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에 회의적인 하나의 의견

공식 관리자
2025-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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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에 회의적인 하나의 의견

 

섬망의 하사웨이(정치발전소 회원)

 

 

계엄을 부른 헌법의 공백이 아니거나,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선과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를 제안했다. 우리 사회는 지난 4개월간 계엄과 대통령 탄핵이라는 중대한 사건을 겪었다.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으로 한 고비를 넘은 지금, 이번 사태에서 헌법의 공백을 보완하려는 개헌론이 대두된 것은 자연스럽다고 할 것이다. 개헌이 우리 정치의 여러 문제점을 해결할 대안으로 제시된 지난 역사를 보자면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현재 헌법 개정 논의의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과연 저런 헌법 조항이 없어서 계엄과 대통령 파면이라는 사태가 도래했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스러운 대목이 여럿이다. 가령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자는 주장이 그렇다.

 

우리는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리는, 시공간을 뛰어넘는 연대의 감동을 체험했다. 하지만 그 연결의 구체적 증거는 헌법의 공백이 아니라 전·노 두 사람에 대한 97년 대법원의 판례였다. 때문에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은 내란의 재발을 막을 구체적 방책이라기보다 광주와 응원봉 모두에 대한 ‘헌사’에 가깝다. 당장의 긴급성을 요하는 헌법개정 사안은 아니라는 말이다.

 

<▲ 우원식 국회의장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개헌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출처 : 강원도민일보>(http://www.kado.net)  


이미 헌법의 공백이 해소되었거나.

심지어 불법계엄 방지라는 목적에 가장 가깝다고 할 계엄요건의 엄격화와 계엄해제의 명확화마저 그렇다. 헌법재판소는 금번 결정문에서 그간 결정례에 근거하여 계엄과 같은 국가긴급권의 행사가 고도의 통치행위라 할지라도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재차 분명히 했다. 또한 이번 비상계엄은 12월 4일 국회의 결의 이후 윤석열 자신에 의해 해제되었는데, 이는 계엄선포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 아닌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제한적 권한이라는 점이 확인된 것으로, 사실상 해석개헌이 이뤄졌다고 해도 무방하다.

 

계엄요건은 탄핵심판 과정에서 헌법과 계엄법의 문언대로 엄격하게 해석되었으며, 적어도 거대 야당의 존재 따위로 합헌적, 합법적 계엄을 하기는 불가능해졌다. 만에 하나 훗날 이를 무시하고 또 다시 전시·사변 등 비상사태 없는 계엄이 실행된다면, 헌법의 규정이 아니라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상황일 것이다. 요컨대 12.3 비상계엄의 재발을 막기 위한 헌법개정의 과제는 이미 수행되었거나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어떻게 4년 중임제가 제2의 윤석열을 막나요?

논란의 중심은 결국 4년 중임제와 같은 권력구조의 개헌이다. 그리고 이 대목이야말로 개헌논의의 진부함을 보여준다. 다음과 같은 질문이 꼬리를 잇는다. 4년 중임제가 없어서 윤석열은 반란을 일으켰는가? 4년 중임제가 없어서 한국 정치가 극단화되었는가? 비대한 대통령 권한의 축소가 개헌의 목적 중 하나라면 임기를 사실상 5년에서 8년으로 연장하는 4년 중임제가 그 목적에 부합하는 해법인가?

 

당초 4년 중임제는 5년 단임제 정부에서는 짧은 임기라는 시간적 한계로 인해 통치의 책임성이 떨어지므로 이를 극복하자는 차원에서 제기되었다. 정치갈등의 완화라는 차원에서, 최대한 선해하자면, 5년 후면 끝나는 대통령보다는 4년 재선을 해야 하는 대통령이 정부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반대정당과도 대화하고 더 타협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개헌론의 단골 레퍼토리가 됐다.

 

안타깝게도 현대의 포퓰리스트 정치는 중임제라는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미국의 트럼프와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필리핀의 두테르테 같은 대통령 중임(연임)제 국가에서부터, 의회제인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까지. 중임제는 보다 넓은 사회적 기반을 갖는 정부를 만드는 데 기여하기 보다, 더더욱 동원적인 정치를 위한 기회의 장이 될 뿐이다.

 

 

분점정부도 못견디는데 임기만 일치되면 대화합의 장?

4년 중임제와 함께 동시에 제기되는 개헌과제는 대통령 임기와 국회의원 임기의 일치, 대통령 선거와 의회 선거의 주기 일치시키는 것이다. 의회와 행정부 권력이 다른 분점정부(Divided Government)의 가능성을 낮춰, 정치적 갈등을 완화하자는 주장이다. 윤석열이 또한 계엄의 사유로 주장한 거대야당의 폭주 같은 것을 미연에 방지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여소야대라고 역대 정부가 윤석열처럼 계엄령 선포를 하지는 않았다. 민주화 이후 굉장히 자주 여소야대 상황이 있었다. 1988년 총선, 1992년 총선, 1997년 대선, 2000년 총선, 2002년 대선, 2016년 총선, 2022년 대선, 2024년 총선에서 여소야대 국회가 펼쳐졌다.

 

차이가 있다면 역대 정부와 여당들은 계엄 대신, 인위적 정계개편(1990년 3당 합당), 연정(1997년 DJP연합), 의회다수연합 형성(2018년 4+1 정치체) 등 다양한 ‘정치’의 방식으로 이를 타개해 왔다는 것이다. 윤석열과 국민의힘에게 부재했던 것이 바로 이 ‘정치’이며 이는 대통령 임기나 선거주기의 문제가 아니다. 분점정부도 못견디는 정치가 선거주기 일치로 갑자기 좋아질 리 없다는 이야기다.

 

 

권력구조 개헌은 그러면 쉽나?

기본권 포함 최대개헌 대신 권력구조 개편만 하는 최소개헌만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하지만 최소개헌이라고 해도 최소가 아니다. 대통령 중임제와 대선-총선 동시 실시도 당장 다음 총선부터 하려면 차기 대통령 임기를 3년으로 단축하거나, 아니면 차차기 총선에서 국회의원 임기를 2년으로 단축해야 한다. 이해관계가 첨예한데 심지어 몇 십일 내에 의견을 합치하기는 더 힘들다.

 

더군다나 4년 대통령 중임제 방식으로 대통령 임기를 연장한다면 헌법 내 의회제 요소는 줄여야 한다. 즉 정·부통령제도 도입, 법률안발의권 및 예산안 편성권의 의회 독점 등 행정부의 권한을 줄여야, 중임제가 제왕적 대통령 극복이라는 목적에 부응하는 해법이 될 수 있다. 이 경우 정부 관료, 특히 기재부 반발을 돌파해야 한다는 실질적인 문제가 생긴다.

 

즉 어느 것 하나 이해관계가 첨예하지 않은 게 없는데, 갑자기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헌법 개정의 과정은 가중 의결요건도 있고, 그 의의 상 모든 정치세력의 만장일치 속에 이뤄져야 한다. 이러한 이해관계를 조정할 시간이 너무도 부족하다.

 

 

개헌이 아닌 개헌론의 정치만 남지 않으려면

결론적으로 개헌이 실제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첫째, ‘왜’에 대한 합의부터 이뤄져야 한다. 이것은 개헌 문안에 대한 합의보다 더 중요하다. 개헌을 주장하는 이들은 ‘해야 되니까 하는’ 권력구조 개편이 아니라, 중임제나 이원집정부제, 혹은 의회제가 지금의 정치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인지 체계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둘째, 개헌론 대신 실질적인 개헌정치를 해야 한다. 불행히도 우리 정치에서 개헌론은 그간 정치원로들의 훈수나 정치적 국면을 전환해 보려는 카드라는 두가지 형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여서 개헌론은 임기단축마저 불사하는 열세 후보의 캠페인 전략이 돼가고 있는데, 이래서는 개헌 대신 개헌론의 정치공방만 남게 된다.

 

셋째, 최대 일치를 위한 공간과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국회의장의 개헌 제안에는 보다 나은 헌정체제에 대한 책임감이 담겨 있으리라 믿는다. 의장도 개헌론이 다만 정쟁의 소재로 전락하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실질적인 개헌 정치에는 그가 계엄해제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정치적 인내가 중요하다. 그렇다면 60일은 너무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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