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있는 노동운동 박상훈 시작하며 1. 노동조합이 존중되는 사회 2. 선명 투쟁보다 지혜로운 투쟁 3. 더 사회적이고 더 정치적인 노동운동을 바라며 4. 조합원은 자치 능력이 있을까 5. 자본주의도 고쳐 쓸 수 있다 6. 활동가가 되고자 한다면 7. 아이를 위해서는 온 나라의 정치가 필요하다 8. 노동 정치와 정당 정치라는 양 날개 9. 좋은 대표 없이 민주주의 없다 10. 민주주의는 일종의 권력 균형체제 11. 매니페스토 운동 비판 12. 선의가 가진 윤리적 딜레마 13. 정치적인 인간이어야 하는 이유 14. 투쟁하고 싸울 수만은 없다 15. 좋은 타협이 중요하다 16. 민주주의, 불완전한 인간의 작품 17. 민주화의 두 주역 : 노동자와 여성 18. 삭발투쟁을 지켜보며 19.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하지만 20. 팬덤과 인기만으로 안 되는 이유 21. 도덕주의와 현실주의 사이에서 22. 민주주의의 역사적 기원 1 : 고대 민주주의 23. 민주주의의 역사적 기원 2 : 현대 민주주의 24. 혼합체제로서의 민주주의 25.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26. 위험한 논리로서 ‘민주 vs 반민주’ 27. 허상으로서의 직접정치, 시민정치, 운동정치, 민심정치 28.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오해 ① 결사, 조직, 집단 29.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오해 ② 입헌주의 30.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오해 ③ 민주적 책임성 31.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오해 ④ 정치인 없는 민주주의의 길? 32.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오해 ⑤ 광장 민주주의와 시민 참여 33.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오해 ⑥ 집단지성과 대중지성 34.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오해 ⑦ 직접 민주주의 vs 대의 민주주의 35.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오해 ⑧ 소통 기술의 발전이 민주주의를 구원할 수 있을까? 36.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오해 ⑨ 새로운 민주주의보다 있는 민주주의 잘하자 마치며 |
22. 민주주의의 역사적 기원 1 : 고대 민주주의
민주주의는 하나의 기원이 아니라 두 개의 기원을 갖고 있다. 역사적으로 두 기원은 2천 년 가까이 떨어져 있고, 지리적으로는 지중해 한쪽 끝 그리스가 하나의 기원이라면 다른 하나는 영국과 프랑스가 중심이 된 서유럽이었다. 정치 공동체의 규모가 갖는 특성을 기준으로 두 기원을 구분하면, 하나는 소규모 도시국가였고 다른 하나는 대규모 국민국가였다.
민주주의는 기원전 6세기 초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에서 처음 등장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정치체제로서 민주주의가 먼저 있었고,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나중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나아가 민주주의라는 말이 민주주의에 반대했던 사람들에 의해 일종의 조롱조로 만들어졌다는 사실3)을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당시의 기록은 모두 민주주의를 비판했던 사람들에 의한 것일 뿐, 민주주의를 옹호했던 사람들의 기록은 보기 어렵다.
당시 민주주의의 비판자들은 일종의 반체제 인사 내지는 체제 비판적 지식인들이었다. ‘데모스, 즉 일반 시민이 정치체제를 운영한다고? 아니, 어떻게? 공적 사안을 판단할 능력이 없는데? 말도 안 되지.’ 이런 논리로 민주주의에 반대했던 사람들은 그 이상한 체제의 등장을 ‘데모크라티아’라고 부르며 야유했다. 그들이 볼 때 민주주의는 ‘어리석은 대중이 통치하는 불합리한 체제’ 그 이상이 아니었다. 실제로는 어땠을까? 그들이 예상했던 것처럼 민주주의는 그렇게 형편없는 체제였을까?
그때 민주주의 체제를 실시했던 대표적인 사례는 가장 큰 도시국가였던 아테네였다. 민주주의 시대의 아테네는 정치학은 물론 철학・문학・예술・건축・천체물리학 등 수많은 분야에서 엄청난 성취를 이루었다.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할 때 발휘하는 지적 능력이 얼마나 놀라운가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이 민주주의자에 의한 것이든, 민주주의를 비판했던 철학자나 지식인에 의한 것이든, 그 시대는 가장 자유롭고 경이로운 인간 정신의 고양기였다. 자유 시민의 전통을 갖지 못한 동양에 비해 서양의 정치철학이 갖는 힘 내지 지적 원천이 있다면, 그것은 2천5백 년 전에 실천된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민주주의 경험에서 발원한다.
3) 로버트 A. 달, 『민주주의와 그 비판자들』, (문학과지성사, 1999), 1장을 참조할 것.
23. 민주주의의 역사적 기원 2 : 현대 민주주의
아테네 민주주의는 2백 년 정도 지속된 뒤 몰락했다. 이와 더불어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말 자체가 사라졌다. 그 뒤 1천 년도 훨씬 더 지나서 민주주의라는 말이 다시 살아나리라고는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민주주의가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이 아랍어에서 라틴어로 옮겨진 13세기에 이르러서였다.
민주주의라는 표현이 라틴어와 프랑스어, 영어로 소개되고 그와 함께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민주주의 경험이 알려진 뒤에도 거의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이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민주주의를 ‘중우정치’나 ‘빈자들의 폭민 정치’, 나아가 ‘다수의 전제’(tyranny of the majority)로 여기는 사람이 많았다. 적어도 19세기 중반까지는 그랬다.
고대 그리스의 작은 도시국가들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이 정치형태를, 대규모의 근대 영토 국가 내지 국민국가에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 철학자는 사실 아무도 없었다. 몽테스키외(Charles De Montesquieu)나 장 자크 루소,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은 흥미로운 사례를 제공한다.
지금이야 그들을 ‘현대 민주주의의 제도적 디자인을 이끈 정치철학자’로 여기지만, 당시 그들은 민주주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들이 목표로 내걸었던 것은 공화국/공화정(republic)이었지 민주정/민주주의는 분명 아니었다. 이 시기까지 서양의 정치 전통을 지배한 것은 아테네와 민주정이 아니라, 로마와 공화정이었다. 직접 민주주의의 주창자로 잘못 알려진 장 자크 루소가 대표적이다. 그의 대표작인 『사회계약론』에서 루소는 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를 인간의 본성에 배치되는 정치체제로 규정한 뒤, 그보다는 고대 로마 및 스파르타와 같은 공화정의 여러 유형에서 새로운 시사점을 찾으려 했다.
공화정을 주장하며 민주정을 비판했던 사람들이 민주정/민주주의를 왜, 어떻게 수용하게 되었는지는 아직까지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19세기에 들어와 유럽 여러 나라에서 일반 시민들의 참정권 요구가 커지면서 이상하게도 공화국과 민주주의라는 말이 함께 쓰이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민주주의라는 말이 점점 더 자주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사실만 알려져 있다.
그 뒤에도 republic과 democracy, 이 두 용어의 차이는 매우 서서히 나타났다. 단순화해서 말하면, 결국 공화정은 ‘왕정이 아닌 체제’ 혹은 ‘교양과 재산을 가진 시민의 대표가 통치하는 체제’를 뜻하는 말로 남았다. 반면 민주주의/민주정은 참여에서 배제되었던 하층의 가난한 보통 사람들의 권리가 실현되는 체제를 뜻하는 용어로 발전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근대 노동운동의 경험이다. 17세기 중엽에서 18세기 말에 이르기까지의 시민혁명이 공화정에 대한 열정을 동반했다면, 그 뒤 등장한 근대 노동운동의 발전이 공화정이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용어로 자신들의 의지를 표현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인류 최초의 정치적 노동운동으로 불리는 1830년대의 차티스트 운동4)이 있다. 재산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참정권, 즉 정치적 시민권이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 운동은 영국에서 20년 가까이 이어졌다. 대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보통선거권을 주장하는 노동운동의 요구는 더욱 급진적인 형태를 띤 프랑스의 1848년 2월 혁명으로 이어졌고, 이 운동의 여파는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이 당시 좌파 노동운동의 정치적 목표가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통해 표현되었다는 점에서, 1789년 프랑스 대혁명과 비교해 1848년 혁명은 유럽 최초의 민주주의 혁명으로 기록될 만한 대사건이었다. 이 기초 위에서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세계사를 뒤흔든 여성들의 참정권 운동이 펼쳐질 수 있었고, 진보적인 정치세력들은 대중정당(mass party)이라는 조직 형태를 발명해 빠르게 성장했다. 1920년대로 대표되는 ‘민주화의 물결’은 이런 긴 과정의 결실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식인들과 철학자들의 회의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근대 노동운동과 여성운동 그리고 대중정당의 결합을 통해 현대 민주주의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중요해 보인다. 남성에게 종속되어 있고, 지주나 공장주에게 고용되어 있기에 자율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이유로 참여를 부정당했던 여성과 하층 노동자 계층도 시민권을 가져야 한다는 것, 그들의 의지와 열정을 조직한 정당도 정부를 운영할 평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거부할 수 없는 정치 규범으로 자리 잡음으로써 거의 2천 년 동안 실종되고 부정되었던 민주주의 정부에 대한 이상이 불사조처럼 다시 살아났으며, 그와 더불어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에서는 배제되었던 노동자와 여성을 포괄하는 대규모 대중 민주주의가 실천될 수 있었다.
4) 차티스트 운동이라는 이름은 1838년 영국 런던의 급진주의자 윌리엄 러벳(William Lovett)이 기초한 민중헌장 (People’s Charter)에 따른 것이다. 민중헌장은 6개 요구 조항을 담고 있는데 남성의 보통선거권, 균등한 선거구 설정, 비밀투표, 매년 선거, 의원의 보수 지급, 의원 출마자의 재산자격제한 폐지 등이다. 이런 내용으로 1838년, 1839년, 1941년, 1948년 차티스트 대회가 개최되어 의회에 청원서를 제출했으나 번번이 묵살당했고,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체포, 추방되었다. 1950년대에 들어와 운동의 명맥은 유지했으나 전국적 차원의 운동으로는 에너지를 잃고 점차 사라졌다. 크게 보아 이 운동은 자본주의 산업사회에 편입된 노동자들이 사회적 불의에 대항했던, 영국 최초의 전국적인 노동계급 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운동은 실패했는지 모르나, 그 과정에서 많은 노동운동 활동가들이 성장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내건 6개항의 요구 조건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거의 모두 실현되었다.
24. 혼합체제로서의 민주주의
민주주의에 대한 오해나 편견의 원천은 민주주의 자체가 어렵고 까다로운 내용을 가져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것에서 비롯된다. 민주주의 자체는 생각보다 단순한 주제다. 사실 정치에 참여하고 영향력을 미치는 데 시민들이 평등한 권리를 갖는 체제이자, 그런 시민 가운데 다수의 의견이 공적 결정을 주도하는 정치체제라는 것만 이해해도 충분할지 모른다.
문제는 민주주의와 민주주의 아닌 것을 분리하기도, 또 분리해서 논하기도 어렵다는 데 있다. 실제의 민주주의 정치체제는 자유주의와 같이 민주주의가 아닌 것들과 함께 움직인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게 좀 어렵다.
한번 잘 생각해보자. 사람들이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말하는 이야기를 잘 들여다보면 민주주의가 아닌 것들, 예컨대 자유주의나 공화주의 혹은 다원주의나 사회주의의 내용일 때가 많다. “민주주의가 뭐죠?” 라고 물으면, 삼권분립이라고 답하는 사람도 많다. 여러분 가운데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엄밀히 말해 삼권분립은 민주주의보다는 자유주의나 공화주의의 관점에서 발전해 온 원리다.
자유주의는 자유를, 민주주의는 평등을 중시하는 체제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틀리지 않다. 특히 정치적 권리에 있어서 평등한 체제를 민주주의라 한다면 조금 더 정확한 대답이다. 하지만 지위나 소득 등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평등까지 포괄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보다 사회주의나 공동체주의의 문제의식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가 자유주의나 공화주의, 사회주의, 다원주의, 공동체주의와 같은 것은 분명 아니나, 이런 민주주의가 아닌 가치들과 겹쳐서 이해되고 논의된다는 사실이 민주주의 문제를 어렵게 만들기도 하고 흥미롭게 만들기도 한다.
분명 자유민주주의도 민주주의이고 사회민주주의도 민주주의다. 서로의 차이나 집단 간 이익 갈등의 문제를 전제하는 다원주의를 빼고 민주주의를 말하기도 어렵다. 자유주의가 싫다고 개인의 기본권을 박탈한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을까? 사회주의가 싫다고 사회복지나 재분배 정책을 하지말자고 할 수 있을까? 집단적 차이나 갈등 때문에 괴롭다고 다원주의 대신 전체주의를 하자고 할 수 있을까? 이처럼 오늘날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할 때 거기에는 민주주의만이 아니라 다른 계보나 원류의 사상과 제도 이론이 섞여 있다.
25.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1인1표의 민주주의는 돈의 힘이 지배하는 1원1표의 자본주의와는 대립되는 것 아닌가? 그렇게 보면 민주주의는 반자본주의를 지향해야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역사책에서 보면 근대 상공업 계층이 주도한 시민혁명을 통해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러면 자본주의 덕분에 민주화가 되었다는 것으로 읽힌다.”
원리상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대립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던 현상이었다. 세습과 혈통의 원리로 체제가 움직이던 군주정이나 귀족정의 구체제는 어떻게 붕괴된 것일까? 이는 근대 자본주의적 질서를 주도한 중상계급의 역할 없이 설명하기 어렵다. 그래서 배링턴 무어(Barrington Moore Jr.) 5)같은 미국의 위대한 사회학자는 “부르주아 없이 민주주의 없다(No bourgeois, no democracy.)”라는 과감한 주장을 펼칠 수 있었다.
부르주아라고 불리는 중상계급이 자유시장의 원리를 옹호함은 물론 개인의 침해할 수 없는 권리와 자율적인 시민사회의 역할을 지지하고 나선 것은 사실이다. 근대 시민혁명의 발전은 이들 부르주아의 역할과 깊은 관련이 있다. 하지만 이 단계까지의 변화는 자유주의의 발전으로 이해될 일이며, 민주주의는 그 이후 단계에서의 변화와 관련되어 있다.
그 핵심은 앞서 언급했듯이 노동자와 여성들에게 정치참여의 권리를 줄 수 있는가의 문제를 둘러싸고 전개되었다. 이때 부르주아라고 불리는 중상계층의 반응이 우호적이지만은 않았다. 나라에 따라서는 그런 권리 주장에 부정적이거나 억압적인 반응을 보였던 사례도 많다. 그런 점에서 “부르주아 없이 자유주의 없다.”고는 할 수 있을지언정, 노동자와 여성들의 참정권 운동 없이 현대 민주주의를 설명하는 것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그보다는 “노동자와 여성 없이 민주주의 없다”라고 하는 것이 역사적 사실에 훨씬 더 부합하는 일이다.
자본주의는 근대 부르주아지를 낳고 그들은 군주정과 대립하면서 자유주의의 시대를 열었다.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노동자들과 여성들은 재산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평등한 정치적 권리를 갖게 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시대를 열었다. 이로써 자유의 혜택이 전 사회적인 권리가 될 수 있었다. 자본주의 역시 돈의 힘만으로 운영될 수 없게 되었다. 생산의 결과는 자율적 노사관계를 통해 배분되었다. 자본주의 역시 합법적으로 결정된 공공정책을 통해 민주적으로 수정되고 조율되는 시대가 되었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서로 경합하면서도 동시에 공존하는 현대 사회의 두 원리로 자리잡았다. 대표적으로 자유민주주의가 자본주의의 장점을 더 강조하는 민주주의 노선이라면,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를 민주적으로 수정하는 노력을 더 중시하는 정치 노선이라 할 수 있다.
5) 배링턴 무어(1913 – 2005) : 미국을 대표하는 정치사회학자. 근대 정치 제도들의 사회적 기원을 밝힌 『독재와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원』이란 명저로 잘 알려져 있다. 영국과 미국, 프랑스 같은 선발 자본주의 국가에서 민주주의가, 후발 자본주의 국가인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에서 전체주의가, 상업화 단계 이전의 농업사회 중심 국가였던 러시아와 중국에서 공산주의 체제가 등장한 과정을 거시적으로 비교 연구한 그의 작업이 정치학과 사회학에 미친 영향은 지대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자립적 근대화에 실패하고 식민화되는 문제를 배링턴 무어의 논의를 통해 설명하려는 여러 시도들이 있었다.
26. 위험한 논리로서 ‘민주 vs 반민주’
앞서 살펴보았듯이 민주주의에 대한 역사적 이해는 중요하다.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는 규범적이고 이념적으로 다뤄질 때가 많다. 이게 문제다. 나는 자유민주주의다, 나는 사회민주주의다, 하다못해 나는 기독교민주주의자다 해도 상관없다. 그런데 나는 민주주의자이고 상대는 반민주주의자다? 이건 생각해볼 일이다.
당신은 민주주의자인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는 자유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사회주의에 반대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아니지만, 나는 비민주주의자다거나 반민주주의자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처럼 민주주의가 강력한 규범성을 갖게 되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가 자주 강렬한 배타성과 적대성을 불러일으킬 때가 많다.
모두가 민주주의자라고 하는 시대에, 민주주의 문제가 매우 격렬한 열정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이른 바 ‘민주 대 반민주’라는 정치 언어가 있다. 어느 정당도 자신의 정견이 반민주적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현실의 정치 경쟁은 늘 한쪽이 자신은 민주세력이고 상대의 반민주 진영과 대립한다는 진술로 전개된다. 왜 상대를 반민주적으로 보는지를 물으면, 한쪽은 상대가 냉전반공주의를 지향하는 가짜 민주주의자라고 하고 다른 쪽은 상대가 말로만 민주주의일 뿐 실제로는 좌파 독재를 지향한다고 말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민주화 이후 33년이 지나는 동안 7번의 정권교체가 평화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놀랍다. 어느 쪽에서 보든 패자 입장에서는 비민주/반민주 세력의 집권을 7번이나 관용한 셈이기 때문이다.
우리 내부의 시각을 벗어나, 우리 밖 관찰자의 시선에서 보면 한국이 민주주의가 아닌 국가로 분류되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 나라별 민주주의의 발전 수준을 조사하는 국제기구나 언론의 발표를 보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OECD 선진국 수준에 포함된 지 오래다. 때로는 일본이나 미국보다 발전 정도가 앞서는 것으로 평가하는 조사도 있다. 6)따라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반민주/비민주 세력에 의해 민주주의가 위협되는 상황에 있다고 한다면, 다른 나라 시민들이 이해가 될 일인지 모르겠다.
나와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갖는다고 해서 반민주라고 공격하기보다, 민주주의를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를 두고 진보-보수, 좌-우의 정당들이 경쟁한다는 말이 나와야 민주주의는 발전한다. 그렇지 않고 반민주/비민주 세력과의 싸움에서 질 수 없다는 주장을 여야가 반복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진보/좌파를 인정하지 않는 보수/우파가 민주적일 수 없듯이, 보수/우파를 부정하는 진보/좌파 역시 민주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민주주의라는 공적 경쟁의 원리를 공유하면서 진보와 보수가 의미 있게 경쟁해야 민주주의가 발전하지, 민주주의를 어느 한쪽이 독점하려고 하면 좋은 변화는 만들어질 수 없다.
민주주의는 무엇이 옳은지를 확신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 위에 서 있는 체제다. 누구의 의견도 틀릴 수 있다고 가정하지 않으면 존립하기 어렵다. 오래전 제임스 매디슨이 한 말이지만, 인간은 천사가 아니고 천사를 데려와 정부(government)를 맡길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고자 한다면, 상대의 의견과 내 의견을 서로 공존 가능한 경쟁의 상대로 만드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가장 기초적인 규범은 상대를 규정함에 있어 거부감을 갖게 하는 용어를 앞세우지 않는 일이며, 자신이 반대하는 견해를 가진 상대 파당과 내가 속한 파당이 이해하고 있는 것 사이에 의미 있는 수렴 지점이 있는지를 찾으려는 노력도 중요하다.
나의 완전한 승리와 상대의 완전한 절멸은 민주정치가 추구하는 규범이 될 수 없다. 한쪽은 혁명의 논리로 상대를 대하고 다른 쪽은 전쟁의 논리로 상대를 대하는 민주주의는 위험하다. 그것은 상대보다 더 나은 정치를 하려고 노력하기보다 상대를 없애는 정치를 추구하는 것에 가깝다. 대립하는 양쪽 모두 상대보다 좀 더 바람직한 대안을 추구하려는 성실한 노력과 준비 대신 강한 언어와 공격적 태도로 일관하면 민주주의의 미래는 없다.
자신이 믿는 옳음에 대한 헌신만 있으니 상대에게 적대적이고 배타적이 되어도 상관없는 듯 행동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모든 것이 상대의 잘못일 뿐, 스스로 자신의 문제점을 돌아볼 의사는 없게 된다. 의미 있는 논쟁이 들어설 여지도 없다. 합리적 논쟁이 사라진 정치, 불모의 흥분 상태가 지배하는 정치, 파당적 싸움만 있는 정치에서 민주적 제도나 절차, 규범은 사회구성원 모두가 향유하는 공공재가 될 수는 없다.
그런 민주주의가 자리잡으면 시민의 삶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는 말할 수 없이 커질 것 같다. 정치 쟁점을 둘러싸고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하기가 어렵게 되거나,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상대를 정형화해 비난하는 일이 일상화되면, 남는 것은 목소리 큰 ‘소수의 횡포’뿐이다.
그렇게 되면 다수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의사 결정 체계는 그들 ‘무례한 소수’에 의해 파괴된다. 그들은 동료 시민의 동의를 얻고자 하는 방법이 아니라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는 방법으로 민주주의를 지배하고 사유화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사회는 더 깊이 분열되고 시민 개개인은 동료 시민에 의해 상처받고 고통 받게 된다. 건설적인 대안을 찾고자 하는 경쟁이 아니라, 상대를 더 아프게 할 비난의 소재를 찾는 일에 열의를 보이는 상황에서 동료 시민에 대한 예의나 정중함 같은 덕목은 자라날 수 없다.
6) 대표적으로 영국에서 발행하는 세계적인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2018년에 발표한 167개국의 ‘민주주의 지수’가 있다. 이에 따르면 한국은 10점 만점의 8점으로 21위를 기록했다. 이는 22위를 차지한 일본이나 25위를 차지한 미국, 29위를 차지한 프랑스, 33위를 차지한 이탈리아를 앞선 지수였다.
27. 허상으로서의 직접정치, 시민정치, 운동정치, 민심정치
서로를 반민주주의자라고 공격하면서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만드는 일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그 이유는 여러 차원에서 설명되어야 하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민주주의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있다. 민심이면 다 되고, 여론조사 결과가 좋으면 그것으로 정치적 승자가 되고, 의회나 정당과 같은 대의기관은 특권 집단이고 기득권일 뿐, 그들의 역할보다는 국민의 목소리가 직접 반영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여기는 것, 아마도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지배적 견해’는 그런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런 견해는 직접정치, 시민정치, 운동정치, 민심 그대로의 정치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정당화되는데, 이런 견해만큼 민주주의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없다.
이런 민주주의관은 노동자들과 여성들이 일궈온 현대 민주주의의 원리와 충돌한다. 평범한 보통사람들이 발전시켜온 현대 민주주의를 간접 민주주의, 대리정치, 제도정치, 엘리트정치, 특권정치, 기득권정치로 몰아붙이는 것은 잘못이다. 특권도 기득권도 엘리트도 없는 좀 더 완전한 민주주의를 주창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못해 유해하다. 노조원을 철밥통이나 고수하는 이기적 행위자로 야유하고, 노조 지도자를 유사 정치꾼으로 조롱하고, 노동조합을 특권 집단으로 몰아붙이면, 결국 남게 되는 것은 뭘까? 특권도 권력도 이익에 연연하지 않는 노동운동? 그건 인간의 현실이 될 수 없다.
조직적 특권은 중요하다. 지도부로서 정당하게 갖게 된 권력도 중요하다. 자본과 공정하게 경쟁해서 얻게 되는 합리적 이익도 중요하다. 특권・권력・이익 모두 선용되어야 할 조직 자원이라는 생각 없이 노동운동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노조나 조합원, 조직과 활동가, 지도자의 역할 없이 직원/피고용인이 순수한 선의를 발휘해 이루어질 수 있는 노동운동 같은 것은 존재한 적도 없다.
마찬가지로 시민의 대표로서 정치인, 특정의 정견을 조직한 정당, 이들이 경합해 합법적인 공적 결정에 이르게 하는 의회의 역할 없이 민주주의가 있을 수 있을까? 조합원, 당원, 특정 결사체 구성원이 아닌 채 그저 시민이기만 하면 무슨 변화가 가능하겠는가? 그런데도 당원이 아닌 일반 시민이 직접 나서는 것을 진정한 민주주의로 보고, 정당과 의회, 직업 정치인 등에 의해 주도되는 현대 대의제 민주주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고, 그런 제한된 민주주의 대신 직접 민주주의를 하자는 것은 사실상 민주주의를 정치적으로 무장해제 시키는 것 이상 다른 것이 될 수 없다. 이처럼 민주주의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우리 주변에서 넘쳐난다.
민주주의는 이념이나 태도의 문제 이전에 정치체제의 한 유형으로 먼저 이해되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실천하고 있는 민주주의는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에서 실천되었던 직접 민주주의와는 매우 다른 역사적 기원을 갖고 있다. 제도적으로 오늘날 우리가 운영하고 있는 현대 민주주의는 고대 민주주의와는 매우 다른 원리로 이루어진다. 흔히 대의 민주주의라고 불리는 현대 민주주의는 참여의 범위는 물론 대표의 다원성 등 여러 측면에서 고대 민주주의보다 훨씬 더 민주적이다. 지금 우리가 민주주의를 그 가치에 가깝게 실천하고자 한다면 현대 민주주의의 운영 원리에 맞게 해야 한다.
민주주의 있는 노동운동
박상훈
시작하며
1. 노동조합이 존중되는 사회
2. 선명 투쟁보다 지혜로운 투쟁
3. 더 사회적이고 더 정치적인 노동운동을 바라며
4. 조합원은 자치 능력이 있을까
5. 자본주의도 고쳐 쓸 수 있다
6. 활동가가 되고자 한다면
7. 아이를 위해서는 온 나라의 정치가 필요하다
8. 노동 정치와 정당 정치라는 양 날개
9. 좋은 대표 없이 민주주의 없다
10. 민주주의는 일종의 권력 균형체제
11. 매니페스토 운동 비판
12. 선의가 가진 윤리적 딜레마
13. 정치적인 인간이어야 하는 이유
14. 투쟁하고 싸울 수만은 없다
15. 좋은 타협이 중요하다
16. 민주주의, 불완전한 인간의 작품
17. 민주화의 두 주역 : 노동자와 여성
18. 삭발투쟁을 지켜보며
19.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하지만
20. 팬덤과 인기만으로 안 되는 이유
21. 도덕주의와 현실주의 사이에서
22. 민주주의의 역사적 기원 1 : 고대 민주주의
23. 민주주의의 역사적 기원 2 : 현대 민주주의
24. 혼합체제로서의 민주주의
25.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26. 위험한 논리로서 ‘민주 vs 반민주’
27. 허상으로서의 직접정치, 시민정치, 운동정치, 민심정치
28.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오해 ① 결사, 조직, 집단
29.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오해 ② 입헌주의
30.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오해 ③ 민주적 책임성
31.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오해 ④ 정치인 없는 민주주의의 길?
32.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오해 ⑤ 광장 민주주의와 시민 참여
33.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오해 ⑥ 집단지성과 대중지성
34.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오해 ⑦ 직접 민주주의 vs 대의 민주주의
35.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오해 ⑧ 소통 기술의 발전이 민주주의를 구원할 수 있을까?
36.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오해 ⑨ 새로운 민주주의보다 있는 민주주의 잘하자
마치며
22. 민주주의의 역사적 기원 1 : 고대 민주주의
민주주의는 하나의 기원이 아니라 두 개의 기원을 갖고 있다. 역사적으로 두 기원은 2천 년 가까이 떨어져 있고, 지리적으로는 지중해 한쪽 끝 그리스가 하나의 기원이라면 다른 하나는 영국과 프랑스가 중심이 된 서유럽이었다. 정치 공동체의 규모가 갖는 특성을 기준으로 두 기원을 구분하면, 하나는 소규모 도시국가였고 다른 하나는 대규모 국민국가였다.
민주주의는 기원전 6세기 초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에서 처음 등장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정치체제로서 민주주의가 먼저 있었고,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나중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나아가 민주주의라는 말이 민주주의에 반대했던 사람들에 의해 일종의 조롱조로 만들어졌다는 사실3)을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당시의 기록은 모두 민주주의를 비판했던 사람들에 의한 것일 뿐, 민주주의를 옹호했던 사람들의 기록은 보기 어렵다.
당시 민주주의의 비판자들은 일종의 반체제 인사 내지는 체제 비판적 지식인들이었다. ‘데모스, 즉 일반 시민이 정치체제를 운영한다고? 아니, 어떻게? 공적 사안을 판단할 능력이 없는데? 말도 안 되지.’ 이런 논리로 민주주의에 반대했던 사람들은 그 이상한 체제의 등장을 ‘데모크라티아’라고 부르며 야유했다. 그들이 볼 때 민주주의는 ‘어리석은 대중이 통치하는 불합리한 체제’ 그 이상이 아니었다. 실제로는 어땠을까? 그들이 예상했던 것처럼 민주주의는 그렇게 형편없는 체제였을까?
그때 민주주의 체제를 실시했던 대표적인 사례는 가장 큰 도시국가였던 아테네였다. 민주주의 시대의 아테네는 정치학은 물론 철학・문학・예술・건축・천체물리학 등 수많은 분야에서 엄청난 성취를 이루었다.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할 때 발휘하는 지적 능력이 얼마나 놀라운가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이 민주주의자에 의한 것이든, 민주주의를 비판했던 철학자나 지식인에 의한 것이든, 그 시대는 가장 자유롭고 경이로운 인간 정신의 고양기였다. 자유 시민의 전통을 갖지 못한 동양에 비해 서양의 정치철학이 갖는 힘 내지 지적 원천이 있다면, 그것은 2천5백 년 전에 실천된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민주주의 경험에서 발원한다.
3) 로버트 A. 달, 『민주주의와 그 비판자들』, (문학과지성사, 1999), 1장을 참조할 것.
23. 민주주의의 역사적 기원 2 : 현대 민주주의
아테네 민주주의는 2백 년 정도 지속된 뒤 몰락했다. 이와 더불어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말 자체가 사라졌다. 그 뒤 1천 년도 훨씬 더 지나서 민주주의라는 말이 다시 살아나리라고는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민주주의가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이 아랍어에서 라틴어로 옮겨진 13세기에 이르러서였다.
민주주의라는 표현이 라틴어와 프랑스어, 영어로 소개되고 그와 함께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민주주의 경험이 알려진 뒤에도 거의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이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민주주의를 ‘중우정치’나 ‘빈자들의 폭민 정치’, 나아가 ‘다수의 전제’(tyranny of the majority)로 여기는 사람이 많았다. 적어도 19세기 중반까지는 그랬다.
고대 그리스의 작은 도시국가들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이 정치형태를, 대규모의 근대 영토 국가 내지 국민국가에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 철학자는 사실 아무도 없었다. 몽테스키외(Charles De Montesquieu)나 장 자크 루소,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은 흥미로운 사례를 제공한다.
지금이야 그들을 ‘현대 민주주의의 제도적 디자인을 이끈 정치철학자’로 여기지만, 당시 그들은 민주주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들이 목표로 내걸었던 것은 공화국/공화정(republic)이었지 민주정/민주주의는 분명 아니었다. 이 시기까지 서양의 정치 전통을 지배한 것은 아테네와 민주정이 아니라, 로마와 공화정이었다. 직접 민주주의의 주창자로 잘못 알려진 장 자크 루소가 대표적이다. 그의 대표작인 『사회계약론』에서 루소는 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를 인간의 본성에 배치되는 정치체제로 규정한 뒤, 그보다는 고대 로마 및 스파르타와 같은 공화정의 여러 유형에서 새로운 시사점을 찾으려 했다.
공화정을 주장하며 민주정을 비판했던 사람들이 민주정/민주주의를 왜, 어떻게 수용하게 되었는지는 아직까지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19세기에 들어와 유럽 여러 나라에서 일반 시민들의 참정권 요구가 커지면서 이상하게도 공화국과 민주주의라는 말이 함께 쓰이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민주주의라는 말이 점점 더 자주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사실만 알려져 있다.
그 뒤에도 republic과 democracy, 이 두 용어의 차이는 매우 서서히 나타났다. 단순화해서 말하면, 결국 공화정은 ‘왕정이 아닌 체제’ 혹은 ‘교양과 재산을 가진 시민의 대표가 통치하는 체제’를 뜻하는 말로 남았다. 반면 민주주의/민주정은 참여에서 배제되었던 하층의 가난한 보통 사람들의 권리가 실현되는 체제를 뜻하는 용어로 발전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근대 노동운동의 경험이다. 17세기 중엽에서 18세기 말에 이르기까지의 시민혁명이 공화정에 대한 열정을 동반했다면, 그 뒤 등장한 근대 노동운동의 발전이 공화정이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용어로 자신들의 의지를 표현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인류 최초의 정치적 노동운동으로 불리는 1830년대의 차티스트 운동4)이 있다. 재산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참정권, 즉 정치적 시민권이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 운동은 영국에서 20년 가까이 이어졌다. 대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보통선거권을 주장하는 노동운동의 요구는 더욱 급진적인 형태를 띤 프랑스의 1848년 2월 혁명으로 이어졌고, 이 운동의 여파는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이 당시 좌파 노동운동의 정치적 목표가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통해 표현되었다는 점에서, 1789년 프랑스 대혁명과 비교해 1848년 혁명은 유럽 최초의 민주주의 혁명으로 기록될 만한 대사건이었다. 이 기초 위에서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세계사를 뒤흔든 여성들의 참정권 운동이 펼쳐질 수 있었고, 진보적인 정치세력들은 대중정당(mass party)이라는 조직 형태를 발명해 빠르게 성장했다. 1920년대로 대표되는 ‘민주화의 물결’은 이런 긴 과정의 결실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식인들과 철학자들의 회의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근대 노동운동과 여성운동 그리고 대중정당의 결합을 통해 현대 민주주의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중요해 보인다. 남성에게 종속되어 있고, 지주나 공장주에게 고용되어 있기에 자율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이유로 참여를 부정당했던 여성과 하층 노동자 계층도 시민권을 가져야 한다는 것, 그들의 의지와 열정을 조직한 정당도 정부를 운영할 평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거부할 수 없는 정치 규범으로 자리 잡음으로써 거의 2천 년 동안 실종되고 부정되었던 민주주의 정부에 대한 이상이 불사조처럼 다시 살아났으며, 그와 더불어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에서는 배제되었던 노동자와 여성을 포괄하는 대규모 대중 민주주의가 실천될 수 있었다.
4) 차티스트 운동이라는 이름은 1838년 영국 런던의 급진주의자 윌리엄 러벳(William Lovett)이 기초한 민중헌장 (People’s Charter)에 따른 것이다. 민중헌장은 6개 요구 조항을 담고 있는데 남성의 보통선거권, 균등한 선거구 설정, 비밀투표, 매년 선거, 의원의 보수 지급, 의원 출마자의 재산자격제한 폐지 등이다. 이런 내용으로 1838년, 1839년, 1941년, 1948년 차티스트 대회가 개최되어 의회에 청원서를 제출했으나 번번이 묵살당했고,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체포, 추방되었다. 1950년대에 들어와 운동의 명맥은 유지했으나 전국적 차원의 운동으로는 에너지를 잃고 점차 사라졌다. 크게 보아 이 운동은 자본주의 산업사회에 편입된 노동자들이 사회적 불의에 대항했던, 영국 최초의 전국적인 노동계급 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운동은 실패했는지 모르나, 그 과정에서 많은 노동운동 활동가들이 성장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내건 6개항의 요구 조건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거의 모두 실현되었다.
24. 혼합체제로서의 민주주의
민주주의에 대한 오해나 편견의 원천은 민주주의 자체가 어렵고 까다로운 내용을 가져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것에서 비롯된다. 민주주의 자체는 생각보다 단순한 주제다. 사실 정치에 참여하고 영향력을 미치는 데 시민들이 평등한 권리를 갖는 체제이자, 그런 시민 가운데 다수의 의견이 공적 결정을 주도하는 정치체제라는 것만 이해해도 충분할지 모른다.
문제는 민주주의와 민주주의 아닌 것을 분리하기도, 또 분리해서 논하기도 어렵다는 데 있다. 실제의 민주주의 정치체제는 자유주의와 같이 민주주의가 아닌 것들과 함께 움직인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게 좀 어렵다.
한번 잘 생각해보자. 사람들이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말하는 이야기를 잘 들여다보면 민주주의가 아닌 것들, 예컨대 자유주의나 공화주의 혹은 다원주의나 사회주의의 내용일 때가 많다. “민주주의가 뭐죠?” 라고 물으면, 삼권분립이라고 답하는 사람도 많다. 여러분 가운데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엄밀히 말해 삼권분립은 민주주의보다는 자유주의나 공화주의의 관점에서 발전해 온 원리다.
자유주의는 자유를, 민주주의는 평등을 중시하는 체제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틀리지 않다. 특히 정치적 권리에 있어서 평등한 체제를 민주주의라 한다면 조금 더 정확한 대답이다. 하지만 지위나 소득 등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평등까지 포괄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보다 사회주의나 공동체주의의 문제의식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가 자유주의나 공화주의, 사회주의, 다원주의, 공동체주의와 같은 것은 분명 아니나, 이런 민주주의가 아닌 가치들과 겹쳐서 이해되고 논의된다는 사실이 민주주의 문제를 어렵게 만들기도 하고 흥미롭게 만들기도 한다.
분명 자유민주주의도 민주주의이고 사회민주주의도 민주주의다. 서로의 차이나 집단 간 이익 갈등의 문제를 전제하는 다원주의를 빼고 민주주의를 말하기도 어렵다. 자유주의가 싫다고 개인의 기본권을 박탈한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을까? 사회주의가 싫다고 사회복지나 재분배 정책을 하지말자고 할 수 있을까? 집단적 차이나 갈등 때문에 괴롭다고 다원주의 대신 전체주의를 하자고 할 수 있을까? 이처럼 오늘날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할 때 거기에는 민주주의만이 아니라 다른 계보나 원류의 사상과 제도 이론이 섞여 있다.
25.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1인1표의 민주주의는 돈의 힘이 지배하는 1원1표의 자본주의와는 대립되는 것 아닌가? 그렇게 보면 민주주의는 반자본주의를 지향해야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역사책에서 보면 근대 상공업 계층이 주도한 시민혁명을 통해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러면 자본주의 덕분에 민주화가 되었다는 것으로 읽힌다.”
원리상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대립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던 현상이었다. 세습과 혈통의 원리로 체제가 움직이던 군주정이나 귀족정의 구체제는 어떻게 붕괴된 것일까? 이는 근대 자본주의적 질서를 주도한 중상계급의 역할 없이 설명하기 어렵다. 그래서 배링턴 무어(Barrington Moore Jr.) 5)같은 미국의 위대한 사회학자는 “부르주아 없이 민주주의 없다(No bourgeois, no democracy.)”라는 과감한 주장을 펼칠 수 있었다.
부르주아라고 불리는 중상계급이 자유시장의 원리를 옹호함은 물론 개인의 침해할 수 없는 권리와 자율적인 시민사회의 역할을 지지하고 나선 것은 사실이다. 근대 시민혁명의 발전은 이들 부르주아의 역할과 깊은 관련이 있다. 하지만 이 단계까지의 변화는 자유주의의 발전으로 이해될 일이며, 민주주의는 그 이후 단계에서의 변화와 관련되어 있다.
그 핵심은 앞서 언급했듯이 노동자와 여성들에게 정치참여의 권리를 줄 수 있는가의 문제를 둘러싸고 전개되었다. 이때 부르주아라고 불리는 중상계층의 반응이 우호적이지만은 않았다. 나라에 따라서는 그런 권리 주장에 부정적이거나 억압적인 반응을 보였던 사례도 많다. 그런 점에서 “부르주아 없이 자유주의 없다.”고는 할 수 있을지언정, 노동자와 여성들의 참정권 운동 없이 현대 민주주의를 설명하는 것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그보다는 “노동자와 여성 없이 민주주의 없다”라고 하는 것이 역사적 사실에 훨씬 더 부합하는 일이다.
자본주의는 근대 부르주아지를 낳고 그들은 군주정과 대립하면서 자유주의의 시대를 열었다.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노동자들과 여성들은 재산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평등한 정치적 권리를 갖게 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시대를 열었다. 이로써 자유의 혜택이 전 사회적인 권리가 될 수 있었다. 자본주의 역시 돈의 힘만으로 운영될 수 없게 되었다. 생산의 결과는 자율적 노사관계를 통해 배분되었다. 자본주의 역시 합법적으로 결정된 공공정책을 통해 민주적으로 수정되고 조율되는 시대가 되었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서로 경합하면서도 동시에 공존하는 현대 사회의 두 원리로 자리잡았다. 대표적으로 자유민주주의가 자본주의의 장점을 더 강조하는 민주주의 노선이라면,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를 민주적으로 수정하는 노력을 더 중시하는 정치 노선이라 할 수 있다.
5) 배링턴 무어(1913 – 2005) : 미국을 대표하는 정치사회학자. 근대 정치 제도들의 사회적 기원을 밝힌 『독재와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원』이란 명저로 잘 알려져 있다. 영국과 미국, 프랑스 같은 선발 자본주의 국가에서 민주주의가, 후발 자본주의 국가인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에서 전체주의가, 상업화 단계 이전의 농업사회 중심 국가였던 러시아와 중국에서 공산주의 체제가 등장한 과정을 거시적으로 비교 연구한 그의 작업이 정치학과 사회학에 미친 영향은 지대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자립적 근대화에 실패하고 식민화되는 문제를 배링턴 무어의 논의를 통해 설명하려는 여러 시도들이 있었다.
26. 위험한 논리로서 ‘민주 vs 반민주’
앞서 살펴보았듯이 민주주의에 대한 역사적 이해는 중요하다.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는 규범적이고 이념적으로 다뤄질 때가 많다. 이게 문제다. 나는 자유민주주의다, 나는 사회민주주의다, 하다못해 나는 기독교민주주의자다 해도 상관없다. 그런데 나는 민주주의자이고 상대는 반민주주의자다? 이건 생각해볼 일이다.
당신은 민주주의자인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는 자유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사회주의에 반대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아니지만, 나는 비민주주의자다거나 반민주주의자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처럼 민주주의가 강력한 규범성을 갖게 되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가 자주 강렬한 배타성과 적대성을 불러일으킬 때가 많다.
모두가 민주주의자라고 하는 시대에, 민주주의 문제가 매우 격렬한 열정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이른 바 ‘민주 대 반민주’라는 정치 언어가 있다. 어느 정당도 자신의 정견이 반민주적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현실의 정치 경쟁은 늘 한쪽이 자신은 민주세력이고 상대의 반민주 진영과 대립한다는 진술로 전개된다. 왜 상대를 반민주적으로 보는지를 물으면, 한쪽은 상대가 냉전반공주의를 지향하는 가짜 민주주의자라고 하고 다른 쪽은 상대가 말로만 민주주의일 뿐 실제로는 좌파 독재를 지향한다고 말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민주화 이후 33년이 지나는 동안 7번의 정권교체가 평화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놀랍다. 어느 쪽에서 보든 패자 입장에서는 비민주/반민주 세력의 집권을 7번이나 관용한 셈이기 때문이다.
우리 내부의 시각을 벗어나, 우리 밖 관찰자의 시선에서 보면 한국이 민주주의가 아닌 국가로 분류되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 나라별 민주주의의 발전 수준을 조사하는 국제기구나 언론의 발표를 보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OECD 선진국 수준에 포함된 지 오래다. 때로는 일본이나 미국보다 발전 정도가 앞서는 것으로 평가하는 조사도 있다. 6)따라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반민주/비민주 세력에 의해 민주주의가 위협되는 상황에 있다고 한다면, 다른 나라 시민들이 이해가 될 일인지 모르겠다.
나와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갖는다고 해서 반민주라고 공격하기보다, 민주주의를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를 두고 진보-보수, 좌-우의 정당들이 경쟁한다는 말이 나와야 민주주의는 발전한다. 그렇지 않고 반민주/비민주 세력과의 싸움에서 질 수 없다는 주장을 여야가 반복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진보/좌파를 인정하지 않는 보수/우파가 민주적일 수 없듯이, 보수/우파를 부정하는 진보/좌파 역시 민주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민주주의라는 공적 경쟁의 원리를 공유하면서 진보와 보수가 의미 있게 경쟁해야 민주주의가 발전하지, 민주주의를 어느 한쪽이 독점하려고 하면 좋은 변화는 만들어질 수 없다.
민주주의는 무엇이 옳은지를 확신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 위에 서 있는 체제다. 누구의 의견도 틀릴 수 있다고 가정하지 않으면 존립하기 어렵다. 오래전 제임스 매디슨이 한 말이지만, 인간은 천사가 아니고 천사를 데려와 정부(government)를 맡길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고자 한다면, 상대의 의견과 내 의견을 서로 공존 가능한 경쟁의 상대로 만드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가장 기초적인 규범은 상대를 규정함에 있어 거부감을 갖게 하는 용어를 앞세우지 않는 일이며, 자신이 반대하는 견해를 가진 상대 파당과 내가 속한 파당이 이해하고 있는 것 사이에 의미 있는 수렴 지점이 있는지를 찾으려는 노력도 중요하다.
나의 완전한 승리와 상대의 완전한 절멸은 민주정치가 추구하는 규범이 될 수 없다. 한쪽은 혁명의 논리로 상대를 대하고 다른 쪽은 전쟁의 논리로 상대를 대하는 민주주의는 위험하다. 그것은 상대보다 더 나은 정치를 하려고 노력하기보다 상대를 없애는 정치를 추구하는 것에 가깝다. 대립하는 양쪽 모두 상대보다 좀 더 바람직한 대안을 추구하려는 성실한 노력과 준비 대신 강한 언어와 공격적 태도로 일관하면 민주주의의 미래는 없다.
자신이 믿는 옳음에 대한 헌신만 있으니 상대에게 적대적이고 배타적이 되어도 상관없는 듯 행동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모든 것이 상대의 잘못일 뿐, 스스로 자신의 문제점을 돌아볼 의사는 없게 된다. 의미 있는 논쟁이 들어설 여지도 없다. 합리적 논쟁이 사라진 정치, 불모의 흥분 상태가 지배하는 정치, 파당적 싸움만 있는 정치에서 민주적 제도나 절차, 규범은 사회구성원 모두가 향유하는 공공재가 될 수는 없다.
그런 민주주의가 자리잡으면 시민의 삶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는 말할 수 없이 커질 것 같다. 정치 쟁점을 둘러싸고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하기가 어렵게 되거나,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상대를 정형화해 비난하는 일이 일상화되면, 남는 것은 목소리 큰 ‘소수의 횡포’뿐이다.
그렇게 되면 다수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의사 결정 체계는 그들 ‘무례한 소수’에 의해 파괴된다. 그들은 동료 시민의 동의를 얻고자 하는 방법이 아니라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는 방법으로 민주주의를 지배하고 사유화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사회는 더 깊이 분열되고 시민 개개인은 동료 시민에 의해 상처받고 고통 받게 된다. 건설적인 대안을 찾고자 하는 경쟁이 아니라, 상대를 더 아프게 할 비난의 소재를 찾는 일에 열의를 보이는 상황에서 동료 시민에 대한 예의나 정중함 같은 덕목은 자라날 수 없다.
6) 대표적으로 영국에서 발행하는 세계적인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2018년에 발표한 167개국의 ‘민주주의 지수’가 있다. 이에 따르면 한국은 10점 만점의 8점으로 21위를 기록했다. 이는 22위를 차지한 일본이나 25위를 차지한 미국, 29위를 차지한 프랑스, 33위를 차지한 이탈리아를 앞선 지수였다.
27. 허상으로서의 직접정치, 시민정치, 운동정치, 민심정치
서로를 반민주주의자라고 공격하면서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만드는 일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그 이유는 여러 차원에서 설명되어야 하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민주주의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있다. 민심이면 다 되고, 여론조사 결과가 좋으면 그것으로 정치적 승자가 되고, 의회나 정당과 같은 대의기관은 특권 집단이고 기득권일 뿐, 그들의 역할보다는 국민의 목소리가 직접 반영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여기는 것, 아마도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지배적 견해’는 그런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런 견해는 직접정치, 시민정치, 운동정치, 민심 그대로의 정치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정당화되는데, 이런 견해만큼 민주주의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없다.
이런 민주주의관은 노동자들과 여성들이 일궈온 현대 민주주의의 원리와 충돌한다. 평범한 보통사람들이 발전시켜온 현대 민주주의를 간접 민주주의, 대리정치, 제도정치, 엘리트정치, 특권정치, 기득권정치로 몰아붙이는 것은 잘못이다. 특권도 기득권도 엘리트도 없는 좀 더 완전한 민주주의를 주창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못해 유해하다. 노조원을 철밥통이나 고수하는 이기적 행위자로 야유하고, 노조 지도자를 유사 정치꾼으로 조롱하고, 노동조합을 특권 집단으로 몰아붙이면, 결국 남게 되는 것은 뭘까? 특권도 권력도 이익에 연연하지 않는 노동운동? 그건 인간의 현실이 될 수 없다.
조직적 특권은 중요하다. 지도부로서 정당하게 갖게 된 권력도 중요하다. 자본과 공정하게 경쟁해서 얻게 되는 합리적 이익도 중요하다. 특권・권력・이익 모두 선용되어야 할 조직 자원이라는 생각 없이 노동운동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노조나 조합원, 조직과 활동가, 지도자의 역할 없이 직원/피고용인이 순수한 선의를 발휘해 이루어질 수 있는 노동운동 같은 것은 존재한 적도 없다.
마찬가지로 시민의 대표로서 정치인, 특정의 정견을 조직한 정당, 이들이 경합해 합법적인 공적 결정에 이르게 하는 의회의 역할 없이 민주주의가 있을 수 있을까? 조합원, 당원, 특정 결사체 구성원이 아닌 채 그저 시민이기만 하면 무슨 변화가 가능하겠는가? 그런데도 당원이 아닌 일반 시민이 직접 나서는 것을 진정한 민주주의로 보고, 정당과 의회, 직업 정치인 등에 의해 주도되는 현대 대의제 민주주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고, 그런 제한된 민주주의 대신 직접 민주주의를 하자는 것은 사실상 민주주의를 정치적으로 무장해제 시키는 것 이상 다른 것이 될 수 없다. 이처럼 민주주의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우리 주변에서 넘쳐난다.
민주주의는 이념이나 태도의 문제 이전에 정치체제의 한 유형으로 먼저 이해되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실천하고 있는 민주주의는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에서 실천되었던 직접 민주주의와는 매우 다른 역사적 기원을 갖고 있다. 제도적으로 오늘날 우리가 운영하고 있는 현대 민주주의는 고대 민주주의와는 매우 다른 원리로 이루어진다. 흔히 대의 민주주의라고 불리는 현대 민주주의는 참여의 범위는 물론 대표의 다원성 등 여러 측면에서 고대 민주주의보다 훨씬 더 민주적이다. 지금 우리가 민주주의를 그 가치에 가깝게 실천하고자 한다면 현대 민주주의의 운영 원리에 맞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