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위기시대의 노동운동 14 - 5장. 한국 민주주의의 재구성

공식 관리자
202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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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한국 민주주의의 재구성 


목차


프롤로그

왜 여전히 ‘노동 있는 민주주의’인가? 


제1장. 민주주의와 노동운동

(1) 노동조합은 민주주의 경제적 ‘Voice’ : 엘버트 허시먼의 <exit, voice, loyalty>

(2) 갈등의 매개자, 노동조합 : 샤츠.슈나이더 <절반의 인민주권>

(3) 21세기 국가와 노동조합의 관계 : 대런 애쓰모글로우의 <좁은 회랑>

(4) 노동조합은 계급의 무기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인프라’


제2장. 민주주의의 위기와 노동운동

(1) 불평등과 기술발전, 그리고 내부로부터 침식되는 민주주의의 위기

(2)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와 노동운동

(3)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민주주의 위기


제3장. 노동시장 삼국지(三國志)

(1) 노동시장 이중구조에서 삼국지로: 독립노동의 부상과 새로운 노동세계의 도래

(2) 전통적 이중구조의 균열

(3) 노동시장 삼국지의 권력구도


제4장. 노동운동의 전략적 전환 : 임금에서 민주주의로

(1) 임금에서 민주주의로

(2) 여전히 노동운동이 민주주의의 희망

(3) 기후위기 시대, 노동운동의 새로운 사명 ― 정의로운 전환


제5장. 한국 민주주의의 재구성 

(1)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취약성

(2) 노동 있는 민주주의의 세 가지 기둥: 평등, 참여, 연대

(3) 노동정치의 갱신: 계급 대 결사체의 정치


에필로그

좋은 일자리를 넘어, 좋은 시민을 만드는 노동운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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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한국 민주주의의 재구성 


한국 민주주의는 1987년 체제 이후 제도적 틀에서는 분명히 발전해 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적 기반은 취약해졌다. 선거는 정기적으로 치러지고 헌법적 자유도 보장되지만, 시민들은 정치에 냉소하고, 세대·젠더·지역·고용형태의 균열은 커졌다. 형식으로서의 민주주의는 남아 있는데, 그것을 지탱해 줄 ‘사회적 민주주의’가 약해진 것이다.


이 글에서 내세운 “노동있는 민주주의”란 바로 이 약해진 ‘사회’라는 기반을 다시 채우자는 제안이다. 지금의 문제는 수권정당이 바뀌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더불어 제3정당이나 진보정당의 재건이 문제를 해결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3정당이나 진보정당도 그 정당이 기반할 ‘사회’가 무너지면 결국은 거대정당의 그늘 아래서 위성정당과 같은 형태로 생존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작금의 정치 현실이 그것을 의미한다. 민주주의가 안정되려면, 시민들이 생계와 노동에서 느끼는 불안이 완화되어야 하고, 그 불만을 제도 안에서 표현할 수 있는 Voice의 통로가 넓어져야 한다. 그것이 사회가 강화되는 길이다. 노동조합, 다양한 직업공동체, 지역의 사회적경제, 사회적 대화 기구는 모두 그 통로가 될 수 있다.


이 제안은 또한 노동을 단순한 임금교섭의 주체가 아니라, 사회적 평등과 시민참여를 조직하는 핵심 주체로 다시 세우자는 구상이다. 민주주의는 스스로 유지되지 않는다. ‘노동이 있는’ 곳에서만 그것은 다시 살아나고 시민의 삶에 유의미한 정치체제로 기능할 수 있다.


(1)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취약성


민주주의는 제도의 문제이기 이전에 사회의 힘의 균형 위에 서 있다. 선거와 의회, 헌법과 법치가 아무리 완비되어 있어도, 그 제도를 지탱할 사회적 기반, 즉 일터에서의 평등과 존엄이 무너지면 민주주의는 쉽게 흔들린다.


정치학자들이 “민주주의의 질”을 논할 때, 그것은 단순히 투표 절차의 공정성이 아니라 시민들이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민주주의를 경험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이때 노동은 민주주의의 가장 일상적이고도 구체적인 경험의 장이다. 노동 없는 민주주의는 절반의 민주주의일 수밖에 없다. 노동이 분절되고 불안정할수록 시민은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없게 되고, 이는 곧 정치적 무력감으로 이어진다. 비정규직, 하청, 플랫폼 노동자처럼 일터의 민주주의가 부재한 이들은 제도정치에서도 주변화된다. 그들의 삶에는 ‘참여’보다 ‘생존’이 우선되고, ‘정치’보다 ‘체념’이 자리한다. 결국 노동의 불평등은 민주주의의 불평등으로 전이되고, 노동의 침묵은 민주주의의 침묵이 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역시 그런 관점에서 보면 민주주의의 불평등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최근 사회적으로 크게 논쟁이 되었던 거대 재벌대기업 노동조합들의 엄청난 규모의 성과급 요구와 협상결과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제 주류 노동운동이 일터에서의 평등과 존엄보다는 단기적 이익의 최대화를 노리는 한탕주의에 빨려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작 일터에서의 평등과 존엄이 필요한 주변부 노동시장의 플랫폼, 프리랜서, 하청,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말그대로 사회에서 밀려나고 있고 정치와 민주주의에서도 배제되고 있다. 


20세기의 민주주의는 노동이 정치의 중심으로 들어오며 성장했다. 유럽 복지국가의 기초에는 사회적 대화와 단체교섭이 있었고, 그것이 의회민주주의의 안정성과 사회적 신뢰를 낳았다. 반대로 노동이 주변화될 때 민주주의는 취약해졌다. 21세기 들어 노동조합 조직률이 하락하고 비정규·플랫폼 노동이 확산되자, 민주주의의 대표성과 책임성이 함께 약화되었다. ‘정치적 시민권’은 남았지만, ‘사회경제적 시민권’이 무너진 것이다. 이제 민주주의의 회복은 노동의 회복 없이는 불가능하다.


정치적 민주주의가 절차를 통해 성숙한다면, 사회적 민주주의는 노동을 통한 참여와 연대의 확대를 통해 완성된다. 노동운동은 단지 자본에 맞서는 세력이나 자본으로부터 최대의 이익을 쟁취해와서 부자 노동자가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사회적 기반의 일부로 스스로를 재정의해야 한다. 노동 없는 민주주의가 권력의 집중과 불평등의 고착을 낳았다면, 노동 있는 민주주의는 시민의 힘을 다시 사회의 중심으로 돌려세우는 일이다. 이것이 노동운동이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해 다시 나서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