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없는 민주주의 - 5

공식 관리자
2022-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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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없는 민주주의

 박상훈・김성희

 

 <대화를 시작하며> 정치 없이 존립 가능한 사회는 없다


1장. 정치 실종 시대의 11가지 모습

1. 법률가 정치 전성시대

2. 정치 안 하고 군림하는 대통령

3. 정치가 대개조, 대전환을 이룰 수 있다는 착각

4. 반대할 수 없는 적폐 청산

5. 처벌과 척결의 정치

6. 여론 아첨 정치

7. 열성 지지자 동원 경쟁

8. 검찰개혁을 앞세운 정치

9. 죽음을 부르는 정치

10. 매일 국민투표 하는 민주주의

11. 독선과 오만이라는 정치의 적

 

2장. 정치 몰락을 가져온 국민주권 민주주의

1. 민주주의의 운명은 좋은 정치인에 달렸다

2. ‘국민주권 민주주의’가 정치의 몰락을 낳았다

(1) 예기치 않은 선택 : 촛불 혁명과 국민주권 민주주의

(2) 국민주권이 민주주의의 모든 것이 될 수 없는 이유

(3) 국민주권 민주주의의 파멸적 귀결

3. 민주공화국, 어떤 원리로 만들어졌나

(1) 공화정이면서 민주적인 정부를 향한 길

(2) 정제와 확대의 원리

(3) 대표와 책임성의 원리

(4) 숙고된 결정과 합의된 변화의 원리

 

3장. 정치, 정치답게 제대로 하자

1. 시민 분열의 양극화 정치 대신 연합 정치의 길 열자

2 ‘대통령 뽑기 민주주의’에서 ‘좋은 정치 가능한 민주주의’로 바꾸자

3. 다원 민주주의의 길을 넓히자

4. 청와대 정부 개혁, 모든 일의 전제임을 분명히 하자

(1) 청와대 정부는 헌법과 법률에 반하기 때문이다

(2) 청와대 정부로는 큰 변화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3) 큰 청와대 비서실은 대통령을 혹사시키고 소외시키기 때문이다

(4) 정부조직법대로 하자고 해야 한다

5. 국회도 정당도 변해야 한다

(1) 국회는 입법 공장이 아니다

(2) 권력 기관화된 정당의 모습도 돌아봐야 한다

(3) 정당 책임 정치의 길로 가야 한다

(4) 인재 영입보다 인재 육성하는 당이 되어야 한다

(5) 국민경선과 캠프정치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6) 정당이 선거와 정권 인수를 주도해야 한다

6. 대통령제, 그 기원으로부터 다시 생각해 보자

(1) 대통령이 문제다

(2) 대통령제는 어떻게 탄생했나

(3) 미국의 대통령 비서실과 공화주의 원칙

(4) 대통령제는 강한 정부를 위한 게 아니다

(5) 대통령제 문제보다 대통령직 수행 문제를 말해야 한다

7. 대통령직의 민주적 운영을 약속해야 한다.

(1) 민주주의는 권위주의와 다른 정부 운영을 필요로 한다.

(2) 대통령제, 빠르고 강한 결정을 위해 만든 게 아니다

(3) 1987년 헌법, 5년 단임 대통령제 정부를 만든 이유를 존중하자

(4) 대통령직 인수 방법부터 달리 하자

(5) 책임 정부가 민주 정부다

 

<대화를 마치며>다르게 살고, 느리게 살 수 있는 민주주의를 원한다 


두 대화자 소개

박상훈과 김성희는 국회로 출근한다. 박상훈은 국회미래연구원의 초빙연구위원으로 있다. 자신을 ‘구식 정치학자’라고 생각하는 정치학자다. 정치에 있어서 잘 변하지 않는 것, 오래 가는 특징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그는 정당정치와 노사관계를 현대 민주주의를 이끄는 양날개로 여긴다. 김성희는 21대 국회의원의 보좌관으로 있다. 민주노동당에서 시작해 정의당에 이르기까지 진보정당에서 활동해왔다. 독일의 민주주의와 정당정치에 관심이 있고, 이를 비교의 기준으로 삼아 좀 더 나은 한국 정치를 조망해 보는 것을 좋아한다.

김성희와 박상훈은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함께 <(사단법인) 정치발전소>를 만들고 이끌어왔다. 김성희는 상임이사를, 박상훈은 정치학교장을 맡아서 정치가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정치학의 지혜를 강의나 토론의 형태로 공유하는 활동을 같이 해왔다. 회원들과 함께 독일 정치기행, 일본 정치기행, 이탈리아 마키아벨리 정치여행을 다녀왔고, 미국 민주주의 기행을 준비하던 중에 감염병 팬데믹 때문에 잠시 멈춘 상태다. 하지만 좋은 정치에 대한 토론은 다양한 형태로 계속하고 있다.



[사진출처 : 청와대 게시판]


6. 대통령제, 그 기원으로부터 다시 생각해 보자

 

 

(1) 대통령이 문제인가, 대통령제가 문제인가

 

“김) 이제 본격적으로 대통령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자. 대통령이 안정적 다수당이 되어야 개혁을 잘할 수 있다고 많은 이들이 생각해왔다.”

“박) 잘못된 통설이 아닐 수 없다. 정치는 차라리 여소야대 때가 좋았다. 타협이 강제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18대 국회가 전환기였다. 역설적이게도 2007년 12월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48.7%)가 정동영 후보(26.2%)를 득표율 22.6% 차이로 압승하고, 2008년 4월 총선에서 제1야당이 81석에 불과할 정도로 집권당이 압승한 상황에서 정치가 나빠지기 시작했다. 집권세력이 이른바 ‘입법 전쟁’을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쟁점 법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것, 거기서부터 비극은 비롯되었다.”

“김) 야당과 협력해야 할 유인이 사라지자 정치는 집권당의 일방적 국회 운영과 야당의 결사 항전으로 단순화되었다.”

“박) 흥미로운 것은 정상적 국회 기능이 실종되자 그 자리를 법안 경쟁이 대신했다는 사실이다. 여야 격전이 벌어진 18대 국회는 8개월여 만에 17대 국회 전체 법안 발의 건수(6,387건)의 절반 이상(3,312건)을 쏟아냈다. 이렇게 해서 ‘법안 폭증’과 ‘정치 실종’이 병존하는 한국적 의회정치의 새로운 양상이 자리를 잡았다. 다른 나라의 사례에서처럼 입법 실적으로 정치의 성과를 평가하는 것은 적어도 한국 정치에서는 큰 의미가 없게 되었다.”

“김) 한국 정치의 전형적인 특징은 - 정당 운영이든 입법이든 정책 결정이든 - 공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의 대부분이 대통령을 둘러싸고 전개된다는 사실에 있다. 정당은 친이, 친박, 친문처럼 대통령 개인의 성을 따라 불리는 세력들이 주도하고, 국회도 마찬가지다. ‘청와대 관심법안’, ‘대통령 공약 사안’이라고 불리는 법안이나 의제에 따라 여야가 사활적 대결을 벌인다. 적대적 공생의 양극화 정치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현실이다.”

“박) 1990년의 3당합당, 1997년 DJP연합에서 보듯, 3김정치는 연합과 타협, 협상이 더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청와대와 내각 구성 역시 여러 세력의 연합체제를 특징으로 했다. 이런 특징은 노무현 행정부 시기에도 유지되었고, 서구식 연합 정치를 우리 정치에서도 구현하고 싶다는 의지를 노 대통령은 여러 차례 피력했다. 이런 추세에서 보면 이명박 행정부와 18대 국회는 초반부터 연합과 조정의 정치 기반을 없애버리는 전환점의 역할을 했다. 정치가 의회나 정당이 아닌 대통령 당파에 의해 압도되면서 정견이나 이념, 신념의 가치는 나타날 수 없었다. 정책 논쟁이든 제도 논쟁이든 어떤 쪽이 당파적 영향력 확대에 유리한지에 대한 판단이 모든 결정을 압도했다.”

“김) 어느 정권이든 집권 초에는 전직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의 싸움이 지배한다. 시간이 지나면 현직 대통령과 차기 대통령의 싸움이 정치를 지배한다. 이 패턴은 늘 반복된다. 2012년 여야 온건파들이 주도해 만든 국회선진화법이나, 2016년 총선이 만들어낸 다당제 국회에도 불구하고 이 패턴은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20대 국회 후반기와 21대 국회에서 대통령 중심의 권력 투쟁이 정치를 지배하는 패턴은 더 확대된 형태로 나타났다. 국회나 정당은 물론 여론 공론장을 지배하는 것도 대통령의 열성 지지자 집단들이다. 이들이 여론을 주도함에 따라 독립 언론은 사라졌다. 공중파 방송도 넓게 보면 종편으로 불리는 권력적 관점에 압도되는 방향으로 변했다.”

“박) 대통령을 둘러싼 정치가 곧 한국 정치다. 국가 권력으로부터 자율적인 시민사회는 사라졌다. 의회정치나 정당정치라는 것도 대통령 권력의 종속변수에 불과한 모습이다.”

“김) 그렇다면 대통령제 본래의 문제일까? 아니면 대통령제 고유의 문제가 아닌, 새로 만들어진 문제일까? 그것도 아니면 한국식 대통령제에서 비롯된 문제일까? 제대로 따져볼 문제들이다.”

“박) 근본적으로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제도이든 장단점이 있다. 만약 최선의 제도 대안이 있다면, 세상의 정치는 그런 제도로 점차 수렴해 갔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났어도 나라별로 제도 선택은 제각각이었다.”

“김) 정치는 ‘제도 이성’보다 ‘실천 이성’에 의해 움직인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제도가 중요했다면 정치는 진즉에 시스템으로 대체되었겠지만, 인간의 역사는 그 반대의 증거들로 넘쳐난다. 같은 제도 안에서도 정치가들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박) 대통령제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제도 얼마든지 민주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대통령제가 처음 탄생했을 당시에는 미국이 유럽의 의회제나 입헌군주제보다 훨씬 더 민주적이었다. 제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제도 운영을 책임지는 정치세력들의 합의가 중요하다. 제도의 취지에 행위자들이 순응할 때만 기대되는 제도 효과는 만들어진다. 같은 제도 안에서도 행위자들이 다른 취지로 제도 운영을 하고자 결심하면 결과는 달라진다. 제도의 좋은 효과는 조건적이고 제한적이다. 행위자의 선한 순응이라는 조건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설령 그런 조건이 갖춰졌다 해도 제도 효과 때문에 혜택과 불이익을 받는 세력들의 전략적 선택 때문에 언제든 기대되는 효과는 안 나타날 수 있다.”

“김) 제도결정론은 정치를 잘못 이해하게 만든다. 제도로 정치를 규율하고 지배하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 민주적 심성과도 배치된다. 자율적 행위 밖에서 고정된 효과를 규율할 힘에 의존적이라는 점에서 타율적 개혁론의 특징을 갖는다. 제도에 의존해서 해야 할 정치적 노력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

“박) 정치는 ‘제도에도 불구하고’ 하는 것이다. 대통령제 하에서도 대통령의 정치적 역할이 어떠하냐에 따라 결과는 많이 달라진다. 내각제와 같은 의회중심제도 정치 행위자들에 의해 대통령제와 유사하게 작동할 수 있다. 정치는 정치이지, 제도로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나라 대통령제도 과거 군부권위주의 하에서 자리 잡았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고칠 점이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 개헌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헌법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 변화를 도모하는 것이 먼저다. 북한을 합법적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 헌법 2조의 영토조항에도 불구하고 남북 정상회담을 했다. 이 역시 헌법에도 불구하고 이뤄낸 정치의 힘이다. 대통령의 정치적 선택에 따라서는 의회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도 가능하고 책임총리를 통해 내각제에 가까운 정부 운영도 할 수 있다. 국정원이나 검찰, 감사원 등 권력기관에 대한 통제도 청와대가 아니라 국회의 역할로 만들 수 있다. 정치적으로 개선 가능한 변화를 도모하고, 그런 경험이 충분히 누적되는 것이 먼저다. 그래야 대통령제냐 내각제냐 아니면 다른 한국적 조건에 맞는 새로운 분권형이냐를 둘러싼 토론이 실질적 토대를 갖게 될 것이다. 개헌이 필요하다면 그런 조건이 성숙된 다음에 하면 된다. 대통령제보다 대통령의 정치가 수백, 수천 배 더 중요하다.”

“김) 지금까지 우리는 대통령제와 내각제 같은 정부 형태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에 대해서조차 제대로 논의한 적이 없다. 솔직히 대통령제에 대해서 잘 알지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제라서 그러는 거지.’라고 말한다. 대통령제이니까 의회나 정당, 내각이 아니라 대통령과 청와대, 수석, 비서관, 행정관들 중심으로 국정이 돌아가야 한다는 식이다.”

“박) 그 반대다. ‘대통령제라서 그러면 안 된다’고 해야 한다. 크게 보아 대통령제는 두 유형이 있다. 하나는 처음 미국에서 만들어진 대통령제가 있고, 다른 하나는 2차 대전 이후 독립한 나라들이 수입해서 제도화한 대통령제가 있다. 우리의 대통령제도 여기에 속한다. 엄밀히 말해 이 후자의 대통령제는 민주주의보다는 권위주의에 친화적인 대통령제였다. 지금 우리는 대통령제를 좀 더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대통령제 민주주의를 할 생각을 해야지, 권위주의 대통령제에 가까이 갈 수는 없지 않겠는가. 대통령제 민주주의를 지향한다면, 대통령이나 청와대의 역할이 지금 같아서는 안 된다. 대통령제라서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이다.”

“김) 그럼 이제부터는 대통령제란 무엇이고 왜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2) 대통령제는 어떻게 탄생했나

 

“김) 대통령제는 240여 년 전 미국인들이 발명했다. 인간의 역사에서 대통령제 민주주의는 그때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크게 보면 왕도 귀족도 없었던 미국이 헌법 제정을 통해 정부를 만들게 되면서 유럽과는 다른 정치체제를 구상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 아닌가 한다.”

“박) 흥미로운 것은 여러 우연적인 요소들이 대통령제가 만들어지는 데 기여했다는 사실이다. 1787년 여름, 필라델피아에서는 연방정부 수립을 위한 헌법제정회의가 4달 가까이 열렸다. 각 주 대표자들은 13개 주의 느슨한 ‘연합회의’를 넘어 하나의 ‘연방정부’로 나아가고자 했다.”

“김) 운명적으로 연방정부는 공화정이어야 했다. 왕정이나 귀족정을 내심 생각했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런 의제가 제기될 상황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공화정이냐에 있었다.”

“박) 헌법제정회의 위원들이 공유했던 목표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는 당연히 하나의 미국 정부를 만드는 일이었지만, 중앙집권적인 한 정부는 아니어야 했다. 각 주가 자신의 헌법을 갖는 연방제여야 한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전제였다. 둘째는 각 주를 가로질러 구속력을 갖는 법률을 제정할 연방 의회를 만드는 일이었다.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은 13개 주의 독립을 가져왔다. 모든 권력은 각 주의 의회에 있었다. 주 대표들로 이루어진 연합의회는 작동이 되지 않았다. 합의는 지켜지지 않았고 협력보다 갈등이 늘 문제였다. 전쟁 당시 빌린 부채를 상환하기 위해 각 주가 내야 하는 분담금은 걷히지 않았다. 인접한 주들 사이의 통상과 관세 문제를 둘러싼 갈등도 컸다. 새로 획득한 서부 영토의 소유권 갈등, 주가 가진 화폐발행권과 해군 통제권을 둘러싼 갈등은 해결불능상태였다.”

“김) 연방의회에 대한 헌법제정회의의 합의 내용은 헌법 1조에 담긴 것으로 알고 있다. 이로써 민중의 직접적 요구로부터 대표(의원)의 독립성을 높이는 대의제 정부인 동시에, 입법부로부터 행정부와 사법부의 자율성을 높여 권력분립을 제도화한, 미국의 헌법혁명이 이루어졌다.”

“박) 가장 큰 논란은 세 번째 목표였다. 그것은 안정되고 효과적인 행정부를 만드는 과제였다. 군주정에서와 같이 국왕이 통치권을 행사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기에 선출의 원리로 효과적이고 안정된 행정부는 만들어야 했다. 그렇지만 행정 수반을 대중의 직접 투표로 선출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에 대한 합의도 강했다. 고대 아테네에서와 같은 순수 민주주의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군주정도 아니고 순수 민주주의도 아닌 방법, 이것이 어려웠다.”

“김) 처음에는 대통령을 의회에서 선출하는 안(버지니아 안)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알고 있다. 그대로였다면 미국은 유럽의 의회중심제, 특히 국왕이 없는 내각제와 다르지 않은 정부 형태가 되었을 것이다.”

“박) 헌법제정회의 막바지에 재논의가 이루어졌다. 의회가 대통령을 선출하게 되면 대통령의 권위가 설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김) 그런데 행정 수반의 영향력을 강하게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당연히 대중의 직접 투표로 대통령을 선발하는 것 아닌가?”

“박) 당연히 그렇다. 하지만 헌법제정회의 위원들은 대중의 직접적인 정치 개입을 두려워했다. 독립혁명 이후 등장한 13개 주의 연합 체제 하에서 각 주의 통치 집단을 경악하게 한 것은 사회 하층민들의 불만과 반란이 빠르게 확산된 사실이었다. 대중의 요구가 행정 수반 선출 과정에서 직접 표출되지 않게 하는 것, 요즘 식으로 말하면 포퓰리즘이 안 되게 해야 한다는 것, 이에 대한 헌법제정회의 위원들의 공감은 컸다. 그 결과 주 선거인단에 의한 간접 선발 방식에는 합의가 쉽게 이루어졌다. 그래도 갈등과 논란은 있었다. 그것은 행정 수반 선출방법이 인구가 많은 큰 주에 유리한지 아니면 인구가 적은 작은 주에 유리한지를 둘러싼 문제 때문이었다.”

“김) 큰 주는 인구비례로 선거인단을 뽑는 방식을 원했을 것 이고, 작은 주들은 그럴 경우 인구가 많은 큰 주에서 대통령직을 독점할까 두려워했을 텐데, 갈등이 심했을 것 같다.”

“박) 타협은 의외의 지점에서 이루어졌다. 만약 각 주 선거인단의 결정으로 과반수 후보가 나오지 않게 되면, 그때는 의회(하원)에서 각 주가 동등한 1표를 행사해 결정하기로 한 것이다. 당시에는 선거인단의 결정으로 과반수 후보가 나오지 않을 거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렇게 되면 인구의 크기와 상관없이 각 주가 동등한 1표를 행사해 행정 수반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이 합의로 작은 주가 원하는 바를 얻은 것 같았다. 실제는 어땠을까? 선거인단 투표에서 과반수 후보가 안 나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와 조금 다른 의미에서, 의도한 결과가 나오지 않은 대표적인 제도 사례다. 그만큼 제도적 인과론은 불완전하다.”

“김) 대통령 선출방식에 대한 합의는 이루어졌지만 그래도 불안과 두려움이 존재했을 것 같다. 당시 누구도 대통령제 정부가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에 대해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국식 입헌군주제 내지 선출된 군주정으로 가는 것은 아닌지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알고 있다.”

“박) 그 때문에 헌법제정위원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았던 벤저민 프랭클린은 대통령을 3인 이상 두자고 제안했다. 핑크니 위원은 단임제를 제안했다.”

“김) 그런 의구심은 어떻게 해소되었나?”

“박) 조지 워싱턴이라는 ‘개인에 대한 신뢰’가 컸다. 초대 대통령을 두고 큰 주 후보와 작은 주가 대립하는 상황이었다면 아마도 대통령 선출방식에 합의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는 초대 대통령으로 조지 워싱턴이 아닌 다른 사람은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조지 워싱턴이라면...’ 하는 가정이 많은 의구심을 줄여주었다. 조지 워싱턴은 독립전쟁의 영웅으로서 최고의 존경과 권위를 인정받고 있었다. 원했다면 왕도 될 수 있는 정도였지만, 군주정이나 귀족정에 대해 매우 강한 거부감을 보였던 사람이다. 그는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 아무런 야심 없이 고향으로 돌아갔다. 유산을 물려줄 자식이 없어서 권력을 남용하거나 부패를 저지를 유인도 없었다.”

“김) 헌법제정회의 의장을 맡는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무언의 통합자’ 역할도 많은 이들에게 신뢰감을 주었다고 알고 있다.”

“박) 누가 보더라도 조지 워싱턴은 권력에 욕심이 없었던 사람이었다. 실제로 그는 대통령으로서 그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았다. 초대 대통령으로 공직의 경력을 마치려 했다. 첫 임기가 끝날 즈음 많은 이들이 아직 물러날 때가 아니라고 종용해서 재선 대통령직을 수락했지만, 그 이상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선을 끝으로 본인의 바람대로 고향으로 돌아가 여생을 마쳤다. 대통령 중임제가 미국 정치의 전통이 된 것은 ‘조지 워싱턴조차’ 재선 이상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초대 대통령으로서 조지 워싱턴이 보였던 ‘권력의 절제’는 대통령제가 현대 민주 정부의 한 유형으로 자리 잡게 한 원동력이었을 것 같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대통령제가 240년을 견뎌낼 수 없었을지 모르겠다. 조지 워싱턴은 대통령직을 어떻게 수행했을지 궁금하다. 지금의 대통령들과는 달랐을 것 같다.”

“박) 워싱턴은 대통령직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이나 파벌을 키우지 않았다. 그는 별도의 비서 권력을 만들지 않았다. 알렉산더 해밀턴과 토머스 제퍼슨 등 주요 정파의 경쟁자들을 장관으로 앉혔다. 이 두 사람의 직위는 ‘Secretary of State(국무장관)’, ‘Secretary of the Treasury(재무장관)’이었다. 명칭은 비서(Secretary)였지만 대통령 개인을 위한 스태프(staff)가 아니라 독립된 내각을 이끄는 부처의 수반들이었다. 한마디로 말해 대통령은 자신에게만 충성하는 별도의 비서실이 아니라 합법적 정부조직인 내각과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뒤 다른 대통령들도 이 전통을 따랐다. 토머스 제퍼슨은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 전령 1명과 개인 비서 1명을 두었다. 비용은 사비로 지출했다.”

 

 

(3) 미국의 대통령 비서실과 공화주의 원칙

 

“김) 미국은 언제부터 대통령이 공식 비서를 둘 수 있었나?”

“박) 최초로 비서 임용이 가능했던 것은 1857년이었다. 연방정부 수립 이후 거의 60년이 다 되어서야 비로소 의회는 대통령 비서를 위한 예산을 처음으로 세워주었다. 얼마였을까? 겨우 1명을 고용할 수 있는 2천5백 달러였다. 이 숫자가 한 명에서 3명으로 늘어나는 데는 다시 20년이 더 걸렸다.”

“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백악관의 대통령 수석보좌관(the president’s chief aide) 제도는 언제 시작되었나?”

“박) 1900년이다. 이때도 2명의 비서관과 2명의 행정 직원, 1명의 속기사와 7명의 추가 직원이 다였다. 대통령제가 처음 시작된 이래 100년 이상을 이렇게 권력을 절제해 운영하지 않았더라면 대통령제는 안착하지 못했을 것이다. 근대 공화정의 이상은 ‘시민에게는 자유를! 정부에게는 책임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통치자의 자유가 아닌 시민의 자유를 구현하고자 한 것이야말로 공화정의 흔들릴 수 없는 원칙이었다.”

“김) 하지만 오늘날 대통령들은 자신들의 자유를 위해 시민들의 추종을 바라고 조직하고 동원하는 일에 몰두한다. 누구도 도전할 수 없는 최고의 권력이 되고자 하는 ‘제왕적 대통령의 욕구’도 절제하지 못한다. 포퓰리즘을 억제하고 군주정이 안 되도록 하려는 게 대통령제였는데, 정반대 상황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대통령제가 처음 시작될 때는 공화정의 원칙이 확고했던 것 같다.”

“박) 그 원칙은 크게 두 가지의 내용을 가졌다. 첫째는 대통령은 추밀원(Privy Council)을 가질 수 없다는 원칙이고, 둘째는 대통령은 자신을 위한 근위병 기구(Praetorian Authorities)를 둘 수 없다는 것이다. 추밀원과 근위병 조직은 국왕의 요구를 집행하는 기관으로 자율성이 없다. 국왕의 요구를 처리하는 역할을 하면서 통치자의 의중을 살피고 그의 구두 지시만으로 일을 진행해야 했다. 이 말은 공식 문서와 서면 제출의 의무를 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했다. 미국 헌법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모든 공적 행위는 문서를 남겨야 한다고 명시했다. 나아가 의회에 보고의 의무를 지게 했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 헌법 제1조 2항 3절로, ‘대통령은 수시로(from time to time) 의회에 연방의 상황(state of the union)에 대한 보고를 해야 한다.’는 조항이다.”

“김) 이를 ‘시정 연설’이라고 옮기면 될 일을 ‘대통령의 연두교서’라고 표현하는 사람이 많다. 교서(敎書)란 국왕이 발표하는 문서를 가리키는데, 무의식적으로 대통령제를 군주정에 가까운 것으로 이해하는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마음 상태는 정당들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 정당들은 야당일 때는 국회의 역할과 책임총리를 강조한다. 집권하면 달라진다. 총리 국회 추천제는 대통령제와 충돌한다고 반대한다. 인사청문회 무용론에 가까운 주장도 서슴없이 한다. 대통령들의 변신은 더 놀랍다. 야당 후보 시절에는 의회 민주주의를 중시하고 대통령제의 문제를 지적한다. 대통령이 되면 달라진다. ‘내각제 개헌 합의’를 하고도 대통령이 되어서는 완전히 다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물론, 이제는 대통령 단임제 때문에 문제라거나, 최소한 한 번 이상은 연임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박) 2012년 7월 22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문재인 후보는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개헌을 연구해야 한다는 전제하에 말한다면, 대통령제보다는 내각책임제가 훨씬 좋은 제도다. 세계적 대세로 보더라도 민주주의가 발전된 대부분 나라들이 내각책임제를 하고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2017년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에는 대통령 중임제 개헌을 내세웠다.”

“김) 청와대 대통령 비서 권력의 과도함도 큰 문제다. 그들은 대통령을 곧 국가와 동일시하는 ‘대통령 국가주의’를 꾸준히 발전시켰다. 국가를 대통령으로 의인화하는 표현이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된다.”

“박) 미국에서도 ‘오바마 행정부(Obama Administration)’나 ‘트럼프 행정부(Trump Administration)’라고 부르며 대통령은 정부의 3부 가운데 한 부처를 책임진다는 의미의 표현이 사용된다. 반면 우리는 대통령이 삼권 모두를 가진 것처럼 ‘박근혜정부’, ‘문재인정부’라고 부른다. 세 권력 부서 가운데 으뜸은 입법부가 아닌 대통령이라는 무의식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대통령 마음대로’ 나라를 이끌 수 있게 해야 하고 이를 제어하려는 국회나 야당, 비판언론은 청산되어야 할 적폐로 주장될 때도 있다.”

“김) 근대 시민혁명은 모두 의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의회 민주주의가 아닌 민주주의는 없다. 반면 대통령제는 그렇지 않다. 대통령이 없는 민주주의 국가는 아주 많다. 시민의 적법한 대표가 시민 모두에게 구속력을 가진 법을 만든다는 것이야말로 현대 민주주의의 중심 원리가 아닐 수 없다.”

“박) 의회와 민주주의의 관계는 필연적이지만, 대통령과 민주주의의 관계는 그렇지가 않다. 대통령제 민주주의가 처음 인간의 역사에 등장할 때부터 확고했던 통치 규범은 의회가 중심이 되는 정부 운영에 있었다. 대통령의 역할 규범에 있어서도 군주정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에 있었다. 의회는 대통령을 위한 하위 기구가 아니며, 내각과 부처는 추밀원이 아니다. 대통령 비서실이 근위병 조직이 되어서도 안 되며, 더군다나 ‘비서실 정부’라는 말이 성립할 수 없듯이 ‘청와대 정부’라고 불리는 일도 없어야 한다. 대통령제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제도인데, 오늘의 현실은 거기로부터 너무 멀리 와 버렸다.”

 

 

(4) 대통령제는 강한 정부를 위한 게 아니다

 

“김) 대통령제의 원형이라 할 미국식 대통령제의 가장 큰 특징은 입법권과 행정권의 엄격한 분리에 있다. 행정부는 입법권이 없다. 행정부나 내각에는 의원이 없다. 행정부에 대한 입법부의 견제는 강하다.”

“박) 미국식 대통령제에서 의회는 매우 강하다. 의회는 법안 발의와 심의, 가결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독점한다. 의회의 의제 작성 권한(agenda setting power)은 미국이 세계 최고다. 내각제로 불리는 의회중심제 국가보다 강하면 강하지, 약하지 않다. 예산 작성권도 의회가 갖는다. 이른바 ‘대표 없이 과세 없다.’는 확고한 원칙이 지켜지는 의회제다. 예산안 처리가 무산되면 행정부는 일시적으로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이른바 셧다운(Shutdown)’이다. 전기, 수도, 소방 같은 일상 업무는 물론 국방과 치안, 교정 같은 업무도 중단된다.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김) 우리 국회가 갖는 재정 관련 권한이라고는 예결산 심사라고 하는 지극히 사후적이고 제한적인 역할밖에 없다. 입법권 역시 행정부와 관료들의 권한이 훨씬 더 강하다. 그나마 국정 감사나 위원회 현안 질의 등의 방법으로 행정부와 대통령의 독주체제를 향해 가끔 화내고 소리 질러 견제하는 정도를 한다 해도 크게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미국처럼 한국도 대통령제라지만 미국의 의회에 비해 한국의 국회는 너무나 약하고 왜소하고 무기력하다. 힘도, 권한도 약하기에 의회정치도 정당정치도 협력보다 싸움과 갈등이 지배적이다. 나눌 권력이 크면 정치가 할 수 있는 조정 능력이 크지만 그렇지 않으니 작은 일에도 격렬하게 싸워야 한다.”

“박) 상황이 그러하니 대통령은 ‘강력함’의 상징이요, 대통령제는 ‘강력한 통치’의 제도적 원천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대통령제가 처음 만들어질 때 사람들이 가졌던 인식과는 거리가 있다. 처음 ‘President’라는 호칭을 결정한 사람들은 이를 ‘지극히 평범하고 평등한’ 의미로 사용했다. 당시엔 ‘소방대장도 President이고 크리켓동호회 회장도 President’였다. 연방정부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주에서 임시직 행정 수반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들은 특별하지 않은 그런 비특권적 호칭을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이를 천황제 근대화를 전후한 시기 일본에서 ‘다이또료(だいとうりょう)’ 즉 大統領으로 번역하게 되었다. 황제 이전의 나폴레옹을 가리켰던 ‘통령(統領)’보다도 과한, 지나친 번역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일본어 표현을 우리가 그대로 받아들인 것은 아쉬운 일이다. 호칭에서부터 어마어마한 권위가 부여된 것이다.”

“김) 우리는 대통령들이 어느 자리에서나 일상적으로 ‘국민 여러분’이라는 표현을 앞세우는 것을 보게 된다. 이 점에서는 과거 군부정권 시기의 대통령이나 민주화 이후 대통령 사이의 언어 습관에서 달라진 게 없다. 대통령이라는 호칭과 대통령에 의해 호명되는 국민이라는 호명 사이에는, 통치자와 피통치자로 분리된 수직적 관계가 전제되어 있다.”

“박) 대통령제를 만든 미국에서는 ‘동료 시민 여러분(Fellow Citizens)’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대통령이 평등한 시민 가운데 자기 자신을 ‘시민 의장’ 혹은 ‘제1 시민’ 정도로 여기는 것이다.”

“김) 처음엔 그랬을지 모르나, 그뒤 대통령제는 강력한 통치체제로 바뀐 것은 아닐까?”

“박) 순수 제도론으로만 보면, 대통령제는 약한 통치체제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주권(sovereignty)을 나눈 것에 있다. 현대 정부론을 만든 토머스 홉스나 장 자크 루소의 주권론이 가진 핵심은 ‘주권은 쪼갤 수 없다.’는 데 있었다. 그런데 대통령제는 바로 이 원리를 깨뜨리면서 등장했다. 선출되지 않은 사법부도 위헌판결을 통해 입법권을 행사한다. 연방 법관들을 종신직이다. 입법, 행정, 사법부가 주권을 나눠 가지면 통치권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흔히 유럽의 의회중심제를 가리켜 ‘권력융합’ 체제라 부른다. 입법부와 행정부의 권력이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게 아니라 융합해서 작동한다는 뜻이다. 반면 대통령제는 ‘권력분립’ 체제라 한다. 응집된 권력이 분립된 권력보다 강한 것은 자연스럽다.”

“김) 의회중심제는 주권을 나누지 않고 단지 입법-행정-사법이라는 기능과 권한만 나눈 정부 모델이다. 대통령제는 기능과 권한을 넘어 아예 주권을 세 부서로 나눈 모델이다. 두 모델의 본질적 차이는 매우 크게 느껴진다.”

“박) 의회중심제에서는 시민주권의 요체인 입법부가 제도의 중심을 이룬다. 하지만 실제로는 입법부를 움직이는 다수당(다수연합)의 의지가 실현되는 체제다. 반면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의 의지는 입법부와 사법부 등 다른 권력 부서에 의해 제어된다. 복지국가를 만들고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수정한 것은 의회중심제에서 가능했다. 대통령제에서는 설령 그런 사회 변화를 대통령이 바란다 해도 입법부는 물론 재산권 보호와 개인 선택의 자유를 앞세운 사법부에 의해 저지될 때가 많다.”

“김) 그런데 왜 우리 사회에서는 ‘대통령제 = 강한 통치체제’와 ‘내각제 = 정국의 분열과 불안정을 낳는 약한 통치체제’로 인식되는 것일까?”

“박) 군부 권위주의를 겪었기 때문이다. 그런 등식은 권위주의 체제가 주도했던 ‘정치 교육의 산물’이다. 1960년 4월 혁명 당시 민주주의는 곧 내각제였다. 대통령제는 이승만 독재와 정치깡패의 지배로 여겨졌다. 이를 박정희 정권이 뒤바꿔놓았다. 내각제는 적 앞의 분열이요, 대통령제는 국가발전을 위한 안정된 통치체제라고 말이다. 분단되었기 때문에 통일될 때까지는 대통령제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는데, 정작 분단된 체제에서 통일이 된 나라는 내각제 독일이었다.”

“김) 권위주의 체제는 대통령제에 친화적이다. 강력한 통치권 행사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의 강력한 통치권 행사는 대통령제 때문이 아니라 체제가 독재이고 권위주의인 사실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게 중요해 보인다.”

“박) 민주주의로 정치체제가 전환되면 당연히 대통령제와 의회중심제 본래의 제도적 특성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강력한 통치권 행사에 나서게 되면 체제의 민주성과 자주 충돌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권위주의는 권위주의에 맞는 대통령제 정부론이 있듯, 민주주의에서라면 민주주의에 맞는 대통령제 정부론이 있어야 한다. 아직 우리는 권위주의 시대의 정부론에 갇혀 있는지 모른다.”

 

 

(5) 대통령제 문제보다 대통령직 수행 문제를 말해야 한다

 

“김) 현대 민주주의 정부 형태의 대표적인 유형에 내각제와 대통령제가 있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다만 내각제냐 대통령제냐 대신, 의회중심제냐 대통령중심제냐로 구분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하긴 하다. 대통령제에도 내각은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런 내각이 대통령에게 책임지느냐 아니면 의회에 책임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의회의 신임 여부와 상관없이 대통령의 의사에 따라 내각이 운영되면 대통령중심제다. 반대로 의회의 신임 여부에 따라 내각의 운명이 결정된다면 의회 중심제다. 의회 불신임은 내각 총사퇴로 이어지고, 의회 역시 해산하고 총선을 다시 실시해 유권자 신임을 묻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런 정부 형태를 우리는 의회 중심제가 아닌 내각제나 내각책임제라 부르는데, 이런 용법이 오랫동안 관행이 되었다.”

“박) 내각제나 내각책임제 대신 간혹 의원내각제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그건 좀 그렇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대통령제 국가다. 그런데 의원들은 내각에 참여한다. 참여해도 의원직을 상실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하면 의원이 내각이 될 수 있는, 의원내각제다. 그렇다고 이를 대통령제가 아니라거나, 의원내각제라고 분류할 수는 없다. 겨우 타협할 수 있는 분류가 있다면 ‘내각제 요소가 포함된 대통령제’ 혹은 ‘대통령제와 내각제의 혼합형’으로 유형화하는 것이다. 혼합형의 장점을 살리려는 의도에서 혼합형 정부 형태라고 주장해도 좋다. 다만 내각 구성권을 대통령이 행사하느냐 아니면 의회 다수당(다수연합)이 행사하느냐와 같은, 더 근본적인 기준으로 보자면 한국은 엄연히 대통령제이고 대통령중심제이다.”

“김) 현행 헌법으로도 대통령은 국무총리를 국회로부터 추천받아 임명할 수 있다. 부처 장관 인선 역시 국무총리의 제청과 의회의 신임을 얻어 임명할 수 있다. 국회 다수당이나 다수연합이 국무총리를 추천하고 내각 인선을 주도한다면 사실상 의회중심제처럼 정부를 운영할 수도 있다. 헌법과 법률로는 의회 중심제 혹은 내각이 의회에 책임지는 정부 형태를 운영하는 것이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그렇게 하기로 결심해야 한다는 데 있다. 의회 중심제적 요소를 강화하든, 내각제처럼 정부를 운영하든 이 모든 것이 대통령에 달려 있다는 것인데, 실제 그렇게 한 대통령은 없었다.”

“박) 그나마 조금 가까운 형태가 있다면 흔히 ‘책임총리제’로 불리는 방식이다.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총리를 임명한다. 그런 총리에게 일상적인 행정부 업무를 지휘하는 권한을 맡긴다. 대통령은 이른바 ‘대통령 아젠다’를 전담한다. 그야말로 정부 운영권을 대통령이 국무총리와 국회와 나눠서 혹은 서로 협력해서 행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상은 말처럼 되지 않았다. 국회의장을 지냈던 정세균 총리조차도 책임총리였다고 말하기 어렵다. 법, 형식적인 기준으로 보면 한국의 정부 형태는 유연하다. 대통령이 결심하기에 따라서는 의회 중심제도 가능하고 의원내각제는 물론 내각의 의회 책임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법, 형식적으로는 열려 있는 이런 가능성이 현실에서는 실현되기 어렵다. 청와대라고 하는 비서실 권력이 이를 막는다. 대통령이 권력을 독점적으로 운영해야 자신들의 권력도 커지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 집단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국회를 해산하고 야당도 없애서 대통령이 맘대로 하길 바란다. 더 큰 문제는 대통령 권력, 그 자체가 절대적이라는 데 있다. 미국의 대통령제보다 훨씬 더 대통령 중심적이고 훨씬 더 행정부 중심적인 것이 한국의 대통령제다.”

“김) 조지 워싱턴이나 제임스 매디슨처럼 처음 대통령제를 만든 ‘미국 헌법의 설계자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오늘날 대통령제를 보게 된다면,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하다. ‘이것은 우리가 구상하고 실천했던 정부의 모습이 아니다.’라고 항변할까? 아니면 ‘지금의 대통령제는 공화정이 아니라 군주나 제왕을 위한 통치모델이다.’라며 화를 낼까? 370명 남짓의 정무직과 100명에서 150명 사이의 부처 파견 관료를 합해 500명 안팎의 비서진을 가졌던 트럼프 대통령 첫해의 백악관에 비해, 문재인 대통령 첫해 청와대가 490명의 비서진으로 출발한 것을 보았다면 자신들이 만들었던 대통령제가 왜 오늘날처럼 변형되었는지 돌아보게 되지 않을까?”

“박) 대통령제와 민주주의 사이의 깊어지는 심연에 대해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한국 정치의 많은 문제가 바로 대통령의 역할에서 발원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개별 대통령의 ‘인격적 문제’일까 아니면 대통령제라는 ‘제도의 문제’일까? 괜찮은 대통령이 뽑히길 여전히 기대해야 할까? 아니면 지금의 대통령제로는 기대난망이라 해야 할까? 이런 답 없는 고민만 계속할 수는 없다. 분명 대통령이 헌법의 요청대로 내각과 총리, 국무회의를 중시하면 달라질 것은 많다. 의회 민주주의와 정당 정치를 존중하면 더 큰 변화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렇게 못하게 하는 게 또 한국 대통령제의 ‘제도 효과’와 관련된 문제라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그래도 문제를 분리해야 한다.”

“김) 대통령제 운영자가 될 사람, 다시 말해 다음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대통령직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지를 분명히 말해야 한다. 청와대 비서실 운영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내각과 정당, 국회의 역할과의 균형을 어떻게 발전시킬지에 대한 분명한 정견을 밝혀야 한다. 그것 없이 제도 탓하며 개헌 약속만 하는 것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박) 개헌은 대통령이 할 일이 아니다. 여야가 당론 확정을 하고 국회에서 합의를 이루는 긴 과정 없이 개헌은 이루어질 수 없다. 개헌은 국회와 정당에 맡겨야지 대통령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개헌 관련 문제는 정당과 국회의 합의에 맡기겠다고 말해야 민주적 대통령이다.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대통령직의 수행에 대해서만 확고한 자기 입장을 밝히면 된다. 이를 기준으로 선거에서 시민의 위임을 받아야 한다. 실제 집권한 뒤에는 그 약속에 맞게 실천해야 한다. 이런 일이 전제되지 않고 개헌론으로 소모적 논란만 일으키다가, 결국엔 국회 탓하고 야당 탓하는 대통령이 다시 등장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서 청와대 중심의 대통령직 수행을 계속하는 대통령은 최악이 아닐 수 없다. 개헌보다 차라리 대통령직을 민주주의 원리에 맞게 책임 있게 수행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대통령이 백배 낫다.”

 

 

7. 대통령직의 민주적 운영을 약속해야 한다

 

(1) 민주주의는 권위주의와 다른 정부 운영을 필요로 한다

 

“김) 대통령제에 이어서 대통령직, 즉 대통령의 역할이 실천적으로 어때야 하는지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자. 민주주의에서라면 대통령은 정부를 어떻게 운영해야 할까?”

“박) 권위주의는 빠르고 큰 결정을 내리는 데 친화적인 정치체제인 반면, 민주주의에서 결정은 관련 이해당사자들 사이에서 조정과 숙고의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점진적이고 누적적인 변화에 적합한 정치체제라는 특징을 갖는 게 민주주의다. 흥미로운 것은 느리고 점진적이지만 권위주의 체제보다 민주주의 체제가 인권이나 평화만이 아니라 경제도 더 잘 운영하고 사회 통합과 문화발전에도 우월한 성과를 낳았다는 점이다.”

“김) 최고 통치자의 자의성이나 인격적 특징이 체제 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바가 과도한 점도 권위주의 체제의 한계가 아닐 수 없다.”

“박) 산업화 초기 단계라면 몰라도 권위주의 체제의 그런 장점은 지속되기 어렵다. 한국 현대사를 기준으로 민주화 이전과 이후의 경제발전을 비교해보자. 민주화 이후의 경제성장의 속도나 규모가 더 놀랍다. 권위주의 정치체제가 그대로였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변화였다. 많은 이들이 한국의 경제발전은 박정희 정권의 업적으로 말하는데 엄밀히 말해 그때보다 민주화 이후 한국경제가 더 빨리 성장했다.”

 

“김) 그러면 이제 민주주의만 잘하면 된다?”

 

“박)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나 재선(re-election)의 압박 때문에 정치 행위자 개인의 차원에서는 단기적 유인에 영향을 받기 쉽다. 하지만 권위주의와는 달리 민주주의는 정치적 정당성의 문제로부터 자유롭다. 정치체제의 차원에서 중장기적 지속성의 효과는 권위주의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개인 차원에서는 단기적 유인이 크더라도 체제의 차원에서는 훨씬 더 긴 시간 지평을 갖게 하는 효과가 민주주의에는 있다.”

“김) 권위주의는 정책의 빠른 결정과 빠른 집행에 체제로서의 장점이 있지만, 그 장점이 실현될수록 체제의 지속성은 유지하기 어려운 ‘성공의 딜레마’를 갖는 체제이기도 하다. 권위주의 체제의 성공은 역설을 낳는 문제를 회피할 수 없다. 체제의 성과에 비례해 낮은 ‘결정 비용’이 점차 높은 ‘집행 비용’으로 전이되기 때문이다. 동의/합의의 기반이 약한 것이 집행 단계에서 정당성 위기로 나타나고 그 결과 민주화의 압박에 직면하는 일을 피하기 어렵다.”

“박) 민주주의는 공공정책 결정 과정에서 동의와 합의의 비용을 치르는 체제이다. 절차적 정당성의 기초가 튼튼하기에 집행 단계에서 갈등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체제로서의 장점이 있다. 이 때문에 공공정책 결정 과정은 숙의를 제도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게 된다. 체제의 성취와 정당성이 병행할 수 있기에 체제 안정성이 장기적일 수 있다. 정치학자들이 실증한 바 있듯, 일정한 수준의 경제가 발전한 나라에서 민주주의 국가가 권위주의로 퇴행한 사례는 없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김) 합의와 동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 민주주의의 난점이 아니라 오히려 강점이라는 뜻 같다.”

“박) 민주적 결정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행정부의 법안 제출을 보더라도 최초 성안부터 당정 협의, 규제개혁위원회 심의, 국무회의 의결을 거치기까지 상당한 긴 시간의 숙의가 제도적으로 강제된다. 의원의 법안 상정도 숙려 기간부터 3차례의 심사(독회) 거칠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여야 합의와 해당 부처의 합의를 거처야 하며, 최종적으로는 체계 자구 심사까지 마쳐야 본회의 표결을 할 수 있도록 제도화되어 있다.”

“김) 제정법이나 전면 개정 법안의 경우는 훨씬 더 긴 숙의 및 심사, 조정, 합의 및 공청회 등 추가 절차를 요구받는다. 민주주의를 하는 한 의제의 등장에서 정책의 결정과 입법화, 집행에 이르는 과정을 단기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체제 원리와 충돌할 뿐 아니라, 실제로 모든 통과 지점에서 갈등을 심화, 누적시키는 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박) 민주주의는 긴 시간적 지평 위에서 작동할 때 가치를 발휘한다. 중장기적인 관점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정치체제다. 소수에 의해 공적 결정이 내려졌던 과거 권위주의 시대와는 달리, 누구나 다 자유롭고 평등한 의견을 가질 권리 위에서 소수에 의한 권위주의적 결정보다 더 나은 공적 결정을 이끌어 가야 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단기적 관점에서 조급하게 접근된 국정과제 형성은 민주주의 체제의 장점과 결합하기 어렵다.”

 

 

(2) 대통령제, 빠르고 강한 결정을 위해 만든 게 아니다

 

“김) 사람들은 대통령제의 장점을 의회제의 단점과 대비할 때가 많다. 의회는 시끄럽기만 하고 일을 제대로 못하니,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말이다.”

“박) 대통령제는 한 개인에 의한 ‘강력한 통치’를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다. 미국에서 처음 대통령제를 만들 때 헌법제정위원들은 강력한 것은 의회라고 당연시했다. 의회보다 대통령이 강한 권력을 갖는다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대통령은 행정부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매우 제한된 목적’을 위해 만들었다. 대통령이 일방적이고 빠른 국정과제 결정 및 집행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대통령제의 기본 원리였다.”

“김) 그런 대통령제가 대통령 개인의 의지에 따라 빠르고 강력한 결정을 내리는 체제로 오해된 것은 대통령제를 수입한 나라들이 대부분 권위주의 국가들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박) 그 문제는 오래전 카를 뢰벤쉬타인에 의해 주목된 바 있다. 그는 미국과 미국 밖의 대통령제를 구분해야 함을 강조했다(Karl Loewenstein, 1949, “The Presidency Outside the United States: A Study in Comparative Political Institutions,” The Journal of Politics, Vol. 11, No. 3). 미국과는 달리, 대통령제를 수입한 국가들은 ‘특수한 입헌적 조치를 통해 집행권자인 대통령이 국가의 다른 기관보다 우월한 정치 권력을 갖는 정부 형태’를 새로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통령제와는 완전히 다른 대통령제가 등장한 것이다. 우리 역시 강력한 대통령의 이미지는 오랜 권위주의 대통령제의 유산이 아닐 수 없는데,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제는 민주 정부의 운영 원리에 맞는 대통령제와 권위주의 정부 운영의 원리에 맞는 대통령제로 구분된다.“

“김) 대통령의 역할에 과도한 기대를 부여하는 것부터가 민주 정치를 약화시키는 효과를 낳는 것 같다. 민주주의에서 대통령 선거는 국가 교체도, 정부 교체도 아닌 행정 수반 교체를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처럼 대통령 이름 뒤에 정부 이름 붙이는 관행은 지극히 한국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트럼프 행정부, 바이든 행정부처럼 박근혜 행정부, 문재인 행정부로 불려야 대통령제에 맞는 명칭일 것이다. 한국의 대통령제는 명칭의 문제에서부터 좀 더 민주적인 방향으로 변화해야 할 것 같다.”

“박) 행정부 교체가 국정과제 전반을 바꾸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체제 변혁이나 사회혁명이 아닌 한, 선거를 통한 행정부나 내각의 교체는 체제에 총체적 충격(total impact)을 줄 총괄 계획(master plan)을 승인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에서라면 신임 대통령과 집권당이 입법부와 사법부 나아가 행정 관료제를 폐지하거나 교체할 수 없다. 행정부 수반의 교체는 기존의 국가와 정부의 기본 틀 위에서 한계적 변화(marginal alteration)를 이끌라는 제한성을 갖는다.”

“김) 그렇지만 우리는 선거 때마다 국가를 총체적으로 바꿀 정도의 국정과제를 약속해야 하는 것처럼 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로 공약대로 이루어진 바는 거의 없다. 신한국 창조, 제2건국, 국가 대개조, 미래 창조, 촛불혁명, 대전환 같은 것을 약속했지만 그 근처에서 못 갔다. 대통령 직속으로 수많은 위원회를 두고 큰 변화를 약속했지만, 대개는 기능 정지 상태나 작동 불능 상태로 전락했다.”

“박)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이른바 ‘국정과제의 결정’은 중장기적 국정과제의 기본 틀을 전제로 해야 한다. 그 위에서 새로운 집권세력이 지향하는 가치에 상응하는 정책을 추가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제는 특히나 더 그러하다. 의회중심제의 경우 입법부와 행정부의 권력융합 모델로 작동하는 것에 비해 대통령제는 권력분립 모델로 작동한다. 미국에서 대통령제를 처음 만들 때의 문제의식 역시 인민주권과 다수지배를 제한해야 한다는 것에 있었다. 다수지배가 용이한 의회중심제와는 달리 대통령제 민주주의는 구조적으로 권력 간 견제와 균형을 불가피하게 한 것이다. 대통령제는 국정과제의 형성과 변화에 있어서 대통령의 자의성을 제한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입법부로부터 ‘동의와 조언(consent and advice)’을 구해야 함을 헌법의 명령(연방 헌법 2조)으로 요청하고 있기도 하다. 연방 관리에 대한 상원의 인사청문회 제도는 헌법의 이 조항에 기초를 두고 있다.”

“김) 임기 2년의 하원과는 달리 임기 6년의 상원으로부터 동의와 조언을 구해야 한다는 것 또한 빠른 변화보다 긴 변화의 관점에서 문제에 접근해야 함을 요청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는 달리 우리의 경우 대통령제가 긴급 명령의 권한을 행사하는 통치체제와 동일시된 것은 미국의 대통령제가 아닌 권위주의 대통령제의 규범성에서 발원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권위주의 체제는 대통령제에 친화적이다. 강력한 통치권 행사에 유리하기 때문이라 하지 않았나?”

“박) 강력한 통치권 행사는 대통령제에서 발원하는 것이 아니라 체제가 독재이고 권위주의인 사실에서 비롯되었다. 정치체제가 민주주의로 전환되면 당연히 대통령제 본래의 제도적 특성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민주주의 하에서 대통령이 강력한 통치권 행사에 나서게 되면 체제의 민주성과 자주 충돌한다. 권위주의는 그에 맞는 정부론이 있고 민주주의에서라면 그에 맞는 정부론과 통치론이 따로 있다는 점을 다시 강조하고자 한다.”

“김) 대통령제의 민주적 규범은 다소 오래 걸리더라도 입법부에서 예산과 법률을 제정해 국정과제를 실행하라는 것, 혹은 대통령의 행정부 운영이 자의적이지 않도록 감독하는 입법부의 독립적 역할을 존중하라는 것, 입법부가 승인하지 않으면 행정부의 셧다운도 감수하라는 것에 있지, 대통령의 일방적 국정과제 작성 및 집행에 있지 않다.”

“박) 대통령이 입법부나 사법부를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여 짧은 임기 동안 국가 전반을 변혁하려는 목표로 국정과제를 만들고 선포하고 집행하려는 것은 대통령제 본래의 민주적 원리와 맞지 않는다. 원리도 원리지만, 무엇보다도 실현 자체가 되지 않는다. 대통령제는 대통령의 제한된 역할을 위해 만든 제도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3) 1987년 헌법, 5년 단임 대통령제 정부를 만든 이유를 존중하자

 

“김) 오늘의 대한민국 대통령제는 87년 민주 헌법의 합의 정신이 만든 결과물 가운데 하나다. 그 합의 정신은 국가의 통치 자원이 대통령의 장기 집권 의지에 희생되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에 있다.”

“박) 87년 헌법은 오랜 군부 권위주의의 부정적 유산을 개선하자는 것에서 출발했다. 대통령 5년 단임제야말로 그런 문제의식의 산물이었다. 미국 연방헌법 제정 당시에는 대통령제를 도입하는 것 자체가 유래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선출직 왕이 되지 않게 하려는 의도에서 단임제 안(핑크니 안)도 있었고 대통령을 3명 뽑자는 안(벤저민 플랭클린 안)도 있었다. 조지 워싱턴은 스스로 단임 대통령이 되고자 했다. 다만 주변의 만류로 재임까지 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1951년 4년 중임으로 임기 제한을 한 수정헌법 22조의 정신 역시 크게 보면 같은 문제의식에서 발원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지난 24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미국 대통령의 평균 재임 기간이 5.1년이었다는 점에서 보더라도 87년 헌법의 5년 대통령 임기 제한 조치가 민주주의 원리를 벗어난 일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김) 87년 헌법의 단임제 대통령제는 한국적 맥락에서 제한 정부(limited government)의 원리를 구현하려 했던 조치로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현직 대통령이 임기 연장을 위해 비정상적 수단을 동원하려는 의도 자체를 갖기 어렵게 함으로써 민주주의의 공고화에 기여했다.”

“박) 단임제 조항이 없었다면 군부가 정치로부터 쉽게 퇴장하는 일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야당이 민주화 10년 만에 집권하는 일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 단임제가 단기주의적 관점 갖게 한다는 비판 역시, 그게 단임제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원인 때문인지, 그 인과성 제대로 따져볼 문제이기도 하다. 그간 10년을 주기로 여야 정권교체가 되었는데, 10년의 기간에도 불구하고 단기주의적 관점이 문제였다면, 사안의 핵심은 정당이 약한 것이 있다고 봐야 한다. 국정감사 부활 및 회기 제한 폐지 등 국회 권한을 강화한 87년 헌법 정신도 주목해야 한다. 비단 87년 헌법만이 아니라, 인사청문회 대상 확대를 시행한 노무현 대통령의 조치 등 국회 역할을 통해 행정부 독주 제한하는 것을 지향해 온 그 이후의 정치 전통도 중시해야 한다. 헌법 89조의 국무회의 조항은 물론이고, 의원의 내각 참여를 허용하고 총리의 장관제청권 등 의회중심제 제도 등이 주문하는 헌법 정신 역시 의회 중심의 제한정부론 정신을 뒷받침하고 있기도 하다. 지금 우리는 87년 체제의 민주적 관점이 실현되지 않아서 문제이지, 87년 체제를 극복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 말이 안 된다.”

“김) 2016년의 촛불집회의 문제의식도 유사했다고 본다. 대통령의 권력 남용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에서 출발한 것이 촛불집회였다. 87년 헌법 정신을 박근혜 대통령이 위배한 것을 문제 삼았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박) 헌정체제(constitutional system)란 헌법 조문의 개정이 없더라도 실제 정치에서의 새로운 경험을 통해 새롭게 규범화된다. 우리 역시 2016년 촛불집회는 대통령의 사인화된 통치에 대한 시민적 불복종과 국회의 탄핵 가결, 그리고 뒤이은 헌재의 인용으로 대통령 중심의 정부 운영이 정당화될 수 없음을 규범화한 바 있다. 헌법에도 없는 비서실이 내각을 통할하는 권한을 법원이 직권남용으로 불법화한 것도 중요한 헌정 규범의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김) 2017년 대선에서 여야 후보 모두 협치를 공약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이로써 사실상 한국형 정부 형태에 대한 통치 규범 합의가 있었다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대통령의 자의적 통치가 아니라 의회 존중, 여야 협치 중시 등 통치 규범 지키겠다는 헌법적 서약과 다름없는 행위였다. 권력의 분립과 견제, 균형을 강화하라는 것, 공공정책의 결정과 집행에 여야의 조정과 합의를 강화하라는 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확고한 헌법 규범이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박) 한국 민주화의 산물이자 이후 여러 정치 경험을 통해 재확인된 5년 단임제 정부의 헌법적 의미는, 대통령이 주도해서 짧은 시간 동안 많이, 빨리하라는 것에 있지 않다. 그보다는 대통령 스스로 권력을 제한함과 동시에 내각과 부처, 의회와 정당의 역할 확대를 기본방향으로 하라는 요청에 그 핵심이 있다. 행정부 운영과 관련해서도 국무회의의 심의와 조정 기능을 강화하고 총리의 책임 있는 역할이 가능하게 하고 부처 장관의 자율성을 높임은 물론, 대통령 비서실이 내각 통할권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주문하고 있기도 하다.”

“김) 여야 간 정권은 바뀌더라도 국가의 중장기적 기본 틀은 공유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런 중장기적 전망 위에서 신정권이 지향하는 가치나 이념에 맞게 새로운 정책을 추가해서 변화를 도모하는 누적적이고 점진적으로 국정과제 접근을 하라는 요청이 아닐 수 없다.”

“박) 단임제 대통령제라서 어쩔 수 없다는 알리바이로 대통령마다 전임 대통령의 흔적을 지우고 스펙타클한 업적을 내려는 욕구를 절제하지 못한 결과, 임기 말과 퇴임 후 대통령이 불행한 운명에 처하게 되는 악순환을 그간의 한국 정치는 반복해왔다. 하지만 대통령의 단기주의적 조급증은 단임제의 문제가 아니라, 의회정치와 정당정치를 통해 국정과제를 이끌지 않고 비서실을 통해 통치를 주도하려 했던 대통령직 수행 방식에서 발원한 측면이 훨씬 크다는 게 내 생각이다. 13대에서 16대까지의 분점/연립 정부 하에서 그 이후 단점/단독정부 때보다 국정과제 수행이 못하지 않았다. 보수 정부 하에서 북방정책과 토지공개념, 금융실명제, 군 개혁 등이 이루어질 수 있었고 진보 정부 하에서 IMF 구조개혁, 신자유주의적 노동시장 개혁, 한일관계 개선 등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도 작지 않다. 오히려 이명박 행정부 시기와 겹친 18대 국회에서 집권당이 압도적인 의석을 장악하게 되면서 정치 독주와 정치 양극화(political polarization)가 심화되었다는 사실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김) 지난 34년간 5년마다 한 번 7명의 대통령을 선출했지만, 정당을 기준으로 집권 주기를 보면 10년으로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대통령도 정당 후보로서 통치권을 위임받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특정 대통령의 국정 기획이 캠프처럼 사인화된 방식이 아닌 집권당(government party), 즉 국정운영을 책임지는 정당의 중심적 역할을 통해 민주주의를 운영하지 못할 일은 아니다. 언제나 문제는 선거 때 약속과 선거 후 실제 대통령직 수행 방식의 불일치에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우만 보더라도 선거 때는 ‘일상적인 국정운영에 대해서는 책임 총리를 비롯한 내각이 담당하고, 총리와 장관이 하나의 팀으로 공동 책임을 지도록 하는 연대 책임제를 구현하겠다.’거나, ‘정당이 생산하는 중요한 정책을 정부가 받아서 집행하고 인사에 관해서도 당으로부터 추천받거나 당과 협의해 결정’하겠다는 공약을 했다.”

“박) 대통령이 정당정치와 의회정치의 기반 없이 국정을 운영하는 것은 책임정치 구현을 어렵게 한다. 현대 민주주의란 사후적 책임성을 묻는 ‘회고적 투표’가, 결국 정부의 미래 행위에 대한 책임성을 갖게 하는 ‘전망적 투표’로 작용하게 만드는 데 그 비밀이 있다. 현직자의 정책수행에 대한 평가를 통해 보상과 처벌을 함으로써 미래의 대통령들에게 유권자에 대한 책임성의 의무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정당정치가 발전하지 못하면 회고적 투표가 전망적 투표의 효과를 낳지 못한다. 대선 때마다 현직자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회피할 목적으로 정당보다 후보 개인을 앞세우거나, 아예 정당 이름을 바꿔 현직 대통령과의 연속성을 부인하는 일만 많았다. 안타깝게도 정당이 중심이 되는 책임 정치의 문제에서 한국 민주주의는 계속해서 실패하고 있다.”

“김) 역대 대통령들이 집권당을 매개로 의회정치와 정당정치에 대해 책임성을 발휘해왔다면 단기적 국정과제를 대통령마다 반복하고 또 서로 지우며 갈등과 적대를 양산하는 일은 제어될 수 있었을 것이다. 지속성 없고 책임성 없는 국정운영이 가져다주는 부작용으로서 정당 저발전과 집권당의 청와대 종속 그리고 행정 관료제의 기회주의 등도 줄었을 것이다. ‘대통령 관심법안’, ‘청와대 관심사안’이라는 이름으로 대통령이 의회정치를 지배하는 것의 부작용을 포함해 입법, 사법, 행정 3부 모두가 정권과 대통령에 따라 단기적으로 휘둘리는 부작용도 개선되었을 것이다.”

“박) 결론적으로, 87년 헌법과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실천 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 헌법 규범 내지 통치 규범은 1) 대통령 권력을 제한해서 사용할 것, 2) 의회와 정당정치, 나아가 내각과 폭넓은 협력 기반을 통해 일할 것, 3) 일방적이고 자의적인 국정운영이 아니라 중장기적 전망을 여야가 공유한 기초(common ground) 위에서 추가적/점진적/누적적 변화를 추구할 것, 4) 느리게 일하더라도 더 단단하고 지속적인 변화를 만들 것, 5) 대통령과 행정부의 교체가 갈등과 적대가 아닌 사회통합, 국민통합의 계기로 작용하게 할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한국 민주주의가 이런 내용으로 실천되지 못해서 문제였지 모든 것이 대통령제라서 그렇다거나 5년 단임이어서 문제라는 주장은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지지될 수 없는 주장이다. 오히려 대통령제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해서는 안 된다. 87년 헌법의 정신에도 맞지 않는 일이다. 대통령이 먼저 자신의 과도한 권력을 제한해서 사용해야 하고, 행정 수반으로서 입법부와 사법부를 존중하고 정당정치와 의회정치를 존중해야 한다. 그게 대통령제 민주주의에 맞는 일이다. 그렇게 해야 일이 된다.”

 

 

(4) 대통령직 인수 방법부터 달리 하자

 

“김) 변화가 있으려면 먼저 정부조직법 개정부터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그간 대선이 끝나면 인수위가 중심이 되어 정부조직의 신설, 통합, 명칭 변경을 중심으로 정부조직법 개편안을 일방적으로 발의해왔다. 그 결과 미국은 연방정부 수립 이후 235년 동안 재무부가 한 번도 이름 바뀐 적 없지만 우리는 거의 정권교체 때마다 바뀌곤 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신설된 재무부는, 1994년 재정경제원으로 바뀌고 1997년에는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 금융감독위원회로 재편되고, 2008년에는 다시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로 바뀌는 식이었다. 다른 부처의 개편과 명칭 변경도 사정은 비슷했다.”

“박) 대선이 끝나면 정부조직의 재편이 관행처럼 반복되는 것은 많은 문제를 양산한다. 행정의 연속성이 저해되고 국가 사무의 체계적인 집행을 어렵게 한다. 대통령 당선인이나 인수위 주도의 정부조직 개편은 단기간 내에 졸속으로 처리되는 문제를 안는다. 대대적인 개편안이 밀어 붙여지는 경우도 적지가 않다. 2013년 때는 <정부조직법 전부개정법률안>이 447쪽으로 발의된 적도 있다. 이렇게 발의된 개정안은 ‘신정부가 일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명목으로 야당에게 합의 통과를 압박하고, 야당은 처음부터 밀리면 안 된다며 이를 두고 대립하는 일로 이어진다. 2013년엔 1월 30일 발의된 이 개정안은 52일 만에 통과되었다. 통과는 되었지만 그때의 소모적 갈등의 부정적 유산은 오래 지속되었다.”

“김) 정부조직법 상에서 부서 명칭 하나 바꾸는 것도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니다. 정부조직법 자체만이 아니라 관련 부속 법률에서 부서 명칭을 모두 바꾸어야 하며, 부칙 등에 추가할 사항도 적지 않다. 정권의 교체와 함께 정부조직의 재편이 불가피하다면 사전에 여야 합의로 <정부조직 개편 특위>를 한시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신정부 출범에 맞춰 합의된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것을 새로운 관행으로 자리잡게 해야 할 것이다. 정부조직법 개편 작업이 대선 이전부터 준비되면 관련 부처는 물론 정부조직 전반에 대해 합리적 검토가 가능할 뿐 아니라, 파당적 관점에 따라 정부조직을 자의적으로 개편하는 것을 절제하게 하는 데도 효과가 있다.”

“박) 정부조직 개편안이 적어도 정권 인수위에서 졸속으로 결정되지 않게 해야 한다. 정부조직 개편안을 일방적으로 야당을 압박해 처리하지 않아야 1백 년 가는 안정된 정부조직을 만들 수 있다. 해당 정부 부처에 짝을 맞춰 운영하는 국회 상임위의 기능을 안정화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

“김) 정당 정책위 역할이 약해진 것도 문제다. 당내 경선이 치러지는 동안 각 당 정책위가 차기 정부 국정과제 형성 작업을 하기는 한다. 하지만 경선 캠프의 역할이 압도적임에 따라 정책위의 국정과제 형성 작업이 사실상 실효성을 갖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더 큰 문제는 정책위 전문위원은 물론 정당 정책연구원과 일반 당직자들이 당내 경선 과정 때부터 비공식적으로 캠프에 나뉘어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관행이 지속된다면 집권당이 된다 한들 당이 독립적 기반을 지키지 못하고 대통령과 청와대에 휘둘리는 일은 지속될 수밖에 없게 된다.”

“박) 정책위는 5개 안팎의 정조위로 구성되어 있고 정당 소속 전문위원들이 실무적 뒷받침을 한다. 상임위를 통해 해당 정부 부처의 사안에 대한 정책 지식이나 통치 지식을 집약할 수 있는 곳이 정책위다. 정당의 정책연구원에도 상당한 정책 역량이 존재한다. 정책위 의장은 정당 지도부 선출과정에서 중요 당직 가운데 하나이며 각 정당의 정책 당론을 이끄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정책위의 공식적인 역할이 살아나지 않으면 정당의 책임정치는 실현되기 어렵다. 충분히 검토되지도 않고 책임질 수도 없는 선거용 정책들이 이후 신정부의 인수위에서 그대로 결정되는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김) 당내 경선 과정에서는 각 후보 캠프의 정책팀 중심으로 국정과제 형성 작업을 어쩔 수 없이 하더라도, 경선이 끝나면 정당의 공식 대선 캠프가 중심이 되어 선거 공약을 재검토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당내 경선 후보들이 내건 국정과제들을 통합 조정하는 동시에 실효성 여부에 대한 판단을 거쳐 최종적으로 확정해야 한다. 그래야 정당들이 공약을 책임 있게 형성했다 할 수 있다. 이를 정당 정책위라는 공식 당 조직이 주도할 수 있어야 하고, 정당 정책연구원이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한다. 안 그러면 대통령은 정당 후보로 권력을 위임받음에도 불구하고 대선 후 대통령이 당을 지배함으로써 정당의 자율성을 스스로 허무는 일을 반복하게 된다. 선거 이전의 공약이 선거 이후 실제로 집행될 때 변화나 수정이 필요할 수 있다. 그렇다면 더더욱이나 공약을 만들었던 정당의 공식 정책 라인과 함께 변화나 수정을 결정해야 한다. 선거 시기의 국정과제와 선거 이후의 국정과제가 인과성을 갖지 않는다면 유권자가 행정부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부가 사후에 유권자를 선택하는 것이나 다름없게 된다.”

 

김) 대통령직 인수 방법에서도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박) 대통령직 인수위는 정책인수위와 정권인수위로 이원화해야 한다. 정책인수위의 경우는 예비내각과 정책위가 중심이 되어 신정부 국정과제 형성 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미래의 부처 수장이 중심이 되어 일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행정 관료의 의견과 조언을 얻어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국정과제 형성 및 추진 방안 로드맵을 마련하는 장점이 만들어질 수 있다. 동시에 정책위가 중심이 될 향후의 당정 협의에서 구체화해갈 의제를 미리 만들고 준비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나아가 의회의 입법과 예산 심의를 통해 야당의 협조를 구해야 할 의제도 점검할 수 있게 해 준다. 정책인수를 이런 방식으로 하게 되면 많은 수의 국정과제를 나열할 필요가 없다. 대통령이 예비 당정의 합의를 토대로 반드시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국정과제에 집중할 수 있게 되고, 그러면 보여주기식 국정과제 발표가 아니라 집행해야 할 국정과제의 구체화에 모든 노력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김) 국무총리와 장관 그리고 부처의 주요 간부는 국회에 가장 많이 상주하는 사람들이다. 상임위와 소위 그리고 본회의장에는 언제든 행정부의 자리가 있다. 예비내각 – 책임총리 – 책임장관의 연결 고리가 만들어지면, 행정부와 입법부가 국정과제 수행에 있어서 실체적 토론과 협의, 조정, 입법과 예산의 결정을 만들어갈 수 있다.”

“박) 입법부와 연계되는 행정부의 협치 기반을 인수위 때부터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청와대 비서실이 국정과제 발표 – 추진 – 평가를 주도하고, 집권당이나 국회가 소외되는 그간의 관행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김) 정책인수위와는 달리 정권 인수위는 인수위의 역할 가운데 하나인 취임식 준비와 함께, 정권 인도자 측과 인수자 측에서 준수해야 할 윤리 규범을 마련해 실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부터 국민통합의 효과가 발휘되어야 정권교체가 새로운 권력 투쟁의 계기가 되지 않게 할 뿐 아니라, 퇴임 대통령에 대한 여야 및 여야 시민의 인정과 존중의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다.”

“박) 우리처럼 정치가 전직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의 극단적 대립, 나아가 현직 대통령과 미래 대통령의 갈등으로 점철되는 양상은 정권인수 과정의 일방성에서도 발원하는 바가 크다. 대통령직을 둘러싼 정치문화가 복수와 적대로 특징되는 문제를 대통령직 인수 과정에서부터 적극적으로 개선해 가야 할 것이다.”

“김) 취임 행사를 얼마나 화려하게 하느냐가 정권인수의 핵심이 아니다. 핵심은 이전 정권과 신정권, 여와 야, 전직 대통령과 신임 대통령 사이의 상호 존중과 협력을 구현하고 이것이 국민통합을 위한 정치 전통으로 자리 잡게 하는 데 있다.”

 

 

(5) 책임 정부가 민주 정부다

 

“김) 결국 책임 정부의 원리에 맞는 대통령직의 역할 수행이 필요한 것 같다.”

“박) 책임 정부(responsible government)란 근대 시민혁명이 낳은 통치 원리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통치는 왕의 명령이 아니라 입법 취지에 맞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법의 집행을 맡은 내각은 왕이 아니라 입법부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리가 발전하게 되었다. 그 뒤 선거권이 확대되고 대중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사회적 요구에 반응해야 한다.’는 통치 원리가 추가되었고, 이는 곧 ‘가장 최근의 선거에서 다수 시민의 지지를 획득한 정당에게 일정 기간 정부를 맡긴다.’는 정당 정부(party government)로 제도화되었다.”

“김)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모두 이런 원리들을 구현하려 노력하는 바, 선거에서 승리해 집권정부당(government party)이 된다면 당연히 정당이 국정과제의 형성과 집행, 평가 등에 있어서 책임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경선과 선거 때는 캠프에 밀리고 선거 이후에는 인수위와 청와대 비서실에 밀려 그 책임을 할 수 없다면 책임 정부의 원리에 맞는 민주적 정부 운영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박) 한국 정치의 큰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선거 과정의 공약과 선거 이후의 국정과제 선정과정이 제도적으로나 인적으로 분리되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선거 과정에서는 정책 형성에 기여하는 정치인보다, 상대 당이나 후보를 더 잘 공격하는 정치인이 중시된다. 선거 이후 국정과제 형성 작업은 사실상 새로 시작된다. 선거 전이든 선거 후든 국정과제의 형성과 집행, 실현에 적합한 인물들은 중시되지 않는다. 대통령의 인사는 상당 정도 캠프와 측근 중심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주권 위임 과정과 주권의 실현 과정이 사실상 분열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자, 대통령의 자의적 통치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으로 이어진다.”

“김) 의회중심제조차 신정부의 내각 구성이 총선 이후 총리가 선출되고 난 뒤, 즉 사후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이미 선거 전부터 차기 내각의 예비 후보들이 알려지고, 엄밀한 의미에서 선거는 국정과제를 선택하는 일인 동시에 어느 정당의 예비 내각 팀을 선택할지 결정하는 일이 된다. 우리처럼 대통령제이면서도 의원/정치인이 내각에 참여할 수 있는 경우는 특히나 예비 내각을 내실 있게 운영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박) 한국 민주주의에서 모든 선거 경쟁은 지나치게 차별화에 집중해 있다. 상대와 다른 주장, 다른 내용을 말해야 하는 압박이 크다. 민주주의에서 시민/유권자는 차별성과 새로움을 기준으로만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공약으로 제시하는 국정과제가 크게 다르지 않더라도 누가 혹은 어느 집단이 그 과제를 책임 있게 수행할 것으로 보는지에 대한 ‘신뢰의 문제’ 또한 중요하게 고려한다. 예비 내각이야말로 그런 신뢰를 조직하는 데 있어서 좋은 기준이 될 수 있다.”

“김) 예비 내각은 대선 후 인수위를 단절 없이 연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할 뿐아니라, 인수위에서의 국정과제 형성 작업을 책임 있게 이어갈 수 있게 하는 제도적 보루로 기능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책임총리와 책임장관이라는 한국 정치의 오랜 과업을 실현하는 일에도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대통령의 과도한 역할을 분권화하는 것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박) 예비 내각은 일상적인 행정부 운영을 감당할 수 있게 함으로써, 한국 민주주의의 고질적 문제라고 할 수 있는 ‘대통령을 둘러싼 여야의 극단적 대립’을 완화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 그 기초 위에서 대통령이 한국사회의 미래 중대 과제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주기도 한다.”

“김) 적어도 김대중 대통령 때까지는 야당을 배제한 정부 운영이 당연하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도 야당과의 공동통치와 대연정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뒤는 완전히 달라졌다. 대통령부터가 국정운영을 독점하려 했다. 대통령이 그러니, 집권당의 국회 운영도 독주의 정치로 이어졌다.”

“박) 완전한 대안은 아닐 수 있지만, 인수위와 별도로 여야정위원회를 제도화하는 것이 한 방안이 아닐까 한다. 대통령 당선자가 인수위와 별도로 여야정위원회를 설치, 운영하는 것이다. 기존의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처럼 합의된 의제 없이 여야 원내대표를 초청해 ‘협치 모양’만 내는 것은 한계가 있다.”

“김) 새로운 여야정위원회에서는 대선 과정에서 제기된 중대 이슈 및 합의 쟁점을 중심으로 신정부의 국정운영 방향과 관련해 야당 지도부에게 협의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가능하다면 공동의 노력과 합의를 만들 기회도 제공해야 한다. 이를 통해 대선 과정에서 제기된 과도한 갈등과 상처, 관련된 고발과 소송 등의 문제들을 지혜롭게 처리할 심리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박) 여야정위원회는 특히나 외교, 군사, 안보 분야 국정과제를 초당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도와준다. 우리의 지정학적 조건을 고려하면, 과거 냉전 구조의 유산으로서 남북 분단. 남북 간 협력과 평화를 관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다. 한반도 문제를 남한과 북한만의 힘으로 개선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근본적으로 분단문제는 국제적 문제로 만들어졌으며 지금도 그 성격은 유지되고 있다.”

“김) 탈냉전 시기라 하지만, 동북아 국제질서의 규칙 제정자(Rule-Setter)는 역외 국가로서 미국과 역내 국가로서 중국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박) 두 주축 국가 어디와도 적대할 수 없고, 그렇다고 한미동맹 같은 기존 구조를 부정할 수도 없다. 이런 구조적 제약에 적응하면서도 자율의 공간을 현명하게 넓혀가는 접근만이 가능한 선택일 것이다. 규칙 제정자(Rule-Setter)도 아니고 게임 채인저(Game-Changer)도 될 수 없다면 외교 안보 정책은 여야, 진보 보수 사이에 갈등적이지 않게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누가 집권하든, 국익과 관련한 공동 이해를 넓히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김) 대통령은 월 2회 정당 지도자를 만나 외교, 안보, 정보 분야 상황을 브리핑하고, 야당은 충분한 정보와 판단을 공유하는 전제 위에서 이 분야에서만큼은 초당적 협력을 하는 게 필요하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국익과 평화를 중심으로 한 국정운영의 전통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

“박) 대통령직 인수 과정에서 국회는 늘 소외되었다. 국회의 역할은 중요하다. 이미 여야 대선 후보 공약 가운데 상당한 합의 쟁점이 언제나 많았다. 이를 중심으로 국회 내 미래협치특위를 운영하는 것을 제안해 보고 싶다. 여야 대통령 후보의 선거 공약 사안 가운데 공통된 의제에 대한 입법적 뒷받침을 책임지는 미래협치특위를 설치하는 것이다. 당장의 입법 의제는 특위 내 여야 합의로 해당 상임위에 배분하고, 중장기적인 검토가 필요한 의제는 국회 내 의정활동 지원기관을 통해 기본계획서를 작성, 제출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김) 우리 국회의 지원 기구는 미국 의회에 비해 그 규모나 권한에 있어서 형편없이 작다. 미래협치특위는 이를 개선하는 좋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국회가 행정부의 정책기획 및 예산 작성에 따른 사후적 심의 기능만 갖는 현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국회의 국정 기획 능력을 키우는 것은 한국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매우 긴요하다. 미래의제 기본계획서는 미래협치특위가 채택하고, 채택된 기본계획서는 미래 국회의 토대로 삼는 동시에 국가 중장기 정책운영의 좌표가 되게 할 필요가 있다.”

“박) 책임 총리와 책임 장관제 문제도 중요하다. 책임총리-책임장관제 공약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무엇보다도 대통령 중심의 사인화된 국가 운영의 후진 모델 벗어나는 게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꼭 필요하다. 대통령의 역할 모델을 ‘개혁 주도자’ 내지 ‘개혁 군주’, 나아가 모두 사안에 책임지는 ‘슈퍼맨 대통령’에서 찾는 것은 여야 사이의 권력 갈등은 물론 시민들을 대통령 지지자와 반대자로 양분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는 여야의 열성 지지자로 하여금 양극화된 정치문화를 추종하게 만드는 문제가 있다. 대통령의 역할은 ‘최고 권력의 소유자’로서가 아니라 ‘권력 관계의 조정자’로서의 모델을 따를 때 효과적이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역할도 쉽지 않은 데 악기까지 연주하려는 것이 불합리하듯, 해당 부처에 대해 자율과 위임을 부여할 때 책임을 물을 수 있고 그럴 때 정부 운영이 더 활성화될 수 있다.”

“김) 행정부는 거대한 복합조직인 바, 이들의 기능과 체계가 살아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미국처럼 국가적 의제는 대통령이 주도하고, 일상적 정부 업무는 주 정부가 맡는 것과 같이, 혹은 프랑스처럼 국가적 개혁 과제는 대통령이 맡고 총리는 의회와 협치 하에 일상적 행정부 업무를 하게 하는 것처럼, 우리 현실에 맞는 분권화된 국정운영의 한국식 모델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책임총리가 대통령중심제의 원리와 충돌하는 것을 걱정한다면 책임총리 대신 ‘협치 총리’로 명명하고 총리를 통해 일상적 행정부 업무 및 국회와의 조정 역할을 이끌게 할 수 있다. 대통령은 국가적 의제를 집중하는 것이 지금까지 제기된 국정운영 모델로는 가장 현실적이다.”

“박) 그렇게 하면 연립 정권은 아니더라도 총리와 장관 차원에서 다양한 정책 연정을 시도할 수 있는 계기를 확장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다. 심각한 사회 해체와 불평등, 양극화 심화의 여러 양상이 보여주듯 야권의 지원이 필요한 정책 의제들은 매우 많다. 낡은 체제의 개혁 과제와 동시에 미래 대응 과제가 혼재된 상황에서 대통령 중심의 일방적인 국정운영보다 정책 사안에 따라서는 야권과 연합하는 다원적 국정운영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어느 한 정권, 한 정당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큰 전환의 과제들과 관련해, 사회적 합의를 도모할 수 있는 길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수 있다.”

“김) 청와대가 정부 운영을 주도하는 대신, 책임총리와 책임장관제가 자리를 잡게 되면 당정 정책 협의는 실질적인 국정과제 추진체가 될 수 있다. 여기에 야당과의 정책 연정이 결합되면 여야는 물론 행정부와 입법부 사이에서 협치 조건이 성숙될 것이다.”

“박) 그간 당정 협의는 한편으로 야당의 소외의식을 자극하고, 다른 한편 당정청 협의의 형태로 이어지면서 청와대가 감시자 역할을 했던바, 이를 넘어설 필요가 있다. 국정과제 형성과 집행 과정에서 정당이 보조적인 역할을 하게 되면 여야 협치도 불가능할 뿐아니라, ‘청와대 정부’라는 오명을 벗어날 수 없게 된다. 당정협의는 청와대 개입 없이 협치 책임총리와 협치 책임장관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인수위 과정에서부터 정당의 역할을 살아나야 할 것이다.”

“김) 앞서 언급한 미래협치특위는 비단 정권교체기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모든 국정과제가 갈등 의제가 아니고 그 가운데 상당 부분은 합의 의제인 바, 이를 의회정치 안에서 공동 통치의 의제로 접근하게 되면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정쟁으로 국정과제의 추진이 희생되는 일은 줄일 수 있게 될 것이다.”

“박) 민주주의란 의회가 국정 기획을 하고 행정부가 집행을 한 뒤 다시 의회가 심사와 평가를 하는 체제다. 하지만 우리 국회는 국정과제 관련해 사전 기획 기능이 발전하지 않은 채, 사후에 국정 감사를 하고 예산 심의를 하는 제한된 역할밖에 하지 못해왔다. 미래협치특위는 이러한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김) 그간 국회의장은 국회의 제한된 기능 때문에 자문위원회의 형태로 외부 참여자 중심의 <국민통합위원회>나 <국가중장기아젠다위원회> 등을 한시적으로 운영해왔으나, 이런 편의적 접근보다는 입법자인 의원이 참여자가 되고 공식적인 의사 진행 절차와 권위를 가진 미래협치특위를 통해 사회 통합과 미래기획을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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