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위기시대의 노동운동 12 - (2) 여전히 노동운동이 민주주의의 희망이지만...②

공식 관리자
2026-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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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전히 노동운동이 민주주의의 희망이지만...

목차


프롤로그

왜 여전히 ‘노동 있는 민주주의’인가? 


제1장. 민주주의와 노동운동

(1) 노동조합은 민주주의 경제적 ‘Voice’ : 엘버트 허시먼의 <exit, voice, loyalty>

(2) 갈등의 매개자, 노동조합 : 샤츠.슈나이더 <절반의 인민주권>

(3) 21세기 국가와 노동조합의 관계 : 대런 애쓰모글로우의 <좁은 회랑>

(4) 노동조합은 계급의 무기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인프라’


제2장. 민주주의의 위기와 노동운동

(1) 불평등과 기술발전, 그리고 내부로부터 침식되는 민주주의의 위기

(2)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와 노동운동

(3)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민주주의 위기


제3장. 노동시장 삼국지(三國志)

(1) 노동시장 이중구조에서 삼국지로: 독립노동의 부상과 새로운 노동세계의 도래

(2) 전통적 이중구조의 균열

(3) 노동시장 삼국지의 권력구도


제4장. 노동운동의 전략적 전환 : 임금에서 민주주의로

(1) 임금에서 민주주의로

(2) 여전히 노동운동이 민주주의의 희망

(3) 기후위기 시대, 노동운동의 새로운 사명 ― 정의로운 전환


제5장. 한국 민주주의의 재구성 

(1)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취약성

(2) 노동 있는 민주주의의 세 가지 기둥: 평등, 참여, 연대

(3) 노동정치의 갱신: 계급 대 결사체의 정치


에필로그

좋은 일자리를 넘어, 좋은 시민을 만드는 노동운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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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대에게 전략이 없다면, 그대는 다른 누군가의 전략의 일부다. 

If you don’t have a strategy, you’re part of someone else’s strategy. — 앨빈 토플러 (Alvin Toffler, 1928~2016)


앞서 이야기했듯이 한국의 노동운동이 민주주의 안에서 수행해왔던 역할을 조금 냉정하게 조망해보면 당장에 한국의 노동운동이 변화하는 시대에 맞는 역할 변경을 스스로 해나가기에 어려운 조건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업별 노동조합 체제와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유지되면서 선진국 경제 대열에 한국경제가 돌입했다는 현실은 노동운동의 주류질서가 민주주의 위기와 불평등 해소를 위해 먼저 전략적 전환을 하기 어려운 조건을 형성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변화의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노동운동이 변화할 기회는 아이러니하게도 사실은 노동운동이 위기에 처할 때 가능하다. 노동운동 스스로가 전략이 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운동의 변화가 다른 더 큰 개혁을 위한 중요한 전략이 될 때 노동운동의 가치는 올라가고 또 변화의 기회 역시 열릴 수 있다. 현재 한국경제와 민주주의가 마주하고 있는 가장 큰 위기는 AI로 대표되는 산업변화와 야수화 되고 있는 민주주의, 이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다가오는 두 방향의 큰 변화 속에서 한국의 노동운동이 처해있는 위기상황을 짚어보고 이에 따른 대응전략을 고민해보는 과정에서 노동운동의 새로운 전환을 위한 단초를 얻어볼 수 있을 것이다.



(1) AI와 산업변화를 중층적 교섭과 사회적대화의 기회로


먼저 AI로 대표되는 산업과 노동의 전환이다. 이 변화는 말 그대로 노동조합이 존재할 수 있는 근간을 흔들고 있다. 현재 생성형AI와 피지컬AI로 대표되는 급격한 산업전환과 현장에서의 노동의 변화는 노동운동이 기존의 임금극대화를 지향하는 방식의 기업별 교섭체제로 대응할 수 있는 규모를 넘어선다. 이는 한국의 주요산업이 AI로 인해 초래되는 글로벌 공급망 변화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와 국가차원에서의 산업전략과 직결되는 문제다. 한편 일자리나 노동현장에 있어서도 AI와 기술변화에 대한 노동운동의 대응 역시 기업단위로 논의되기에는 더 거대한 문제다. 따라서 당장에 임금과 기업복지에서의 교섭의 중요성이 줄어들지는 않겠지만 날이 갈수록 산업단위, 국가단위에서 노동운동이 자본과 국가와 함께 교섭해야 하는 필요성이 증가할 것이다. 


이 것을 기회로 <기업 – 산업 – 국가> 단위에서 중층적 교섭체제를 모색해볼 필요성이 있다. 기업단위에서는 임금극대화 전략보다는 노동시간 조정, 직무전환 등을 통해 최대한 고용을 유지하는 방향을 모색하고 산업단위에서는 AI등 기술도입의 범위와 방식에 대한 노동운동의 개입력을 높이고 산업전환에 대한 대응을 하는 교섭체제 또는 사회적 대화의 틀을 만들 필요가 있다. 국가 단위에서는 AI리터러시를 비롯한 각종 교육훈련시스템, 모든 산업의 다양한 노동을 포함하는 사회안전망 구축, 각종 복지제도 개혁 등을 놓고 교섭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기업 – 산업 – 국가 단위의 중층적 교섭은 임금분배를 중심으로하는 기업별 교섭과 산업전환과 기술도입을 둘러싼 산업단위의 교섭 또는 사회적대화, 그리고 재분배와 제도개혁을 놓고 국가단위에서의 사회적대화라는 중층적 교섭과 사회적대화라는 방식으로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기업단위의 교섭의제와 산업단위, 그리고 국가단위의 교섭의제들이 구분되고 노동조합 역시 기업내부의 틀을 넘어 전체 사회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재배치하는 경험을 축적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2) 노동조합을 민주주의 조직으로 재구성


두 번째 변화인 ‘야수화되는 민주주의’라는 문제는 사회속에서 노동운동을 점점 고립시켜 결국 첫 번째 변화에 대한 노동운동의 대응력을 무력화시킨다. 나아가 민주주의의 위기는 노동운동 내부에서도 발생한다. 조합원들이 숙고하는 민주주의자가 아닌 개인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거듭하는 야수화된 포퓰리스트가 되어 갈 때 노동조합은 연대와 단결에 기초한 민주주의의 공적조직이 아닌 조합원들의 사적요구를 실현해주는데 매진하는 개인서비스 업체로 전락한다. 포률리즘적 공약이 난무하는 지도부 선거와 복수노조설립을 통해 선거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규범의 파괴, 책임지지 않는 투쟁전술로 인한 노사관계의 신뢰파괴 등은 이미 현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야수화되는 민주주의’의 노동판 현실이다.    


노동조합은 이제 우리 사회에 몇 개 남아있지 않은 민주주의의 훈련장이다. 정당은 유튜브에 무너졌다. 시민단체들은 분열되었다. 애국심은 배외주의와 너무나 쉽게 결합한다. 지금 이 무차별적인 혐오와 적대의 세계에서 적대적 관계일 수 밖에 없는 ‘사용자’하고도 한 테이블에 앉아서 협상하고 타협해야 하는 노동운동이 가지는 의미는 민주주의의 훈련장이자 연대의 마지막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노동운동은 의식적으로 조합원들에 대한 민주주의 교육과 훈련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노동운동의 주요간부들부터 민주주의에 대한 ‘낡은 운동권적 해석’을 넘어서는 노력을 해야하고 스스로를 재교육 해야 한다. 민주주의란 민중의 힘을 모아 권력과 대항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과 다른 생각들과 공존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인권의식과 연대의식을 높이기 위한 노력 역시 더 경주해야 한다. 그러나 이 역시 조합원들의 선한 마음에만 호소할 수는 없다. 노동운동이 사회에 대해 가지는 ‘윤리적 자부심’을 의도적으로 불어넣어 줄 필요가 있는데, 바로 여기서 정치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3) 노동운동에 대한 시혜적 시선을 넘어 전략의 주체로 


정치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정치행위중 하나는 시민집단에게 ‘자부심’을 부여하는 것이다. 노동운동의 구성원들이 특별히 타 집단보다 더 선하고 연대의식이 높지는 않다. 사회에서 그러한 역할을 부여받고 그것을 경험했을 때 변화할 수 있다. 연대가 갑자기 발생하지 않는다. 연대는 훈련되는 것이다. 이제 노동운동에 대해서 불쌍한 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한다는 식의 구시대적 시혜적 시선을 넘어서 전략적으로 노동운동에 연대의식을 훈련시키고 이를 기반으로 민주주의를 재활성화 하겠다는 다소 차갑지만 원대한 정치의 전략이 필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의 정치는 노동운동에게 시민집단에 기여하는 민주주의 조직으로서의 자부심을 심어줄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것을 잘 활용하지 못했다. 대표적으로는 김대중 정부 당시 건강보험개혁에 노동운동이 조직적 이익을 희생하면서도 건강보험 통합에 찬성하며 나섰던 것이나 지난 문재인 정부 당시 주52시간 상한제를 도입하면서 각종 수당의 할증과 같은 이익을 포기하고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에게도 공휴일을 적용할 수 있도록 한 것 등이 있다. 당시 정치가 이를 노동운동의 큰 결단으로 인정하고 이를 통해 사회에 노동운동이 필요한 이유와 역할을 제고하는 전략과 메시지를 시민들에게 인식시킬 수 있었다면 오히려 노동운동 내부에서도 긍정적 변화를 위한 에너지가 더 많이 축적될 수 있지 않았을까?


나아가 이제는 정부 역시 제도화되는 정책들에 대해서 기능적 효율성이나 개인의 권리추구라는 측면만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제도에서 어떻게 연대의식이 발현될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민주주의 위기시대의 제도개혁은 이제 어떤 시민을 만들어 낼 것인가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것은 근대이후 진보와 보수가 모두 암묵적으로 합의했던 이성적 인간상에 대한 반성적 성찰에도 기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