용을 사회가 최대한 부담한다는 취지다.

 

두 번째 특징은 공화국 시민에 대한 국가의 의무라는 관점인데, 이 부분이 다른 국가들과 약간의 차별지점이다. 프랑스는 ‘공화국’에 대한 자부심이 역사적으로 유별난 나라다. 정책 성향에서도 공화국 시민으로서 대우받아야할 당연한 권리로서 자녀 출산과 양육에 대응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 이는 출신이나 배경의 격차를 최소화하고 다양성에 기초하면서 ‘프랑스 공화국 시민’이라는 공통점을 기반으로 국가 정책을 펼친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프랑스는 자녀 출산 및 양육 정책에서 입양을 차별하지 않는다. 성인 이전의 유소년을 입양하면 출산장려금과 똑같은 지원을 받고, 비혼(사실혼) 관계의 커플도 기혼 부부와 같은 조건에서 지원을 받는다.

 

보호출산제(독일에서는 신뢰출산제)도 비슷하게 해석할 수 있다. 1941년부터 도입한 프랑스의 보호출산제는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아이를 임신한 프랑스 여성들의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였다. 생모가 본인 신상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고 싶고 육아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영아를 남겨둔 채 의료기관을 떠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출산 전 익명 출산을 요구하면 입원비와 출산비를 국가에서 지원해준다. 이후 영아는 생모의 입양승낙 이후 아동보호시설로 옮겨져 국가가 후견한다. 2개월 경과 시 입양절차를 밟지만 그 이전에 생모가 입양 의사를 철회하고 아이를 데려가 양육할 수도 있다. 프랑스에선 이러한 보호출산제를 통해 연간 약 600명의 아이들이 태어나고 있는데, 어떻게 태어난 아이든 공화국 시민이기 때문에 출산과 양육 책임이 생모가 아니라 국가에 있다고 바라보는 관점을 발견할 수 있다.5)

5) 한국은 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10년(2013~22년) 동안 영아살해는 85건, 영아유기는 1185건 발생했다. 매년 8명이 넘는 아기들이 살해되고, 100명이 넘는 아기들이 유기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프랑스는 1939년부터 꾸준히 출산과 양육에 대한 일관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그래서인지 합계출산율의 변동추이가 1.5에서 2.0 사이로 꽤 안정적인 편이다. 단순히 출산과 양육에 대한 큰 규모의 현금 지원을 그 비결로 보긴 어렵다. 정책 이전의 국가 철학과 관점이 핵심이다. 전체적인 방향성 없이 지원책만 난무한다고 평가 받는 한국의 인구정책에서 충분히 배워야할 지점이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결론에 도달하기 위한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그래서 스웨덴과 프랑스는 현 시점 인구위기를 해결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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