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없는 민주주의 - 6

공식 관리자
2022-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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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없는 민주주의

 박상훈・김성희

 

 <대화를 시작하며> 정치 없이 존립 가능한 사회는 없다


1장. 정치 실종 시대의 11가지 모습

1. 법률가 정치 전성시대

2. 정치 안 하고 군림하는 대통령

3. 정치가 대개조, 대전환을 이룰 수 있다는 착각

4. 반대할 수 없는 적폐 청산

5. 처벌과 척결의 정치

6. 여론 아첨 정치

7. 열성 지지자 동원 경쟁

8. 검찰개혁을 앞세운 정치

9. 죽음을 부르는 정치

10. 매일 국민투표 하는 민주주의

11. 독선과 오만이라는 정치의 적

 

2장. 정치 몰락을 가져온 국민주권 민주주의

1. 민주주의의 운명은 좋은 정치인에 달렸다

2. ‘국민주권 민주주의’가 정치의 몰락을 낳았다

(1) 예기치 않은 선택 : 촛불 혁명과 국민주권 민주주의

(2) 국민주권이 민주주의의 모든 것이 될 수 없는 이유

(3) 국민주권 민주주의의 파멸적 귀결

3. 민주공화국, 어떤 원리로 만들어졌나

(1) 공화정이면서 민주적인 정부를 향한 길

(2) 정제와 확대의 원리

(3) 대표와 책임성의 원리

(4) 숙고된 결정과 합의된 변화의 원리

 

3장. 정치, 정치답게 제대로 하자

1. 시민 분열의 양극화 정치 대신 연합 정치의 길 열자

2 ‘대통령 뽑기 민주주의’에서 ‘좋은 정치 가능한 민주주의’로 바꾸자

3. 다원 민주주의의 길을 넓히자

4. 청와대 정부 개혁, 모든 일의 전제임을 분명히 하자

(1) 청와대 정부는 헌법과 법률에 반하기 때문이다

(2) 청와대 정부로는 큰 변화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3) 큰 청와대 비서실은 대통령을 혹사시키고 소외시키기 때문이다

(4) 정부조직법대로 하자고 해야 한다

5. 국회도 정당도 변해야 한다

(1) 국회는 입법 공장이 아니다

(2) 권력 기관화된 정당의 모습도 돌아봐야 한다

(3) 정당 책임 정치의 길로 가야 한다

(4) 인재 영입보다 인재 육성하는 당이 되어야 한다

(5) 국민경선과 캠프정치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6) 정당이 선거와 정권 인수를 주도해야 한다

6. 대통령제, 그 기원으로부터 다시 생각해 보자

(1) 대통령이 문제다

(2) 대통령제는 어떻게 탄생했나

(3) 미국의 대통령 비서실과 공화주의 원칙

(4) 대통령제는 강한 정부를 위한 게 아니다

(5) 대통령제 문제보다 대통령직 수행 문제를 말해야 한다

7. 대통령직의 민주적 운영을 약속해야 한다.

(1) 민주주의는 권위주의와 다른 정부 운영을 필요로 한다.

(2) 대통령제, 빠르고 강한 결정을 위해 만든 게 아니다

(3) 1987년 헌법, 5년 단임 대통령제 정부를 만든 이유를 존중하자

(4) 대통령직 인수 방법부터 달리 하자

(5) 책임 정부가 민주 정부다

 

<대화를 마치며>다르게 살고, 느리게 살 수 있는 민주주의를 원한다 


두 대화자 소개

박상훈과 김성희는 국회로 출근한다. 박상훈은 국회미래연구원의 초빙연구위원으로 있다. 자신을 ‘구식 정치학자’라고 생각하는 정치학자다. 정치에 있어서 잘 변하지 않는 것, 오래 가는 특징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그는 정당정치와 노사관계를 현대 민주주의를 이끄는 양날개로 여긴다. 김성희는 21대 국회의원의 보좌관으로 있다. 민주노동당에서 시작해 정의당에 이르기까지 진보정당에서 활동해왔다. 독일의 민주주의와 정당정치에 관심이 있고, 이를 비교의 기준으로 삼아 좀 더 나은 한국 정치를 조망해 보는 것을 좋아한다.

김성희와 박상훈은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함께 <(사단법인) 정치발전소>를 만들고 이끌어왔다. 김성희는 상임이사를, 박상훈은 정치학교장을 맡아서 정치가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정치학의 지혜를 강의나 토론의 형태로 공유하는 활동을 같이 해왔다. 회원들과 함께 독일 정치기행, 일본 정치기행, 이탈리아 마키아벨리 정치여행을 다녀왔고, 미국 민주주의 기행을 준비하던 중에 감염병 팬데믹 때문에 잠시 멈춘 상태다. 하지만 좋은 정치에 대한 토론은 다양한 형태로 계속하고 있다.




<대화를 마치며>

다르게 살고, 느리게 살 수 있는 민주주의를 원한다


 

“김) 긴 대화를 마칠 시간이다. 그래서 끝으로 우리가 바라는 한국 민주주의에 대해 정리해 말하는 것으로 마무리할까 한다. 한국 정치의 정신 상황을 말하라면 대략 이렇다고 본다. 선거에서 이겨라. 국가를 장악하라. 권력으로 정의를 실현하라. 여론과 지지자를 동원해 반대를 제압하라. 이것이 시민 참여다. 잘못을 인정하면 진다. 상대는 교활하다. 차라리 논란을 만들어라. 밀리면 죽는다. 권력 투쟁이라는 하나의 가치가 지배하는 민주주의다.”

“박) 나는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살아도 되는 민주주의를 바란다. 이견이 적대의 대상이 되지 않는 사회를 원한다. 빠른 것보다 느리더라도 제대로 하는 정치를 기대한다. 아나키스트도 국가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이야기하고, 사회주의자도 혁명 대신 정당을 만들 수 있는 민주주의여야 한다고 본다. 정치는 늘 다원적 의견들로 넘쳐나야 하고, 국가 권력의 자의성은 권력분립의 체계를 통해 제어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김) ‘서로 생각이 다르지만, 우리도 양보할 준비가 되어 있다’라고 말하는 정치가들이 많아져야 민주주의도 정치도 작동할 수 있다. 달라야 협력할 수 있다. 가치 체계(value system)가 다른 여러 정치세력들이 경합할 때 민주주의의 좋은 점이 발휘된다. 그렇지 않고 민생, 국민 행복, 선진 경제 등 모두가 똑같은 가치지향을 앞세워 서로를 밀어내는 정치는 역설적이게도 적대적 공생의 양극화 정치를 낳는다.”

“박) 정치가가 갖춰야 할 으뜸의 덕목은 책임감과 균형감이다. 책임감은 ‘설명하다’에서 유래된 말이다. 타자의 ‘합리적 의심’은 가치가 있으며, 책임 있게 응대해야 한다는 것에서 발원한 규범이다. 균형감은 하나의 옳음이 아니라 여러 옮음‘들’ 사이에 정치의 역할이 있음을 말한다. 신이 아닌 한 ‘무지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존재는 없다. 공익이 무엇이고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확고한 판단은 분명할 때보다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공익이란 이견, 다름, 차이 속에서 논의되고 조정된 끝에 ‘불완전하게 합의된 잠정적 결론(modus vivendi)’을 뜻한다. 모두스 비벤디는 잠정 협정(temporary arrangements)이라는 의미 말고도, 살아나가는 방식(way of life)을 뜻하기도 한다. 헌법을 뜻하는 constitution 역시 삶의 양식이나 몸의 체질을 가리키기도 한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적 삶의 방식을 위해 견해를 달리하는 시민들 사이에서 잠정적 협정을 이끄는 것, 그게 정치다. 그런 노력이 정치가의 살아나가는 방식이 될 때 민주주의도, 입헌주의도 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 정치의 양식과 체질이 지금과는 달라져야 하겠다.”

“김) 균형 감각 없는 정치가는 그저 ‘자신이 옳기 위해 정치하는 독단적 권력자’일 뿐이다. 그가 권력을 더 많이 가질수록 민주주의는 위태로워진다. 정의도 상대적이다. 때와 조건에 상관없이 모두가 따라야 할 준칙이 있다면 정의로운 공적 결정은 용이할 것이지만, 그것은 인간의 현실이 아니다. 적법한 절차에 따라 법률과 규칙을 만들고 적용하고 실천하면서 협력과 조정, 합의를 이끌어가는 노력은 그래서 필요하다.”

“박) 법과 절차, 규정 모두 인간이 만든 것이기에 불완전하다. 하지만 정의로운 국가, 자유로운 권력은 더욱 불완전하며, 만약 그런 국가가 등장한다면 재난적인 결과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모두가 정의를 앞세워 타인의 권리와 자유를 함부로 해도 되는 국가, 지루한 법 절차보다 즉각적인 사적 처벌이 환호받는 사회, 생각이 다른 집단을 공격하는 것을 정의감의 발로로 착각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누구도 안전할 수 없는 그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국가뿐이다. 최고의 권력이기 때문이다. ‘권력이 곧 정의’가 되는 정치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김) 일단 권력 게임에서 이기고 봐야 하는 정치가 지금 우리 앞에 있다. 여론조사 지지율만 높으면 되는 정치에 모두가 매진하고 있다. 신념이나 이념 같은 다원적 정치의 핵심 요소들은 쓸데없는 것이 된 지 오래다. 모두가 국가가 되고자 하면서, 국민-민심-민생만 찾는 ‘전체주의적 민주주의’가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국민주권 민주주의는 정치의 역할을 없애고 전체주의적 민주주의를 앞당긴다. 더는 정치의 퇴행을 방치할 수 없는 게 지금 우리 현실이라고 본다.”

“박) 민주주의는 무엇이 옳은지를 확신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 위에 서 있는 체제다. 누구의 의견도 틀릴 수 있다고 가정하지 않으면 존립하기 어렵다. 이런 정치체제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고자 한다면, 상대의 의견과 내 의견을 서로 공존 가능한 경쟁의 상대로 만드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가장 기초적인 규범은 상대를 규정함에 있어 거부감을 갖게 하는 용어를 앞세우지 않는 일이다. 자신이 반대하는 견해를 가진 상대 파당과 내가 속한 파당이 이해하고 있는 것 사이에 의미 있는 수렴 지점이 있는지를 찾으려는 노력도 중요하다. 나의 완전한 승리와 상대의 완전한 절멸은 민주 정치가 추구하는 규범이 될 수 없다. 민주주의는 전쟁이나 혁명으로 방법으로 운영될 수 없다. 이견과 차이를 인간 삶의 자연스러운 요소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혹은 그런 차이와 이견을 통해 배울 수 있어야 민주 정치를 이끌고 또 지킬 수 있다. 지금처럼 여야가 서로를 부정하는 양극화 정치로는 모두를 혼란에 빠뜨릴 뿐 바람직한 변화로 이어질 수 없다.”

“김) 지금의 한국 정치는 길을 잃었다. 상대보다 더 나은 정치를 하려고 노력하기보다 상대를 없애는 정치를 추구하는 것에 가깝다. 대립하는 양쪽 모두 상대보다 좀 더 바람직한 대안을 추구하려는 성실한 노력과 준비 대신 강한 언어와 공격적 태도로 일관한다. 자신이 믿는 옳음에 대한 헌신만 있으니 상대에게 적대적이고 배타적인 것은 물론이다. 모든 것이 상대의 잘못일 뿐, 스스로 자신의 문제점을 돌아볼 의사는 없다. 의미 있는 논쟁이 들어설 여지가 있을까? 없다. 합리적 논쟁이 사라진 정치, 불모의 흥분이 지배하는 정치, 파당적 싸움만 있는 정치에서 민주적 제도나 절차, 규범은 사회구성원 모두가 향유하는 공공재가 될 수 없다.”

“박) 시민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할 일이다. 정당들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시민들 사이에도 대화가 어려운 상황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상대를 정형화해서 비난하는 일이 일상화되면, 남는 것은 목소리 큰 ‘소수의 횡포’뿐이다. 다수지배라는 민주주의의 의사결정 체계는 이들 무례한 소수에 의해 파괴된다. 동료 시민의 동의를 얻고자 하는 방법이 아니라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제압하고자 하는 방법으로 삶을 영위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사회는 더 깊이 분열되고 시민 개개인은 동료 시민에 의해 상처받고 고통받는다.”

“김) 건설적인 대안을 찾고자 하는 경쟁이 아니라, 상대를 더 아프게 할 비난의 소재를 찾는 일에 열의를 보이는 경쟁에서 동료 시민에 대한 예의나 정중함 같은 덕목이 자라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박)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시민의 모습은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 공동체 문제에 적극적인 참여자, 나아가 도덕적 자기 결정과 정치적 선택의 능력을 갖춘 주권자에 있다. 좋은 정치란 가능한 한 그런 수준의 시민주권이 실천될 수 있는 조건을 성숙시키는 데 있다.”

“김) 공적 논쟁의 규범을 준수하면서 합리적 토론과 합의의 형성을 모색해 갈 수 있어야 좋은 정치다. 정치를 좋게 만들고 싶다면 상대를 야유하고 모욕하는 일이 아니라, 바람직한 변화의 목표와 내용을 구체화하는 일에 더 열의를 보여야 할 것이다. 앞선 정권이 남긴 폐단을 척결하고자 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정부를 만들어야 한다. 시민을 자유롭게 하는 동시에 책임성의 규범을 준수하는 정치를 해야 낡은 폐단은 힘을 잃게 된다. 오늘의 집권당이 과거의 집권당보다 국회를 더 잘 이끌고자 한다면 그들이 보였던 잘못과 한계를 반기며 야유하는 것에서 그칠 수 없다. 그들보다 나아야지 똑같아져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박) 정치 언어와 정책 행동의 모든 측면에서 훨씬 더 나은 수준과 책임감을 보여야 한다. 비록 일을 그렇게 하는 것이 상대를 비난하는 것보다 훨씬 힘이 들고 어려운 일이라 해도 그 차원에서 성과가 있을 때 지금과 같은 나쁜 정치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비로소 민주주의가 가져오는 사회적 유익함이 극대화될 수 있을 것이다.”

“김) 우리는 그런 정치가 이루어지기를 원한다. 그런 정치를 위해 헌신할 진정한 정치가의 출현을 기대한다. 정치, 정치답게 제대로 하게 될 날이 왔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으로 우리들의 정치적 대화를 모두 마친다. 우리 서로 수고했다.”

 


 


그동안 지상강의_정치 없는 민주주의에 보내주신 관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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