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인의 인구위기 부수기] 1장 인구위기 공포마케팅 ①

공식 관리자
2024-12-12
조회수 236


1장 인구위기 공포마케팅 ①

 

“Korea is so screwed. Wow!(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0.78명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조앤 윌리엄스(캘리포니아대 법대 명예교수)가 두 손으로 머리를 쥐며 대한민국이 망했다고 말하는 장면은 일종의 밈(Internet meme)이 됐다. 2300년 즈음이면 대한민국 인구가 0으로 수렴하고 국가와 사회 자체가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저출생 현상을 다루는 주요 표현 중 하나는 “대한민국이 소멸한다”이다. 인구감소라는 “사회적 자살”을 막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망하지 않았고, 망하지도 않을 것이다. 인구감소는 공포가 아니라 현실이자 일상일 뿐이다. 저출생-초고령 사회도 나쁘게만 볼 일이 아니다. 인구위기를 두려워하기보다 차분하게 또 합리적으로 바라보자. 그리고 ‘인구증가’가 아닌 다른 대안을 상상해보자.

 

 

“국가의 밤이 되었네. 싱가포르의 출생률을 끌어올려 보세”

 

실제로 싱가포르 정부가 만든 노래의 가사다. 저출생을 극복하겠다는 절박함이 오죽 컸으면 이런 노래까지 만들어 보급했을까. 이 뿐만이 아니다. 싱가포르 정부는 ‘국가의 밤’을 지정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며 안정적이고 헌신적이며 장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남녀 성인들에게 잉태를 위한 관계를 맺을 것을 촉구하는 밤”을 만들어 홍보했다.1) 케겔 운동이 저출생 극복방안이라는 어느 서울시 의원의 대책만큼이나 참신(?)하다.2) 그럼에도 효과는 없었다. 심지어 싱가포르는 낙태 혹은 불임 시술을 원할 경우 상담을 의무적으로 받게 하는 등 극단적인 방안까지 도입했지만, 2023년 합계출산율3)은 0.97명에 불과했다.


1) <축소되는 세계> 앨런 말라흐

2) 2024년 김용호 서울시 의원(국민의힘)은 괄약근에 힘을 조이는 ‘케겔 운동’이 저출생 극복을 위한 체조라며 서울시 본회의에서 소개한 것으로 화제가 됐다.

3) 개념적 정의에선 ‘저출생’, 통계적 서술에선 ‘출산율’ 용어를 사용했다. ‘저출산’은 아이를 낳는 주체인 여성의 책임성을 지목하는 부당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적절한 용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인구 구조에 대한 적확한 문제인식을 위해선 가임여성이 얼마나 아이를 출산하는지를 알기 위한 ‘출산율’를 파악해야 한다. 예를 들면 인구정책 수립을 위해선 가임여성의 연령대별 출산율도, 지역별 출산율도 추산해야 한다. 이에 여성 한 명이 가임기간(15세-49세)에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 등의 단어를 사용한다는 점을 밝힌다.

 

0.72. 한국은 그보다 낮은 세계 최저 수준의 합계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다. 통계청은 장래인구추계에서 2024년 합계출산율을 0.6명대로 전망했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2015년(1.24명) 이후 꾸준히 8년째 하락세다. 2016년 40만 6천 200명이던 연간 출생아 수는 2022년 24만 9천 200명까지 내려갔다. 저출생 현상을 해결해야 한다는 그 절박함이 싱가포르 정부 못지않을 수 없다.

 

대통령까지 나섰다. 2024년 6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 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공식선언했다. “저출생 문제를 극복할 때까지 범국가적 총력 대응체계를 가동하겠다”며, 2030년 합계출산율 1명이라는 구체적인 목표와 여러 정책들을 제시하기도 했다. 언론과 미디어는 앞다투어 인구위기를 해결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고 말하고, 유튜브와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대한민국이 인구감소로 인해 소멸될 것이라 호들갑을 떤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저출생-초고령 사회, 인구감소를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는 소멸의 길로 들어서는 것일까?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고 싶었다. 보다 정확히는 우리가 처한 인구위기의 대안으로 ‘인구증가’만을 언급하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다양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다양한 대안들을 고민하기보다 ‘인구가 감소하니까 인구를 증가시키면 된다’, ‘아이를 안 낳으니 아이만 많이 낳게 하면 된다’는 단순한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어쩌면 진짜 문제는 아이가 사라지고 노인이 많아지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시대가 가져올 위기에 대한 해법과 대안으로 ‘인구증가’만을 제안하는 정치와 사회가 아닐까.

 

인구위기는 인구감소와 인구 구조변화라는 두 가지 현상을 의미한다. 인구감소는 말 그대로 국가 전체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고, 인구 구조변화는 저출생과 더불어 초고령 시대가 함께 온다는 것이다4). 그런데 이 자체만 보면 문제라고 규정하기 어렵다. 사람 수가 적어지는 것이 국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노인은 많아지는데 아이가 적은 시대가 어떤 사회적 문제의 원인이 되는지 함께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요인이 미미하거나, 합계출산율을 올리는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그 부정적 영향을 해결할 수 있다면 인구위기를 바라보는 관점은 달라질 수 있다.


4)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은 2001년 65세 이상 비율 7.2%로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데 이어 2018년 14.4%로 '고령 사회', 2025년 20.6%로 초고령 사회에 들어선다.

 

인구감소, ‘공포’에 앞선 ‘합리적 관점’

 

먼저 근본적인 질문부터 시작해보자. ‘인구감소’는 확실한 미래인가? 정답은 ‘누구도 확실하게 장담할 순 없다’이다. 물론 지금 ‘이대로’라면 인구감소는 피할 수 없는 예정된 길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이대로’가 절대불변의 조건일까? 오히려 ‘이대로’가 아닐 가능성이 높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인구를 예측하는 것은 불확실하고 어려운 일이다. 미디어가 말하는 극단적 인구감소와 소멸로 진입한다는 전망은 앞으로 30년 동안 0.7명대라는 저출생 국면을 지금의 청년세대와 그 다음 청년세대가 아무런 변수 없이 꾸준히 유지한다는 가정에서 비롯한다. 그러나 불과 30년 전으로 시계를 되돌려보면, 1990년대 한국정부는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는 표어를 내세우며 산아제한정책을 펼쳤다. 5)30년 전과 지금이 이렇게나 다른데, 앞으로 30년 후가 얼마나 다를지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5 )한국 정부는 1996년 공식적으로 산아제한정책을 종료하고, 인구정책의 목표를 '인구 자질 및 복지 증진'으로 변경했다.


통계와 수치를 기반으로 한 과학적 예측이 무의미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인구 그래프의 경향성 자체가 꾸준히 저출생을 가리키고 있으며, 의료 발전과 복지의 확대로 기대수명이 증가하면서 저출생-초고령 사회를 맞이한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언제나 변수는 존재한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코로나19가 우리 사회의 많은 풍경을 바꾼 것처럼, 언제 어디서 어떠한 변수가 생길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그리고 그 변수는 우리가 예상했던 미래를 더 많이 달라지게 할 것이다. 비극적으로 전쟁과 재해가 있을 수 있다. 기술과 과학의 발전으로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인구에 대한 새로운 전제와 가정이 생길 수도 있다. 대한민국 인구감소와 무관하게 22세기까지 지구 총 인구수는 112억까지 증가6)할 예정인데, 이 과정에서 국경의 장벽이 더 낮아지면서 국가 단위의 인구수 중요성이 낮아질 수도 있다. 아무런 ‘변수 없이’ ‘이대로’ 인구감소가 지속될 것인지, 혹은 인구감소가 미치는 부정적 요인이 작아질지 커질지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6) <인구감소는 위험하다는 착각> 우치다 다쓰루 


반대로 확실한 예측이 존재한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출생아 수를 예측하고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태어난 출생아 수를 기준으로 미래를 전망하고 준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2022년에 태어난 약 24만 명의 출생아 중 다수는 18년이 지나면 성인이 될 것이다. 그들이 사회의 핵심 구성원 -더 정확히는 노동인구- 이 되어 살아갈 18년 후 미래 사회의 노동과 교육, 복지 시스템이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는 충분히 전망하고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불확실한 예측 통계를 바라보며 합계출산율을 올리려고 집착하는 것보다, 이미 태어난 출생아 수를 기준으로 미래 사회를 설계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대안이다.

 

두 번째 질문이다. ‘인구감소’는 대한민국만의 현상인가?

 

모든 선진국은 인구감소를 경험한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22년 출생 통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합계출산율은 1.58명이다. 해당 통계에서 이스라엘(합계출산율 3.0명)7)을 제외하곤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 필요한 수치라는 대체출산수준 2.1명을 넘는 선진국이 없다. 또한 국제적 차원에서도 인도와 파키스탄, 아프리카 몇몇 국가들을 제외하면 현 시점 인구 증가세 국가는 거의 없다.8) 게다가 이 국가들 역시 22세기가 되면 인구감소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인구감소’는 시기의 문제일 뿐, 모든 국가가 경험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7) 이스라엘의 경우 전통적-종교적 세계관의 유지가 합계출산율이 높은 이유의 핵심 원인으로 보인다. 

8) 우치다 다쓰루의 <인구감소는 위험하다는 착각>에 의하면 인구증가세인 나라는 다음과 같다. 인도(3.2억 명), 나이지리아(2.2억 명), 콩고민주공화국(1.2억 명), 파키스탄(1.1억 명), 에티오피아(9천만 명), 탄자니아(8천만 명), 미국(7천만 명), 인도네시아(6천만 명), 우간다(6천만 명)


이렇게 보면 인구감소는 받아들일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오히려 한국은 인구감소를 상대적으로 먼저 경험하고 있다는 조건을 활용해 차분하게 대안을 준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여건이라 규정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한국의 저출생 현상으로 인한 인구감소 국면이 지나치게 ‘급격’하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급격한 인구감소를 완충적으로 만들기 위한 과도기적 정책을 논의하는 것과 ‘5천만 대한민국’을 유지하기 위해 합계출산율을 올리자는 주장은 전혀 성격이 다르다. 중요한 것은 한국 사회를 인구수가 얼마가 됐든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드는 것이지 ‘5천만’이라는 인구수 현상유지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다.

 

설사 꾸준히 인구가 감소하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보자. 2060-70년에 대한민국은 인구수가 3300만 명까지 낮아지고 그 중 절반 가까이는 고령인구(65세 이상)라는 전제다. 그럼에도 그것이 ‘사회’로서 기능할 수 없는 수준의 조건일까? 아닐 수 있고, 아니게 만들 수 있다. 인구는 사회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는 인구에 더해 규범과 질서, 윤리와 도덕, 기업과 시장, 법과 제도, 정치 등 다양한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다양한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하면서 사회가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것이다. 인구수를 다른 조건들에 끼워 맞추겠다는 발상이 가능한 것처럼, 반대로 인구를 제외한 다른 조건들을 변화시킴으로서 사회를 재구성하는 방법 역시 가능하다. 어느 쪽이 더 나은 대안인지, 혹은 가능한 대안인지는 충분히 사회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영역이다.

 

세 번째 질문이다. 정부의 인구정책이 ‘인구감소’ 자체를 인위적으로 막아낼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전문가들이 말하는 5천만 대한민국이 지속가능하기 위해 필요한 합계출산율 수치인 2.1명을 회복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현 정부의 목표라는 2030년 합계출산율 1명을 달성해도 이후 2배를 넘게 올려야 한다. 기적적으로 합계출산율 2.1명대를 회복한다고 해도 2040년 즈음일 것이다. 그렇다 해도 저출생 시기인 2010~2040년 사이에 태어난 출생아들이 성인이 되는 2040년부터 맞이할 과도적인 저출생-고령사회를 온전히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과도기이던 장기적 현상이건, 인구감소사회를 준비해야 하는 것은 어떠한 경우의 수에도 피할 수 없는 과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인구감소에 대한 해답의 중점으로 인구증가를 제안하는 것보다, 인구감소사회를 준비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방안이 아닐까. 최소한 장기적 방향성으로 인구증가에 동의하더라도, 중단기적 관점에서 인구감소사회를 대비하는 투 트랙 전략이 병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구감소사회는 5천만 인구에 맞추어 구성된 현재의 대한민국 사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어야 할 것이다. 당장 시민들의 삶과 가장 맞닿아 있는 노동시장이 변화해야 하고, 교육과 복지, 의료와 병역 등 거의 모든 사회영역에서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를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사회 전반의 재설계를 위한 논의에 돌입해야 한다.

 

5천만 인구수를 복원한다는 대안이 현재 대한민국 사회를 현상 유지하는 방향이라면, 한국사회가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여전히 불공정 국가의 연속일 뿐이고, 불평등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역시 불평등 사회의 반복일 뿐이다. 그것은 결코 좋은 미래가 아니고, 다음 세대에게 책임감 있는 태도도 아니다. 우리가 마주한 인구위기는 어쩌면 불공정-불평등으로 대표되는 사회 부정의로 얼룩진 한국사회를 긍정적으로 바꿔낼 수 있는 기회이자 계기일 수 있다.

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