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만큼 많은 임금체불과 지방정부의 근로감독권

조성주(정치발전소 상임이사)
2020-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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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만큼 많은 임금체불 건수 


2020년 현재 한국의 자동차 등록 대수는 약 2300만 대다. 그리고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19년 한 해 동안 한국에서 크고 작은 교통사고가 약 22만9000건 발생했다. 부상자는 34만명에 달한다. 

2020년 현재 15세에서 64세까지 한국의 경제활동인구는 약 2500만명이고, 2018년 한 해 동안 일어난 임금체불은 약 22만5000건이었다. 임금체불을 당한 사람의 수는 35만명에 이른다.


매년 일어나는 교통사고 규모와 임금체불 규모를 늘어놓고 보면 묘하게 비슷하다. 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크고 작은 교통사고의 빈도만큼 임금체불이 매년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랄 수도 있겠다. 반대로 임금체불 경험은 있지만 운전을 하지 않는 사람은 한국에서 운전하는 것이 굉장히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과연 어느 쪽이 비정상적인 수치일까? 

교통사고는 자신이 아무리 안전하게 운전해도 의도치 않게 경험할 수 있는, 말 그대로 ‘사고’에 해당하는 것이라면(물론 안전운전이나 교통법규 준수 등으로 어느 정도 예방할 수는 있다), 임금체불은 그것을 금지하고 처벌하는 확실한 법률과 제도가 존재함에도 명백한 인간의 의도가 개입되는 것이라는 차이가 있다.


<그림 윤현지. 사진출처 : 시사인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990>


한국의 임금체불액은 2018년도 기준 약 1조6000억원으로 경제 규모가 3배 정도 큰 일본보다 오히려 10배 많고, 우리보다 인구가 6배 이상인 미국과 비교해도 많다. 이 정도면 임금체불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다양한 정책적 시도가 있었지만 완화되는 경향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는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


최근 지방정부 차원의 다양한 노동행정이 실험, 집행되고 있다. 지방정부들은 다양한 정책을 도입하여 미조직·비정규직 노동 등 중앙정부 노동행정의 빈구석을 메우며 수년에 걸쳐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이러다 보니 서울시와 경기도를 중심으로 고용노동부가 가진 ‘근로감독권’을 지방정부에도 이양해달라는 요구가 나온다.

최근 지방정부들이 노동행정에서 새로운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기업과 노동자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근로감독권을 분산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많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권한을 둘러싼 논쟁을 좀 더 생산적인 결과로 바꿀 수는 없을까? 앞서 짚어본 고질적 문제인 임금체불의 대안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소액 임금체불’ 근로감독은 지방정부가 맡도록


근로감독관들의 가장 큰 고충은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1인당 수백 건에 달하는 임금체불 사건을 다루면서 불법파견, 부당노동행위 등 심도 깊은 기획이 필요한 영역에 대한 수사를 하는 게 어렵다고 호소한다. 이런 양쪽의 요구와 어려움을 고려하여 ‘소액 임금체불’에 대한 근로감독을 지방정부에서도 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은 어떨까?


접근성과 생활밀접성이 강한 지방정부가 상대적으로 법적 판단 여부가 간단한 소액 임금체불에 관해 신고 및 처리 절차를 갖추어 해결한다면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들이 산업안전 및 기획감독에 집중하도록 여유를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위생, 안전 같은 영역에서 점검·조치 등의 수단이 있는 지방정부는 임금체불이 많이 일어나는 서비스업 등에 대해서도 특기를 발휘할 수 있다. 

좀 더 나아가 근로계약서 작성, 임금체불, 휴게시간 준수 등 ‘기초고용질서’ 영역은 지방정부가 상시 감독하고, 고용노동부의 각 지청은 기업의 부당노동행위나 굵직한 노동사건 등을 전담하도록 이원화하는 것도 고려해봄직하다.


모든 사회적 자원과 힘을 중앙에 집중시켜 강력한 공권력으로 해결하려 하는 것은 사실 과거의 권위주의 정치와 닮아 있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주체들의 참여와 노력 속에서 더 좋은 성과를 내는 정치제도다. 이제 노동정책 역시 지방자치와 민주주의의 발전 속도에 맞게 새로운 고민과 시도를 해볼 필요가 있다.



*이 글은 시사주간지 시사IN 683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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