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ivew] 상대를 절멸하고픈 욕망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지침서_이재랑(정치발전소 회원 / 전 정의당 대변인)

공식 관리자
2024-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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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의 독재>: 상대를 절멸하고픈 욕망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지침서


상대를 절멸하고픈 욕망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지침서


이재랑(정치발전소 회원 / 전 정의당 대변인)


어릴 적 울산에서 만난 한 노동자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정치인이 ‘박정희’와 ‘권영길’이라고 했다. 두 사람 모두 “진정으로 서민을 위한 정치를 했기 때문”이랬다. 당시 진보 정당원이었던 나로서는 그 말이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노조 활동가가 그 둘을 함께 좋아한다는 건 내가 배운 진보의 ‘상식’에 반했던 까닭이다. 허나 그에게 그 말은 이상할 것이 없었다. 자신이 생을 바쳐 이룩한 ‘산업화’와 ‘민주화(노동자 대투쟁)’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고 그 과정을 함께한 정치인들이 바로 그 둘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술자리에서 ‘박정희 공칠과삼론’을 떠들곤 했다. 물론 술자리 담론이 으레 그렇듯 이 얘긴 곧 서로 간의 고성으로 이어지곤 했는데, 주로 ‘진보’이던 친구들의 ‘버튼’을 누른 까닭이다. 그러나 그들의 격렬한 반박으로도 허전함은 전부 메워지지 않았다. 보수의 상식으로도, 진보의 상식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그의 말이 사실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진짜 힘이 아니었을까. ‘진보’의 말이 어딘가 어그러져 보일 때면, 나는 그의 말을 종종 떠올리곤 했다.


*


대한민국은 진작 망해야 했다. 보수파들에게 이 나라는 나라 망하라고 기원하는 좌익 세력들이 득시글한 곳이고, 진보파들에게 이 나라는 청산되지 않은 친일파들이 여전히 칼을 휘두르며 사회 불평등을 키우는 곳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망하기는커녕 세계 속에서 그 영향력을 더욱 키우고 있다. '식민지에서 선진국으로 등극한 유일한 나라'라는, 우리로선 별 감흥없는 평가는 오늘날 한국인들이 누리는 생활 수준에서 구체화되어 있다.


한윤형의 <상식의 독재>(이하 같은 책)는, 여러 망국론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한 불가사의한 대한민국을 설명하는 데 치열한 공력을 들이고 있다. 저자가 공을 들여 분석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특수성이다. 실제 수많은 사회적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 사회에 "'어떤 처방'이 필요한지를 논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특성과 건강 상태를 알아야(p.15)"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한국적 삶'의 명과 암을 동시에 규정하는 핵심적인 속성을 '주류·표준·평균에 속한 이에게 제공되는 엄청난 편의성, 그리고 그 바깥 다양한 삶의 양태에 대한 철저한 무신경함'이라고 정의(p.25)"한다. 더 나아가 이를 '상식'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우리의 규율을 따르지 않는 자들을 '다름'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비상식적'이고 '비도덕적'인 것으로 배제하는 사회. 바로 한국은 이러한 "상식이 지배하는 나라이며 한국적 삶의 특징은 이러한 상식의 지배로부터 도출된다(p.28)."


어떤 이들은 여기서 한국 사회의 '명'만을 읽고, 어떤 이들은 '암'만을 읽는다. 그리고 내 진영의 상식이 상대 진영의 ‘몰상식’을 몰아내고 ‘독재’를 하는 세상을 위해 끝없이 투쟁한다. 근래 몇십 년간 이어진 한국 사회의 정치적 혼란이 이를 방증한다. 이러한 한국의 특수성은 어디서 비롯한 것일까. 이를 위해 저자는 방대한 철학, 문화, 경제, 역사적 개념과 사례를 들어 서사를 쌓아 올린다.


책의 서사는 다소 거칠지만, 충분히 매력적이다. 책은 현대 한국을 설명하기 위해 역사를 종횡하며 전근대와 현대의 한국을 이어나간다. 저자가 추적하는 한국의 ‘역사성’을 따라가다 보면, 식민지에서 민주주의 선진국으로 이어진 한국 사회의 발전을 단순히 ‘일제, 미국의 수혜’나 ‘국민을 개조한 박정희의 등장’, ‘수구독재권력을 심판한 민주화 세력’의 성과만으로 설명하는 것이 얼마나 얄팍한지 보여준다. 오늘의 모습에는 우리가 자주 폄훼하고 자조하는 과거의 역사가 적지 않은 몫을 했음을 여러 사례를 들어 논증함으로써, 각 진영의 ‘상식’을 부단히 해체한다.


다소 논쟁적일 수 있는 역사 해석을 통해 책이 나아가는 곳은 그리하여 ‘결여’의 망국론을 논파하고 한국 사회에 맞는 문제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한국에는 미국에 있는 무언가가 없어서, 유럽에 있는 무언가가 없어서, 일본에 있는 무언가가 없어서 망한다는 논리로 구성"된 ‘결여’의 망국론들은 그것을 채우기만 하면 한국 사회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오진'을 내렸다. 그러나 한국은 그들처럼 흥하거나 망하지 않았고, 또 그들의 해법대로 한국의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보수의 상식도, 진보의 상식도 제대로 된 문제 해결책으로 작동하지 못했다.


“박정희의 중화학공업은 긍정했지만 유신은 부정했던 사람들이, 학생운동권의 민주화운동은 긍정했지만 북한 혹은 사회주의 추종은 부정했던 사람들이, 양대 당파의 입장에서 보면 ‘일관성이 없는 그 사람들’이 한국 사회의 균형추를 잡아 왔다(p.493).” 저자는 이처럼 대한민국의 성취와 한계를 균형 있게 직시하는 ‘상식’의 복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상식을 참칭하는 극단 세력들을 양쪽으로 밀고, ‘상식 아닌 상식’이 득세하는 데 분개하는 다수파들이 한 축을 담당하는 ‘상식삼분지계’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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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대한 문제의식에 비해 결론의 부피가 다소 작다는 느낌이 없지 않다. 그러나 책에 담긴 논쟁적인 서사를 좇아가는 것만으로 이미 충만한 통찰을 제공한다. 내용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한국 사회에 대한 사고의 깊이를 키운다는 점에서 책의 가치는 차고 넘친다.


개인적으로는 오랫동안 허전했던 부분을 이 책을 통해 메워 넣은 느낌이다. 진보의 ‘상식’에 대한 어렴풋한 회의감이 이 책을 만나 드디어 언어를 찾게 되었다. 이를 총론으로 정리한 저자의 치열한 노력이 없었다면, 어디 술자리에서나 흩어질 생각이었다. 책을 읽으며 어릴 적 기억이 자주 떠올랐다. 산업화에 대한 늙은 노동자의 자부심을 눈앞에서 부정해야 했던, 어린 진보주의자로서의 당혹스러움을 이제야 조금은 해소한 것 같다.


‘대한민국’은 적어도 이 정도의 공력을 들여 분석할 만한 가치는 있는 나라이다. 그리고 이 시도는 망국의 위기 앞에 놓인 한국이 이제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어렴풋하게나마 밝히고 있다. “망국의 위기 앞에서 대한민국을 변호하다”라는 부제는 그리하여 한국에 사는 우리의 삶을 변호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양 진영의 갈등이 사회 분열을 촉진하는 지금, 공동체의 복원을 말하는 이 책은 그래서 소중하다. 이 책이 나와주어 ‘한국인’으로서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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