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가 출범한지 8개월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처음에는 민주화 이후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압도적인 180석이 넘는 의석이 집권여당에게 갖추어졌고 60% 중반에 육박하던 정부의 지지율이 불과 몇 개월만에 30%대 중반으로 급격히 하락했다. 집권여당의 지지율도 오차범위 내에서 야당 밑으로 내려갔다. 그 흔들림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 지난 몇 개월간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21대 국회가 출범하기 전까지 정치의 주요 무대는 ‘청와대’였다. 거의 모든 정치적 기획과 퍼포먼스가 ‘청와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이는 이전 정부와는 다른 소통을 바라는 시민들의 기대감과 혼합되며 높은 국정지지율로 이어졌다. 코로나19 펜데믹이라는 위기에서 시민들은 더 질서정연하고 강한 집권여당을 원했고 이는 선거대승리로 이어졌다. 그러나 문제는 승리 이후다. ‘큰 승리’는 ‘큰 기대’를 낳는 법이다. 집권여당에게 180석이라는 유례없는 의석을 안겨준 것이 ‘민심’이었다면 그 민심의 의도는 이제 ‘청와대’를 무대로 ‘감동적인 퍼포먼스’를 보여 줄 것이 아니라 ‘국회’를 무대로 ‘실질적인 성과’를 내라는 메시지로 이해해야 한다. 21대 국회가 출범하던 2020년 5월부터는 이제 ‘청와대의 시간’가 아닌 ‘국회의 시간’이 되었어야 했다.
△이미지=클립아트코리아
그러나 시간은 그렇게 흐르지 않았다. 21대 국회는 여전히 ‘청와대의 시간’ 속에 있었다. 2019년 ‘조국 민정수석’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빚었던 갈등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2차전으로 그대로 이어졌다. 개헌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규모인 180석이 넘는 의석을 가진 집권여당은 이 과정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청와대’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응원군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갈등의 원인이 된 ‘검찰개혁’이라는 이슈가 ‘강도’는 강하지만 ‘폭’은 좁은 갈등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슈는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진영을 동원하는 효과는 강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슈에서 멀어지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보통의 사람들은 스스로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타인의 문제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도 소위 ‘추-윤 갈등’에 종지부를 찍은 ‘징계처분 효력정지’에 대해서 사법부가 지금과 다른 판단을 했다고 하더라도 정치의 결과는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정치에서는 넓게 대표할 때 강하다. 보통 이렇게 말하면 “중도파를 껴안아라” 같은 이야기로 이해하고는 한다. 그러나 넓게 대표한다는 말은 중도를 포섭하기 위해 중간으로 이동하라는 말이 아니다. 좁은 이슈나 갈등에서 싸우지 말고 더 넓고 큰 갈등과 쟁점으로 싸우라는 말이다. 특히 180석이나 되는 큰 의석을 가진 집권여당은 더 넓고 더 풍부한 이슈와 갈등으로 국정을 리드하고 구체적 개혁 성과를 보여 줄 수 있어야 했다. 노동, 경제, 복지 등의 영역이 바로 그러한 갈등이며 “시간이 지나면 흥미를 잃어버릴 남의 싸움”이 아닌 누구에게나 “오늘도 내일도 절실한 나의 싸움”인 이슈다. 그러나 21대 국회의 첫 해는 가장 좁은 갈등의 영역에서 정치의 시간이 흘러갔다. ‘검찰개혁’ 이슈가 잦아들자 21대 국회가 다루어야 하는 진짜 중요한 이슈가 뒤늦게 숨통을 트고 고개를 들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이 그러한 이슈다.
이런 과정을 복기해보면 향후 노동조합들의 정치활동 방향도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노동조합들은 무정형의 여론을 쫓아가며 ‘찬/반’의 목소리를 보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론이 주목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더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민주주의에서 노동조합과 같은 결사체의 본령은 ‘여론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여론이 주목하지 못하는 의견을 ‘조직’하고 새로운 갈등을 불러 일으키는 것임을 깊이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노동정치’라는 단어가 민주주의에서 가지는 특별한 의미일 것이다.
*이 글은 한국노총 기관지 <노동과희망>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news.inochong.org/detail.php?number=2897&thread=23r14
21대 국회가 출범한지 8개월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처음에는 민주화 이후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압도적인 180석이 넘는 의석이 집권여당에게 갖추어졌고 60% 중반에 육박하던 정부의 지지율이 불과 몇 개월만에 30%대 중반으로 급격히 하락했다. 집권여당의 지지율도 오차범위 내에서 야당 밑으로 내려갔다. 그 흔들림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 지난 몇 개월간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21대 국회가 출범하기 전까지 정치의 주요 무대는 ‘청와대’였다. 거의 모든 정치적 기획과 퍼포먼스가 ‘청와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이는 이전 정부와는 다른 소통을 바라는 시민들의 기대감과 혼합되며 높은 국정지지율로 이어졌다. 코로나19 펜데믹이라는 위기에서 시민들은 더 질서정연하고 강한 집권여당을 원했고 이는 선거대승리로 이어졌다. 그러나 문제는 승리 이후다. ‘큰 승리’는 ‘큰 기대’를 낳는 법이다. 집권여당에게 180석이라는 유례없는 의석을 안겨준 것이 ‘민심’이었다면 그 민심의 의도는 이제 ‘청와대’를 무대로 ‘감동적인 퍼포먼스’를 보여 줄 것이 아니라 ‘국회’를 무대로 ‘실질적인 성과’를 내라는 메시지로 이해해야 한다. 21대 국회가 출범하던 2020년 5월부터는 이제 ‘청와대의 시간’가 아닌 ‘국회의 시간’이 되었어야 했다.
△이미지=클립아트코리아
그러나 시간은 그렇게 흐르지 않았다. 21대 국회는 여전히 ‘청와대의 시간’ 속에 있었다. 2019년 ‘조국 민정수석’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빚었던 갈등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2차전으로 그대로 이어졌다. 개헌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규모인 180석이 넘는 의석을 가진 집권여당은 이 과정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청와대’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응원군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갈등의 원인이 된 ‘검찰개혁’이라는 이슈가 ‘강도’는 강하지만 ‘폭’은 좁은 갈등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슈는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진영을 동원하는 효과는 강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슈에서 멀어지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보통의 사람들은 스스로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타인의 문제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도 소위 ‘추-윤 갈등’에 종지부를 찍은 ‘징계처분 효력정지’에 대해서 사법부가 지금과 다른 판단을 했다고 하더라도 정치의 결과는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정치에서는 넓게 대표할 때 강하다. 보통 이렇게 말하면 “중도파를 껴안아라” 같은 이야기로 이해하고는 한다. 그러나 넓게 대표한다는 말은 중도를 포섭하기 위해 중간으로 이동하라는 말이 아니다. 좁은 이슈나 갈등에서 싸우지 말고 더 넓고 큰 갈등과 쟁점으로 싸우라는 말이다. 특히 180석이나 되는 큰 의석을 가진 집권여당은 더 넓고 더 풍부한 이슈와 갈등으로 국정을 리드하고 구체적 개혁 성과를 보여 줄 수 있어야 했다. 노동, 경제, 복지 등의 영역이 바로 그러한 갈등이며 “시간이 지나면 흥미를 잃어버릴 남의 싸움”이 아닌 누구에게나 “오늘도 내일도 절실한 나의 싸움”인 이슈다. 그러나 21대 국회의 첫 해는 가장 좁은 갈등의 영역에서 정치의 시간이 흘러갔다. ‘검찰개혁’ 이슈가 잦아들자 21대 국회가 다루어야 하는 진짜 중요한 이슈가 뒤늦게 숨통을 트고 고개를 들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이 그러한 이슈다.
이런 과정을 복기해보면 향후 노동조합들의 정치활동 방향도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노동조합들은 무정형의 여론을 쫓아가며 ‘찬/반’의 목소리를 보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론이 주목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더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민주주의에서 노동조합과 같은 결사체의 본령은 ‘여론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여론이 주목하지 못하는 의견을 ‘조직’하고 새로운 갈등을 불러 일으키는 것임을 깊이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노동정치’라는 단어가 민주주의에서 가지는 특별한 의미일 것이다.
*이 글은 한국노총 기관지 <노동과희망>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news.inochong.org/detail.php?number=2897&thread=23r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