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국제공항공사의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둘러싼 논쟁을 보면서 마키아벨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마키아벨리는 그의 저서 〈군주론〉에서 인간 내면의 복잡한 본성에 대해 이렇게 썼다.
‘인간이란 아버지의 죽음은 쉽게 잊어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빼앗기는 일은 좀처럼 잊지 못하는 존재다.’
참으로 비정한 표현이지만 일견 수긍이 가기도 한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원래 내 것이 아니었지만,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은 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이 혈육의 정보다 ‘내 것’을 빼앗기는 것에 더 분노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는 이 오래된 금언이 지금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둘러싼 논쟁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보안검색 요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본사로 정규직화되더라도 정규직들이나 공기업 시험을 준비 중인 취업준비생들이 가진 것을 빼앗기는 건 아니지 않은가?
다수의 취업준비생들과 기존 정규직 직원들이 말하는 내 것은 지금 가지고 있는 노동조건이 아니라 해당 기업에 다니기 위해 그동안 투여해왔던 ‘시간과 노력, 그리고 자원’들을 말한다. 그러니까 현재 또는 미래가 아니라 ‘피, 땀, 눈물’이 서려 있는(또는 그렇게 믿고 있는) 과거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현재와 미래는 개선 가능성의 영역이지만 과거는 타임머신을 가능케 하는 새로운 물리법칙이 등장하지 않는 한 보상도 개선도 불가능한 영역이다.
서울시 산하 공기업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진행할 때 이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는 젊은 정규직 청년이 있었다. 그 청년은 20대 내내 계약직과 파견직을 전전하며 수많은 차별과 멸시를 경험했다고 한다. 비정규직이라는 신분으로는 인간적 모멸과 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깨달은 그는 노량진 고시원으로 들어가 3년간 열심히 시험공부를 한 끝에 서울시 산하 공기업에 정규직으로 입사할 수 있었다. 그는 거꾸로 이렇게 반문했다고 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다 인정할 수 있는데 저들이 저렇게 쉽게 정규직이 되면 도대체 나의 20대는, 노량진에서 보낸 3년의 시간은 뭐가 되는 건가요?”
그리고 그 청년의 반문에 제대로 답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당시에 나는 가지고 있지 못했다.
처우의 차이가 아닌 신분의 차이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둘러싸고 수많은 말의 향연이 이어진다. ‘로또 취업’ ‘가짜 뉴스’ ‘취준생의 분노’ ‘공정과 정의’ 등이다. 사실 본사로 편입되는 직군(보안검색)의 경우 기존 인천국제공항공사 사무직 등 정규직 직군을 희망하던 취업준비생들이 지원하는 것도 아니고 임금체계 및 수준도 명확히 다르다. 고용안정과 약간의 노동조건 개선 수준이다. 이에 대해 ‘로또 취업’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다만 논란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시험을 통한 공채 선발’이라는 한국 사회의 인력 채용 시스템에 대한 부분은 반드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과거 서울시에서 당황스러웠던 적은 최소 3~7년간 성실하고 문제없이 업무를 수행해온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동일 업무 경험이 전혀 없는 공채 출신 신입사원 정규직이 반대하는 것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보상받지 못하는 과거에 대한 박탈감은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다소 비정한, 기업의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고려하면 동일 업무에 검증된 업무능력이 있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더 높은 임금의 정규직 공채를 선발하여 다시 몇 년의 숙련을 쌓게 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우리 사회 공공부문 또는 주요 민간 대기업 역시 기업의 효율성이나 업무의 숙련도를 고려하기보다는 때로 굉장히 비효율적이더라도 공채 시스템을 통해서 인력을 선발하고 있다. 이러한 시험을 통한 ‘공채 선발 시스템’이 주요한 인력 채용의 방식으로 작동하는 한 정규직화를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이런 시스템은 ‘공공부문(또는 민간 대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를 고용안정, 임금수준 같은 처우의 차이가 아니라 ‘신분’의 차이로 만들어버린다. 이는 마치 대학 서열화 체제와 유사한데, 수능점수 등을 몇 점 맞았는지에 따라 SKY-인(in)서울-지방 국립/사립대-2년제/3년제 대학 등으로 이어지는 서열화 체제처럼 한국 사회 일자리가 5급 공무원-상위권 공기업-민간 대기업-중소기업 등으로 서열화되어 작동하고 있다.
당연히 이러한 서열화 구조 안에서 고용안정, 임금, 노동시간, 복리후생 수준 등이 정해지고 나아가 마치 외부에 과시할 수 있는 ‘타이틀이자 배지’로도 작동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논란은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만 벌어지는 문제가 아니라 하위권 공기업, 7급 공무원 시험, 각종 9급 공무원 시험 등에서 소재를 바꾸어가며 똑같이 해당 서열에 들어가기를 희망하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재현되어왔던 것이고, 또 앞으로 반복될 것이다.
문제는 일자리 서열 구조에만 있지 않다. 행위 주체의 측면도 살펴보아야 한다. 구조적인 ‘이중 노동시장’ 문제를 방치하고서 주장되고 진행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과연 올바른 방향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이미 공공부문과 민간 대기업 일부를 포함한 20%의 일자리는 거대한 성벽 안에 존재하는 안정적이고 좋은 일자리다. 혹여 일각의 주장처럼 임금수준이 조금 낮다 하더라도 성벽 안에 들어가서 얻게 되는 안정성과 향후의 기대이익이 높다는 점은 변함없다.
문제는 성벽 밖에 완전히 다른 논리와 비합리적 처우로 존재하는 80%의 거대한 노동시장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구조와 서열화된 일자리 체제에서는 성벽 안으로 아무리 사람들을 밀어넣는다고 해도 오히려 또 다른 격차의 공고화로 작동할 뿐이다. 실제 지금 진행되는 정규직화는 성벽 안과 밖의 ‘동일노동·동일임금’이라는 원칙 없이 격차를 벌리고 있다. 정규직화 이후 전환된 사람들과 노동조합은 오히려 다시 외부와 자신을 구별하는 성벽을 쌓는 데 몰두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80%의 비합리적 노동시장에서 경쟁하는 또 다른 젊은이들은 아예 이번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화 논란에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사실 진짜 ‘불공정하다’는 불만의 목소리는 기존 공기업 정규직들이 아니라 아무런 대책도 주어지지 않는 성벽 밖의 이들에게서 나와야 할지도 모른다. 정부가 더 예민하게 귀 기울여야 하는 대상은 사실 바로 이 사람들의 목소리이며, 청와대와 대통령 역시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비정규직 제로’의 슬로건으로 퍼포먼스를 선보일 것이 아니라 성벽 밖 무법 광야에 대한 책임 있는 정책을 함께 제시했어야 한다.
정규직화 이후의 문제에 대해서도 깊이 숙고해보아야 한다. 정규직화 과정에서 약한 수준의 직무급을 적용하여 민간 노동시장과의 차이를 고려했다 하더라도 정규직화 이후 노동조합의 전략은 ‘호봉제 쟁취’ ‘동일 직군으로의 통합’ 등으로 전환될 수 있다. 공공부문 경영진들은 시끄러운 노사갈등을 유발할 바에는 경영진 임기 만료 이후 닥칠 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채 그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이 높고 실제로도 그러하다. 노동운동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함께 ‘직무급 도입 반대’ 및 호봉제 쟁취를 주장한다. 전략적으로 볼 때 이런 형태의 정규직화가 노동자 내부의 연대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업무평가와 인사승진 시스템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기업이라는 관료제 체계에서 상·하급자 관계, 업무지시 권한과 인사승진 평가 등 논의해야 할 수많은 문제가 있다. 이에 대한 세밀한 정책 설계가 있지 않은 한 이는 기존 정규직과의 공정성 논란 2라운드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비정규직은 악이고 정규직은 선인가
자회사 방식의 정규직화를 악(惡)처럼 규정하는 것도 문제다. 기업의 집중화된 목표와 업무는 다양하게 설계할 수 있다. 무조건 본사에 다 집어넣는 것이 꼭 정답은 아닐 수 있다. 물론 이는 자회사가 제대로 된 자회사일 때 가능하다. 현실에서 자회사는 기존 용역회사의 규모를 조금 더 키운 것에 불과하다. 처우 개선, 자체적인 사내 복지, 충분한 역량 강화 등에 투자할 수 있는 여지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노동계도 마찬가지다. 본사의 노동조합들이 자회사 노동조합들과 공동 노사협의회를 만든다든지, 더 나아가 집단교섭으로 본사와 자회사 사측과 협상을 할 수 있도록 전략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이제 우리는 ‘비정규직은 악(惡)이고, 정규직은 선(善) 또는 정의(正義)’라는 단순한 논리를 벗어나 생각해야 한다. 같은 논리대로라면 직무급과 자회사는 악인가? 호봉제, 연공급 시스템과 공채채용은 정의인가? 선과 악, 공정과 불공정, 정의와 불의라는 이분법으로 현실의 노동시장 문제를 규정지을 수 없다. 우리는 정의와 공정을 찾을 게 아니라 현실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최선 또는 차선’을 찾고 선택해야 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마지막으로 3년 전에 답변하지 못했던 그 청년의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미안하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만든 세상이다. 당신들에게 공정과 진리라고 강요해왔던 그곳이다. 그러니 당신의 과거와 지금의 혼란은 우리 책임이다. 마지막까지 우리를 비난하고 저주해도 좋다. 이제 와서 고작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과거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누군가의 미래를 아주 조금 바꾸는 것뿐이다.”
*이 글은 주간지 시사인 669호에도 실린 글입니다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402&fbclid=IwAR2bPi4EX8uksTIuJ8pHiTLaHeQ3JCryVS8fUVjpDuleyxHseMtKTN40RRQ )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둘러싼 논쟁을 보면서 마키아벨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마키아벨리는 그의 저서 〈군주론〉에서 인간 내면의 복잡한 본성에 대해 이렇게 썼다.
참으로 비정한 표현이지만 일견 수긍이 가기도 한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원래 내 것이 아니었지만,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은 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이 혈육의 정보다 ‘내 것’을 빼앗기는 것에 더 분노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는 이 오래된 금언이 지금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둘러싼 논쟁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보안검색 요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본사로 정규직화되더라도 정규직들이나 공기업 시험을 준비 중인 취업준비생들이 가진 것을 빼앗기는 건 아니지 않은가?
다수의 취업준비생들과 기존 정규직 직원들이 말하는 내 것은 지금 가지고 있는 노동조건이 아니라 해당 기업에 다니기 위해 그동안 투여해왔던 ‘시간과 노력, 그리고 자원’들을 말한다. 그러니까 현재 또는 미래가 아니라 ‘피, 땀, 눈물’이 서려 있는(또는 그렇게 믿고 있는) 과거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현재와 미래는 개선 가능성의 영역이지만 과거는 타임머신을 가능케 하는 새로운 물리법칙이 등장하지 않는 한 보상도 개선도 불가능한 영역이다.
서울시 산하 공기업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진행할 때 이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는 젊은 정규직 청년이 있었다. 그 청년은 20대 내내 계약직과 파견직을 전전하며 수많은 차별과 멸시를 경험했다고 한다. 비정규직이라는 신분으로는 인간적 모멸과 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깨달은 그는 노량진 고시원으로 들어가 3년간 열심히 시험공부를 한 끝에 서울시 산하 공기업에 정규직으로 입사할 수 있었다. 그는 거꾸로 이렇게 반문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청년의 반문에 제대로 답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당시에 나는 가지고 있지 못했다.
처우의 차이가 아닌 신분의 차이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둘러싸고 수많은 말의 향연이 이어진다. ‘로또 취업’ ‘가짜 뉴스’ ‘취준생의 분노’ ‘공정과 정의’ 등이다. 사실 본사로 편입되는 직군(보안검색)의 경우 기존 인천국제공항공사 사무직 등 정규직 직군을 희망하던 취업준비생들이 지원하는 것도 아니고 임금체계 및 수준도 명확히 다르다. 고용안정과 약간의 노동조건 개선 수준이다. 이에 대해 ‘로또 취업’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다만 논란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시험을 통한 공채 선발’이라는 한국 사회의 인력 채용 시스템에 대한 부분은 반드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과거 서울시에서 당황스러웠던 적은 최소 3~7년간 성실하고 문제없이 업무를 수행해온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동일 업무 경험이 전혀 없는 공채 출신 신입사원 정규직이 반대하는 것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보상받지 못하는 과거에 대한 박탈감은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다소 비정한, 기업의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고려하면 동일 업무에 검증된 업무능력이 있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더 높은 임금의 정규직 공채를 선발하여 다시 몇 년의 숙련을 쌓게 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우리 사회 공공부문 또는 주요 민간 대기업 역시 기업의 효율성이나 업무의 숙련도를 고려하기보다는 때로 굉장히 비효율적이더라도 공채 시스템을 통해서 인력을 선발하고 있다. 이러한 시험을 통한 ‘공채 선발 시스템’이 주요한 인력 채용의 방식으로 작동하는 한 정규직화를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이런 시스템은 ‘공공부문(또는 민간 대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를 고용안정, 임금수준 같은 처우의 차이가 아니라 ‘신분’의 차이로 만들어버린다. 이는 마치 대학 서열화 체제와 유사한데, 수능점수 등을 몇 점 맞았는지에 따라 SKY-인(in)서울-지방 국립/사립대-2년제/3년제 대학 등으로 이어지는 서열화 체제처럼 한국 사회 일자리가 5급 공무원-상위권 공기업-민간 대기업-중소기업 등으로 서열화되어 작동하고 있다.
당연히 이러한 서열화 구조 안에서 고용안정, 임금, 노동시간, 복리후생 수준 등이 정해지고 나아가 마치 외부에 과시할 수 있는 ‘타이틀이자 배지’로도 작동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논란은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만 벌어지는 문제가 아니라 하위권 공기업, 7급 공무원 시험, 각종 9급 공무원 시험 등에서 소재를 바꾸어가며 똑같이 해당 서열에 들어가기를 희망하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재현되어왔던 것이고, 또 앞으로 반복될 것이다.
문제는 일자리 서열 구조에만 있지 않다. 행위 주체의 측면도 살펴보아야 한다. 구조적인 ‘이중 노동시장’ 문제를 방치하고서 주장되고 진행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과연 올바른 방향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이미 공공부문과 민간 대기업 일부를 포함한 20%의 일자리는 거대한 성벽 안에 존재하는 안정적이고 좋은 일자리다. 혹여 일각의 주장처럼 임금수준이 조금 낮다 하더라도 성벽 안에 들어가서 얻게 되는 안정성과 향후의 기대이익이 높다는 점은 변함없다.
문제는 성벽 밖에 완전히 다른 논리와 비합리적 처우로 존재하는 80%의 거대한 노동시장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구조와 서열화된 일자리 체제에서는 성벽 안으로 아무리 사람들을 밀어넣는다고 해도 오히려 또 다른 격차의 공고화로 작동할 뿐이다. 실제 지금 진행되는 정규직화는 성벽 안과 밖의 ‘동일노동·동일임금’이라는 원칙 없이 격차를 벌리고 있다. 정규직화 이후 전환된 사람들과 노동조합은 오히려 다시 외부와 자신을 구별하는 성벽을 쌓는 데 몰두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80%의 비합리적 노동시장에서 경쟁하는 또 다른 젊은이들은 아예 이번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화 논란에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사실 진짜 ‘불공정하다’는 불만의 목소리는 기존 공기업 정규직들이 아니라 아무런 대책도 주어지지 않는 성벽 밖의 이들에게서 나와야 할지도 모른다. 정부가 더 예민하게 귀 기울여야 하는 대상은 사실 바로 이 사람들의 목소리이며, 청와대와 대통령 역시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비정규직 제로’의 슬로건으로 퍼포먼스를 선보일 것이 아니라 성벽 밖 무법 광야에 대한 책임 있는 정책을 함께 제시했어야 한다.
정규직화 이후의 문제에 대해서도 깊이 숙고해보아야 한다. 정규직화 과정에서 약한 수준의 직무급을 적용하여 민간 노동시장과의 차이를 고려했다 하더라도 정규직화 이후 노동조합의 전략은 ‘호봉제 쟁취’ ‘동일 직군으로의 통합’ 등으로 전환될 수 있다. 공공부문 경영진들은 시끄러운 노사갈등을 유발할 바에는 경영진 임기 만료 이후 닥칠 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채 그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이 높고 실제로도 그러하다. 노동운동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함께 ‘직무급 도입 반대’ 및 호봉제 쟁취를 주장한다. 전략적으로 볼 때 이런 형태의 정규직화가 노동자 내부의 연대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업무평가와 인사승진 시스템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기업이라는 관료제 체계에서 상·하급자 관계, 업무지시 권한과 인사승진 평가 등 논의해야 할 수많은 문제가 있다. 이에 대한 세밀한 정책 설계가 있지 않은 한 이는 기존 정규직과의 공정성 논란 2라운드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비정규직은 악이고 정규직은 선인가
자회사 방식의 정규직화를 악(惡)처럼 규정하는 것도 문제다. 기업의 집중화된 목표와 업무는 다양하게 설계할 수 있다. 무조건 본사에 다 집어넣는 것이 꼭 정답은 아닐 수 있다. 물론 이는 자회사가 제대로 된 자회사일 때 가능하다. 현실에서 자회사는 기존 용역회사의 규모를 조금 더 키운 것에 불과하다. 처우 개선, 자체적인 사내 복지, 충분한 역량 강화 등에 투자할 수 있는 여지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노동계도 마찬가지다. 본사의 노동조합들이 자회사 노동조합들과 공동 노사협의회를 만든다든지, 더 나아가 집단교섭으로 본사와 자회사 사측과 협상을 할 수 있도록 전략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이제 우리는 ‘비정규직은 악(惡)이고, 정규직은 선(善) 또는 정의(正義)’라는 단순한 논리를 벗어나 생각해야 한다. 같은 논리대로라면 직무급과 자회사는 악인가? 호봉제, 연공급 시스템과 공채채용은 정의인가? 선과 악, 공정과 불공정, 정의와 불의라는 이분법으로 현실의 노동시장 문제를 규정지을 수 없다. 우리는 정의와 공정을 찾을 게 아니라 현실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최선 또는 차선’을 찾고 선택해야 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마지막으로 3년 전에 답변하지 못했던 그 청년의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이 글은 주간지 시사인 669호에도 실린 글입니다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402&fbclid=IwAR2bPi4EX8uksTIuJ8pHiTLaHeQ3JCryVS8fUVjpDuleyxHseMtKTN40RRQ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