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건준 아무나유니온 대표(정치발전소 회원)
<조건준 아무나유니온 대표의 블로그에 올라온 글입니다. 원글 주소는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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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을 선포했는데 어디서 뭐하냐, 빨리 집에 들어와” 친구들이랑 술 마시는데 엄마의 전화를 받고, 뭐? 엄마가 집안에 계엄을 선포한 거야? 속히 귀가하라는 포고령을 내린 건가. “뭐야, 쌍팔년도 아닌데”라고 전화를 끊었단다. 그런데 알아보니 진짜로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다. 우아, 현실이었어. 우리 모두 빵 터졌다.
뒷풀이에서 다시 회자되었다. 엄마의 계엄은 윤석열 계엄보다 무서울 수 있다고, 윤석열 계엄은 좀 멀리서 오지만, 엄마 계엄은 바로 곁의 압박이다. 윤석열 계엄은 국가를 망치고 엄마의 계엄은 가족을 지키려는 것이다. 윤석열 계엄은 국회가 무력화시킬 수 있지만, 엄마의 계엄을 해제시킬 합법적 장치가 없다. 아빠가 해제시키려 했다간 집안 내란.
강연을 빙자한 송년회인지, 송년회를 빙자한 강연을 하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강연이 아니라 계엄선포부터 국회에 있었던 분들의 얘기를 듣고 송년회를 한단다. 단체 대표의 문자도 받았다. 오시면 다들 좋아할 것 같다나. 그러겠다며 참석한 12월 18일 토크쇼에 이어진 송년회 얘기다.
계엄군과 부딪친 순간들
계엄 당시 어디에서 듣고 어떤 느낌이었나요. 참석자에게 물었을 때 앞의 ‘엄마 계엄’ 얘기가 나왔다. 술 마시다 계엄 들은 분이 많구나. 연말이고 밤이니 그럴 만하다. 국회에서 일하는 분들은 어땠을까. “국회 담을 넘었다는 무용담을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늘 일찍 움직이는 저는 술 마시다가 바로 택시 타고 유유히 정문으로 통과해서 국회에 갔습니다” 유머 섞인 보좌관 A의 얘기에 웃었다. 평온하게 퇴근해 계엄 얘기들은 보좌관 B는 택시를 타고 출발해 A보다 약간 늦게 정문을 통과했다. 경기도에 사는 야당 당직자 C는 집에 도착할 즈음에 계엄 소식을 듣고 내리자마자 택시를 타고 국회로 향했지만, 거리가 멀고 막혀서 국회 계엄 해제 결의가 이뤄진 때에 도착했다고 한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곳에서 계엄을 들었지만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비슷했다.
(당시의 나를 되새겼다. 야근 중에 텔레그램으로 받은 계엄 선포 소식에 ‘술 쳐먹었나’ 했다. 과거처럼 전투를 불사할 것인가. 얼른 계엄법을 찾았다. 그렇지. 국회가 해제할 수 있지. 사무실이 국회에서 멀지 않은데 군대와 탱크의 이동으로 인한 요란은 없다. 통신망을 뒤져 상황을 확인했다. 국회로 모이는구나. “우리도 국회로 가야 하는 것 아녀” 사무실에 늦게 남아 일하는 이에게 말했다. 너무 어설픈 계엄 상황을 어느 정도 확인하고 있는 터라 지금 당장 보다는 상황을 보면서 대응하는게 좋겠단다. 국회의원도 꽤 모였다는 소식에 약간 안심. “얼마나 갈까요?” 그가 물었다. 어이 없는 계엄이라 3시간? 6시간? 하루? 그 이상이면 심각한 것. 국회 상황을 확인하면서 귀가했더니 첫째가 거실에서 티비 뉴스를 보고 있다. “아빠, 전화도 안되고 왜 걱정하게 만들어” 귀가 중 휴대폰 배터리가 다 되어서 연락 두절. 첫째는 어제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다 읽었다. 그 책을 통해 살벌한 계엄에 대한 감각이 살아 있을 터인데 바로 다음날 계엄 선포. 무려 45년 전 악몽이 딱.)
“국회 선진화법 때문에 몸싸움은 금지였거든요. 그래서 쌓인 몸 좀 풀자는 분위기도 있었어요” A는 유머를 실어 군인들 국회로 난입 얘기를 했다. 유머를 잃지 않는 내공 좋다. B는 이렇게 기억했다. “군인에 맞서던 장면을 보여주는 언론 보도를 보면 그런 느낌이 들 수 있지만, 사실 막 험악한 전투가 벌어진 그런 분위기만은 아녔어요. 소화전 연결해 물을 뿌릴 때 군인들이 그랬거든요. 날도 이렇게 추운데 물을 뿌리면 곤란하다고, 그래서 물 그만 뿌리래요. 전달해서 물 뿌리는 걸 멈추기도 했구요. 소화기 분말 뿌릴 때도, 우리 쪽에서 ‘하지마’라고 해서 중단하기도 했구요”
폭력은 대항 폭력을 부른다. 노동 현장과 시위 현장에서 오랫동안 겪었다. 출동한 군대는 무지막지할 수 없었다. 우리는 폭력 바이러스에 무자비하게 감염될 만큼 약한 수준이 아니다. 민주주의 축적 결과이고 시민정신이며 선진화된 국가의 문화 역량이다. 우리 모두에게 작동하는 역량이다. “헬리콥터 소리를 들으며 무서웠어요. 국회에 내렸다는 소식과 공수부대가 도착했다는 소식에 놀랐어요” 약간 너스레를 섞어 말하지만, 그 상황이 삐끗하면 피를 보는 아수라장이 될 수도 있었다. 계엄은 국가폭력의 공포를 자극했다.
“직장이 이렇게 자랑스런 건 처음입니다.”
내가 알기로는 가장 베테랑인 국회의원 보좌관 B는 이렇게 말했다. “평소에 택시를 타면 귀를 막고 제발 직업을 묻지 않기를 바랬어요” 그랬을 것이다. 늘 국회는 욕먹는 곳. 이번 계엄 해제로 국회에 대한 신뢰가 급상승했다. “헌법에는 국회가 먼저 나옵니다” 헌법의 1장은 총강이 나오고 2장은 국민의 권리와 의무가 있고 3장에 국회가 나온다. 제 4장에 정부에 대해 언급하는데 대통령과 행정부에 관한 내용이다. 왜 국회가 정부보다 먼저인가. 의미심장한 것이다.
“여러분이 맺었고 적용받는 단체협약에 임금은 언제 등장할까요” 노조 교육에서 이렇게 묻곤 한다. 제대로 된 단체협약이라면 임금은 6장 쯤에 등장한다. 제일 먼저 등장하는 것은 총칙이지만, 그 다음에 권리 조항이 나온다. 조합가입 범위와 노조 사무실과 노조활동시간 등 노조할 권리 조항이 나오고 한참 뒤인 6장 쯤에 나온다. 노조는 권리 먼저지 실리 먼저가 아니다. 노조는 권리결사체지 이익결사체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런 단체협약의 정신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지킬까.
국회가 정부보다 먼저 등장하는 헌법 정신은 평범하게 스쳐 지날 수도 있다. 그러나 너무 너무 중요한 것이다. 국가가 흔들리는 사태에 직면해 확인하고 있다. 그렇다고 국회 의원이나 보좌관들 어깨에 뽕 넣고 다니라는 것은 아니라는 걸 우리 모두 안다. “엄마 택시 공짜로 태워주는 거 아냐?” B의 아이 얘기처럼 그 정도는 아니다. 또 탄핵 인용을 둘러싼 논란과 조기 대선을 둘러싸고 갑론을박하면서 정치는 사라지고 권력투쟁만 가득차면 국회는 여지없이 씹히겠지만, 입법부의 중요성은 확실히 높아졌다.
<송년회 참가자들에게 나누어준 기념품>
“맘껏 기뻐할 순 없었어요”
탄핵 표결을 앞둔 순간에 대한 얘기가 이어졌다. “좀 자신감도 있었어요. 드라마 대사가 떠올랐습니다. ‘선은 니가 넘었다’는. 그들이 선을 넘었기 때문에 탄핵은 가결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는 A. 국회 사람들은 대체로 가결될 것으로 생각했단다. 한번 부결 후에도 다음 주냐, 그 다음 주냐 정도였다고. 계엄 사태에 국민의힘이 부결을 선택한 것은 큰 실수라고 생각했다.
“단 10%의 지지만 있어도 그들은 그것을 근거로 세상을 흔들 수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B의 얘기다. 뒤풀이에서 이런 얘기가 오갔다. “맘껏 기뻐할 수 없었어요” 탄핵이 가결되던 때 광장에 있던 우리는 기뻤다. 눈물을 흘리던 사람도 있었다. 환호하며 ‘다시 만난 세계’가 울려 퍼질 때 울컥했지만 딱 그 정도였다는 얘기도. (탄핵 가결 소식을 들은 후 여의도 광장에서 만난 딸들과 셋이서 어깨 걸고 흘러나오는 노래를 부르며 뛰면서 기뻐했다. 마냥 충만하지는 않았다. 그날 집회 후 뒷풀이를 향해 함께 가던 딸은 그랬다. “또 헌재가 어쩌고 저쩌고 해대겠지”) 정치가 복원되어 여야 합의로 탄핵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여당에서 겨우 12표의 이탈만 있었다는 것도 찜찜했다.
뒷풀이에서 국회에서 일하는 D는 걱정이 배인 표정과 톤으로 말했다. “그 시간에 광화문에도 많이 모였더라구요. 국힘 의원들은 광화문 집회사진을 실시간으로 돌려 보고 그랬다고 하더라구요” 윤석열이 담화를 통해 잘못이 없고 국민과 함께 싸우겠다고 선언한 것은 우익을 선동한 것이라는 얘기, 그것은 이후에 갈등을 예고하는 것이라는 점, 어떤 외국 학자를 만난 이의 얘기도 들었다. 그 나라 사람들 성향처럼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그는 한국을 걱정했단다.
사회가 분단되고 있을까
외국학자의 요점은 "한국은 사회가 분단되고 있다"는 것. 어이없는 계엄을 이겨낸 광장의 열기, 탄핵 가결로 이어진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존경도 있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한국은 사회 자체가 분단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솔직한 마음을 내보이더라는 것이다. 너무 비관적일까.
자정이 다가올 무렵 일어섰다. 예전처럼 술을 마셨다면 2차 가자고 했을 텐데 집에 가려고 나섰다. 2차 갈 사람들은 ‘에이, 선배도 같이 가야지’ 하면서 끌어당겼다. 그래, 갑시다. 두 개의 정당, 두 개의 광장에 대해 얘기했다. 남북 분단, 국회의 분단, 광장의 분단을 생각하면 우리는 분단을 넘어서고 있는 걸까. 송년회다. 너무 어려운 얘기 하지 말자. 하지만 우리 얘기는 끝나지 않았다.
탄핵 표결하던 14일, 언론에서 여의도 집회와 광화문 집회를 동시에 띄워서 내보낼 때 불편했다. 두 집회를 수평적으로 비교하는 방식이 타당할까. 어떤 가중치에 대한 판단도 없이 찬성과 반대를 그냥 기계적으로 대비하는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그러나 두 집회는 달랐다. 여의도에 모인 시민은 연령과 성별이 다양했다. 광화문은 상대적으로 고연령층이 많았다. 여의도는 응원봉과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너무 재밌는 다양한 깃발들이 있었고 노래도 다양했다. 발언자도 다양했다. 광화문은 이와 다르다. 여의도는 탄핵 가결로 기쁨이 가득했다면, 광화문은 분노와 적대가 더 강한 것 같았다. 희망은 여의도에 있었다.
다양성의 광장에 극단도 있기 마련. 그것을 적대와 폭력으로 제압할 것인가, 시민정신의 큰 물결로 넘어설 것인가. 폭력의 반정치를 할 것인지, 민주적 정치를 할 것인지 문제다. 술을 마시지 않지만 2차에 온 간호사는 그랬다. “광장이 너무 과하게 열린 것도 문제 같아요” 조국 찬반 이후 갈라선 광장을 보면 좀 그렇다. “광장이나 은둔생활이 아니라 독립된 공간도 필요한 것 같아요” 그가 얘기하고 싶은 것이 뭔지는 조금 알 것 같다. 그런데 광장과 의회와 일상은 순환해야 한다.
“커뮤니티가 중요한 것 같아요”
태극기 집회에 참가해 본 적이 있나요. 몇 번 그런 집회에 들어가 본 적 있다. 언론에서도 그런 집회 참가자와 밀착 취재를 한 적이 있다. 대통령이 국회를 개무시하고, 여야가 정치 대신 적대와 사법화로 치닫을 때, 이것은 강한 신호다. 이견을 가진 시민은 동료시민이 아니라 적이라는. 만나 얘기하는 공론장이 아닌 적대와 혐오의 광장을 부추긴다.
“노인이 많은데, 얘기하다 보면 처음엔 험악해요. 집회에서 말하는 주장만 반복하죠” 광주 시민을 학살한 그 이름만 들으면 치가 떨리는 내게 전두환의 리더십이라는 책자를 들고 와 사고 서명하라는 강요에 발끈해 부딪친 적도 있다. 미군철수 반대를 외치는 나이 드신 여성과 설전을 벌인 적도 있다. 경험을 말하자 간호사가 그랬다. “그러면 안돼요”. 외로움이 깊게 깔린 황혼에 존재 의미를 찾을 수 없을 때, 누군가 손을 내밀어 할 일이 있고 그것이 국가를 구한다는 의미를 부여해 주면, 외롭게 홀로 있는 사람에게는 태극기 집회는 인생의 빛이다. 짙은 외로움이 깔려 있는데 전두환이 죽일 놈이냐 위대한 리더냐, 미군 철수를 반대하냐 자주국방 자신감이 없냐는 논쟁이 무슨 소용일까.
윤석열에 대한 수많은 얘기를 모으면 편향된 연결이다. 김건희와 무슨 법사, 극우 유튜버, 충암고 인맥 등은 가장 많은 연결망을 가질 수 있는 대통령이 얼마나 편향적 연결에 갇혀 있는지 보여준다. 적대와 혐오의 뿌리에 단절과 외로움이 있다는 분석은 꽤 있었다. 배제된 사람들에게 다정한 곁으로서 커뮤니티는 충분한가. 아이돌 팬덤은 고립된 커뮤니티가 아니라 응원봉을 들고 광장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저토록 활기찰 수 있다. 그래서 “소속될 적절한 공동체”를 얘기한 부산 도우미 여성 집회 발언의 통찰력이 돋보였다.
“국힘당원입니다”
2차에 함께한 분께 혹시 당적을 가지고 있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민주당원 시기와 제3지대 관심을 둔 시기를 거쳐 국힘당원 된지 얼마 안되었는데 12.3 사태가 왔다는 것. 다원적 정치로 가야 한다는데, 변하지 않은 양당체제 한 쪽에서 뭔가 경험하고 또 다른 가능성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가입했었다. 당원 행사에 가 보았는데 나이드신 분들 친목대회 같아 딱히 낄 자리는 없었고 참여할 당원모임도 없다. 근데 계엄사태로 또 다른 상황.
“그렇게 심각한 일인가 싶었다고 하던데요” 직장 동료들과 계엄에 관한 얘기도 하냐는 질문에 그렇게 답했다. 계엄선포가 그렇게 심각한 일인 것인지 몰랐다가 난리가 난 걸 보고서 ‘아, 심각한 일이구나’ 싶었다는 동료도 있고, 헌법재판소 앞에서 벌써 탄핵인용 반대와 찬성 집회가 열리는 것을 보았다는 얘기도 잠깐 한단다.
조용 조용 말하는 그는 “정치가 있어야 힌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치에 대해 얘기할 곳이 많지 않다며 여기에 와서 얘기하는 것이 거의 전부라고 했다. 나는 무당이다. 어떤이는 조국혁신당, 어떤 이는 민주당, 그리고 그는 국힘당이다. 이 시국에 이런 송년회를 함께 하고 있다. 폐쇄된 연결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개방적이고 다양성을 가진 커뮤니티가 소중하다.
헌재의 시간인가
옆 테이블에서 대통령 직무 대행의 권한 범위에 대한 얘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직무대행에게 헌법재판관 임명권이 있냐는 것. “이미 헌법재판관들이 얘기했어요. 임명할 권한이 있다고” “권한 대행의 역할은 현상 유지 차원에서 행사되어야죠” “이번 헌법재판관 임명은 대통령 몫이 아니라 의회 추천 몫이니 권한대행은 그냥 인정해주면 되는 겁니다” 그럼 의회가 결정한 것을 거부하는 것은 가능한 것이냐, 그러면 안된다, 야당이 밀어붙여서 입법하면 권한 대행은 다 인정해야 하냐, 이 기회에 다수당이 하고 싶은 거 다 해도 되는 거냐...얘기 중에 “헌법재판관이 뭔데 걔들이 결정하면 그것이 정답이 되는 거냐”는 얘기가 크게 들렸다.
결국 헌법재판소로 가는 것, 정치가 부족해 법원 판단에 모든 것을 맡기는 사법화다. 허망한 기대지만 정치적 합으로 대통령이 사퇴했다면 이렇게 오지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은 우익을 선동하고, 탄핵 가결이후 여당에서 “이제 전쟁이다”는 식으로 나온다. 정치는 더 죽어 간다.
“탄핵이 헌재에서 인용되지 않으면 정말로 내전이 벌어지는 것 아니냐” 한 참석자는 이야기 마당에서 이렇게 우려했다. 윤석열과 여당은 명통령 반대를 앞세우며 전투를 확대할 모양이다.(이 송년회 후기를 쓰고 있는데, 대통령 권한 대행이 6개 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재명도 칼을 갈며 권력욕을 불태우고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민주당식 사고
분명한 것은 민주주의 정치를 나락으로 빠뜨린 윤석열 심판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 분명한 것은 결국 우리는 미달한 정치로 인해 사법화로 간다는 것. ‘정치는 내전이다’ 이런 하나의 문구에 빠지면 항상 내전의 불안늘 안고 살게 된다. 정치는 갈등의 비폭력적 해결이다. “정치는 적과 아군을 구별하는 것이다”는 문구에 갇히면 우리는 적대를 정치로 착각할 것이다. 정치는 갈등 상대와 대화하고 합의를 만들려는 가능성의 예술이 아닌가.
“좋은 보수가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이야기 마당에서 B가 했던 말이다. 동감이다. 그런 주제로 글을 쓰고 있는데 반가웠다. 이 험한 상황에서 건강한 보수가 확장될까. 일상에서, 술자리에서, 크고 작은 토론장에서 얘기해야 한다. 계엄과 국힘에 대한 분노만이 아니라 ‘민주당식 사고’도. 운동권이 주류 정치인이 된 것, 권력을 잡았을 때 정치를 확장하지 못하고, 권력 놓치면 저항세력처럼 굴면서, 주류로서 걸맞는 책임을 지지 않는 것, 계엄을 해제한 공로는 칭찬받아야 하지만 그 이전에 정치 복원하지 못한 한계, 정치를 복원하기 위한 비전이 ‘민주당식 사고’로 가능할지.
(이름에 민주를 붙인 노총도 사실은 주류가 노동시장 상층이 되었는데, 약자에서 노동시장 상층으로 올랐다는 점에서 민주당과 유사한 스토리가 있음. 주류가 체제 저항자? 얼룩진 주류인데 아닌 듯 격한 조국, 주류인데 체제 저항 선동자처럼 구는 김어준은 민주당식 사고의 모델?)
더 절실한 교감
계엄은 반정치다. 계엄해제는 정치다. 탄핵부결은 반정치였다. 이런 얘기를 하던 중 첫째가 반문했다. 반정치와 비정치는 어떻게 다르냐. 여러 생각이 들었다. 아직 정치, 반정치, 비정치를 정확히 말 할 수 없다.
“정치를 다루는 단체라면, 일관되게 정치의 입장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과정을 추적하고 무엇이 정치고 반정치며 비정치인가를 얘기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주문에 이야기 마당 사회를 맡았던 그는 “너무 어려운 문제”라고 했다. 쉽지 않다. 그러나 누군가 해야 하는 얘기 아닐까.
10위권 경제, 봉준호와 BTS의 한류,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강이 있는 대한민국이 동방의 새 정치를 탄생시키기 위해 반드시 논의해야 한다. 정치에 대한 한 단계 높은 인식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여전히 우리는 계엄 망령에 허우적거리면서 내전을 걱정할 것이다. 우리에겐 보수 우익은 물론 ‘민주당식 사고’를 넘어 교감할 공론장이 필요하다. 그것을 통해 계엄 망령과 명통령 논란 너머 새 리더와 새로운 시민, 동방의 새 정치가 탄생할 것이다. 다른 분야에서 이룬 것을 왜 정치에서는 못한다는 것인가. <끝>.
- 조건준 아무나유니온 대표(정치발전소 회원)
<조건준 아무나유니온 대표의 블로그에 올라온 글입니다. 원글 주소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s://m.blog.naver.com/anyoneunion/223698973498
계엄을 선포했는데 어디서 뭐하냐, 빨리 집에 들어와” 친구들이랑 술 마시는데 엄마의 전화를 받고, 뭐? 엄마가 집안에 계엄을 선포한 거야? 속히 귀가하라는 포고령을 내린 건가. “뭐야, 쌍팔년도 아닌데”라고 전화를 끊었단다. 그런데 알아보니 진짜로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다. 우아, 현실이었어. 우리 모두 빵 터졌다.
뒷풀이에서 다시 회자되었다. 엄마의 계엄은 윤석열 계엄보다 무서울 수 있다고, 윤석열 계엄은 좀 멀리서 오지만, 엄마 계엄은 바로 곁의 압박이다. 윤석열 계엄은 국가를 망치고 엄마의 계엄은 가족을 지키려는 것이다. 윤석열 계엄은 국회가 무력화시킬 수 있지만, 엄마의 계엄을 해제시킬 합법적 장치가 없다. 아빠가 해제시키려 했다간 집안 내란.
강연을 빙자한 송년회인지, 송년회를 빙자한 강연을 하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강연이 아니라 계엄선포부터 국회에 있었던 분들의 얘기를 듣고 송년회를 한단다. 단체 대표의 문자도 받았다. 오시면 다들 좋아할 것 같다나. 그러겠다며 참석한 12월 18일 토크쇼에 이어진 송년회 얘기다.
계엄군과 부딪친 순간들
계엄 당시 어디에서 듣고 어떤 느낌이었나요. 참석자에게 물었을 때 앞의 ‘엄마 계엄’ 얘기가 나왔다. 술 마시다 계엄 들은 분이 많구나. 연말이고 밤이니 그럴 만하다. 국회에서 일하는 분들은 어땠을까. “국회 담을 넘었다는 무용담을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늘 일찍 움직이는 저는 술 마시다가 바로 택시 타고 유유히 정문으로 통과해서 국회에 갔습니다” 유머 섞인 보좌관 A의 얘기에 웃었다. 평온하게 퇴근해 계엄 얘기들은 보좌관 B는 택시를 타고 출발해 A보다 약간 늦게 정문을 통과했다. 경기도에 사는 야당 당직자 C는 집에 도착할 즈음에 계엄 소식을 듣고 내리자마자 택시를 타고 국회로 향했지만, 거리가 멀고 막혀서 국회 계엄 해제 결의가 이뤄진 때에 도착했다고 한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곳에서 계엄을 들었지만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비슷했다.
(당시의 나를 되새겼다. 야근 중에 텔레그램으로 받은 계엄 선포 소식에 ‘술 쳐먹었나’ 했다. 과거처럼 전투를 불사할 것인가. 얼른 계엄법을 찾았다. 그렇지. 국회가 해제할 수 있지. 사무실이 국회에서 멀지 않은데 군대와 탱크의 이동으로 인한 요란은 없다. 통신망을 뒤져 상황을 확인했다. 국회로 모이는구나. “우리도 국회로 가야 하는 것 아녀” 사무실에 늦게 남아 일하는 이에게 말했다. 너무 어설픈 계엄 상황을 어느 정도 확인하고 있는 터라 지금 당장 보다는 상황을 보면서 대응하는게 좋겠단다. 국회의원도 꽤 모였다는 소식에 약간 안심. “얼마나 갈까요?” 그가 물었다. 어이 없는 계엄이라 3시간? 6시간? 하루? 그 이상이면 심각한 것. 국회 상황을 확인하면서 귀가했더니 첫째가 거실에서 티비 뉴스를 보고 있다. “아빠, 전화도 안되고 왜 걱정하게 만들어” 귀가 중 휴대폰 배터리가 다 되어서 연락 두절. 첫째는 어제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다 읽었다. 그 책을 통해 살벌한 계엄에 대한 감각이 살아 있을 터인데 바로 다음날 계엄 선포. 무려 45년 전 악몽이 딱.)
“국회 선진화법 때문에 몸싸움은 금지였거든요. 그래서 쌓인 몸 좀 풀자는 분위기도 있었어요” A는 유머를 실어 군인들 국회로 난입 얘기를 했다. 유머를 잃지 않는 내공 좋다. B는 이렇게 기억했다. “군인에 맞서던 장면을 보여주는 언론 보도를 보면 그런 느낌이 들 수 있지만, 사실 막 험악한 전투가 벌어진 그런 분위기만은 아녔어요. 소화전 연결해 물을 뿌릴 때 군인들이 그랬거든요. 날도 이렇게 추운데 물을 뿌리면 곤란하다고, 그래서 물 그만 뿌리래요. 전달해서 물 뿌리는 걸 멈추기도 했구요. 소화기 분말 뿌릴 때도, 우리 쪽에서 ‘하지마’라고 해서 중단하기도 했구요”
폭력은 대항 폭력을 부른다. 노동 현장과 시위 현장에서 오랫동안 겪었다. 출동한 군대는 무지막지할 수 없었다. 우리는 폭력 바이러스에 무자비하게 감염될 만큼 약한 수준이 아니다. 민주주의 축적 결과이고 시민정신이며 선진화된 국가의 문화 역량이다. 우리 모두에게 작동하는 역량이다. “헬리콥터 소리를 들으며 무서웠어요. 국회에 내렸다는 소식과 공수부대가 도착했다는 소식에 놀랐어요” 약간 너스레를 섞어 말하지만, 그 상황이 삐끗하면 피를 보는 아수라장이 될 수도 있었다. 계엄은 국가폭력의 공포를 자극했다.
“직장이 이렇게 자랑스런 건 처음입니다.”
내가 알기로는 가장 베테랑인 국회의원 보좌관 B는 이렇게 말했다. “평소에 택시를 타면 귀를 막고 제발 직업을 묻지 않기를 바랬어요” 그랬을 것이다. 늘 국회는 욕먹는 곳. 이번 계엄 해제로 국회에 대한 신뢰가 급상승했다. “헌법에는 국회가 먼저 나옵니다” 헌법의 1장은 총강이 나오고 2장은 국민의 권리와 의무가 있고 3장에 국회가 나온다. 제 4장에 정부에 대해 언급하는데 대통령과 행정부에 관한 내용이다. 왜 국회가 정부보다 먼저인가. 의미심장한 것이다.
“여러분이 맺었고 적용받는 단체협약에 임금은 언제 등장할까요” 노조 교육에서 이렇게 묻곤 한다. 제대로 된 단체협약이라면 임금은 6장 쯤에 등장한다. 제일 먼저 등장하는 것은 총칙이지만, 그 다음에 권리 조항이 나온다. 조합가입 범위와 노조 사무실과 노조활동시간 등 노조할 권리 조항이 나오고 한참 뒤인 6장 쯤에 나온다. 노조는 권리 먼저지 실리 먼저가 아니다. 노조는 권리결사체지 이익결사체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런 단체협약의 정신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지킬까.
국회가 정부보다 먼저 등장하는 헌법 정신은 평범하게 스쳐 지날 수도 있다. 그러나 너무 너무 중요한 것이다. 국가가 흔들리는 사태에 직면해 확인하고 있다. 그렇다고 국회 의원이나 보좌관들 어깨에 뽕 넣고 다니라는 것은 아니라는 걸 우리 모두 안다. “엄마 택시 공짜로 태워주는 거 아냐?” B의 아이 얘기처럼 그 정도는 아니다. 또 탄핵 인용을 둘러싼 논란과 조기 대선을 둘러싸고 갑론을박하면서 정치는 사라지고 권력투쟁만 가득차면 국회는 여지없이 씹히겠지만, 입법부의 중요성은 확실히 높아졌다.
<송년회 참가자들에게 나누어준 기념품>
“맘껏 기뻐할 순 없었어요”
탄핵 표결을 앞둔 순간에 대한 얘기가 이어졌다. “좀 자신감도 있었어요. 드라마 대사가 떠올랐습니다. ‘선은 니가 넘었다’는. 그들이 선을 넘었기 때문에 탄핵은 가결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는 A. 국회 사람들은 대체로 가결될 것으로 생각했단다. 한번 부결 후에도 다음 주냐, 그 다음 주냐 정도였다고. 계엄 사태에 국민의힘이 부결을 선택한 것은 큰 실수라고 생각했다.
“단 10%의 지지만 있어도 그들은 그것을 근거로 세상을 흔들 수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B의 얘기다. 뒤풀이에서 이런 얘기가 오갔다. “맘껏 기뻐할 수 없었어요” 탄핵이 가결되던 때 광장에 있던 우리는 기뻤다. 눈물을 흘리던 사람도 있었다. 환호하며 ‘다시 만난 세계’가 울려 퍼질 때 울컥했지만 딱 그 정도였다는 얘기도. (탄핵 가결 소식을 들은 후 여의도 광장에서 만난 딸들과 셋이서 어깨 걸고 흘러나오는 노래를 부르며 뛰면서 기뻐했다. 마냥 충만하지는 않았다. 그날 집회 후 뒷풀이를 향해 함께 가던 딸은 그랬다. “또 헌재가 어쩌고 저쩌고 해대겠지”) 정치가 복원되어 여야 합의로 탄핵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여당에서 겨우 12표의 이탈만 있었다는 것도 찜찜했다.
뒷풀이에서 국회에서 일하는 D는 걱정이 배인 표정과 톤으로 말했다. “그 시간에 광화문에도 많이 모였더라구요. 국힘 의원들은 광화문 집회사진을 실시간으로 돌려 보고 그랬다고 하더라구요” 윤석열이 담화를 통해 잘못이 없고 국민과 함께 싸우겠다고 선언한 것은 우익을 선동한 것이라는 얘기, 그것은 이후에 갈등을 예고하는 것이라는 점, 어떤 외국 학자를 만난 이의 얘기도 들었다. 그 나라 사람들 성향처럼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그는 한국을 걱정했단다.
사회가 분단되고 있을까
외국학자의 요점은 "한국은 사회가 분단되고 있다"는 것. 어이없는 계엄을 이겨낸 광장의 열기, 탄핵 가결로 이어진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존경도 있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한국은 사회 자체가 분단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솔직한 마음을 내보이더라는 것이다. 너무 비관적일까.
자정이 다가올 무렵 일어섰다. 예전처럼 술을 마셨다면 2차 가자고 했을 텐데 집에 가려고 나섰다. 2차 갈 사람들은 ‘에이, 선배도 같이 가야지’ 하면서 끌어당겼다. 그래, 갑시다. 두 개의 정당, 두 개의 광장에 대해 얘기했다. 남북 분단, 국회의 분단, 광장의 분단을 생각하면 우리는 분단을 넘어서고 있는 걸까. 송년회다. 너무 어려운 얘기 하지 말자. 하지만 우리 얘기는 끝나지 않았다.
탄핵 표결하던 14일, 언론에서 여의도 집회와 광화문 집회를 동시에 띄워서 내보낼 때 불편했다. 두 집회를 수평적으로 비교하는 방식이 타당할까. 어떤 가중치에 대한 판단도 없이 찬성과 반대를 그냥 기계적으로 대비하는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그러나 두 집회는 달랐다. 여의도에 모인 시민은 연령과 성별이 다양했다. 광화문은 상대적으로 고연령층이 많았다. 여의도는 응원봉과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너무 재밌는 다양한 깃발들이 있었고 노래도 다양했다. 발언자도 다양했다. 광화문은 이와 다르다. 여의도는 탄핵 가결로 기쁨이 가득했다면, 광화문은 분노와 적대가 더 강한 것 같았다. 희망은 여의도에 있었다.
다양성의 광장에 극단도 있기 마련. 그것을 적대와 폭력으로 제압할 것인가, 시민정신의 큰 물결로 넘어설 것인가. 폭력의 반정치를 할 것인지, 민주적 정치를 할 것인지 문제다. 술을 마시지 않지만 2차에 온 간호사는 그랬다. “광장이 너무 과하게 열린 것도 문제 같아요” 조국 찬반 이후 갈라선 광장을 보면 좀 그렇다. “광장이나 은둔생활이 아니라 독립된 공간도 필요한 것 같아요” 그가 얘기하고 싶은 것이 뭔지는 조금 알 것 같다. 그런데 광장과 의회와 일상은 순환해야 한다.
“커뮤니티가 중요한 것 같아요”
태극기 집회에 참가해 본 적이 있나요. 몇 번 그런 집회에 들어가 본 적 있다. 언론에서도 그런 집회 참가자와 밀착 취재를 한 적이 있다. 대통령이 국회를 개무시하고, 여야가 정치 대신 적대와 사법화로 치닫을 때, 이것은 강한 신호다. 이견을 가진 시민은 동료시민이 아니라 적이라는. 만나 얘기하는 공론장이 아닌 적대와 혐오의 광장을 부추긴다.
“노인이 많은데, 얘기하다 보면 처음엔 험악해요. 집회에서 말하는 주장만 반복하죠” 광주 시민을 학살한 그 이름만 들으면 치가 떨리는 내게 전두환의 리더십이라는 책자를 들고 와 사고 서명하라는 강요에 발끈해 부딪친 적도 있다. 미군철수 반대를 외치는 나이 드신 여성과 설전을 벌인 적도 있다. 경험을 말하자 간호사가 그랬다. “그러면 안돼요”. 외로움이 깊게 깔린 황혼에 존재 의미를 찾을 수 없을 때, 누군가 손을 내밀어 할 일이 있고 그것이 국가를 구한다는 의미를 부여해 주면, 외롭게 홀로 있는 사람에게는 태극기 집회는 인생의 빛이다. 짙은 외로움이 깔려 있는데 전두환이 죽일 놈이냐 위대한 리더냐, 미군 철수를 반대하냐 자주국방 자신감이 없냐는 논쟁이 무슨 소용일까.
윤석열에 대한 수많은 얘기를 모으면 편향된 연결이다. 김건희와 무슨 법사, 극우 유튜버, 충암고 인맥 등은 가장 많은 연결망을 가질 수 있는 대통령이 얼마나 편향적 연결에 갇혀 있는지 보여준다. 적대와 혐오의 뿌리에 단절과 외로움이 있다는 분석은 꽤 있었다. 배제된 사람들에게 다정한 곁으로서 커뮤니티는 충분한가. 아이돌 팬덤은 고립된 커뮤니티가 아니라 응원봉을 들고 광장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저토록 활기찰 수 있다. 그래서 “소속될 적절한 공동체”를 얘기한 부산 도우미 여성 집회 발언의 통찰력이 돋보였다.
“국힘당원입니다”
2차에 함께한 분께 혹시 당적을 가지고 있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민주당원 시기와 제3지대 관심을 둔 시기를 거쳐 국힘당원 된지 얼마 안되었는데 12.3 사태가 왔다는 것. 다원적 정치로 가야 한다는데, 변하지 않은 양당체제 한 쪽에서 뭔가 경험하고 또 다른 가능성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가입했었다. 당원 행사에 가 보았는데 나이드신 분들 친목대회 같아 딱히 낄 자리는 없었고 참여할 당원모임도 없다. 근데 계엄사태로 또 다른 상황.
“그렇게 심각한 일인가 싶었다고 하던데요” 직장 동료들과 계엄에 관한 얘기도 하냐는 질문에 그렇게 답했다. 계엄선포가 그렇게 심각한 일인 것인지 몰랐다가 난리가 난 걸 보고서 ‘아, 심각한 일이구나’ 싶었다는 동료도 있고, 헌법재판소 앞에서 벌써 탄핵인용 반대와 찬성 집회가 열리는 것을 보았다는 얘기도 잠깐 한단다.
조용 조용 말하는 그는 “정치가 있어야 힌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치에 대해 얘기할 곳이 많지 않다며 여기에 와서 얘기하는 것이 거의 전부라고 했다. 나는 무당이다. 어떤이는 조국혁신당, 어떤 이는 민주당, 그리고 그는 국힘당이다. 이 시국에 이런 송년회를 함께 하고 있다. 폐쇄된 연결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개방적이고 다양성을 가진 커뮤니티가 소중하다.
헌재의 시간인가
옆 테이블에서 대통령 직무 대행의 권한 범위에 대한 얘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직무대행에게 헌법재판관 임명권이 있냐는 것. “이미 헌법재판관들이 얘기했어요. 임명할 권한이 있다고” “권한 대행의 역할은 현상 유지 차원에서 행사되어야죠” “이번 헌법재판관 임명은 대통령 몫이 아니라 의회 추천 몫이니 권한대행은 그냥 인정해주면 되는 겁니다” 그럼 의회가 결정한 것을 거부하는 것은 가능한 것이냐, 그러면 안된다, 야당이 밀어붙여서 입법하면 권한 대행은 다 인정해야 하냐, 이 기회에 다수당이 하고 싶은 거 다 해도 되는 거냐...얘기 중에 “헌법재판관이 뭔데 걔들이 결정하면 그것이 정답이 되는 거냐”는 얘기가 크게 들렸다.
결국 헌법재판소로 가는 것, 정치가 부족해 법원 판단에 모든 것을 맡기는 사법화다. 허망한 기대지만 정치적 합으로 대통령이 사퇴했다면 이렇게 오지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은 우익을 선동하고, 탄핵 가결이후 여당에서 “이제 전쟁이다”는 식으로 나온다. 정치는 더 죽어 간다.
“탄핵이 헌재에서 인용되지 않으면 정말로 내전이 벌어지는 것 아니냐” 한 참석자는 이야기 마당에서 이렇게 우려했다. 윤석열과 여당은 명통령 반대를 앞세우며 전투를 확대할 모양이다.(이 송년회 후기를 쓰고 있는데, 대통령 권한 대행이 6개 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재명도 칼을 갈며 권력욕을 불태우고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민주당식 사고
분명한 것은 민주주의 정치를 나락으로 빠뜨린 윤석열 심판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 분명한 것은 결국 우리는 미달한 정치로 인해 사법화로 간다는 것. ‘정치는 내전이다’ 이런 하나의 문구에 빠지면 항상 내전의 불안늘 안고 살게 된다. 정치는 갈등의 비폭력적 해결이다. “정치는 적과 아군을 구별하는 것이다”는 문구에 갇히면 우리는 적대를 정치로 착각할 것이다. 정치는 갈등 상대와 대화하고 합의를 만들려는 가능성의 예술이 아닌가.
“좋은 보수가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이야기 마당에서 B가 했던 말이다. 동감이다. 그런 주제로 글을 쓰고 있는데 반가웠다. 이 험한 상황에서 건강한 보수가 확장될까. 일상에서, 술자리에서, 크고 작은 토론장에서 얘기해야 한다. 계엄과 국힘에 대한 분노만이 아니라 ‘민주당식 사고’도. 운동권이 주류 정치인이 된 것, 권력을 잡았을 때 정치를 확장하지 못하고, 권력 놓치면 저항세력처럼 굴면서, 주류로서 걸맞는 책임을 지지 않는 것, 계엄을 해제한 공로는 칭찬받아야 하지만 그 이전에 정치 복원하지 못한 한계, 정치를 복원하기 위한 비전이 ‘민주당식 사고’로 가능할지.
(이름에 민주를 붙인 노총도 사실은 주류가 노동시장 상층이 되었는데, 약자에서 노동시장 상층으로 올랐다는 점에서 민주당과 유사한 스토리가 있음. 주류가 체제 저항자? 얼룩진 주류인데 아닌 듯 격한 조국, 주류인데 체제 저항 선동자처럼 구는 김어준은 민주당식 사고의 모델?)
더 절실한 교감
계엄은 반정치다. 계엄해제는 정치다. 탄핵부결은 반정치였다. 이런 얘기를 하던 중 첫째가 반문했다. 반정치와 비정치는 어떻게 다르냐. 여러 생각이 들었다. 아직 정치, 반정치, 비정치를 정확히 말 할 수 없다.
“정치를 다루는 단체라면, 일관되게 정치의 입장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과정을 추적하고 무엇이 정치고 반정치며 비정치인가를 얘기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주문에 이야기 마당 사회를 맡았던 그는 “너무 어려운 문제”라고 했다. 쉽지 않다. 그러나 누군가 해야 하는 얘기 아닐까.
10위권 경제, 봉준호와 BTS의 한류,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강이 있는 대한민국이 동방의 새 정치를 탄생시키기 위해 반드시 논의해야 한다. 정치에 대한 한 단계 높은 인식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여전히 우리는 계엄 망령에 허우적거리면서 내전을 걱정할 것이다. 우리에겐 보수 우익은 물론 ‘민주당식 사고’를 넘어 교감할 공론장이 필요하다. 그것을 통해 계엄 망령과 명통령 논란 너머 새 리더와 새로운 시민, 동방의 새 정치가 탄생할 것이다. 다른 분야에서 이룬 것을 왜 정치에서는 못한다는 것인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