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일기_1] 서점지기의 하나마나한 정치이야기_ 우리 서점을 소개합니다.

공식 관리자
2023-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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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일기_1] 정치·사회전문서점 서점지기의 하나마나한 정치이야기


우리 서점을 소개합니다.


 “이번 과정의 핵심은 87년 이후 형성된 한국 정당의 세계관을 벗어나, 새로운 세계관을 가진 정치세력의 등장을……”


발제자의 도발적인 주장에 열띤 토론과 질문이 반복된다. 공간을 가득 메운 참여자들의 열기가 카운터 너머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 순간 감도는 긴장의 공기는 커피 잔의 물때를 닦아낼 때 만 허락된다는 희열의 ‘뽀드득’ 소리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세상사람 모두가 두려워한다는 월요일 밤이지만, 참여자들의 얼굴에 서린 열기와 비장함엔 흐트러짐이 없다.


물론 매사 이렇게 뜨겁기 만한 것은 아니다.


소위 ‘힙’하다는 카페와 상점이 즐비하고, 멋지게 차려입은 젊은이들로 가득한 ‘핫’플레이스. 하지만 ‘힙’과 ‘젊음’이 만들어 낸 시너지, 즉 거리의 ‘핫'함조차 맥을 못 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렇다. 왼손은 거들 뿐. 거리에 사람이 넘친다고, 사람이 많이 오는 것은 아니다. 그리하여 뜨거운 거리의 열기를 비웃기라도 하듯 태생적 도도함을 잃지 않는 공간. 창밖의 인산인해를 바라보며 외딴 섬을 떠올리게 하는 차가운 이성의 공간. 그렇게 뜨거움과 차디찬 도도함이 넘쳐흐르는 곳.


여기, 내가 있는 곳은 정치·사회분야 전문 서점이다.


독립서점을 한다고 하면, 누구나가 상상하는 낭만이 있다. 취향이 담긴 공간과 책들, 거기에 커피 향 한 스푼을 얹으면 공상적 낭만은 극대화 된다. 하지만 자영업의 숙명적 사투가 가장 치열하게 벌어지는 전장 중 하나가 이 업계라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래도 요즘은 취향의 시대니까, 독립서점도 한 분야에 집중하면 잘 될 거야. 그게 요즘 ‘트렌드’지.”라며 인사치레를 하던 저명한 마케팅 전문가조차, “저흰 정치사회 분야 전문입니다.”라는 나의 대답에 눈을 피하며 고개를 돌렸다.


하물며 서점에는 손님들이 찾는 책이 없다. ‘정치·사회 전문 서점’이라는 간판을 보고 들어온 연식 있는 분들은, 소싯적 ‘사회과학서점’을 떠올리며 “우리 때와는 참 많이 다르네.”를 연발한다. 진영을 막론한 극성 정치 팬들은 “정치서점이라면서 왜 우리 000의 책이 없느냐?”며 따져 묻는다. 굳이 변명하자면 ‘혁명’적 변화보다, 느리지만 오래가는 ‘민주주의’의 방식 이야말로 시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는 ‘복음’을 전하고자 하기 때문이고, 상대에 대한 ‘악마화’를 자양분으로 한 작금의 진영싸움이 ‘정치’라는 신성한 이름으로 자행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쇠한 정치 ‘고관여층’, ‘팬덤지지자’ 그리고 뜨거운 거리의 ‘힙스터’들이 몰려들지 않는다 해서 고객이 마냥 없는 것은 아니다. 정치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며 찾아온 청소년, 세상의 변화에 맞춰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늘 고민하고 실천하는 중년의 직장인. 정치를 공부하고 있는 정치학도 부터 정치와 행정을 업으로 살아가는 국회의원과 관료들. 정치, 사회문제를 다루는 기자, 시민단체 활동가. 소수 진보정당의 미래를 고민하는 당원들의 모임은 물론 한국 보수의 나아갈 길을 걱정하는 보수당원까지. 이념과 진영을 떠나 좋은 정치가 공동체와 시민의 삶을 개선시킬 수 있다고 믿는 다양한 계층의 이웃이 바로 서점의 고객이다.


그리하여 서점은 다원적 구성이 갖는 평화적 효과를 톡톡히 누린다. 같은 정당,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만 모여 있는 공간이었다면, 조롱의 언어와 거친 언사들로 인해, 오히려 평화롭지도, 흥미롭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이 서점엔 ‘진상’도 없다. 정치에서 최고의 ‘진상’은 막무가내 목소리가 큰 자다. 식당이 떠나가라 “전두환 때는 말이야”를 시전 하는 아저씨나, 가족모임에서 “문재인이가 말이야”를 외치는 고모부를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바야흐로 ‘정치’가 나빠진 것을 넘어 ‘정치’가 실종된 시대


서점일기를 써보기로 했다. 주제넘게 정치평론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고 그럴 능력도 없다. 가방 끈이 긴 것도 아니라 글을 제대로 써 본 적도 없다. 그래서 분명 하나마나한 이야기만 늘어놓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 결심이 얼마나 갈지도 장담할 수 없다. 그저 서점에서 느끼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서점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백하게 쓰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뇌리를 스쳤다. ‘정치’가 실종된 시대. 실종된 정치를 찾아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하는 이 서점의 운명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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