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글은 영국 출신 저널리스트 메리 해링턴의 뉴욕타임스 칼럼(’25. 7. 28.), “생각이 사치품이 되고 있다: 스마트폰은 어떻게 새로운 종류의 불평등을 낳고 있나?”(Thinking Is Becoming a Luxury Good: How Smartphones are Breeding a New Kind of Ineqaulity?)를 번역한 것입니다.

번역자 : 박수형 정치학 박사
내가 아이였던 1980년대에 부모님은 나를 영국의 발도르프 학교에 보냈다. 당시 그 학교는 부모들에게 아이들이 TV를 너무 많이 보지 않게 하면서 그 대신 책 읽기, 손으로 직접 배우기, 야외 놀이를 강조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때 나는 그런 제약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어쩌면 학교가 옳았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나는 TV를 자주 보지 않으며 여전히 책을 많이 읽고 있다. 하지만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 이후, 훨씬 더 은밀하고 매혹적인 기술이 세상을 사로잡고 있다. 인터넷, 특히 스마트폰을 통해 보는 인터넷이 그것이다. 요즘의 나는 몇 분 이상 집중할 필요가 있을 때, 휴대폰을 서랍이나 다른 방에 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 세기 전 지능검사라는 것이 발명된 이래 최근까지 전 세계의 IQ 점수는 ‘플린 효과’로 알려진 현상 속에서 꾸준히 높아졌다. 하지만 그 지적 능력을 적용하는 우리의 능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증거가 제출되고 있다.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OECD 국가 대다수에서 성인 문해력 점수가 정체를 보인 후 하락하기 시작했으며, 가장 가파른 하락은 빈곤층에서 나타났다. 아동의 문해력 또한 마찬가지로 떨어지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 칼럼에서 존 번-머독은 이를 탈(脫)문해(post-literate) 문화와 연결 짓는데, 이 문화에서 우리는 밀도 높은 텍스트보다 이미지와 짧은 동영상 보기를 즐기면서 스마트폰을 통해 대다수 미디어를 소비한다. 또 다른 연구는 스마트폰 사용과 청소년 ADHD 증상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고 하며, 조사에 응한 미국 성인의 1/4은 자신들에게 그런 증상이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중고등학교 교사와 대학 강사들은 학생들에게 책 여러 권을 온전히 다 읽는 과제 내기를 줄이는 추세인데,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학생들이 그런 과제를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23년 기준 미국인의 거의 절반은 한 해 동안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다고 한다.
기술이 우리의 집중력뿐 아니라 읽기와 추론 능력까지 변화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아직 본격적으로 논의되지 않은 문제는, 이것이 어떻게 또 다른 형태의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를 정크푸드 소비 패턴과 비교해 보자. 초가공 스낵을 더 쉽게 구할 수 있고 여기에 더해 중독성도 기발한 양태로 강화되면서, 선진국에서는 건강한 생활을 유지할 사회경제적 자원이 있는 사람들과 비만을 부추기는 음식 문화에 취약한 사람들 사이에 격차가 벌어졌다. 이 양극화는 강한 계급적 색채를 띠고 있다. 서구 선진국에서 비만은 빈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나는 탈문해의 물결 역시 그렇게 흘러가 버리지 않을까 두렵다.
긴 글을 읽는 문해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것이며, 그 배움은 때때로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문해력 연구자 마리안 울프가 설명한 대로, 긴 글을 읽는 ‘심층 독서’ 능력을 습득하고 완성하는 과정은 말 그대로 정신을 바꾸는 일이다. 그 과정을 통해 어휘력이 늘어나고 두뇌 활동이 분석적인 좌뇌로 옮겨가며 집중력뿐 아니라 선형 추론과 심층 사고 능력도 향상되면서, 우리 뇌의 신경 회로가 새롭게 연결된다. 이런 특성이 사회 전반에 자리 잡으면서, 의사 표현의 자유, 현대 과학, 자유민주주의를 비롯한 여러 성과들이 나타났다.
디지털 읽기를 통해 형성되는 사고 습관은 이와 매우 다르다. 생산성 전문가 칼 뉴포트는 2016년 저서 <딥 워크>(Deep Work)에서 디지털 환경은 주의력을 뺏는 데 최적화되어 있으며, 이는 각종 시스템들이 알림과 다른 요청들을 통해 우리의 관심을 얻으려 경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소셜미디어 플랫폼은 중독을 유도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리고 그 방대한 양의 콘텐츠는 세밀한 뉘앙스나 사려 깊은 추론보다, 충동적 성향을 최대한 뽑아내는 데 초점을 맞춘 강렬한 인지적(認知的) 담론 ‘조각들’의 양산을 부추긴다. 그 결과 설령 우리가 휴대폰으로 글을 읽는다 해도, 신경의학상으로는 대충 훑어보거나 형태만 파악하거나 산만하게 이 글 저 글 옮겨 다니는 콘텐츠 소비 패턴이 만들어진다.
이제는 읽는 행위 그 자체가 불필요한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틱톡, 유튜브 쇼츠 같은 플랫폼은 매혹적인 짧은 동영상들을 무한대로 공급한다. 여기에 더해 이미지․동영상 형태의 밈(meme), 가짜 뉴스와 진짜 뉴스, 낚시성 기사 링크, 이따금씩 보이는 악의적 허위 정보, 그리고 점점 더 늘어나는 AI 생성 쓰레기 콘텐츠까지 뒤섞인다. 그 결과,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은 인지적 측면에서 정크푸드 코너와 다를 바 없는 것 같으며, 그 화려하면서도 몸에 해로운 포장 제품들만큼이나 거부하기 어려운 것이 되었다.
고전적 자유주의자는 이렇게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맞는 말이지만, 정크푸드도 그렇듯이 건강한 삶을 선택하는 건 결국 개인의 몫이지.” 하지만 이런 입장이 고려하지 못한 것이 있다. 그것은 정크푸드 과다 소비가 건강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처럼, 디지털 미디어의 인지적 해로움도 사회경제적 하층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라는 점이다.
이미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울프 박사가 지적한 대로, 문해력과 빈곤은 오랫동안 상관관계를 보여왔다. 이제 가난한 아이들은 부유한 아이들보다 하루 평균 스크린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길다. 2019년 연구에서, 연 소득 3만 5천 달러 이하 가정의 청소년과 아동은 10만 달러 이상 가정의 또래보다 일 평균 스크린 타임이 대략 2시간 더 긴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에 2시간 이상 오락용 화면에 노출된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더 낮은 수준의 작업 기억력, 처리 속도, 주의력, 언어 능력, 실행 기능을 보인다고 하는 조사 결과도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건강한 인지적 선택을 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더 매혹적인 오락거리들이 넘쳐나는 문화에서, 긴 글을 읽는 문해력은 머지않아 엘리트들만의 문화적 전유물이 될 수도 있다.
이미 엘리트 그룹, 종교 집단, 보수 진영에서는 테크 사용에 대한 자발적 제한을 수용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2019~2023년 사이 250개 이상의 ‘클래식 스쿨’(고전 교육 학교)가 새로 생겼는데, 그중 상당수는 기독교 성향이며, 장문으로 이뤄진 ‘큰 책’ 독서를 중심에 두는 교육 철학을 갖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보수 성향 싱크탱크 연구원 클레어 모렐이 최근에 쓴 <테크 탈출: 스마트폰에서 아이와 청소년을 해방시키는 실용 가이드> 같은 안내서와 운동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보수파들만 이런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빌 게이츠나 에반 슈피겔 같은 테크계 명사들도 자녀의 스크린 타임을 제한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다른 부모들은 ‘휴대폰 사용 금지’ 계약에 동의한 보모를 고용하거나, 그런 기기 사용을 금지 또는 엄격히 제한하는 발도르프 학교에 아이들을 보낸다. 여기서 계급 격차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클래식 스쿨 다수는 수업료를 내야 하는 교육기관이다. 실리콘밸리 인근의 발도르프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 디지털 기기를 과도하게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초등 교육과정의 학비는 연간 3만 4천 달러이다.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여러 주(州)에서 학생들의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하고 있으며, 이는 이론상 운동장을 평평하게, 즉 경쟁 조건을 공정하게 만드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규제가 소규모 사립학교만큼이나 대규모 공립학교에서 그리고 학생들 가정에서 동일한 수준으로 실행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실리콘밸리 밖에서도 일부 사람들은 도파민 단식을 자기 계발의 한 방식으로 받아들이며, 소셜미디어나 비디오게임 같은 디지털 자극을 일정 기간 차단한다.
인지 건강을 위한 금욕적 접근은 여전히 부유층을 위한 틈새시장이며 그들 계층에 집중되어 있다. 스마트폰 없는 세상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새로운 세대가 성인이 되면, 이 문화는 훨씬 더 뚜렷하게 계층화될 가능성이 크다. 한쪽에서는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사람들이 집중력과 긴 추론 능력을 보유하고 또 의식적으로 발전시키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다수의 보통 사람들이 사실상 탈문해 상태에 놓인 채로 인지적 명확성을 해치는 모든 결과를 떠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 완전히 실현된다면 어떻게 될까? 장문의 사고 능력을 잃어버린 유권자들은 더 부족화되고, 덜 이성적이며, 사실이나 심지어 역사적 기록에 관한 문제에도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설득력 있는 주장보다는 분위기에 더 쉽게 좌우되며, 황당한 생각이나 기괴한 음모론에 마음을 열 것이다. 이런 상황이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면, 그건 서구 사회가 이미 그 길로 들어선 지 꽤 오래되었음을 보여주는 신호일 수 있다.
영리한 정치꾼들에게 이런 대중은 부패를 낳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만들고자 하는 과두 세력은, 지루하고 기술적인 영역에 있는 정책을 추적하거나 문제 삼을 만한 주의력을 가진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서 이득을 볼 것이다. 대다수는 이제 정밀한 조사보다 반대 진영, 다른 부족을 ‘조롱하는’ 짧은 동영상을 더 선호한다. 지배 집단은 유권자들의 이성적 능력이 집단적으로 쇠퇴하는 상황에 맞춰, 이를테면 대중 민주주의와 관련된 의례들은 유지하되 핵심 정책은 변덕스럽고 쉽게 조종되는 시민들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옮겨놓을 것이다. 나는 이런 일들을 반기지 않지만, 우리의 인터넷 세대 청년들은 개의치 않는 듯하다. 국제 여론조사를 보면, Z세대의 민주주의 지지는 줄어들고 있다.
나에 대해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유권자들을 주변화시키거나 분위기와 정책 사이의 격차를 악용하는 일이 특별히 어느 한 정당, 공화당이나 민주당에만 유리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탈문해 세계는 엘리트적 정책 언어와 대중적 밈-오물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선동가들에게 힘을 실어준다. 이 세계는 소셜미디어 감각이 뛰어난 과두 세력과 진실성보다 자기 확신을 중시하는 사람들에게 유리하다. 반대로 돈도, 정치적 힘도, 자신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줄 사람도 없는 이들에게는 유리하지 않다.
❍ 아래 글은 영국 출신 저널리스트 메리 해링턴의 뉴욕타임스 칼럼(’25. 7. 28.), “생각이 사치품이 되고 있다: 스마트폰은 어떻게 새로운 종류의 불평등을 낳고 있나?”(Thinking Is Becoming a Luxury Good: How Smartphones are Breeding a New Kind of Ineqaulity?)를 번역한 것입니다.
번역자 : 박수형 정치학 박사
내가 아이였던 1980년대에 부모님은 나를 영국의 발도르프 학교에 보냈다. 당시 그 학교는 부모들에게 아이들이 TV를 너무 많이 보지 않게 하면서 그 대신 책 읽기, 손으로 직접 배우기, 야외 놀이를 강조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때 나는 그런 제약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어쩌면 학교가 옳았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나는 TV를 자주 보지 않으며 여전히 책을 많이 읽고 있다. 하지만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 이후, 훨씬 더 은밀하고 매혹적인 기술이 세상을 사로잡고 있다. 인터넷, 특히 스마트폰을 통해 보는 인터넷이 그것이다. 요즘의 나는 몇 분 이상 집중할 필요가 있을 때, 휴대폰을 서랍이나 다른 방에 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 세기 전 지능검사라는 것이 발명된 이래 최근까지 전 세계의 IQ 점수는 ‘플린 효과’로 알려진 현상 속에서 꾸준히 높아졌다. 하지만 그 지적 능력을 적용하는 우리의 능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증거가 제출되고 있다.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OECD 국가 대다수에서 성인 문해력 점수가 정체를 보인 후 하락하기 시작했으며, 가장 가파른 하락은 빈곤층에서 나타났다. 아동의 문해력 또한 마찬가지로 떨어지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 칼럼에서 존 번-머독은 이를 탈(脫)문해(post-literate) 문화와 연결 짓는데, 이 문화에서 우리는 밀도 높은 텍스트보다 이미지와 짧은 동영상 보기를 즐기면서 스마트폰을 통해 대다수 미디어를 소비한다. 또 다른 연구는 스마트폰 사용과 청소년 ADHD 증상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고 하며, 조사에 응한 미국 성인의 1/4은 자신들에게 그런 증상이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중고등학교 교사와 대학 강사들은 학생들에게 책 여러 권을 온전히 다 읽는 과제 내기를 줄이는 추세인데,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학생들이 그런 과제를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23년 기준 미국인의 거의 절반은 한 해 동안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다고 한다.
기술이 우리의 집중력뿐 아니라 읽기와 추론 능력까지 변화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아직 본격적으로 논의되지 않은 문제는, 이것이 어떻게 또 다른 형태의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를 정크푸드 소비 패턴과 비교해 보자. 초가공 스낵을 더 쉽게 구할 수 있고 여기에 더해 중독성도 기발한 양태로 강화되면서, 선진국에서는 건강한 생활을 유지할 사회경제적 자원이 있는 사람들과 비만을 부추기는 음식 문화에 취약한 사람들 사이에 격차가 벌어졌다. 이 양극화는 강한 계급적 색채를 띠고 있다. 서구 선진국에서 비만은 빈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나는 탈문해의 물결 역시 그렇게 흘러가 버리지 않을까 두렵다.
긴 글을 읽는 문해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것이며, 그 배움은 때때로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문해력 연구자 마리안 울프가 설명한 대로, 긴 글을 읽는 ‘심층 독서’ 능력을 습득하고 완성하는 과정은 말 그대로 정신을 바꾸는 일이다. 그 과정을 통해 어휘력이 늘어나고 두뇌 활동이 분석적인 좌뇌로 옮겨가며 집중력뿐 아니라 선형 추론과 심층 사고 능력도 향상되면서, 우리 뇌의 신경 회로가 새롭게 연결된다. 이런 특성이 사회 전반에 자리 잡으면서, 의사 표현의 자유, 현대 과학, 자유민주주의를 비롯한 여러 성과들이 나타났다.
디지털 읽기를 통해 형성되는 사고 습관은 이와 매우 다르다. 생산성 전문가 칼 뉴포트는 2016년 저서 <딥 워크>(Deep Work)에서 디지털 환경은 주의력을 뺏는 데 최적화되어 있으며, 이는 각종 시스템들이 알림과 다른 요청들을 통해 우리의 관심을 얻으려 경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소셜미디어 플랫폼은 중독을 유도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리고 그 방대한 양의 콘텐츠는 세밀한 뉘앙스나 사려 깊은 추론보다, 충동적 성향을 최대한 뽑아내는 데 초점을 맞춘 강렬한 인지적(認知的) 담론 ‘조각들’의 양산을 부추긴다. 그 결과 설령 우리가 휴대폰으로 글을 읽는다 해도, 신경의학상으로는 대충 훑어보거나 형태만 파악하거나 산만하게 이 글 저 글 옮겨 다니는 콘텐츠 소비 패턴이 만들어진다.
이제는 읽는 행위 그 자체가 불필요한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틱톡, 유튜브 쇼츠 같은 플랫폼은 매혹적인 짧은 동영상들을 무한대로 공급한다. 여기에 더해 이미지․동영상 형태의 밈(meme), 가짜 뉴스와 진짜 뉴스, 낚시성 기사 링크, 이따금씩 보이는 악의적 허위 정보, 그리고 점점 더 늘어나는 AI 생성 쓰레기 콘텐츠까지 뒤섞인다. 그 결과,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은 인지적 측면에서 정크푸드 코너와 다를 바 없는 것 같으며, 그 화려하면서도 몸에 해로운 포장 제품들만큼이나 거부하기 어려운 것이 되었다.
고전적 자유주의자는 이렇게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맞는 말이지만, 정크푸드도 그렇듯이 건강한 삶을 선택하는 건 결국 개인의 몫이지.” 하지만 이런 입장이 고려하지 못한 것이 있다. 그것은 정크푸드 과다 소비가 건강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처럼, 디지털 미디어의 인지적 해로움도 사회경제적 하층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라는 점이다.
이미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울프 박사가 지적한 대로, 문해력과 빈곤은 오랫동안 상관관계를 보여왔다. 이제 가난한 아이들은 부유한 아이들보다 하루 평균 스크린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길다. 2019년 연구에서, 연 소득 3만 5천 달러 이하 가정의 청소년과 아동은 10만 달러 이상 가정의 또래보다 일 평균 스크린 타임이 대략 2시간 더 긴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에 2시간 이상 오락용 화면에 노출된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더 낮은 수준의 작업 기억력, 처리 속도, 주의력, 언어 능력, 실행 기능을 보인다고 하는 조사 결과도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건강한 인지적 선택을 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더 매혹적인 오락거리들이 넘쳐나는 문화에서, 긴 글을 읽는 문해력은 머지않아 엘리트들만의 문화적 전유물이 될 수도 있다.
이미 엘리트 그룹, 종교 집단, 보수 진영에서는 테크 사용에 대한 자발적 제한을 수용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2019~2023년 사이 250개 이상의 ‘클래식 스쿨’(고전 교육 학교)가 새로 생겼는데, 그중 상당수는 기독교 성향이며, 장문으로 이뤄진 ‘큰 책’ 독서를 중심에 두는 교육 철학을 갖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보수 성향 싱크탱크 연구원 클레어 모렐이 최근에 쓴 <테크 탈출: 스마트폰에서 아이와 청소년을 해방시키는 실용 가이드> 같은 안내서와 운동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보수파들만 이런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빌 게이츠나 에반 슈피겔 같은 테크계 명사들도 자녀의 스크린 타임을 제한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다른 부모들은 ‘휴대폰 사용 금지’ 계약에 동의한 보모를 고용하거나, 그런 기기 사용을 금지 또는 엄격히 제한하는 발도르프 학교에 아이들을 보낸다. 여기서 계급 격차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클래식 스쿨 다수는 수업료를 내야 하는 교육기관이다. 실리콘밸리 인근의 발도르프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 디지털 기기를 과도하게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초등 교육과정의 학비는 연간 3만 4천 달러이다.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여러 주(州)에서 학생들의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하고 있으며, 이는 이론상 운동장을 평평하게, 즉 경쟁 조건을 공정하게 만드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규제가 소규모 사립학교만큼이나 대규모 공립학교에서 그리고 학생들 가정에서 동일한 수준으로 실행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실리콘밸리 밖에서도 일부 사람들은 도파민 단식을 자기 계발의 한 방식으로 받아들이며, 소셜미디어나 비디오게임 같은 디지털 자극을 일정 기간 차단한다.
인지 건강을 위한 금욕적 접근은 여전히 부유층을 위한 틈새시장이며 그들 계층에 집중되어 있다. 스마트폰 없는 세상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새로운 세대가 성인이 되면, 이 문화는 훨씬 더 뚜렷하게 계층화될 가능성이 크다. 한쪽에서는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사람들이 집중력과 긴 추론 능력을 보유하고 또 의식적으로 발전시키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다수의 보통 사람들이 사실상 탈문해 상태에 놓인 채로 인지적 명확성을 해치는 모든 결과를 떠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 완전히 실현된다면 어떻게 될까? 장문의 사고 능력을 잃어버린 유권자들은 더 부족화되고, 덜 이성적이며, 사실이나 심지어 역사적 기록에 관한 문제에도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설득력 있는 주장보다는 분위기에 더 쉽게 좌우되며, 황당한 생각이나 기괴한 음모론에 마음을 열 것이다. 이런 상황이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면, 그건 서구 사회가 이미 그 길로 들어선 지 꽤 오래되었음을 보여주는 신호일 수 있다.
영리한 정치꾼들에게 이런 대중은 부패를 낳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만들고자 하는 과두 세력은, 지루하고 기술적인 영역에 있는 정책을 추적하거나 문제 삼을 만한 주의력을 가진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서 이득을 볼 것이다. 대다수는 이제 정밀한 조사보다 반대 진영, 다른 부족을 ‘조롱하는’ 짧은 동영상을 더 선호한다. 지배 집단은 유권자들의 이성적 능력이 집단적으로 쇠퇴하는 상황에 맞춰, 이를테면 대중 민주주의와 관련된 의례들은 유지하되 핵심 정책은 변덕스럽고 쉽게 조종되는 시민들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옮겨놓을 것이다. 나는 이런 일들을 반기지 않지만, 우리의 인터넷 세대 청년들은 개의치 않는 듯하다. 국제 여론조사를 보면, Z세대의 민주주의 지지는 줄어들고 있다.
나에 대해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유권자들을 주변화시키거나 분위기와 정책 사이의 격차를 악용하는 일이 특별히 어느 한 정당, 공화당이나 민주당에만 유리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탈문해 세계는 엘리트적 정책 언어와 대중적 밈-오물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선동가들에게 힘을 실어준다. 이 세계는 소셜미디어 감각이 뛰어난 과두 세력과 진실성보다 자기 확신을 중시하는 사람들에게 유리하다. 반대로 돈도, 정치적 힘도, 자신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줄 사람도 없는 이들에게는 유리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