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회 후기] 마초와 스트롱맨 정치너머 - 조건준(아무나유니온 대표 / 정치발전소 회원 )

공식 관리자
2024-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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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으로 시작된 사태를 보는 좀 더 깊은 논의를 하고 싶은데, 마침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는 10가지 요점>을 논의하는 자리가 생겼다. 정치학자 박상훈이 말한 10가지 요점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 (박상훈 선생의 10가지 요점은 관련 게시물 참조) 


정치가 다운 정치인은 있나


한때 계엄에 대해 한동훈도 해제 결정에 같이 했다. 그 순간이 정치다. 그런데 한동훈과 이재명은 갈라졌다. 만약 둘이 합의해 수습책을 만들었다면 대선에서도 둘은 좋은 경쟁을 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아니다. 계엄에 맞선 우원식 국회의장의 모습은 좋았다. 그런데 윤석열이 국회로 온다고 할 때의 거부하는 모습, 오히려 만나서 얘기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어떨까. 


정치가 다운 정치인은 정당에서 나와야 하는데, 요즘 정당은 신진세력을 키우지 못한다. 김대중이나 김영삼이나 야당 내에서 소장파로 성장했었지만, 요즘은 정치인 다운 정치인이 안 보인다. 상황에 따라서 탄생할 수도 있지만. 


내각제의 가능성은 있는가


내각제의 장점으로 꼽는 것이 유연성이라고 했다. 갈등을 해결할 정치력을 잃으면 재빨리 주권자가 누구인지 선거를 통해 확인하고, 그 주권자들이 위임한 주권의 소재를 선거를 통해 새로운 내각을 세워 확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각제와 같은 정치체제로 나아갈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예상했다. 


'제왕적 대통령제'나 '대통령 중심제'라는 말은 이상하다. 한국은 정부를 ‘윤석열 정부’라고 부르지만, 그것은 옳지 않다. ‘윤석열 행정부’는 있을 수 있지만 정부가 곧 대통령의 것은 아니다. 이번 사태로 대통령에 대한 도덕적 측면에서 지위는 약화될 것 이지만, 거국중립내각을 합의하면서 총리를 국회가 민들어 정치제도를 바꾸는 내각제로 가긴 어려워 보인다.


광장의 딜레마


‘광장의 딜레마’에 대해 물었다. 민주주의를 위해 광장에 나가는 것이 시민으로서 역할이다. 그런데 이재명 대통령 만들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걱정 때문에 주저하는 시민도 있다. (재명통령 되리라 신나는 사람도 있겠지만 반대급부도 커진다는 것 생각해야) 이 광장의 딜레마를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 


박상훈은 정치와 운동, 국회와 광장, 정치와 혁명에 대해 언급했다. 확실히 그가 말한 것처럼 나도 한때 정치의 의미를 몰랐다. 혁명이 최고의 정치라고 생각했는데, 혁명은 정치의 단절이라는 것을. 심지어 혁명마저도 그 끝은 정치다. 어떤 권력이나 체제를 출범시키든 그것은 시민과 정치세력의 합의로 최종 마무리 된다. 격렬한 광장의 투쟁 끝에 정치적 합의가 뒤따른다. 


노동 현장에서도 격한 투쟁이 있더라도 결국 노사합의로 종료된다. 그 끝이 얼마나 충분한 합의에 이르렀는가에 따라 안정적 상황이 올 수 있고 계속되는 투쟁이 이어질 수도 있다. 정치가 사라지면 혁명이나 운동의 시간이 되지만, 혁명과 운동의 시간이 지나면 정치의 시간이 온다. 


운동과 정치는 순환한다.


정치학자로서 박상훈은 정치를 강조한다. 운동하는 활동가와 감각이 다를 수 있다. 정치와 운동을 혼동하는 사람은 정치도 운동도 제대로 하기 어렵다. 정치를 사회운동처럼 하면 정치는 사라진다. 운동을 정치처럼 하면 운동은 약해진다. 나이 들어 비로소 정치의 의미를 조금 알게 되었다. 정치 부재 상태의 파국은 문화대혁명이나 킬링필드를 통해 볼 수 있다.


그런데 박상훈은 정치를 강조하면서 광장이나 운동을 상대적으로 덜 평가한다. 정치학자로서 그럴 수 있지만, 좋은 정치를 위한 좋은 운동이 필요하다. 지금 정치가 흔들리는 상황에 광장이 있다. 정치와 앙상블을 이룬다.


광장이 나쁜 정치를 만들 수도 있다. 혐오와 적대를 확산시키는 광장이 그렇다. 온라인 광장의 유튜브도 그렇다. 지금 열린 광장은 좋은 정치를 위한 광장인가. 적대를 넘는 생산적 광장인가. 명통령 만들기로 도배될 광장인가(민주주의 광장이지만, 역동성이 사라지면 과거처럼 그렇게 도배될 수 있다)


지인들 중에 분노에 가득차 군대 때려잡고, 국민의 힘  박살내고, 우익를 밟아야 한다는 식으로 마구마구 글을 쓰고 외치기도 한다. 이것이 혁명정신일까, 민주정치를 위한 헌신일까. 벌 받을 사람 벌 줘야 하지만 저 불쌍한 군인들은 가릴 수 있어야 한다. 혐오와 적대는 또 우리를 늪으로 빠뜨릴 것이다.


마초와 스트롱맨 정치


‘검투사 경기’ 같은 정치에 대해 생각했다. 야당을 죽이려는 대통령이나 그를 끌어내리자던 맞짱 정치는 그것과 달랐을까. 그 결과가 계엄이 아니었나. 특히 이런 정치를 ‘마초와 스트롱맨의 정치’라는 표현이 딱. 


노동현장에서 시도 때도 없이 적대를 격화시키려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목소리를 품을 여유가 없었다. 다양성을 드러내게 할 때 강한데. 과잉 대표된 단체가 시도 때도 없이 총파업이나 총포총(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날릴 때, 그리고 적대감이 솟아 사용자와 권력이 공격해 올 때, 노조 있는 사람들은 버틸 수 있다. 그러나 무권리 노동자들은 한없이 밀려났다. 반노조 정서가 칼이 되어 돌아오는 곳은 사각지대다. 


한국정치가 성숙하려면 다양성으로 나가야 한다. 박상훈은 2016년 4월부터 탄핵까지 4당 체제가 그런대로 괜찮은 정치였다고 했다. 지금 정치는 양극화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목소리가 다양하지 않다. 소수정당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약자의 목소리는 묻힌다. 


노동권 사각지대 노동자가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세계가 민주적인가. 거대 양당의 ‘검투사 경기’같은 정치가 묻어버린 것은 약자다. 그 끝에 계엄 사태가 왔다. 정치를 다시 세우려는 지금도 금융투자소득에 대해 과세가 유예되고 있다. 


깃발을 갖지 못한 시민은 광장에 서기 어렵다. 연결되지 않은 사람이 홀로 집회에 나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노조를 비롯한  결사체가 있을 때 참여가 쉽다. 계엄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어 노동권을 제한하고 노조를 해산했던 과거가 있었다. 이번 계엄 포고문에도 노동3권을 제한하는 내용이 있었다. 그래서 기성노조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집회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한 프리랜서유니온 깃발이 더 반가웠다.


2030 여성의 참가에 주목하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함께 참여한 딸이 시위 현장에서 친구들을 예기치 않게 만나는 장면을 보면서 기분이 좋았다. 마초와 스트롱맨의 권력에 맞서는 페미당당도 멋지다. 페미와 함께한 젊은 남성들도 보기 좋더라..


완전군장을 꾸린 것처럼 빵빵한 백팩을 매고, 각종 상황에 대비해 준비물을 챙겨왔고, 만약에 잡혀갈 상황에 대비했다는데 “야, 잡혀가도 니들 말고 먼저 잡혀갈 사람들 많아”라는 딸 얘기에 한참 웃었다. 그만큼 마초 스트롱맨 정치는 공포를 몰고왔지만, 굴복하지 않았기에 20대 딸 친구들이 여기 있다.


신나도 괜찮을까


응원봉 유행이 집회에 퍼지는 것도 좋다. 기후위기 시대에 그런 거 자꾸 소비말자는 생각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아이돌을 향한 행동주의가 정치적 에너지로 전환되어 광장의 행동주의로 이어지는 것도 반갑다. 참여하는 행동의 경험이 사회성은 물론 개인의 자존감도 높이지만, 온라인 행동주의는 오히려 우울감 같은 것을 준다는 연구 결과를 생각해도 그렇다. 그런데 미안하다. 겨울에 거리에 나서게 한 것이 미안하다. 물론, 2030에겐 나름 감당하고 바꾸고 만들 세상이 있을테니 이마저 꼰대의 감정이리라.


신나는 사람을 본다. 그토록 윤석열을 미워해온 사람들에게 윤석열의 계엄은 자뻑이고, 너무 길게 느껴지는 윤석열 임기가 갑자기 끝나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쁘겠나. 재명통령을 바라던 팬덤이야 말할 것도 없을 것이고, 민주당에 붙어 권력에 접근하려는 집단도 기회가 왔으니, 민주주의나 정치의 성숙보다 권력투쟁에 열심인 사람들은 맘껏 지침을 때릴 기회다. 총포총을 선포하면서 신나는 사람이 꽤 있구나. 


지금 다른 사회를 향한 상상이 폭발하지는 않는다. 무너진 민주주의를 세우고, 사라진 정치를 찾아야 할 국면이다. 물 건너가는 하야, 유일한 선택이 되고 있는 탄핵, 일단 이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내란은 진압되었다. ‘국민의 힘’은 ‘국민의 짐’이라는 것도 명확히 드러났다. 그러나 윤석열을 남겨둔 상태에서 우리의 상상력은 피어날 수 없기에 멈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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