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는 벌이 아니다 - 대전 초등학교 사건을 다루는 방법의 문제점들

공식 관리자
2025-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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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는 벌이 아니다

- 대전 초등학교 사건을 다루는 방법의 문제점들


- 정채연 정치발전소 이사(임상심리사)

 

<사진출처 : 아주경제>


대전 초등학교 사건 발생 후 이어지는 보도들을 보면서, 떠오르는 몇 가지 문제의식이 있다.

 

어떤 사안을 논의할 때에 우리는 이를 입체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다양한 요인을 최대한 종합적으로 다룰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분명한 목표와 윤리적 기준 하에 정신장애 역시 보도 및 논의대상이 될 수 있고 논의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건 극초반부 많은 언론은 다른 요인들에 대한 언급없이 가해자의 '우울증에만' 초점을 맞추었고 그마저도 '우울증 등으로 휴직했었다'는 식으로 고민없이 다루었다. 나는 비극일 수록 말과 글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한다고, 의식적으로 느리고 침착한 발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동시에 속도전인 보도 경쟁 속에서 마냥 느리기 어렵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말과 글은 늘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이다. 영향력에는 언제나 책임이 따른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이른 복직 후 가해자의 폭력적 행동에도 불구하고 즉각적인 분리조치가 시행되지 않았다거나, 하교 시 성인이 동행하지 않았다는 등의 여타 요인들을 다루는 보도도 이어졌지만 초기의 프레이밍으로 인해 여론은 주로 정신장애로 갑론을박하고 있다.

 

새로운 제도(법)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나 이미 있는 제도가 왜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좀 더 심도있게 다루어야하는 것 아닐까? 나는 기능하지 않는 제도와 매뉴얼을 추가하는 게 또다른 비극을 막는 데에 기여하기보다는 오히려 사람들을 더욱 방어적으로 만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특정 직종만을 대상으로 정신건강을 점검, 관리해야한다는 식의 방안은 실효성이 적을뿐만 아니라 예상되는 부정적 영향이 너무 크다. 이건 치료를 벌로 인식하게 만드는 일이다.

 

지난 몇 년간 정신과 현장에 있으면서 사람들의 생각이 얼마나 많이 달라졌는지 체감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단순히 막연하게 정신장애인이 곧 범죄자라는 식의 주장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은연 중에, 정신장애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범죄자에게 심리적 문제가 있던 것 아닌가 하는 의문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질문과 매칭되지 않았기에 지금까지 여러 개인과 집단이 주장해왔던 '정신장애인은 범죄의 피해자가 된다'거나 '정신장애와 범죄는 연관성이 없다'는 답이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결국 정신질환은 위험한 것 아니냐'며 안전을 위한 정신질환 관리가 필요하다는 반론에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겐 한국 사회에서 심리적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접근과 주장이 필요하다. 인간은 살면서 언제든지 심리적 문제를 경험할 수 있을 뿐더러 누구나 충동성, 공격성, 폭력성과 같은 성향을 지니고 태어난다. 그리고 이런 성향은 삶에서 주어지는 환경과 다양한 스트레스로 인해 발현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인간 사회에서 범죄란 필연적으로 내재되어 있으며, 범죄자만 우리와 전혀 다른 괴생명체같은 것이 아니다.

 

물론 비슷한 환경에서도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많고 범죄를 선택하는 이들은 극히 드물다는 것도 맞다. 그러나 우리가 아예 공격성이 없는 인간을 만들 수는 없다. 아무리 유전자 가위가 발전한다한들 그런 건 용인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가 예방을 위해 고려할 수 있는 건 비슷한 환경을 세팅하는 일이다. 특히나 한국처럼 자살률, 우울증 유병률은 모두 OECD 1위인데 반해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률이 낮은 국가라면,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아닌 인간 전체에 내재된 부정적인 면을 인정하고 심리적 문제가 극단적으로 발현되지 않도록 다룰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 상황에서 특정 유형의 범죄 예방만을 목표로 정책을 설계한다는 건 사실상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 동안 인간이 영위해야하는 삶의 최저선을 설정하고 이를 보장해야한다는 합의 하에 다양한 사회 정책들이 설계되고 실행되어왔다. 지금까지는 논의가 주로 경제적 환경에 중점을 두었다면 이제는 전국민의 정신건강 환경에 대한 최저선을 고민하고 설계해야한다. 그 기반 위에서 직종별 혹은 집단별 특성을 고려한 전략을 도모해야하나 지금의 해법은 선후관계 뿐 아니라 목표도, 수단도, 대상도 모두 잘못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특히 현재 논의는 범죄 예방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심리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시민들에게 거의 즉각적인 소외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당장 개선해야할 것들만 떠올려도 너무나 많다. 현재 국가건강검진 상에 우울증 검사와 조기정신증 검사가 포함되어있다. 그러나 그 시행빈도와 실시 내용에 대해서는 아직 더할 점이 많다고 본다. 자신의 고통을 수용하더라도 심리상담센터는 높은 비용으로 인해 선뜻 찾기 어렵고, 정신과는 사회적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문턱을 넘기 어렵다. 중증 정신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정신건강복지센터는 그 수 자체가 너무 적고 노동인력도 부족하다. 정신장애인의 재활을 위한 시설은 민간이 건립하여 지자체로부터 보조금을 지급받는 데에만 몇 년이 걸린다. 정신장애인이 정신병동에 입원했다가 격리·강박으로 목숨을 잃는 일은 현재에도 드물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정신과 치료는 인생의 패배자, 나약한 인간, 문제아들이나 받는 것이었다. 마치 삶을 잘못 산 대가로 받는 벌처럼 여겨졌다. 여기에 범죄자가 추가된다한들 치료의 필요성을 시민들이 더 느낄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정신과는 잠재적 범죄자들이 가는 곳이라는 편견만 더해질 것이다.

 

우리는 모두 언제든지 아플 수 있기에, 중요한 것은 아픔 그 자체 보다 ‘아픔과 함께 어떻게 살 것인가’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초점은 삶이 아닌 고통에 맞추어지게 될 것이다. 진정한 재발방지를 위해, 향후 동료시민들의 삶 전반과 행복을 위해 우리는 국가 차원에서의 정신건강을 정말 깊이 있게 논의해야한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고, 치료는 벌이 아니다.

 

 

*필자소개

정치발전소 이사. 정치와 정신건강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심리학과 임상심리학을 전공하고 현재 수원에서 임상심리사로 일하고 있으며 정치유니온 <세번째 권력>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번역서로 <당신이 잃어버린 프로이트> / 부르노 베텔하임 지음 / 정채연 옮김 / 북하이브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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