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시민 간 연대가 곧 고용보험을 탄생시켰다.
자본주의 초기 유럽의 노동조합들은 노동시간 단축 요구와 더불어 실업보험을 주목했다. 당시 고용안전망이 부재한 현실에서 한 번의 실직은 노동자 개인이나 가족의 생존 문제와 직결되는 공포였기 때문이다. 이에 노동조합 결성 후 조합원들에게 일정 기금을 모아 자체적 상호부조를 통한 실업보험 사업을 운영했다. 한 마디로 실업보험 기금의 운용 및 활성화는 노동조합의 중요한 정체성이었다는 뜻이다.
20세기에 들어서는 실업보험이 노동조합 내부를 넘어 공적제도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그 출발은 벨기에 겐트지역이었는데, 정부가 실업보험 기금에 국가보조금을 지원한 것이다. 겐트 시스템의 주요한 특징으로 기금의 가입자는 노동조합 조합원에만 국한되지 않음으로써, 일자리를 잃은 더 많은 시민에게 실업안전망을 제공할 수 있었다. 겐트시스템 모델은 20세기 초반 북, 서유럽 전반에 널리 퍼지며 제도화를 이룬다. 나아가 1차 세계대전 이후 대규모 실업이 발생하며 기존 임의가입 방식으론 대응이 어렵게 되어, 여러 국가가 강제가입 방식을 채택하게 된다.
자본주의는 빠르게 고도화를 이루면서도 대공황 및 석유파동 등 예측하기 어려웠던 경제위기를 통해 실업의 일상화를 불러일으킨다. 이에 70년대 이후엔 실업급여 제공을 넘어 실직자를 대상으로 한 직업훈련, 일자리 알선 서비스, 보험료 납부 여력이 없는 시민을 대상으로 실업부조 지급 등 적극적 고용노동정책으로 진화하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고용보험’이다. 노동자들 간 상호부조가 시작이었고, 노동조합의 주요 요구였으며, 지금까지도 노동시민 간 연대에 기반 한 사회안전망으로서 작동하고 있는 1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제도이다.
○ 점진적 발전, 동시에 숙제를 떠안고 있는 한국의 고용보험 제도
한국의 경우 1993년 12월에 <고용보험법>이 제정되고, 1995년부터 본격 시행이 되었다. 도입 최초에는 30인 이상 사업장에만 도입이 되었다. 그러나 97년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외환위기를 계기로 대규모 실업에 적극 대응해야만 했다. 이에 98년부턴 1인 이상 전 사업장으로 빠르게 확장되며 고용보험 피보험가입자 수가 급증하게 된다.
2019년 문재인정부 시기엔 고용보험 도입 이후 최초로 실업급여 지급기간 및 규모가 증가하는 개편이 이뤄진다. 이전에는 연령 및 피보험 가입일수에 따라 최소 90일(3개월)에서 최장 240일(8개월)이 지급 기간이었으나, 최소 120일(4개월)에서 최장 270일(9개월)로 늘어났다. 또한 지급 금액도 퇴사 전 직장의 평균임금 기준 50%에서 60%로 늘어나는 개편이 이뤄졌다.
이처럼 한국의 고용보험은 약 30년의 역사 속에서 점진적 발전이 이뤄졌다. 그럼에도 노동시장 변화 추세를 비추어 본다면 여전히도 고용보험의 역할은 아쉽다. 특히 2020년 1월부터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사태 국면에서 한국의 고용보험 사각지대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대표적으로 특수고용, 프리랜서, 플랫폼, 1인 자영업자와 같이 근로기준법상의 노동자가 아닌, 즉 현행 고용보험 제도가 외면한 사람들이다. 이 규모가 전체 취업자 중에 무려 4분의 1이다. 더욱이나 고용관계가 명확한 노동자 중에서도 영세사업장 소속 및 단기간 근로계약자, 초단시간 노동자, 가사 서비스업 종사자, 고용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공무원 및 교사 등을 합치면 전체 취업자 중 약 절반이 고용보험 밖의 노동자들이었다.
이에 정부는 2020년 2월, 전 국민 고용보험 로드맵을 발표한다. 사업장에 고용된 임금노동자 중심의 체계를 넘어 취업자의 소득에 기반 한 보편적 제도로 전환한다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그 결과 2020년 12월부터 ‘예술인고용보험법’이 시행되었고, 2022년 7월부터는 특수고용·프리랜서 노동자 5개 직종에 고용보험을 적용하는 법률이 시행되었다. 물론 현행 제도 역시 전체 취업자를 포괄하기에 각종 제약이 존재한다. 고용보험 대상자임에도 사업주의 기피 및 불안정 노동의 특성에 따라 미가입의 경우도 300만 명이 넘어간다. 한국의 고용보험은 여전히도 만만치 않은 과제들을 떠안고 있다.
○ 당정의 ‘실업급여 손질’ 근거야말로 불공정하다
“공정한 노동시장을 위해 실업급여 수급요건을 엄격하게 두어야 한다.”, “일하는 개미보다 베짱이를 더 챙겨주느냐는 비판도 보았다.”, “내가 낸 보험료가 불공정하게 쓰인다면 누가 성실하게 납부하고 싶은가?”라는 주장을 (한국의 정치하는 사람들로부터) 듣게 되었다. 지난 7월 12일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가 주최한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에서 나온 당정 관계자들의 발언이다.
또한 “실업급여를 신청하러 온 젊은 사람들은 주로 웃으면서 온다. 어두운 얼굴은 드물다.”, “특히 여자분들과, 청년들은 이 기회에 쉬겠다고 온다. 그리고 수급 도중에 해외여행을 간다.”, “실업급여로 샤넬 선글라스를 산다”라는 고용노동부 실업급여 담당 공무원의 증언도 이어졌다.
최초 실업급여가 어떠한 배경 및 가치 속에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는지 안다면, 위의 발언들은 현대 노동시장을 부정하겠다는 건지 다소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이다. 모든 사람이 청년 시기에 첫 취업 후 평생 열심히 일하는 개미일 수 있다면 실업급여는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노동자의 의지만 가지고 일하는 개미의 상태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 17세기에 확인되었다. 특히나 현대사회로 올수록 실업상태는 예외적 경우가 아닌 일상적 경우로 굳어졌다. 즉 개미의 상태에선 고용보험료 부담의 의무를 지니고, 베짱이가 되었을 땐 의무만큼 권리를 돌려받는 삶의 형태가 보편화되었다. 특히 기업은 잦은 경기 불황 속에서 계약직 채용과 정리해고를 호소하는데, 이것이 현실일 수밖에 없다고 받아들인다면 실업급여는 더욱 두텁게 지급해야 할 문제이다. 현 정부가 노동시장 유연화를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실업급여마저 낙인을 찍어 노동시장 유연화의 핵심인 실업안전망 강화를 어떻게 추진하겠다는 건지 의아하다.
당정은 최저임금의 80%인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거나(60%) 아예 없애는 실업급여 제도개선을 검토 중이며, 이를 통해 공정한 노동시장을 구축하겠다고 말하였다. 근거로서 최저임금 노동자의 세후 소득보다 실업급여가 더 높다는 것이다. 가령 소정근로시간 8시간, 주 40시간 최저임금 노동자가 재직 시 세후 1,799,800원을 월급으로 받았다면, 퇴사 후의 실업급여는 월 1,847,040원을 받게 된다. 이에 실업급여가 자신의 월급보다 많으니 근로의욕을 떨어트린다는 것이다.
세후라는 표현을 쉽게 사용하지만, 실제 노동자가 납부하는 금액의 상당 비중은 4대 보험료이다. 자신의 노후(국민연금), 질병(건강보험), 실업(고용보험), 일하다 다쳤을 시(산재보험)를 대비하고자 사회보험에 드는 행위이지, 세금을 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또한 소득세법상 최저임금 노동자는 매달 내는 국세 및 지방세 상당금액 혹은 전액까지 연말정산을 통해 환수받을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바로잡아 세전을 기준으로 종전 최저임금 급여와 비교하자면 실업급여의 실질 소득대체율은 91.9%로 계산된다. 법에 명시된 하한액 80%로 맞추기 위한 제도손질은 검토가 이뤄질 수는 있어도, 무작정 최저임금보다 높은 실업급여라며 근거 없는 주장을 가져다 사용한다면 공론의 장 자체가 형성되기 어렵다.
또한 당정은 실업급여 얌체족들 때문에 고용보험 기금이 사실상 적자상태로 돌아섰다고 호소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타당한 근거가 아니다. 전 세계를 강타했던 코로나시기 대규모 실업사태에 일차적 방어를 위한 고용보험 기금의 막대한 지출에 대해 외면하는 처사이자, 60세 이상 노령인구의 증가로 이들이 대거 계약직으로 취업함으로써 노년층 실업급여 수급 비율이 급증한 원인 역시 외면하고 있다. 특히 30세 미만 인구의 경우 상용직 10명 중 7명이 자발적 퇴사로 인해 실업급여 수급조건에 해당되기 어려우며, 임시·일용직의 경우에도 잦은 이직으로 인해 10% 이하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또한 고용보험 기금에선 실업급여만 지출되는 것이 아니다. 모성보호급여, 직업훈련, 고용서비스 등 각종 정책에 대한 예산이 지출되고 있는데, 노-사의 보험료로 운영될 뿐 정부예산의 기여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불안정 노동자들에게 여전히 충분하지 못한 실업안전망, 고용보험의 노사정 공동책임 구조하에 정부의 기여가 현격하게 낮은 점 등을 짚지 않고 실업급여 수급자들을 비도덕적으로 몰고 가는 선동이 시대착오적인 이유이다. 이것이야말로 공정한 주장과 근거인지 되묻고 싶다.
○ 고용보험 개혁을 위해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우리는 일하는 시민으로서 노동기본권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노동기본권은 오로지 본인의 임금인상과 계층 상승의 욕망에 그치는 선언이 아니다. 노동조합이 최초 태동하던 시기 실업의 공포를 해소하는데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나섰다는 것, 이 가치를 기반으로 고용보험의 탄생, 나아가 복지국가가 완성될 수 있었다는 공동체의 가치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즉 타인의 실업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며, 언제든 실직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는 미래의 나를 위해서도 고용보험의 중요성은 강조되어야 한다.
이처럼 노동 간 연대의 가치가 사회적으로 힘을 받을 수 있을 때 고용보험은 더욱 확장되고, 강화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한국사회가 얼마만큼 효과적 토론을 펼쳐나가고 있는지 떠올려보자면 안타깝게도 그리 높은 점수를 주긴 어려워 보인다. 60대 고용률이 20대 고용률을 역전한 상황에서 현행 고용보험 구조가 지속되기 어렵다면 어떠한 방향으로 대책을 수립해야 할지, 현행 고용보험으로 커버되지 못하는 근로기준법 밖 노동을 포괄하기 위해 사회적 대화는 어떻게 이뤄져야 할지, 실업급여 수급자격으로 여전히 인정받지 못하는 자발적 이직자의 실업안전망 대책은 무엇인지 등 모든 과제가 만만치 않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정치권 내에서 우선순위 의제가 아닌지 지난 정부에서 고용보험 개혁 화두가 잠깐 반짝한 이후로 별다른 진전이 없어 보인다.
이에 실업급여를 ‘시럽’ 급여라며 수급자들을 희화화시키는 선동에 비판만 할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고용보험 역할이 충분치 않다는 인식하에 더욱 넓고 두터운 실업안전망으로 나아가자는 것, 이를 위해 노동운동이 먼저 보험료 인상을 주장함으로써 사측과 정부에게 공동부담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 각 정당들 역시 최근에 실업급여 논란을 스쳐가는 정치적 이슈에 가둘 것이 아니라, 이를 계기로 국회 내에서 제도발전을 위해 적극 논쟁해야 한다.
과거에 나도 실업급여를 수급한 적이 있었다. 주변의 청년유니온 조합원들, 동료 친구들도 실업급여가 없었다면 그 어떤 여유도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라 말한다. 실업기간 쉬는 방식은 제각각 달랐을지언정, 결국 다음 일자리와 진로를 고민하는 노동시민이다. 세상의 모든 개미와 베짱이들이 고용보험료 부담의 의무와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고용보험 개혁에 매진해 나가야한다.
○ 노동시민 간 연대가 곧 고용보험을 탄생시켰다.
자본주의 초기 유럽의 노동조합들은 노동시간 단축 요구와 더불어 실업보험을 주목했다. 당시 고용안전망이 부재한 현실에서 한 번의 실직은 노동자 개인이나 가족의 생존 문제와 직결되는 공포였기 때문이다. 이에 노동조합 결성 후 조합원들에게 일정 기금을 모아 자체적 상호부조를 통한 실업보험 사업을 운영했다. 한 마디로 실업보험 기금의 운용 및 활성화는 노동조합의 중요한 정체성이었다는 뜻이다.
20세기에 들어서는 실업보험이 노동조합 내부를 넘어 공적제도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그 출발은 벨기에 겐트지역이었는데, 정부가 실업보험 기금에 국가보조금을 지원한 것이다. 겐트 시스템의 주요한 특징으로 기금의 가입자는 노동조합 조합원에만 국한되지 않음으로써, 일자리를 잃은 더 많은 시민에게 실업안전망을 제공할 수 있었다. 겐트시스템 모델은 20세기 초반 북, 서유럽 전반에 널리 퍼지며 제도화를 이룬다. 나아가 1차 세계대전 이후 대규모 실업이 발생하며 기존 임의가입 방식으론 대응이 어렵게 되어, 여러 국가가 강제가입 방식을 채택하게 된다.
자본주의는 빠르게 고도화를 이루면서도 대공황 및 석유파동 등 예측하기 어려웠던 경제위기를 통해 실업의 일상화를 불러일으킨다. 이에 70년대 이후엔 실업급여 제공을 넘어 실직자를 대상으로 한 직업훈련, 일자리 알선 서비스, 보험료 납부 여력이 없는 시민을 대상으로 실업부조 지급 등 적극적 고용노동정책으로 진화하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고용보험’이다. 노동자들 간 상호부조가 시작이었고, 노동조합의 주요 요구였으며, 지금까지도 노동시민 간 연대에 기반 한 사회안전망으로서 작동하고 있는 1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제도이다.
○ 점진적 발전, 동시에 숙제를 떠안고 있는 한국의 고용보험 제도
한국의 경우 1993년 12월에 <고용보험법>이 제정되고, 1995년부터 본격 시행이 되었다. 도입 최초에는 30인 이상 사업장에만 도입이 되었다. 그러나 97년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외환위기를 계기로 대규모 실업에 적극 대응해야만 했다. 이에 98년부턴 1인 이상 전 사업장으로 빠르게 확장되며 고용보험 피보험가입자 수가 급증하게 된다.
2019년 문재인정부 시기엔 고용보험 도입 이후 최초로 실업급여 지급기간 및 규모가 증가하는 개편이 이뤄진다. 이전에는 연령 및 피보험 가입일수에 따라 최소 90일(3개월)에서 최장 240일(8개월)이 지급 기간이었으나, 최소 120일(4개월)에서 최장 270일(9개월)로 늘어났다. 또한 지급 금액도 퇴사 전 직장의 평균임금 기준 50%에서 60%로 늘어나는 개편이 이뤄졌다.
이처럼 한국의 고용보험은 약 30년의 역사 속에서 점진적 발전이 이뤄졌다. 그럼에도 노동시장 변화 추세를 비추어 본다면 여전히도 고용보험의 역할은 아쉽다. 특히 2020년 1월부터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사태 국면에서 한국의 고용보험 사각지대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대표적으로 특수고용, 프리랜서, 플랫폼, 1인 자영업자와 같이 근로기준법상의 노동자가 아닌, 즉 현행 고용보험 제도가 외면한 사람들이다. 이 규모가 전체 취업자 중에 무려 4분의 1이다. 더욱이나 고용관계가 명확한 노동자 중에서도 영세사업장 소속 및 단기간 근로계약자, 초단시간 노동자, 가사 서비스업 종사자, 고용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공무원 및 교사 등을 합치면 전체 취업자 중 약 절반이 고용보험 밖의 노동자들이었다.
이에 정부는 2020년 2월, 전 국민 고용보험 로드맵을 발표한다. 사업장에 고용된 임금노동자 중심의 체계를 넘어 취업자의 소득에 기반 한 보편적 제도로 전환한다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그 결과 2020년 12월부터 ‘예술인고용보험법’이 시행되었고, 2022년 7월부터는 특수고용·프리랜서 노동자 5개 직종에 고용보험을 적용하는 법률이 시행되었다. 물론 현행 제도 역시 전체 취업자를 포괄하기에 각종 제약이 존재한다. 고용보험 대상자임에도 사업주의 기피 및 불안정 노동의 특성에 따라 미가입의 경우도 300만 명이 넘어간다. 한국의 고용보험은 여전히도 만만치 않은 과제들을 떠안고 있다.
○ 당정의 ‘실업급여 손질’ 근거야말로 불공정하다
“공정한 노동시장을 위해 실업급여 수급요건을 엄격하게 두어야 한다.”, “일하는 개미보다 베짱이를 더 챙겨주느냐는 비판도 보았다.”, “내가 낸 보험료가 불공정하게 쓰인다면 누가 성실하게 납부하고 싶은가?”라는 주장을 (한국의 정치하는 사람들로부터) 듣게 되었다. 지난 7월 12일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가 주최한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에서 나온 당정 관계자들의 발언이다.
또한 “실업급여를 신청하러 온 젊은 사람들은 주로 웃으면서 온다. 어두운 얼굴은 드물다.”, “특히 여자분들과, 청년들은 이 기회에 쉬겠다고 온다. 그리고 수급 도중에 해외여행을 간다.”, “실업급여로 샤넬 선글라스를 산다”라는 고용노동부 실업급여 담당 공무원의 증언도 이어졌다.
최초 실업급여가 어떠한 배경 및 가치 속에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는지 안다면, 위의 발언들은 현대 노동시장을 부정하겠다는 건지 다소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이다. 모든 사람이 청년 시기에 첫 취업 후 평생 열심히 일하는 개미일 수 있다면 실업급여는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노동자의 의지만 가지고 일하는 개미의 상태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 17세기에 확인되었다. 특히나 현대사회로 올수록 실업상태는 예외적 경우가 아닌 일상적 경우로 굳어졌다. 즉 개미의 상태에선 고용보험료 부담의 의무를 지니고, 베짱이가 되었을 땐 의무만큼 권리를 돌려받는 삶의 형태가 보편화되었다. 특히 기업은 잦은 경기 불황 속에서 계약직 채용과 정리해고를 호소하는데, 이것이 현실일 수밖에 없다고 받아들인다면 실업급여는 더욱 두텁게 지급해야 할 문제이다. 현 정부가 노동시장 유연화를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실업급여마저 낙인을 찍어 노동시장 유연화의 핵심인 실업안전망 강화를 어떻게 추진하겠다는 건지 의아하다.
당정은 최저임금의 80%인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거나(60%) 아예 없애는 실업급여 제도개선을 검토 중이며, 이를 통해 공정한 노동시장을 구축하겠다고 말하였다. 근거로서 최저임금 노동자의 세후 소득보다 실업급여가 더 높다는 것이다. 가령 소정근로시간 8시간, 주 40시간 최저임금 노동자가 재직 시 세후 1,799,800원을 월급으로 받았다면, 퇴사 후의 실업급여는 월 1,847,040원을 받게 된다. 이에 실업급여가 자신의 월급보다 많으니 근로의욕을 떨어트린다는 것이다.
세후라는 표현을 쉽게 사용하지만, 실제 노동자가 납부하는 금액의 상당 비중은 4대 보험료이다. 자신의 노후(국민연금), 질병(건강보험), 실업(고용보험), 일하다 다쳤을 시(산재보험)를 대비하고자 사회보험에 드는 행위이지, 세금을 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또한 소득세법상 최저임금 노동자는 매달 내는 국세 및 지방세 상당금액 혹은 전액까지 연말정산을 통해 환수받을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바로잡아 세전을 기준으로 종전 최저임금 급여와 비교하자면 실업급여의 실질 소득대체율은 91.9%로 계산된다. 법에 명시된 하한액 80%로 맞추기 위한 제도손질은 검토가 이뤄질 수는 있어도, 무작정 최저임금보다 높은 실업급여라며 근거 없는 주장을 가져다 사용한다면 공론의 장 자체가 형성되기 어렵다.
또한 당정은 실업급여 얌체족들 때문에 고용보험 기금이 사실상 적자상태로 돌아섰다고 호소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타당한 근거가 아니다. 전 세계를 강타했던 코로나시기 대규모 실업사태에 일차적 방어를 위한 고용보험 기금의 막대한 지출에 대해 외면하는 처사이자, 60세 이상 노령인구의 증가로 이들이 대거 계약직으로 취업함으로써 노년층 실업급여 수급 비율이 급증한 원인 역시 외면하고 있다. 특히 30세 미만 인구의 경우 상용직 10명 중 7명이 자발적 퇴사로 인해 실업급여 수급조건에 해당되기 어려우며, 임시·일용직의 경우에도 잦은 이직으로 인해 10% 이하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또한 고용보험 기금에선 실업급여만 지출되는 것이 아니다. 모성보호급여, 직업훈련, 고용서비스 등 각종 정책에 대한 예산이 지출되고 있는데, 노-사의 보험료로 운영될 뿐 정부예산의 기여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불안정 노동자들에게 여전히 충분하지 못한 실업안전망, 고용보험의 노사정 공동책임 구조하에 정부의 기여가 현격하게 낮은 점 등을 짚지 않고 실업급여 수급자들을 비도덕적으로 몰고 가는 선동이 시대착오적인 이유이다. 이것이야말로 공정한 주장과 근거인지 되묻고 싶다.
○ 고용보험 개혁을 위해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우리는 일하는 시민으로서 노동기본권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노동기본권은 오로지 본인의 임금인상과 계층 상승의 욕망에 그치는 선언이 아니다. 노동조합이 최초 태동하던 시기 실업의 공포를 해소하는데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나섰다는 것, 이 가치를 기반으로 고용보험의 탄생, 나아가 복지국가가 완성될 수 있었다는 공동체의 가치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즉 타인의 실업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며, 언제든 실직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는 미래의 나를 위해서도 고용보험의 중요성은 강조되어야 한다.
이처럼 노동 간 연대의 가치가 사회적으로 힘을 받을 수 있을 때 고용보험은 더욱 확장되고, 강화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한국사회가 얼마만큼 효과적 토론을 펼쳐나가고 있는지 떠올려보자면 안타깝게도 그리 높은 점수를 주긴 어려워 보인다. 60대 고용률이 20대 고용률을 역전한 상황에서 현행 고용보험 구조가 지속되기 어렵다면 어떠한 방향으로 대책을 수립해야 할지, 현행 고용보험으로 커버되지 못하는 근로기준법 밖 노동을 포괄하기 위해 사회적 대화는 어떻게 이뤄져야 할지, 실업급여 수급자격으로 여전히 인정받지 못하는 자발적 이직자의 실업안전망 대책은 무엇인지 등 모든 과제가 만만치 않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정치권 내에서 우선순위 의제가 아닌지 지난 정부에서 고용보험 개혁 화두가 잠깐 반짝한 이후로 별다른 진전이 없어 보인다.
이에 실업급여를 ‘시럽’ 급여라며 수급자들을 희화화시키는 선동에 비판만 할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고용보험 역할이 충분치 않다는 인식하에 더욱 넓고 두터운 실업안전망으로 나아가자는 것, 이를 위해 노동운동이 먼저 보험료 인상을 주장함으로써 사측과 정부에게 공동부담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 각 정당들 역시 최근에 실업급여 논란을 스쳐가는 정치적 이슈에 가둘 것이 아니라, 이를 계기로 국회 내에서 제도발전을 위해 적극 논쟁해야 한다.
과거에 나도 실업급여를 수급한 적이 있었다. 주변의 청년유니온 조합원들, 동료 친구들도 실업급여가 없었다면 그 어떤 여유도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라 말한다. 실업기간 쉬는 방식은 제각각 달랐을지언정, 결국 다음 일자리와 진로를 고민하는 노동시민이다. 세상의 모든 개미와 베짱이들이 고용보험료 부담의 의무와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고용보험 개혁에 매진해 나가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