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체계 개편, 왜 진보의 금기가 되었나? _ 노동의 오래된 숙제, 정의로운 전환
김혜미(정치발전소 회원 / 녹색전환연구소 운영실장)
올 여름, 직장을 옮겼다. 새로 다니게 된 직장의 이름은 무척 어렵다. '녹색', '전환', '연구' 그 어느 것 하나 한국사회에서 도통 쉬운 것 없는 단어들의 배합이다. 그런 우리가 하반기부터 집중하여 공부하는 주제는 '녹색 일자리', 그리고 '정의로운 전환' 이다.
내가 결합하기 전에 이미 우리 연구소는 약 2년간 17개 시도를 오가며 기후위기 대응과 녹색전환 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열정과 의견들의 교집합을 찾아 몇 편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 작성도 쉬운 과정은 아니었겠지만, 기후문제에 관심이 아주 많은 시민이 모였더라도 기후, 에너지처럼 사용하는 단위부터 개념까지 생소한 주제에 관해 공통의 이해를 만들고 토의하게 하는 편이 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그 어려운 일을 해내면서 연구소가 2022년 하반기, 지금 꼭 필요한 것은 '정의로운 전환' 이라는 결론을 짓게 된 것이다.
어떤 정의로운 전환?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은 최근에 발견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굉장히 오랫동안 논의되고 진행되어온 인류의 숙제다. 1990년대 말 캐나다 노동조합에 대해 이야기 하는 글에서 '노동자들에게 괜찮은 일자리를 제공하려는 노동조합 운동의 노력과 환경보호의 필요를 화해시키기 위한 시도'로 처음 언급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환경문제의 쟁점과 노동이 만나며 그 내용과 의미가 확장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30년까지 탄소배출을 2018년 대비 40%까지 감축시켜야 하는 지금 상황에서는 발등에 떨어진 '시한폭탄'이 되어가는 중이다.
정의로운 전환은 보통 기후변화, 기후위기에 대응하여 특정 지역이나 산업, 업종에 대해 급속한 산업(구조)전환을 발생시킬 때, 그 과정과 결과가 모두 '정의(Justice)'로워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탄소중립기본법도 이를 "탄소중립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직·간접적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지역이나 산업의 노동자, 농민, 중소상공인 등을 보호하여 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담을 사회적으로 분담하고 취약계층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정책방향"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의로운 전환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온 국가들의 경우엔 아주 다양한 사회적 대화기구를 만들어 밀도 있는 협상을 이어나간다. 이미 경제적 측면에서 저성장은 기본값이 되었고, 기후위기로 그어진 지구의 한계를 분명히 인정한 상태에서 기준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사회적 대화나 거버넌스가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큰 차이점이다. 탄소중립위원회가 설치되어 운영되고 있지만, 정권이 바뀌며 방향성을 더욱 잃게 되었고,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각각 발의한 '산업구조 전환에 따른 노동전환지원에 관한 법'(이수진 의원 발의)와 '산업전환시 고용안전 지원등에 관한 법'(임이자 의원 발의)은 심의·의결을 노측과 사측의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는 '고용정책심의회'에서 다루겠다는 것이 전부다.
반면 독일 '탈석탄 위원회'의 경우, 28명의 이해관계자, 당자사들이 모여 탄광과 석탄발전소 문을 닫는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와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지역사회를 어떻게 전환할 것인지에 대해 공동으로 계획했다. 심지어 2038년으로 정했던 탈석탄 계획을 2030년까지 당기는 과정역시 같은 방법으로 진행하고 있다. 물론 지난한 과정이었다. 그럼에도 독일은 끝까지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낼 결심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의 탈석탄 위원회가 작동한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보여지듯, '당사자' 또는 '이해관계자'라고 부르는 이들은 서로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 탈석탄 시기를 초기 2038년으로 목표했던 것이 그러하다.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합의를 만들다 보니 독일의 석탄퇴출 시기는 유럽에서 가장 늦은 시기를 목표로 정했었다. 그러나 심화되는 기후위기와 나빠져 가는 지구의 상태, 청소년의 기후소송 등이 새로 작용하며 2030년까지 앞당기는 것으로 재설정한 것이다. 현재의 기준에 기반하여 새로운 정의를 만들어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모두에게 '흡족한' 정의를 만드는 것이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어쩌면 부정의를 지우는 것이 우선
인도의 아르마티아 센(Amartya Kumar Sen)은 '비교적 정의론'을 제시하며, '정의'는 사실 '명백한 부정의'를 제거하는 일에서 출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시아 최초의 노벨 경제학 수상자로 알려진 그는 빈곤과 불평등 문제에 대한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경제학자다.
그는 자신의 저서 <정의의 아이디어>(이규원 옮김,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펴냄)에서 정의를 정의(定意)하는 일이 굉장히 다원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음을 논하며 결국 완전하고 완벽한 정의라는 것을 규정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지금' '현재' 발생하고 있는 부정의를 사회 속에서 비교하여 지워나갈 필요성을 내놓으며, 주류 정의론에 대응하는 대안을 제안한다.
어쩌면, 정의로운 전환의 '정의'는 이러한 센의 정의론이 더 쓰임새 있을지도 모른다. 플랫폼 노동, 긱 노동, 무보수 노동자까지 다양한 노동자들의 등장이 넘쳐나는 상황, 기후위기까지 덮친 노동자들에겐 변화하는 사회에서 발생하는 불평등과 부정의를 제거하는 편이 전통적 정규직 노동자가 되는 일보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더 바람직하고, 완벽한 정의인가를 논하기 전에, 이미 우리 사회는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우선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진보정치 안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임금체계 개편도 살펴볼 수 있다.
임금체계 개편, 왜 진보의 금기가 되었나?
직무급제 또는 연봉급제에 대한 찬/반여부를 떠나 산업전환과 노동전환, 지역전환까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시간표에서, 임금체계 개혁에 대한 논쟁이 펼쳐지는 것이 매우 다행스럽다는 생각까지 든다.
현재의 임금체계는 물론 노동운동의 귀중한 열매다. 이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2022년 시점에서 연공급제를 포함한 현재 임금체계가 어떤 불평등을 재생산하고 있는지 한번은 짚어볼 필요가 분명히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를 심화시키고 청년이나 여성들에게 불리하게 작용되는 점이 정말로 없는지 말이다. 또한 정의로운 전환에 따라 재편되는 산업전환 과정에서, 그리고 이에 따라 사라지거나 생겨나는 고용과정에서 더 평등하고 공정한 임금체계가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정의로운 전환이 정의로운 임금체계 개편과 함께 갈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한국은 정말 산별노조가 강해지는 모델이 될 수는 정말로 없는가? 현재의 노동조합이 양적증가에 성공한 시기를 맞이했다면, 기후위기가 찾아온 현재, 미래에 더 가능성 있는 노동조합이 되기 위한 기획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언제까지 '어떤 일'을 하는 가보다, '어디에서 일하는지'가 더 중요한 사회를 유지할 것인가. 이런 차원에서 한국의 복지국가가 두꺼운 기업복지에 밀려 더딘 걸음을 반복하고 있다는 오래된 비판에 대해 노동조합과 진보정당은 어떤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가. 그렇기에 지금 우리 노동에게 필요한 논의는 지금의 노동자와 나중의 노동자가 경험할 부정의를 줄이는 일이 아닌지 말이다.
지금 필요한 용기 있는 걸음
이제 임금문제는 지금의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걸음을 빠르게 내딛어야 한다. 이때 '노·사·민·정'의 역할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한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기업 간 임금불평등 문제는 곧 노동운동의 사회적 연대의 연약함을 반증하고 있다. 소수의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호봉제, 성과급제는 결과적으로 비극적 노동시장 체제를 만들었다. 산별노조, 초기업적 교섭이 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이 곧 '정의로운 전환'이라고 논의될 가치가 있다. 이를 노동운동이 직접 주도할 수 있는 활로를 열어젖혀야 한다. 이제 수북하게 쌓여있는 노동 의제를 전환의 공간에서 해결해 나가야 한다.
논쟁할 용기를 가지자.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흘러간 구호가 되어선 안 된다. 정의로운 전환에게는 최대치의 사회연대가 시급하고, 그 전환을 통해 우리는 사회의 회복력(Resilience)을 절실하게, 아주 절박하게 만들어가야 할 시점에 놓였기 때문이다. 정의로운 전환이 만들어 낼 녹색 일자리(Green job), 더 크게 녹색 일(Green Work)은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복지'와 같은 길을 걸어선 안 된다. 일자리 개수를 늘리는 것을 넘어서, 노동자와 노동 그 자체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 그것이 지금 필요한 정의로운 노동전환의 원칙을 만드는 길이고, 모두의 '노동'에 대해 말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우리는 외면하거나 반목하지 말고, 더 가열차게 우리의 '일'에 대해서 토론해야만 한다.
이 글은 프레시안(내가 만든 복지국가)에 실린 글입니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원문보기 :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2101313593165962
임금체계 개편, 왜 진보의 금기가 되었나? _ 노동의 오래된 숙제, 정의로운 전환
김혜미(정치발전소 회원 / 녹색전환연구소 운영실장)
올 여름, 직장을 옮겼다. 새로 다니게 된 직장의 이름은 무척 어렵다. '녹색', '전환', '연구' 그 어느 것 하나 한국사회에서 도통 쉬운 것 없는 단어들의 배합이다. 그런 우리가 하반기부터 집중하여 공부하는 주제는 '녹색 일자리', 그리고 '정의로운 전환' 이다.
내가 결합하기 전에 이미 우리 연구소는 약 2년간 17개 시도를 오가며 기후위기 대응과 녹색전환 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열정과 의견들의 교집합을 찾아 몇 편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 작성도 쉬운 과정은 아니었겠지만, 기후문제에 관심이 아주 많은 시민이 모였더라도 기후, 에너지처럼 사용하는 단위부터 개념까지 생소한 주제에 관해 공통의 이해를 만들고 토의하게 하는 편이 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그 어려운 일을 해내면서 연구소가 2022년 하반기, 지금 꼭 필요한 것은 '정의로운 전환' 이라는 결론을 짓게 된 것이다.
어떤 정의로운 전환?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은 최근에 발견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굉장히 오랫동안 논의되고 진행되어온 인류의 숙제다. 1990년대 말 캐나다 노동조합에 대해 이야기 하는 글에서 '노동자들에게 괜찮은 일자리를 제공하려는 노동조합 운동의 노력과 환경보호의 필요를 화해시키기 위한 시도'로 처음 언급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환경문제의 쟁점과 노동이 만나며 그 내용과 의미가 확장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30년까지 탄소배출을 2018년 대비 40%까지 감축시켜야 하는 지금 상황에서는 발등에 떨어진 '시한폭탄'이 되어가는 중이다.
정의로운 전환은 보통 기후변화, 기후위기에 대응하여 특정 지역이나 산업, 업종에 대해 급속한 산업(구조)전환을 발생시킬 때, 그 과정과 결과가 모두 '정의(Justice)'로워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탄소중립기본법도 이를 "탄소중립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직·간접적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지역이나 산업의 노동자, 농민, 중소상공인 등을 보호하여 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담을 사회적으로 분담하고 취약계층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정책방향"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의로운 전환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온 국가들의 경우엔 아주 다양한 사회적 대화기구를 만들어 밀도 있는 협상을 이어나간다. 이미 경제적 측면에서 저성장은 기본값이 되었고, 기후위기로 그어진 지구의 한계를 분명히 인정한 상태에서 기준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사회적 대화나 거버넌스가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큰 차이점이다. 탄소중립위원회가 설치되어 운영되고 있지만, 정권이 바뀌며 방향성을 더욱 잃게 되었고,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각각 발의한 '산업구조 전환에 따른 노동전환지원에 관한 법'(이수진 의원 발의)와 '산업전환시 고용안전 지원등에 관한 법'(임이자 의원 발의)은 심의·의결을 노측과 사측의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는 '고용정책심의회'에서 다루겠다는 것이 전부다.
반면 독일 '탈석탄 위원회'의 경우, 28명의 이해관계자, 당자사들이 모여 탄광과 석탄발전소 문을 닫는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와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지역사회를 어떻게 전환할 것인지에 대해 공동으로 계획했다. 심지어 2038년으로 정했던 탈석탄 계획을 2030년까지 당기는 과정역시 같은 방법으로 진행하고 있다. 물론 지난한 과정이었다. 그럼에도 독일은 끝까지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낼 결심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의 탈석탄 위원회가 작동한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보여지듯, '당사자' 또는 '이해관계자'라고 부르는 이들은 서로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 탈석탄 시기를 초기 2038년으로 목표했던 것이 그러하다.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합의를 만들다 보니 독일의 석탄퇴출 시기는 유럽에서 가장 늦은 시기를 목표로 정했었다. 그러나 심화되는 기후위기와 나빠져 가는 지구의 상태, 청소년의 기후소송 등이 새로 작용하며 2030년까지 앞당기는 것으로 재설정한 것이다. 현재의 기준에 기반하여 새로운 정의를 만들어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모두에게 '흡족한' 정의를 만드는 것이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어쩌면 부정의를 지우는 것이 우선
인도의 아르마티아 센(Amartya Kumar Sen)은 '비교적 정의론'을 제시하며, '정의'는 사실 '명백한 부정의'를 제거하는 일에서 출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시아 최초의 노벨 경제학 수상자로 알려진 그는 빈곤과 불평등 문제에 대한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경제학자다.
그는 자신의 저서 <정의의 아이디어>(이규원 옮김,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펴냄)에서 정의를 정의(定意)하는 일이 굉장히 다원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음을 논하며 결국 완전하고 완벽한 정의라는 것을 규정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지금' '현재' 발생하고 있는 부정의를 사회 속에서 비교하여 지워나갈 필요성을 내놓으며, 주류 정의론에 대응하는 대안을 제안한다.
어쩌면, 정의로운 전환의 '정의'는 이러한 센의 정의론이 더 쓰임새 있을지도 모른다. 플랫폼 노동, 긱 노동, 무보수 노동자까지 다양한 노동자들의 등장이 넘쳐나는 상황, 기후위기까지 덮친 노동자들에겐 변화하는 사회에서 발생하는 불평등과 부정의를 제거하는 편이 전통적 정규직 노동자가 되는 일보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더 바람직하고, 완벽한 정의인가를 논하기 전에, 이미 우리 사회는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우선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진보정치 안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임금체계 개편도 살펴볼 수 있다.
임금체계 개편, 왜 진보의 금기가 되었나?
직무급제 또는 연봉급제에 대한 찬/반여부를 떠나 산업전환과 노동전환, 지역전환까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시간표에서, 임금체계 개혁에 대한 논쟁이 펼쳐지는 것이 매우 다행스럽다는 생각까지 든다.
현재의 임금체계는 물론 노동운동의 귀중한 열매다. 이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2022년 시점에서 연공급제를 포함한 현재 임금체계가 어떤 불평등을 재생산하고 있는지 한번은 짚어볼 필요가 분명히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를 심화시키고 청년이나 여성들에게 불리하게 작용되는 점이 정말로 없는지 말이다. 또한 정의로운 전환에 따라 재편되는 산업전환 과정에서, 그리고 이에 따라 사라지거나 생겨나는 고용과정에서 더 평등하고 공정한 임금체계가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정의로운 전환이 정의로운 임금체계 개편과 함께 갈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한국은 정말 산별노조가 강해지는 모델이 될 수는 정말로 없는가? 현재의 노동조합이 양적증가에 성공한 시기를 맞이했다면, 기후위기가 찾아온 현재, 미래에 더 가능성 있는 노동조합이 되기 위한 기획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언제까지 '어떤 일'을 하는 가보다, '어디에서 일하는지'가 더 중요한 사회를 유지할 것인가. 이런 차원에서 한국의 복지국가가 두꺼운 기업복지에 밀려 더딘 걸음을 반복하고 있다는 오래된 비판에 대해 노동조합과 진보정당은 어떤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가. 그렇기에 지금 우리 노동에게 필요한 논의는 지금의 노동자와 나중의 노동자가 경험할 부정의를 줄이는 일이 아닌지 말이다.
지금 필요한 용기 있는 걸음
이제 임금문제는 지금의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걸음을 빠르게 내딛어야 한다. 이때 '노·사·민·정'의 역할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한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기업 간 임금불평등 문제는 곧 노동운동의 사회적 연대의 연약함을 반증하고 있다. 소수의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호봉제, 성과급제는 결과적으로 비극적 노동시장 체제를 만들었다. 산별노조, 초기업적 교섭이 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이 곧 '정의로운 전환'이라고 논의될 가치가 있다. 이를 노동운동이 직접 주도할 수 있는 활로를 열어젖혀야 한다. 이제 수북하게 쌓여있는 노동 의제를 전환의 공간에서 해결해 나가야 한다.
논쟁할 용기를 가지자.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흘러간 구호가 되어선 안 된다. 정의로운 전환에게는 최대치의 사회연대가 시급하고, 그 전환을 통해 우리는 사회의 회복력(Resilience)을 절실하게, 아주 절박하게 만들어가야 할 시점에 놓였기 때문이다. 정의로운 전환이 만들어 낼 녹색 일자리(Green job), 더 크게 녹색 일(Green Work)은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복지'와 같은 길을 걸어선 안 된다. 일자리 개수를 늘리는 것을 넘어서, 노동자와 노동 그 자체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 그것이 지금 필요한 정의로운 노동전환의 원칙을 만드는 길이고, 모두의 '노동'에 대해 말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우리는 외면하거나 반목하지 말고, 더 가열차게 우리의 '일'에 대해서 토론해야만 한다.
이 글은 프레시안(내가 만든 복지국가)에 실린 글입니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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