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 후기] 외로운 시민에게 어떻게 다가갈까 - 조건준 아유대표

공식 관리자
2025-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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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형 불안과 환경형 불안

 

“과거의 불안은 ‘사건형’이었다면, 현재의 불안은 ‘환경형’이다.” 이 표현이 재밌다. 과거에는 불안이라는 것이 어떤 사건으로 인한 것이었다면 지금은 경제적 이유나 노동시장의 상태를 비롯해 무엇보다도 디지털 세계라는 환경에서부터 오는 불안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에는 불안한 사람이 그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하다가 성공하게 되지만 지금은 불안한 사람들이 살기 힘든 세상이라는 것이다. 불안한 사람들은 도전하기보다 안전한 관계를 추구하기 마련이다. 

 

외로움이란 관계에서 느끼는 고립감이다. 스스로 생동감을 유지하려는 에너지가 고갈되어 나타나는 것이 자살위험이다. 우울증 비율이나 조율증 비율이 얼마나 높아졌으며 특히 십대에게 외롭다는 답변의 비율이 높아진 통계들을 보여주었다. 불안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특히 남성 자살율은 연령이 증가할수록 상승해 남성이 여성에 비해 4.5배가 높게 나타난다.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온라인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일상의 불안 신호들이다. 온라인에서는 감정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자기 감정에 동의하면 이상화하고 동의하지 않으면 평가절하하면서 손절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불안한 정서는 극단의 행동으로 나타난다. 개인의 감정조절이나 성향의 문제가 아니다. 구조적으로 인지와 정서 체계가 무너지고 있다. 

 

불안의 토대

 

그것은 경제, 노동, 주거 등의 변화에 있다. 1인 가족의 증가가 대표적이다. (오늘 많이 다루지 않았지만 1인 노동의 증가도 그 한 쌍이다) 관계 안전만이 붕괴하고 있다는 것. 매핑(mapping)이라는 개념도 기억에 남았다. 익숙한 경로, 결정점, 관계망에 의미를 부여하는 인간은 그런 것을 내적으로 그려놓고 살지만, 공동체의 해체를 경험한다. 경제적 불평등, 주거의 변화, 노동시장의 문제 등은 과거부터 해결되지 못한 채 있었지만, 여기에 온라인 디지털 환경이 변화를 일으켰다는 점에 주목한다. 

 

깨어있는 시간이 대략 16시간이라면 평균 5시간을 인터넷에 접속해서 산다고 한다. 스마트폰이 뇌에 미치는 영향, 특히 청소년에 미치는 영향이 치명적이라는 연구결과들이 있다. 생후 24개월 이전에 29.9%가 스마트폰을 사용한다는 통계는 쫌 놀랍다. 온라인에서는 과장된 언어와 극단적 행동이 지지를 받고 격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젠지스테어, ‘GenZ’ 그러니까 엠지 세대 이휴의 세대들 중에는 시선과 표정을 읽지 못하는 모습도 늘었다. 사회적 상호작용이 떨어지고 있다. 

 

키오스크 주문을 사례로 들었다. 서로 표정을 보면서 주문하는 관계가 아니라 그냥 기계를 통해서 거래하는 관계가 있을 뿐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동영상을 소개했다. 개가 아이를 구하는 짧은 동영상. “이게 다 AI가 만든 것이었어요?” 놀라는 사람도 있었다. 나도 이런 동영상을 자주 보다가 ‘아, 이거 가짜네’라는 것을 나중에 느꼈다. 그런 동영상을 보고 따스하다거나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는 내 감정은 정말 내것인가. 

 

“다 가짜라고 생각하고 봐야죠” 

 

진짜와 가짜가 헷갈리는 시대다. 기술에 대한 낙관론과 무관심으로 사회적 논의는 없고 이런 혼경에서 불안은 정치화된다. 스마트폰의 대중화와 함께 팬덤정치가 등장했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인간은 웅대한 자연을 보면서 경외감을 느낀다고 하는데, 그런 체험들을 점점 상실하는 시대다) 

 

그래서 외로운 시민에게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 구조적으로 보아야 한다. 오프라인의 공공장소를 늘려야 한다. 그것은 상호작용의 증대를 위한 것이다. 교육도 달라져야 한다. 다음세대를 위한 교육. 성장기 스마트폰 의존을 줄여야 한다. 프리랜서와 중장연층 노동정책을 강조했다. 전환기에 높인 세대에게 특히 주목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우리의 역할은 정신건강에 보다 주목하자는 것. 인지적·정서적 불평등에 보다 주목해야 한다. 오늘날 인간의 정신은 퇴보하고 있다. 






 

“인간의 정신은 퇴보하고 있나” 

 

발표가 끝나고 질문과 토론. AI의 역설이 있다. 인간은 자신이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암묵지가 있는데 이것을 인공지능이 가질 수 있나. 폴라니의 역설이다. 그런데 딥러닝을 비롯해 인공지능이 발전하면서 폴라니의 역설을 넘어서고 있다. 아무리 뛰어난 컴퓨터도 유아의 감각과 인지와 움직이는 능력을 넘어설 수 없다는 모라벡의 역설이 있는데 그것도 피지컬AI 등장으로 약해지고 있다. 자동화의 아이러니가 있는데, 인공지능이 야구에서도 스트라이크를 판명하지만, 갑자기 인공지능이 다운되는 등 만약의 사태 등에 대은하는 더 높은 심판역량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기술이 발전할수록 또 다른 인간 역량을 요구하기에 인간 정신이 퇴보된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발표자는 확신에 찬 단호한 어조로 답했다. 인간 정신은 퇴보하고 있다고. 


전전두엽의 기능을 비롯해 퇴보를 주장하는 연구결과들이 있다. 그런데 긴 인류 역사를 보면 인간의 역량은 시대에 따라서 퇴보하는 영역이 있고 발전하는 영역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는 단지 기술과 인간의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생각해봐야 할 시각이다. 가령 노동문제를 보면 AI로 인해 노동의 종말이 온다는 식의 주장. 그러나 실업 대란은 없었고 다른 노동들이 또 늘었다는 점. 그래서 노동의 종말이 아니라 노동이 변화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통째로 인류가 퇴보한다거나 발전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역시 강사의 대답은 단호했다. 

 

“사건형 불안에서 환경형 불안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는 재미있는데, 이것을 인류의 전 역사로 확장해서 보면 어떨까요” 아주 먼 옛날로 돌아가면 인간이 세계를 잘 모를 때 갑자기 날씨가 어떻게 변하고 어디서 어떤 동물이 튀어나오고 어떤 질병이 파고들지 모를 때도 불안은 있었다. 그런데 자연으로부터 멀어진 인공의 도시에서 살면서 위험들이 어떻게 생기는지 알게되는 시대를 거쳤다. 그리고 디지털 세계를 맞이했다. 이런 긴 역사를 사건형 불안과 환경형 불안이라는 기준으로 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문제는 정신건강

 

“오늘 발표에서 정신건강에 중심을 둬야 한다는 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확실 좋은 일자리라는 것도 정신건강을 기준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는 참가자의 얘기다. 교육정책, 노동정책도 정신건강이라는 이슈에 근거해서 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이어졌다. 

 

“중장년층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한 참가가자는 여전히 여성이나 청년이 취약층이라고 할 수 있는가를 얘기했다. 오늘 발표에서도 남성의 자살율이 여성에 비해 너무 높다. 물론 자살시도율로 보면 달라진다. 

 

“정신건강 측면에서 보면 인간은 이미 사이보그화 되어있는 것이 아닌가” 인간은 안경에서부터 아이팟을 비롯해 도구를 이용해왔고 이제는 AI와 결합된 환경에서 산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달라진 환경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달라진 환경에서 등장한 정신질환들을 마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골 같은 비판이죠

 

“불안에 대응하는 세대적 차이”를 강조한 참가자도 있었다. 2030 세대 중 그냥 쉬었음이 늘어나는데, 6070세대는 외로움에 대해 일자리를 구하고 일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이 다르다. 3040여성들도 주부로 남지 않고 일하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것. 그런데 이걸 세대적 차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청년은 부모가 있어서 캥거루족으로 버틸 수도 있지만, 기성세대는 그럴 수 없는 사회적 조건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세대적 대응은 차이가 난다는 점을 지적했다. 

 

“너무 개인의 심리적 측면만 보면서 대책을 얘기하고 사회구조적 측면을 무시한다는 비판도 있지 않냐”고 했더니 발표자는 “사골같은 비판”이라는 짧고 강렬한 한 마디로 대응했다. 우려냈던 사골을 또 삶아 우려내듯 심리학을 향한 그런 비판은 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비판에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나름 내성 혹은 내공은 가진 답이라고 할까. 

 

“인지투쟁이 먼저다” 

 

외로운 시민을 위해 심리상담소를 각 지역에 만든다든지 구체적인 정책들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런데 한 참석자는 지금은 구체적 정책 이전에 인지투쟁부터 해야한다고 했다. 인상적이다. 10년 전 우울증 환자보다 지금 (20배?) 늘었다. 정서적 문제가 크게 작용한다. 정서적 문제가 정치사회운동에 중요하다는 것. 인지투쟁이 있어야 대책에 대한 구체적 논의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민주주의에 대한 경고음을 울리지 않고 정책을 설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런 문제의식에 참가자 대부분이 동의했다. 단지 정신건강이 문제라는 상투적 얘기가 아니라 지금 민주주의의 위기, 지금 전 세계적으로 흔들리는 민주주의의 문제와 맞닿아있는 것이다. 

 

‘정서적·인지적 불평등’에도 주목해야하는 이유는 단지 일반적 사회문제라는 수준의 것은 아니다. 독립노동의 증가로 인한 문제도 굉장히 중요하다. 고립과 독립사이, 불안과 자유 사이에 있는 프리랜서의 연결, 서로 접착제처럼 연결하는, 단지 우리 너무 어렵다는 호소를 넘어서 자존감을 가진 ‘프라우드 본딩’도 이런 차원에서 고민해야 한다.

 

불안한 사람들과 예민한 주제를 다룰 수는 없죠

 

“외로움에 대한 발표를 잘 들었다. 그렇다면 극복 방향은 무엇인가. 문제는 잘 지적한 것 같다. 방향을 어떻게 제시할 수 있는가”라는 참가자 얘기가 이어졌다. 발표자는 “불안한 사람들과 예민한 주제를 다룰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라고 했다. 스치듯 나온 발언을 들으면서 그 짧은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우울을 극복하기 위한 방향은 다정함이 아닐까. 디지털 세계가 우울감을 높이고 있다면, 다정한 사회를 위해 개인 심리에서 사회적 대안까지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 우리가 더 불안해진 걸까요. 혹시 아이들을 너무 나약하게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 발표에 동의한다는 참가자는 막바지에 이렇게 질문을 던졌다. 온라인에 매달려 갇힌 세상에서 성장하는 시대에 놀고 다치고 일어서면서 자라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쉽게 불안에 물들고 무너지는 것은 아니냐는. 




열심히 필기하며 들었다



 

중국 교포 주민증 이름에 얽힌 얘기

 

뒤풀이. 청년유니온 같은 조직이 런베뮤 같은 이슈에 대응하지 못하고 너무 프리랜서에 몰입해 있는 것일까. 지금의 상황으로 보면 그렇게 다시 청년에 주목한 활동에 힘을 쏟을 수 있을까. 프리랜서 사업도 그리 만만치 않는데. 그렇다고 연금개혁이나 정년 이슈에 대한 청년의 목소라에 딱히 지원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다시 청년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2차 뒷풀이에서 중국교포에 대한 처음 듣는 얘기가 한참 이어졌다. 동포 중에 압도적 비율을 차지하는 중국교포. 다른 동포와 다르게 특히 한국 거주가 많은 중국동포에 대한 관심은 그리 높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대림동에 혐중 시위를 한다니. 이 때문에 중국 동포들 얘기가 이어졌다. 중국발음과 한국발음이 다른 같은 한자를 쓰는 이름에 대한 얘기는 처음듣는 것이었다. 중국발음이 아니라 한국발음으로 주민등록을 했다가, 한자를 쓰려고 하는데 안된다는 당국, 한국 이름으로 개명을 하라는, 근데 본이 필요하다. 왜 이 시대에?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임금체계 개편을 통한 정년연장이 가능할까요” 국회에서 일하는 이의 질문에 그럴 가능성 1도 없다고 답했다.(이에 대해서는 따로 썼으니 생략) 그러다가 노동자 추정제도와 일하는 사람 기본법 얘기가 이어졌다.

 

“제 3지대를 만드는 것에 반대한다” 노동계 일각에서 노동자인데 3.3으로 오분류하는 것에 주목하면서 그들을 근로자로 추정하는 입법을 강조하면서, 그런 것이 없이 일하는 사람 기본법을 만드는 것은 노동자도 자영업자도 아닌 3지대를 만들려는 시도라는 비판이 있다. 그런데 이미 노동시장은 ‘정규직-비정규직-독립노동’의 삼국시대라고. 이런 논쟁은 얼마든지 할 수 있고 했으면 좋겠다. “1국의 정규직은 줄어들면서 2국으로 갈 사람도 있고, 2국의 비정규직은 아마도 3국의 독립노동이 되지 않을까요” 그렇게 단정적으로 예상은 못하겠지만, 어쨌든 추정제도 없는 기본법은 사기라는 주장은 현실성도 미래의 비전도 없는 주장이다. 독립노동은 이미 하나의 장르다. 

 

라이더 영역에 떠오른 이슈

 

“이주 노동자 유치를 위한 경쟁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중국교포에서 이주노동자로 얘기가 이어지자 한사람이 말했다. 일본을 비롯해 다른 나라와 더 좋은 조건으로 이주노동자가 올 수 있게 하는 것이 여러모로 한국의 미래를 위해 좋은 것이 아니냐는 얘기, 방향에 동의한다. 다만 한국의 현실은 이와 사뭇 다르다. 그런데 혐중시위를 비롯해 정치권이 움직이는 방향도 이런 전향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라이더 영역에 떠오른 이슈가 하나가 있어요.” 각 지방대는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서 돈을 주고 해외 학생을 데려온다. 그런데 생활이 팍팍한 이주유학생들이 한국인의 신분증과 증명서를 도용해서 라이더로 등록해서 일한다는 것. 이게 국회의 소관 상임위원들 사이에 이슈가 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것을 알선하는 브로커들도 있다고 한다. 

 

이미 하나의 장르가 된 독립노동의 영역, 플랫폼노동의 영역에서는 새로운 문제들이 진행되고 있다. 암튼, 뒷풀이에서도 이런 저런 얘기들이 오갔다. 좋은 발표를 듣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뒷풀에서도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연말 송년회에서 다시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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