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미나 후기: 감정과 민주주의
<세미나 후기: 감정과 민주주의 – 조너선 하이트의 『불안 세대』를 읽고>
처음엔 거부감부터 들었다.
“인터넷 규제라니,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에서 웬 파시스트 같은 발상이지? 표현의 자유는? 알 권리는?”
그런 의문이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세미나에서 나눈 이야기들은 내 생각을 흔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미 청소년에게 술과 담배를 법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렇다면 SNS, 스마트폰, 알고리즘이 만들어내는 디지털 자극에 대해서도 일정한 규제가 필요한 건 아닐까? 더욱이,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경영자들조차 자기 자녀들에게는 스마트폰 사용을 엄격히 제한한다는 사실은 단순한 일화로 치부하기 어렵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정치로 이어졌다.
오늘날 의정 질의는 더 이상 눈앞의 피감기관장이 아니라, 스마트폰 너머의 구독자를 향해 이뤄진다. 질의는 영상이 되고, 정치는 쇼츠가 된다. 그 속에서 정치의 자긍심과 품위는 어떻게 회복될 수 있을까?
물론 디지털 기술이 열어준 가능성도 있다. 10여 년 전 아랍의 봄을 떠올려보면, SNS가 시민의 연대를 이끈 순간들이 분명 존재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 기술을 제대로 다루고 있는가?
빅테크가 가짜 뉴스에 소극적으로 대응한 결과, 학살과 폭력, 혐오가 확산되었다. 자유만 외칠 것이 아니라, 그 자유가 빚어낸 책임도 함께 직면해야 한다.
조너선 하이트는 이 책을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며 썼다.
그러나 그 걱정은 결국 우리 모두의 몫이다. 저출생 사회에 살고 있는 나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아이도 없다. 하지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 그 가능성은 어쩌면 머스크가 가려는 화성보다도 더 멀리 있을 수 있다.
이 문제는 단지 기술 규제로만 해결되지 않는다. 풍성한 사회적 담론, 그리고 새로운 정치 리더십이 필요하다.
링컨은 헌법과 독립선언문을 근거로 전시 권한을 발휘해 노예 해방을 선언했고,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시장 경쟁’을 위해 독점 구조를 깨뜨렸다.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뉴딜을, 린든 존슨은 시민권 법안을 추진했다. 자유를 지키기 위한 강제력—그것은 단지 억압이 아닌, 지혜로운 정치의 실행이었다.
하이트 교수는 말한다. 해결책은 어렵지 않고, 많은 비용도 들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시민으로서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습관을 함께 만들어 가는 일이다.
이 말은 내가 최근 읽고 있는 파커 파머의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과도 맞닿아 있다. 민주주의는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긴장을 창조적으로 품는 공간이라고. 그 긴장을 회피하지 않고 감내할 때, 민주주의는 살아난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온라인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서로를 진심으로 만나고 있는가?
오늘처럼 오프라인에서 한자리에 모여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고, 경청하고, 그로 인해 생각이 바뀌는 순간들—바로 여기에, 조심스럽지만 분명한 희망이 있지 않을까.
세미나 후기: 감정과 민주주의
<세미나 후기: 감정과 민주주의 – 조너선 하이트의 『불안 세대』를 읽고>
처음엔 거부감부터 들었다.
“인터넷 규제라니,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에서 웬 파시스트 같은 발상이지? 표현의 자유는? 알 권리는?”
그런 의문이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세미나에서 나눈 이야기들은 내 생각을 흔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미 청소년에게 술과 담배를 법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렇다면 SNS, 스마트폰, 알고리즘이 만들어내는 디지털 자극에 대해서도 일정한 규제가 필요한 건 아닐까? 더욱이,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경영자들조차 자기 자녀들에게는 스마트폰 사용을 엄격히 제한한다는 사실은 단순한 일화로 치부하기 어렵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정치로 이어졌다.
오늘날 의정 질의는 더 이상 눈앞의 피감기관장이 아니라, 스마트폰 너머의 구독자를 향해 이뤄진다. 질의는 영상이 되고, 정치는 쇼츠가 된다. 그 속에서 정치의 자긍심과 품위는 어떻게 회복될 수 있을까?
물론 디지털 기술이 열어준 가능성도 있다. 10여 년 전 아랍의 봄을 떠올려보면, SNS가 시민의 연대를 이끈 순간들이 분명 존재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 기술을 제대로 다루고 있는가?
빅테크가 가짜 뉴스에 소극적으로 대응한 결과, 학살과 폭력, 혐오가 확산되었다. 자유만 외칠 것이 아니라, 그 자유가 빚어낸 책임도 함께 직면해야 한다.
조너선 하이트는 이 책을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며 썼다.
그러나 그 걱정은 결국 우리 모두의 몫이다. 저출생 사회에 살고 있는 나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아이도 없다. 하지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 그 가능성은 어쩌면 머스크가 가려는 화성보다도 더 멀리 있을 수 있다.
이 문제는 단지 기술 규제로만 해결되지 않는다. 풍성한 사회적 담론, 그리고 새로운 정치 리더십이 필요하다.
링컨은 헌법과 독립선언문을 근거로 전시 권한을 발휘해 노예 해방을 선언했고,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시장 경쟁’을 위해 독점 구조를 깨뜨렸다.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뉴딜을, 린든 존슨은 시민권 법안을 추진했다. 자유를 지키기 위한 강제력—그것은 단지 억압이 아닌, 지혜로운 정치의 실행이었다.
하이트 교수는 말한다. 해결책은 어렵지 않고, 많은 비용도 들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시민으로서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습관을 함께 만들어 가는 일이다.
이 말은 내가 최근 읽고 있는 파커 파머의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과도 맞닿아 있다. 민주주의는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긴장을 창조적으로 품는 공간이라고. 그 긴장을 회피하지 않고 감내할 때, 민주주의는 살아난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온라인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서로를 진심으로 만나고 있는가?
오늘처럼 오프라인에서 한자리에 모여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고, 경청하고, 그로 인해 생각이 바뀌는 순간들—바로 여기에, 조심스럽지만 분명한 희망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