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고용보험’은 '노동시민'의 기본권 - 어떻게 '노동자'의 이름을 되찾을 것인가?

조성주 정치발전소 상임이사
2020-05-14
조회수 1219

‘전국민고용보험’은 ‘노동시민'의 기본권

- 어떻게 '노동자'의 이름을 되찾을 것인가?


조성주 (정치발전소 상임이사)


<사진출처 : https://www.labourrightslaw.com/2018/10/22/benefits-employment-insurance/ >


‘전국민고용보험’에 대한 논의가 의외로 뜨겁다. 물론 최근 정부 여당이 자영업자들의 보험료 납부에 대한 반발 우려와 예산 규모 등을 이유로 반 발짝 물러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청와대 정무수석 나아가 대통령이 나서서 공식 언급했고 노동계 역시 공식적으로 주장하고 나섰다. 노동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왔던 학계 연구자들 역시 환영하는 분위기다.


코로나19 사태 초기만 하더라도 ‘기본소득’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한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의 재난지원금 정책이 주요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지원 규모·지원대상·시급성 유무 등을 둘러싼 반론과 현실적 조건들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전국민건강보험처럼 사회안전망 강화가 시급하다는 의견들이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기본소득’처럼 전 국민의 기본적인 소득보장이라는 이상적 목표를 향해 나가는 것과 동시에 현재 노동시민들이 처한 한국 노동시장 구조에 대한 현실과제 역시 매우 중요하다. 이 글은 그런 측면에서 ‘전국민고용보험’논의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 이 과정을 통해 우리가 노동시민의 권리를 증진 시킬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보고자 한다.



한국 노동시장 이중구조에 대한 색다른 시각


우리는 일반적으로 한국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이야기할 때 ‘정규직-비정규직’으로 분리된 구조를 먼저 머릿속에 떠올린다. 실제 통계들도 이를 쉽게 증명해낸다. 물론 여기에 한국 특유의 ‘대기업/공공부문-중소기업’의 기업 규모별 격차문제도 중요한(어쩌면 더 중요한!) 요인으로 작동한다. 이 두 가지 구조가 대표적으로 한국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형성하며 소위 단단한 성벽 안에 대기업/공공부문·정규직 노동자가 속해있고 성벽 밖에 중소기업·비정규직 노동자가 있다는 구조적 도식을 익숙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19와 처럼  '97년 IMF사태'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합쳐진 것 같은 복합적 위기 상황이 도래하자 우리 노동시장에 잠복해있던 새로운 이중구조가 드러났다. 그것은 사회안전망 안 노동자와 그 밖에 떠돌아다니는 노동자의 경계다. 더 나아가 이렇게 과감하게 말해볼 수도 있겠다. 이전에는 한국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정규직-비정규직’이거나 ‘대기업/공공부문-하청/중소기업’으로 나뉘어 있었다면, 지금 드러나는 이중구조는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노동자와 아닌 노동자’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 경계 너머는 대기업/공공부문 중심의 한국 노동운동이 주목하지 못했던 곳이자 새롭게 등장한 산업 분야 기업들의 노동권에 대한 책임회피가 만들어낸 곳이다. 또한 이는 정치적으로 제도개혁에 집단적 의사를 투입할 수 없는 '노동없는 민주주의'가 소외시킨 시민집단들이 살아내고 있는 ‘암흑의 광야’라 할 수 있다.



해고가 살인인 노동자와 시지포스의 형벌 아래 있는 노동자



생각해보면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익숙한 구호에 들어맞는 노동자, 그러니까 실업시 기존 노동조건에서 추락 폭이 가장 큰 노동자는 중견 규모 이상 기업의 정규직 노동자다. 그러나 지금 코로나19 사태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파트타임, 특수고용,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경우는 해고가 ‘살인’이 아니라 ‘일상적’인 경험이다. 이들은 마치 시지포스의 형벌처럼 끊임없이 바위를 밀어 올리고 떨어지고를 계속해서 반복할 뿐인데, 이들을 일정 높이 이하로 떨어지지 않게 할 사회안전망에서는 완전히 소외되어 있다. 


이 두 집단의 차이는 평상시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복합적 위기 상황에서는 명백히 드러난다. 휴업수당, 실업급여, 재택근무 등이 가능한 노동자와 이것이 아예 불가능하게 배제된 노동자 사이 차이다. 앞서 비정규직 여부, 기업 규모별 차이가 노동시장 이중구조 핵심요인이라면, 그 해결 방향은 정규직화, 기업 규모별 차이축소(동일노동 동일임금 등)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나타나는 사회안전망 안과 밖의 차이가 새로운 이중구조를 형성한다면, 이 영역에서는 사회안전망의 획기적 확대가 해결 방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전국민고용보험’은 '근로자'에서 ‘노동시민’으로 가는 첫 걸음


이렇게 새로운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만들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답변은 의외로 단순하다. 이들 고용 안전망에서 배제된 시민들 절대다수가 노동자로 호명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노동자 개념을 매우 좁게 해석하고 있다. 말 그대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만이 노동자로의 온전한 지위를 획득한다. 한 걸음 정도 나아가면 「노동조합법」상 노동자 개념까지 갈 수 있지만, 그 범위가 아직 크지 않다. 그러니 우리의 노동운동 구호가 ‘진짜 사장 나와라!’가 될 수밖에 없다(사장을 찾아야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임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에서 ‘전국민고용보험’이라는 주제는 단순히 사회안전망을 개혁하고 확대하는 문제의 범위를 넘어서는 문제로 다룰 필요가 있다. 그것은 누구를 노동자로 호명할 것인가의 문제고 무엇이 노동이며, 이에 대해 자본에 어디까지 책임을 부과할 것인가의 문제로 이어진다. 만약 ‘전국민고용보험’ 정책이 일정 정도 진전되어 특수고용, 프리랜서, 1인 자영업자(종속적 지위에 있는) 등이 고용보험법상 노동자 자격을 획득했을 때 이들은 모두 「노동조합법」상 노동자 지위를 획득할 수 있어야 한다(대법원 등의 판례를 보았을 때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 본다. 여성노조, 청년유니온 등의 사례). 


<사진출처 : https://www.kiplinger.com/ >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면 '노동조합'이라는 것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사업장에서 자신의 노동조건을 보호하는 조직이 아니라 헌법적 결사의 권리에 기초해 경제 시민으로서 노동권을 단결권으로 보장하는 의미로 확대로 나아갈 수 있다. 민주주의 원리에 기초해 모든 노동시민은 결사의 권리에 기초한 단결권을 보장받아야 하기 때문이다(이런 측면에서 보면 전통적으로 한국 노동운동이 상정하는 노동조합 개념은 지나치게 좁고 이익결사체 개념을 넘어서지 못했다.). 


절대다수 노동시민들이 「고용보험법」상 노동자, 그리고 나아가 「노동조합법」상 노동자 지위를 획득했을 때 아마 남아있을 과제는 「근로기준법」상 권리를 어떻게 어디까지 적용하는가의 문제일텐데, 이 부분에 대해서 노동시민으로서의 보편적 권리를 보장하면서도 변화하는 산업구조, 각자의 노동형태 등에 걸맞게 다양한 변화된 형태를 설정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간 많은 시민과 노동운동의 노력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알려냈고 정규직화라는 성과도 적지 않게 이루어냈다. 그러나 조금 떨어져서 사태를 바라보면 우리가 해왔던 정규직화라는 요구가 또 다른 성벽을 쌓거나 이미 존재하는 높은 성벽 안으로 일부를 집어넣는 것에 그치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정작 성벽 밖 거대한 광야에 아무런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 채 시지포스의 형벌에 처해있는 절대다수의 노동시민들의 삶이 바스라져 가고 있다.. ‘전국민고용보험’은 이렇게 광야에서 방황하는 노동시민들에게 최소한의 보호를 위한 울타리를 치는 작업이자 절대다수의 시민을 노동자로 호명하고 권리를 위한 싸움에 나서게 하기 위한 의미 있는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잊지 말자. 변화의 바람은 늘 어두운 광야의 변방에서부터 불어온다.”


이 글은 비정규노동센터 정책칼럼에 기고한 글을 수정보완 한 글입니다.(http://workingvoice.net/xe/index.php?document_srl=30197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