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 정치 개념적 위상과 기원에 대한 문제

공식 관리자
2025-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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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형 박사가 박상훈 정치학자의 『혐오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긴 서평을 작성했다. 이 책의 내용을 소개하면서도 몇 가지 부분에 대한 이견을 표시하기도 했다. 이 긴 서평은 이미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 게재된 글이지만 정치발전소 회원들에게도 더 많이 읽혔으면 하는 마음에 2회에 걸쳐 공유한다. - 정치발전소

팬덤 정치 개념적 위상과 기원에 대한 문제

『혐오하는 민주주의, 팬덤 정치란 무엇이고 왜 문제인가』 서평 ⓶


박수형(<운동은 이렇게> 역자)


5. 팬덤 정치 개념적 위상의 문제

『혐민』을 읽고 나면, 책의 부제대로 팬덤 정치가 무엇이고 왜 문제인지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여기에 더해 학창 시절 교과서로만 배우고 쉽게 흘려버린 정당, 의회, 민주주의가 눈앞의 현실 정치 속에서 어떤 역할과 의미를 갖는지, 왜 기대대로 작동하지 않는지, 어떻게 하면 개선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일반의 상식과 편견을 깨는 깊이 있는 답을 얻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책에 담긴 몇 가지 아쉽거나 의아한 주장에 대해서는 의견을 남기고 싶다. 물론 이것은 책에 제시된 주요 주장에 대한 반박이라기보다 같은 관점에서 팬덤 정치와 관련된 우리 정치 문제에 대한 이해와 논의를 더욱 진전시키기 위한 시도이며, 그렇게 봐주면 좋겠다.

첫 번째는 팬덤 정치의 개념적 위상과 관련된 것이다. 저자는 팬덤 정치를 “정치 양극화나 포퓰리즘 정치의 한국적 유형”이라 말한다. 그러면서 전자를 후자와 같은 것으로 보는 일반화의 오류와 전자의 특성에만 주목하는 개별화의 오류 모두를 경계하며, 양자 간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구분한다. 공통점은 분노․적대․혐오의 대중 정서 자극, 공유 가능한 사실 기반의 축소, 공존과 타협을 부정하는 반(反)정치성 등이다. 차이점은 서구 포퓰리즘과 달리 한국의 팬덤 정치는 이념이나 정책 지향이 불분명하고, 지지 기반도 중상층에 있으며, 주도하는 정당도 제3당이 아닌 기성 정당인 데다 정당 간 경쟁보다 당내 갈등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렇듯 현상을 개념으로 포착하며 개념 간 비교에서 유의할 점과 유사 개념들 간의 공통점․차이점을 밝힌 주장은 기본적으로 타당하지만, 그 논리에 다소간의 공백과 비약이 보인다. 우선 이 논의에서는 포퓰리즘에 대한 정의를 찾아볼 수 없다(편의상 정치 양극화 논의는 생략하겠다). 팬덤 정치를 포퓰리즘의 한국적 유형, 즉 한국적 특성을 지닌 포퓰리즘의 하위 유형이라 규정했음에도 상위 개념으로서의 포퓰리즘에 대한 정의가 빠져 있다면, 우리는 팬덤 정치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쉽게 말하자면, 푸들, 진돗개, 리트리버 중에 어떤 강아지를 키울지 잘 선택하려면, 견종들 간의 차이 못지않게 애완견 일반에 대한 이해도 중요한데 그 애완견에 대한 정의가 없다는 것이다.

포퓰리즘에 대한 정의는 꽤나 많고 여전히 논쟁 중이지만, 여기서는 학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두 가지 정의를 소개하는 것으로도 충분할 듯싶다. 하나는 이념 내지 아이디어를 중심에 두는 정의로, 포퓰리즘이란 “사회가 궁극적으로 상호 적대적인 두 개의 집단, 즉 ‘순수한 인민’과 ‘타락한 엘리트’로 나뉘어져 있다 여기며, 정치는 인민의 일반 의지의 표현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중심이 얇은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무데․칼트바서 2019). 다른 하나는 조직론에 기반한 정의로, “정부 권력의 획득․행사를 위해 사인주의적 리더가 대체로 조직되지 않은 다수 추종자들의 지지를 직접적이고 비매개적이며 비제도화된 방식으로 동원하는 정치 전략”이라는 것이다(Weyland 2017).

두 정의는 현상을 보는 관점과 포괄하는 범위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이지만, 상호 양립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후자의 정의에서 리더는 자기편의 결속 강화와 지지 동원을 위해 제도화된 조직적 매개체에 의존하는 대신 강렬한 적대를 불러들이는 경우가 많은데, 그 적대는 민주주의에서 흔히 주권자인 인민․시민․국민과 이들을 배신했다고 하는 엘리트 간 대립 구도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두 정의를 결합한, 개별 리더와 추종자 간의 (준)직접적․비매개적․비제도적 결속 및 그 리더와 경쟁 관계에 있는 엘리트 집단에 대한 적대의 동원은 팬덤 정치의 핵심 요소와 잘 조응한다. 또한 저자가 귀납적으로 정리한 팬덤 정치의 속성들, 정치를 “온전히 자신들 것으로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자신감 표출, 기성 정당개혁 운동, 기존 대의제를 뛰어넘는 직접 민주주의 운동도, 정치를 루소식 일반 의지의 표현으로 보는 포퓰리즘에서 쉽게 도출할 수 있고 자주 나타나는 경향적 특징들이다.

포퓰리즘과 팬덤 정치의 조응 관계를 이렇게 정리해 놓고 보면, 저자가 밝힌 양자 간 공통점과 차이점 속에 숨은 논리의 비약도 찾을 수 있다. 여기서 공통점으로 제시된 분노 등의 대중 정서 자극, 공유 사실 축소, 타협․공존 거부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은 위 정의의 핵심인 적대 동원의 다른 표현이거나 그런 활동에 수반되는 현상들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차이점은 두 개념 간의 어떤 본원적 차이라기보다 포퓰리즘이 발흥한 각 나라의 맥락적 특성이 반영된 결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즉 팬덤 정치가 포퓰리즘과 다르다고 하는, 이념․정책 지향의 불분명성, 하층 지지의 부재, 당내 갈등에서의 두드러짐은 한국 정치의 역사적, 제도적 특징에서 기인하는 부가적 차이로 봐야 한다는 말이다.

포퓰리즘은 나라 혹은 지역마다 다른 조직 형태를 띤다. 유럽에서는 신흥 정당으로, 남미에서는 독자 대선후보로 출현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에서 지금처럼 성공한 포퓰리즘은 기성 정당의 대선후보와 그에 대한 지지로 나타났다. 이렇게 포퓰리즘의 형식이 서로 다른 이유는 무엇보다 각 나라․지역의 정치제도 차이에서 찾을 수 있다. 유럽은 신생 정당의 의석 확보가 용이한 비례대표제라 그렇고, 남미는 대통령제와 함께 정당(체계)의 제도화 수준이 낮기 때문에 그렇고, 미국은 1위 대표제에 기반한 양당제에다 개방형 예비선거(프라이머리)가 더해진 탓에 정치 경력이 일천한 트럼프도 대통령직까지 오를 수 있었다. 이들과 비교할 때 한국의 팬덤 정치가 특히 당내 갈등에서 두드러진다면, 그 이유는 미국과 같은 사실상의 양당제에서 최고 권력으로 가는 길의 1차 관문이 당내 우위 확보를 통한 후보 지위 쟁취에 있기 때문이다.

포퓰리즘의 이념․정책 지향과 지지 기반도 같은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남유럽․남미에서는 시장 규제와 복지 확대로 노동자와 하층 지지를 모으려는 좌파 포퓰리즘이 뚜렷하다. 동서유럽과 미국에서는 반이민의 인종․민족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우는 중하층 기반의 우파 포퓰리즘이 두드러진다. 그 외에 이탈리아의 오성운동같이 기득권 반대를 부각시키며 이념적으로는 좌우 세력의 정책들을 절충한 중도적 입장의 포퓰리즘도 있다(Robets 2022). 이런 차이 역시 각 나라․지역에서 확립된 기성 정당 간 경쟁․담합 구도와 유권자 정렬 양상에 대응해 포퓰리스트들이 기성 정치 엘리트를 어떤 식으로 규정하고 어떤 이슈를 동원하느냐에 달려 있다. 한국의 팬덤 정치가 다른 나라와 달리 이념․정책적 지향도, 하층 지지 기반도 미약한 까닭은 자신들과 대립하는 선출직 정치인, 언론, 검찰을 기득 집단으로 규정하며 사회경제적 이슈보다 반부패, 반지역주의, 민족주의․민주주의 관련 이슈를 동원한 데서 찾을 수 있다.


6. 팬덤 정치 기원의 문제

이렇게 팬덤 정치를 한국적 특성을 갖는 포퓰리즘으로 좀 더 분명하게 규정하고 나면, 이 책에서 두 번째로 아쉽다고 느끼는 팬덤 정치의 기원에 대해서도 이견을 말할 수 있다. 저자는 언론 기사 빈도 분석을 통해 팬덤 정치가 2019년 공직선거법 개정, 공수처법 제정을 둘러싼 여야 정당 간 폭력적 충돌이라는 양극화의 맥락에서 한국 정치를 정의하는 키워드로 부상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팬덤 정치가 부상하고 부각된 원인으로 두 가지 변수를 제시한다. 하나는 대통령 뜻을 쫓는 파벌이 의회․정당 정치 영역까지 지배하는 전례 없는 대통령 중심 정치의 부상이다. 다른 하나는 대의원뿐 아니라 당원․국민에 더해 여론조사까지 포함되는 당내 경선제도 변화이다. 이런 변화로 인해 야심 찬 정치인들은 “대통령 후보가 되기 위해서도, 대통령으로서 권력 안정화를 위해서도 … 당 안팎의 여론을 쥐고 흔들 팬덤을” 필요로 하고, 그렇게 해서 친박․친문 같은 팬덤 정치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설명에는 의아한 점이 많다. 우선 저자가 말하듯 대통령이 의회․정당 정치를 압도하는 양상이 박근혜 대통령 시기 친박 현상으로 처음 나타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도 차는 있겠지만, 한국 정치는 예나 지금이나 늘 대통령 중심 정치였다. 대통령은 여당의 수장이자 당내 주류의 리더로 비서실과 행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당의 공천․정책․입법을 사실상 관장했고, 심지어 의회 내 여당이 소수파라면 인위적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다수파 지위를 회복했다. 박근혜 대통령 전에는 당내 비주류의 역할이 있었고 당정 분리 원칙도 있었다고 하지만, 그런 집단과 원칙이 대통령과 그 파벌의 뜻을 거스른 경우는 임기 후반 레임덕이나 지지율이 매우 낮은 시기가 아니면 드물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당내 경선제도 변화는 그 효과 발휘 시점에 수긍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당원 외에 일반 국민도 참여하는 경선제도가 후보들 개개인을 중심으로 대중 동원과 여론 부응에 몰두하는 팬덤 정치를 낳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당의 최고 직위이자 자원인 대선후보나 당대표 선출의 정당 경계가 무너지고 나면, 정치인들은 정당 구성원으로서 당의 권위에 순응하고 당 조직에 기여하는 방식보다 개인적․개별적 차원에서 정치적 자산과 지위를 높이기 위해 당 밖 여론을 자극하고 여론에 아첨하는 방식으로 정치 활동을 펼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이런 류의 제도가 팬덤 정치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나타나기 십수 년 전인 2002년에 ‘국민경선제’란 이름으로 처음 도입되었다는 것이다. 이 제도변화 시점에 초점을 두면, 의문을 품게 된다. 국민경선제가 도입된 2002년에는 팬덤 정치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있었다면 2002년과 2020년의 팬덤 정치는 얼마나 같고 다른지, 없었다면 왜 제도효과가 2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나타났느냐는 것이다. 『혐민』에서는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이나 답을 추론할 만한 근거를 찾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의아한 점은 앞의 문제 제기와도 관련된 것으로, 정치 양극화 및 팬덤 정치의 부상 시기에 관한 것이다. 저자는 언론 기사 빈도 분석을 통해 정치 양극화를 둘러싼 논란은 2009년과 2019년 두 차례에 걸쳐 나타났고, 팬덤 정치 논란은 두 번째 양극화와 맞물려 2020년에 부상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빈도 분석을 통해서는 국회 폭력 사태와 관련해 정치 양극화에 대한 우려와 반감이 크게 증폭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뿐 한국 정치가 언제부터 양대 진영으로 나뉘어 서로를 적대하게 되었는지 알기 어렵다. 양극화 정치가 진영 간 적대의 다른 표현이라면, 그 시작을 2004년으로 봐도 좋을 듯싶다. 이때 지금 우리에게도 익숙한 대통령 탄핵소추, 그에 반발하는 대규모 촛불 시위와 함께 총선에 의한 정당 재편이 있었고, 이를 계기로 현재까지 한국 정치를 규정하는 보수와 진보, 더 정확히 말하면 (시대착오적으로 보이는)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 간 대립 구도가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분석에는 2002년 국민경선제 도입과 함께 출현해 최초의 팬덤 정치로 알려진 ‘노사모’에 대한 고려도 빠져 있다. 물론 노사모는 현재의 팬덤 정치처럼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성격을 띠지 않는 다른 종류의 정치 팬덤이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친노․친박․친문 팬덤에 연속성이 없다고 보기는 어렵고, 설령 그 단절성에 초점을 둔다 하더라도 어떻게 초기의 ‘양성’ 팬덤이 ‘악성’ 팬덤으로 변형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그래야 우리는 팬덤 정치의 기원에 대해 좀 더 풍부한 이해를 얻을 수 있다.


7. 팬덤 정치와 정치 양극화의 기원: 노무현 대통령의 선택

이런 한계와 앞서 밝힌 포퓰리즘으로서의 팬덤 정치 정의, 그리고 서구학자들이 제시한 포퓰리즘 인과론을 참고하면, 양극화 정치와 함께하는 팬덤 정치의 기원을 아래와 같이 구성해 볼 수 있겠다.

팬덤 정치 같은 포퓰리즘은 다른 무엇보다 ‘대표의 실패’로부터 발원한다(Berman 2021, Robets 2022). 한 사회 내의 여러 이익, 가치, 요구들이 민주주의의 기성 제도를 통해 의미 있게 대표되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다는 말이다. 서구에서 대표의 실패는 대개 시장 세계화에 대한 지지로 수렴한 정당 간 경쟁, 포괄 정당에서 담합 정당으로 나아간 정당체계․조직 변화, 그에 따른 제도․행태적 부패와 ‘선심성 공약 뒤집기’(bait & switch)로 인해 나타났다. 이런 담합 체제에서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문화적 이질성이 높아짐에도 대안적 선택지를 찾기 어려울 때, 그 사회정치적 긴장을 파고든 것이 포퓰리스트 정당․운동․리더였다. 그들은 기성 정당․정치인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신․불만․분노에 기반하고 또 자극하면서 평범하고 순수한 보통 시민과 타락하고 부패한 엘리트를 대립시키는 선악 이분법의 논리와 기성 정당이 다루지 않거나 못하는 복지, 이민, 보호주의 등의 이슈를 동원해 자신들에 대한 지지를 모으는 데 성공했다.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 역시 서구와 마찬가지로, 아니 그보다 더 심각한 수준에서 정당 간 경제․복지 정책 차이는 미미하고 당 조직도 시민사회와 폭넓고 견고한 연계를 발전시키지 못했다. 이런 대표체계를 바꾸려는 정치적 기획이 여러 차례 시도되었지만, 온건 개혁이든 급진 좌파든 독자 정당 형태로는 성공하지 못했다. 거대 양당에 유리한 1위 대표 선거제도 하에서는 전례 없는 대규모 동원 경쟁이 이뤄지지 않고서는 신생 정당의 존립과 성장이 극히 어렵기 때문이다.

제3정당, 제3후보를 통한 변화가 어렵다면 남는 것은 기성 정당 내부로부터의 변화뿐이고 그 기회는 2001년 후반에 찾아왔다. 당시 실정과 부패 스캔들로 곤궁에 처한 집권 민주당은 위기 타개의 일환으로 새로운 대선후보 선출 제도를 도입했다. 기득 집단으로 비판받는 당내 주류가 사실상 후보 선출을 좌우하는 제도를 바꿔 일반 국민도 참여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국민경선제를 채택한 것이다. 그 자체로 포퓰리즘적 성격을 지닌 이 제도변화의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이전과는 다른 종류의 집단적 정치 활동이자 오늘날 팬덤 정치의 원형이 되는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의, 온․오프 라인을 넘나든 왕성한 활동이 그것이다. 당 대 당 경쟁이 아닌 당에 속한 후보 간 경쟁에 대의원․당원에 더해 일반 시민까지 지지 동원의 대상이 되는 조건이었기에, 이념․이슈 중심의 운동이나 정당 활동이 아닌 정치인 개인과 그가 보유한 상징에 대한 지지․지원으로 뭉친 조직적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될 수 있었던 것이다.

국민경선제와 노사모 지원에 따른 경선 승리, 이후 지지율 하락으로 인한 당내 분란과 단일화 시도를 거쳐 결국 대선에서 승리한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기성 체제에 변화를 꾀하는 두 가지 길이 놓여 있었다. 하나는 다원주의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포퓰리즘의 길이다. 전자는 한 사회 내에 존재하는 여러 가치․이념․이익의 차이를 존중하며, 정부와 시민사회를 연결하는 정당을 통해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고 지지를 모으며 상대 당과 때로 갈등하고 때로 타협하며 성과를 낳는 방식이다. 후자는 앞서 설명했듯이 한 사회 내의 기본 갈등 구도를 타락하고 부패한 기득 엘리트 집단과 순수하고 선량한 일반 시민 간의 대립으로 보며, 정당이나 의회보다 대통령 같은 리더가 나서 일반 시민, 그들 모두가 어렵다면 그들을 대표할 만한 ‘깨어있는 시민’의 조력과 지지로 시민의 일반의사를 담은 정책을 실현하는 방식이다.

민주화 운동과 인권 변호사 경력으로 정치에 입문해 ‘지역주의’와 부패․특권 정치에 맞서는 동안 줄곧 변방의 ‘아웃사이더’로 머물렀던 노무현 대통령은 후자의 길을 선택했다. 자신과 자신이 걸어온 길, 자신이 보유한 상징을 믿고 따르는 열혈 시민들에 더해 민주화 운동 세력․세대의 지지, 국가 관료제의 자원과 지원은 풍부한 반면 정당을 통해 다원주의 정치의 모색을 돕는 지적 자원은 부족했기에 그런 선택은 어렵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중요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하며 소관 부처 장관이나 집권당 대표․의원에게 발언권을 주기보다 본인이 직접 나서 기자회견, 공개 서신, 그리고 ‘검찰과의 대화’ TV 생중계 같은 파격적 행보를 보이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자신을 후보로 지명하고 또 흔들기도 했던 정당을 끌어안으며 당내 화합을 모색하기보다 자신처럼 지역주의와 부패․특권 정치를 극복하겠다는 이들과 뜻을 맞추며 새로 결성한 정당에 동참했다. 야당들이 제기한 대통령 선거 관여 비판에 대해서도 한발 물러서기보다 대결을 선택함으로써 대규모 촛불 시위를 불러일으키며 소수파 여당에 총선 승리를 안겨주었다.

민주화 운동 출신 인사들이 다수를 이루며 원내 과반을 차지한 집권 여당 또한 노동․복지 등의 사회경제 이슈에 주목하기보다 자신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사안부터 개혁법안으로 처리하고자 했다. 열린우리당이 17대 국회 첫 정기회에서 야심 차게 추진한 4대 개혁법안(국가보안법 폐지, 사립학교법과 언론 관계법 개정, 과거사 진상 규명법 제정)이 그것이다. 직전 총선이 ‘우리 손으로 직접 뽑은 대통령’을 지키며 ‘국민의 뜻을 거스른 의회 쿠데타’를 심판했듯, 이들 법안 또한 권위주의 시대의 유산과 보수 기득 집단의 특권을 혁파하는 민주화 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여당의 기대와 달리 이들 법안은 보수 언론과 종교 단체 등의 이해당사자들과 그들의 지지를 업은 야당의 이념 공세와 장외 투쟁 등 극렬한 저항 속에 좌절되거나 당초 취지를 살리지 못한 채 법제화되었다. 인적 구성에서나 이슈 선택에서나 이슈를 다루는 언술에서나, 민주화 운동의 역사와 실천, 도덕성이 중심을 이루는 ‘민주화 균열’에 기반한 정치 양극화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4대 개혁 입법에 실패한 여당은 이듬해 재보궐 선거에서 완패하며 다수당 지위를 잃었지만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식에 큰 변화는 없었다. 잇따른 선거 패배에 대통령과 여당이 뜻을 모아 쇄신 방안을 논의하고 실행할 법도 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총선 직후 천명한 ‘당정 분리’ 원칙에 따라 대통령은 당과 상의 없이 공개 서신, 방송 인터뷰, 국정 연설, 국무회의, 수석보좌관 회의 등을 통해 자기 입장과 정부 정책을 발표하고 당은 사후 수습을 맡으면서, 당 안에서는 불만과 분열이 가중되었고, 당 밖에서는 비판과 비난이 폭넓게 제기되었다. 대연정 제안, 한미 FTA 추진,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추진, 부동산 규제 강화 및 종부세 도입, 비정규직 보호법, 황우석 사태,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등이 그런 경우였다.

노 대통령이 특유의 직설적 화법과 함께 자기 입장과 정책을 국민에게 직접 알리는 방식으로 갈등의 중심에 서고 당내 반발을 불러일으키며 좌우 양편으로부터 비난을 받는 와중에도 그의 말을 믿고 따르며 옹호하는 이들이 있었다. 노사모는 대선 승리 후에도 존속하며 일부는 청와대, 정부 부처, 여당으로 진출했고, 일부는 언론 개혁과 미디어 비판 등의 시민 운동을 이어갔으며, 또 다른 일부는 온라인 공간에서 정치 담론 형성에 적극 관여했다. 정치적으로 주목받으며 큰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이 마지막 활동 분야였다. 노사모 회원들을 비롯해 ‘노빠’로도 불린 이들은 ‘디시인사이드’, ‘오늘의유머’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여당 게시판, 의원 홈페이지 등에서 대통령 입장을 두둔하고 그와 의견을 달리하는 당 안팎의 인사들과 언론을 비판하며 대통령의 든든한 우군으로 활약했다. 그리고 특히 이런 ‘친노’ 집단의 활약이 온오프라인에 걸쳐 두드러졌던 때는 여당 권력의 향배를 좌우하는 당내 선거, 분당과 통합, 후보 선출 시기였다. 온라인상에 나타난 정치적 혐오 표현의 원조로 봐도 무방할 만한 ‘난닝구․백바지’ 논쟁은 이런 당내 다툼에서 발원한 것이었다.


8. 나오며

팬덤 정치와 정치 양극화의 기원을 이룬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끝은 좋지 못했다. 임기 말의 노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낮은 지지율을 기록하자 여당은 연이은 탈당과 통합으로 새 정당을 결성했고, 그 와중에 대통령 역시 탈당을 결행했다. 새 정당의 대선후보 선출은 완전국민경선제에 여론조사까지 포함했지만 이전과 같은 파란이나 감동은 없었다. 오히려 조직․동원 선거 논란 속에 2위 후보가 선거운동을 중단하는 사태마저 벌어지며 갈등과 분란만 불거졌다. 그렇게 선출된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는 본 선거에서 전례 없는 득표 차이로 패배했다.

새 정부가 출범하고 이듬해 총선에서도 여당이 크게 승리한 직후 한미 FTA 타결과 광우병 우려 속에 야권에 속한 시민단체와 언론매체 주도로 다시 한번 대규모 촛불 시위가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노 전 대통령은 정치적 재기에 나서려 했지만, 수세에 몰렸던 현임 이명박 대통령도 가만있지 않았다. 그 시위 배후에 친노가 있다고 판단한 이 대통령은 정치적 영향력을 회복하려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해 검찰을 동원해 부패 혐의로 겁박했고, 이에 수치심과 분노를 느낀 전임 대통령은 극단적 선택으로 삶을 마감했다. 그 죽음으로 연민과 회한, 증오와 경멸의 감정이 정치의 중심에 자리 잡게 되었고, 그런 감정과 보수 정부에 맞서야 한다는 당위가 합쳐진 ‘정서적 급진주의’가 진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었다. 그렇게 노무현 팬덤은 문재인․이재명 팬덤으로 이어졌고, 동원은 대항 동원을 낳으며 박근혜․윤석열의 팬덤 정치를 만들었으며, 그렇게 해서 노무현과 노사모는 이후 정치인들이 이따금씩 필요에 따라 소환하는 신화로 남게 되었다.

정치인의 말과 행동, 판단과 결정은 책임 윤리를 따라야 한다. 비단 정치인뿐 아니라 정치에 관여하고자 시민사회의 명사․단체․집단도 그래야 한다. 그러나 정치 지도자에 대한 무비판적 지지와 그와 경쟁하는 이들에 대한 혐오를 무기로 하는 팬덤 정치, 한국판 포퓰리즘을 두고 정치인과 그 추종자들만을 탓할 수는 없다. 리더에 대한 충성과 지지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새로운 것은 우리가 정치를 너무 쉽게 재미와 공감의 엔터테인먼트, 환희와 감동의 스펙터클로 즐기며, 주인공에게는 응원과 격려를, 그 상대에게는 조롱과 멸시를 보낸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포퓰리즘이 한국에서만 두드러진 것도 아니다. 전세계적으로 공통된 정치 현상은 민주주의의 대표 체제가 사회의 여러 이익과 요구를 폭넓고 두텁게 대표하지 못함으로써 많은 이들에게 불안과 공포, 분노와 적대를 유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혐민』은 바로 이 문제를 다루며, 지금껏 우리가 봐왔던 것과 다른 방식의 정치 이해와 함께 정당 발전을 통한 민주주의 대표 체제의 복원을 제안한다.


<참고문헌>

박상훈. 2023. 『혐오하는 민주주의: 팬덤 정치란 무엇이고 왜 문제인가』. 서울: 후마니타스.

Berman, Sheri. 2021. “The Causes of Populism in the West”. Annual Review of Political Science 24: 71-88.

Mudde, Cas & Cristóbal Rovira Kaltwasser. 2017. Populism: A Very Short Introduction.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카스 무데 & 크리스토발 로비라 칼트바서(저), 이재만(역). 2019. 『포퓰리즘』, 교유서가.

Roberts, Kenneth M. 2022. “Populism and Polarization in Comparative Perspective: Constitutive, Spatial and Institutional Dimensions”. Government and Opposition: An International Journal of Comparative Politics 57, 680–702.

Sartori, Giovanni. 1997. Comparative Constitutional Engineering, New York: NYU Press.

Weyland, Kurt. 2017. “Populism: A Political-Strategic Approach” in Cristóbal Rovira Kaltwasser et al. The Oxford Handbook of Populism.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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