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기후위기 시대, 노동운동의 새로운 사명이자 전환의 기회 ― 정의로운 전환
목차
프롤로그 왜 여전히 ‘노동 있는 민주주의’인가?
제1장. 민주주의와 노동운동 (1) 노동조합은 민주주의 경제적 ‘Voice’ : 엘버트 허시먼의 <exit, voice, loyalty> (2) 갈등의 매개자, 노동조합 : 샤츠.슈나이더 <절반의 인민주권> (3) 21세기 국가와 노동조합의 관계 : 대런 애쓰모글로우의 <좁은 회랑> (4) 노동조합은 계급의 무기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인프라’
제2장. 민주주의의 위기와 노동운동 (1) 불평등과 기술발전, 그리고 내부로부터 침식되는 민주주의의 위기 (2)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와 노동운동 (3)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민주주의 위기
제3장. 노동시장 삼국지(三國志) (1) 노동시장 이중구조에서 삼국지로: 독립노동의 부상과 새로운 노동세계의 도래 (2) 전통적 이중구조의 균열 (3) 노동시장 삼국지의 권력구도
제4장. 노동운동의 전략적 전환 : 임금에서 민주주의로 (1) 임금에서 민주주의로 (2) 여전히 노동운동이 민주주의의 희망 (3) 기후위기 시대, 노동운동의 새로운 사명 ― 정의로운 전환
제5장. 한국 민주주의의 재구성 (1)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취약성 (2) 노동 있는 민주주의의 세 가지 기둥: 평등, 참여, 연대 (3) 노동정치의 갱신: 계급 대 결사체의 정치
에필로그 좋은 일자리를 넘어, 좋은 시민을 만드는 노동운동으로 |

기후위기는 더 이상 환경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노동의 문제이자 생존의 문제, 나아가 민주주의의 문제다. 지구 평균기온 상승, 산업재해형 폭염, 에너지 전환으로 인한 산업 구조의 급변은 모두 노동자의 일자리와 삶의 조건을 근본에서 흔들고 있다. 탄소 감축 목표를 향한 산업정책이 본격화되면서, 기존 산업에 종사하던 수많은 노동자들이 전환의 불안에 직면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녹색 일자리’가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탄소 의존 산업’의 종사자들이 일자리 상실의 공포를 겪고 있다. 이것이 바로 기후위기가 노동운동에게 중요한 이유다. 기후위기는 곧 노동의 위기이며, 기후정의(climate justice) 없이는 노동의 정의도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기후 담론은 노동의 시각에서 충분히 다루어지지 못했다. 에너지 정책, 탄소세, 산업재편은 국가와 기업 중심으로 논의되어 왔고, 노동은 그저 ‘조정의 대상’으로 취급되었다. 하지만 기후위기의 충격은 특정 산업이나 지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제조업과 건설, 운수와 에너지, 돌봄과 서비스까지 모든 노동의 형태가 이 전환의 파고 속에 있다. 그렇다면 노동운동은 기후위기를 저항의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적 책무의 장으로 인식해야 한다. 다만 노동이 기후위기를 대응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이 위기와 변화에 대한 객관적이고 냉정한 인식도 필요하다. 이 장에서는 그런 지점에 대해서 검토해본다.
① ‘기후위기’가 곧 ‘자본주의 파국’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후위기라는 실존적이고 거대한 위협은 오히려 ‘권위주의’를 강화하는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이 이러한 지구적 위기, 그리고 오늘의 이해관계가 아닌 미래의 위협에 잘 대응하는 정치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이다. 때문에 오히려 시민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데 장점이 있는 민주주의 보다 오히려 일방적으로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장점이 있는 권위주의에 대한 선호를 더 강화시키기도 한다. 역설적으로 기후위기가 시급한 문제임을 강조할수록 다양한 이해관계의 당사자들의 의견이 주변화되는 결과로 귀결될 위험성도 그만큼 커진다. 때문에 우리가 민주주의라는 정체를 강조할 수록 위기의 규모에 비해 대응의 속도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통해 아슬아슬한 속도로 답답하게 진행될 수 밖에 없을 가능성이 크다. 이 답답함을 수용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민주주의가 아닌 권위주의를 선택하는 시민들의 증가하는 것을 목도할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한편 기후위기가 심화될 수록 오른쪽에서는 권위주의를 강화하는 결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만큼 왼쪽에서는 극단적인 체제변혁론이 더 주목받기도 한다. 기후위기가 곧 지금의 자본주의를 가능케 하는 체제의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에 기후위기에 대한 전환의 과정은 곧 자본주의 파국에 대응하는 체제변혁의 과정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파국론이 결국 수정자본주의의 출현을 만들어내서 체제개혁의 과정으로 귀결되었듯이 기후위기 역시 또 다른 수정된 자본주의 구조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AI와 반도체 산업, 그리고 전기자동차와 배터리 산업의 부상 등 역시 그러한 방향성이며 국제 무역질서 역시 새로운 질서로 재편되고 있다. 오히려 기후위기가 당장의 자본주의 변혁에 미치는 영향보다 노동의 입장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이러한 산업적 변화와 무역질서 등의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전략적 입장을 세우는 것이다.
지난 20세기 결국 노동운동이 자본주의 체제 변혁보다 수정과 개혁을 목표로 복지국가라는 과도기적 대안을 만들어냈듯이 더 현실적인 고민이 함께 필요해 보인다. 그리고 그래야만 노동운동이 내부의 구성원들을 설득할 수 있다. 올지 안올지 모르는 체제변혁에 대한 집착은 오히려 노동 내부의 구성원들에게 기후위기를 자신과 상관없는 먼 우주적 현상과도 같은 초거시적 문제로 인식시켜 결합력을 떨어트릴 위험성도 있기 때문이다.
② 정의로운 전환, 노동운동의 새로운 도전이자 전략이어야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탈탄소화와 산업 전환이 일자리의 파괴가 아니라 재구성의 과정이 되도록 만드는 전략이며, 환경정책을 노동정책과 결합시키는 사회적 기획이다. 그리고 나아가 민주주의의 원리에서 현재의 자본주의의 변화를 대응하는 가장 중요한 현실전략이다.
때문에 노동운동은 정의로운 전환의 정치적·사회적 주체로 나서야 한다. 첫째, 노동은 정책의 수혜자가 아니라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20세기 중반 고용보험, 노후연금, 산업안전 등의 영역에서 복지국가의 설계자로 노동운동이 기능했듯이 밀이다. 지금까지의 전환정책은 주로 정부와 산업계 주도의 ‘기술적·경제적 전환’으로 추진되어 왔지만, 진정한 정의로운 전환은 노동자의 참여를 통한 사회적 합의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노동조합은 산업별·지역별 차원에서 전환 계획 수립에 참여하고, 고용보장·직무전환·재교육 제도를 전환정책의 필수 요소로 포함시켜야 한다.
특히 지역 산업기반이 취약한 중소 제조업, 석탄화력·조선·자동차 등 탄소집약 산업의 경우, 노동조합이 중심이 되어 ‘지역 전환위원회’ 나 ‘산업별 기후대응협의체’ 를 구성해 고용·복지·교육이 통합된 전환 모델을 마련해야 한다. 노동 없는 탈탄소는 결국 불평등한 전환이며, 이는 사회적 저항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둘째, 노동운동은 노동시장 전환의 조정자이자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기후위기는 일자리를 없애기도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낸다. 재생에너지, 에너지 효율화, 녹색 건설, 공공 돌봄 등은 새로운 고용의 가능성이 열리는 영역이다. 문제는 이러한 일자리들이 제대로 된 임금, 안전, 권리를 갖춘 ‘양질의 녹색 일자리’ 로 자리 잡느냐는 것이다. 노동운동은 ‘기후 일자리’의 질적 기준을 제시하고, 고용보험·산재보험 등 기존 사회보장제도를 녹색산업 구조에 맞게 재설계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단순한 전직 훈련이나 지원금 수준을 넘어, 노동자의 권리와 안전을 보장하는 사회적 고용전환 시스템을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③ 위기를 사회연대의 새로운 기회로 활용해야
마지막으로, 노동운동은 정의로운 전환의 사회적 연대의 매개자가 되어야 한다. 기후위기는 세대 간, 계층 간, 지역 간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에너지 비용 상승은 저소득층 가계에 더 큰 부담을 주고, 환경재해는 사회적 약자에게 집중된다. 산업 내부에서도 대응력이 충분한 대기업 자본에 소속되어 있는가 아니면 대응력이 부족한 하청 중소기업에 소속되어 있는가에 따라 그 파급력이 크게 차이가 날 것이다. 따라서 정의로운 전환은 단지 산업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재조정이다. 노동운동은 시민사회, 환경단체, 지역공동체, 그리고 노동 내부의 다른 주체들과도 연대하여 ‘전환의 정의’를 먼저 규정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이 기후정책을 반대하거나 소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의로운 전환의 추진 세력으로 자리 잡을 때, 사회 전체의 신뢰와 연대가 강화된다. 이것이 기후위기를 민주주의의 위기로부터 구하는 길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는 위기 속에서도 ‘모두가 참여하는 전환’을 통해만 살아남는다.
한국의 노동운동이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기후정책이 산업정책으로, 산업정책이 노동정책으로, 노동정책이 곧 사회정책으로 이어지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은 이제 더 이상 ‘임금과 고용의 수호자’에 머물 수 없다. 기후위기 대응과 정의로운 전환은 노동운동의 새로운 민주주의 프로젝트다.
노동은 지구를 지키는 힘이자, 사회를 바꾸는 주체다. 과거의 노동운동이 권위주의에 맞서 자유와 평등의 공간을 열었다면, 오늘의 노동운동은 기후위기 속에서 지속가능한 민주주의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 노동의 미래는 “기후 없는 성장”이 아니라 “노동이 함께하는 전환”에 달려 있다. 정의로운 전환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과제이며, 노동운동이 이를 주도할 때 비로소 녹색 민주주의의 길이 열린다. 노동이 기후위기의 시대를 외면하지 않고, 새로운 정의의 언어로 대응할 때, 그 운동은 다시 한 번 사회의 미래를 이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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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왜 여전히 ‘노동 있는 민주주의’인가?
제1장. 민주주의와 노동운동
(1) 노동조합은 민주주의 경제적 ‘Voice’ : 엘버트 허시먼의 <exit, voice, loyalty>
(2) 갈등의 매개자, 노동조합 : 샤츠.슈나이더 <절반의 인민주권>
(3) 21세기 국가와 노동조합의 관계 : 대런 애쓰모글로우의 <좁은 회랑>
(4) 노동조합은 계급의 무기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인프라’
제2장. 민주주의의 위기와 노동운동
(1) 불평등과 기술발전, 그리고 내부로부터 침식되는 민주주의의 위기
(2)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와 노동운동
(3)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민주주의 위기
제3장. 노동시장 삼국지(三國志)
(1) 노동시장 이중구조에서 삼국지로: 독립노동의 부상과 새로운 노동세계의 도래
(2) 전통적 이중구조의 균열
(3) 노동시장 삼국지의 권력구도
제4장. 노동운동의 전략적 전환 : 임금에서 민주주의로
(1) 임금에서 민주주의로
(2) 여전히 노동운동이 민주주의의 희망
(3) 기후위기 시대, 노동운동의 새로운 사명 ― 정의로운 전환
제5장. 한국 민주주의의 재구성
(1)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취약성
(2) 노동 있는 민주주의의 세 가지 기둥: 평등, 참여, 연대
(3) 노동정치의 갱신: 계급 대 결사체의 정치
에필로그
좋은 일자리를 넘어, 좋은 시민을 만드는 노동운동으로
기후위기는 더 이상 환경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노동의 문제이자 생존의 문제, 나아가 민주주의의 문제다. 지구 평균기온 상승, 산업재해형 폭염, 에너지 전환으로 인한 산업 구조의 급변은 모두 노동자의 일자리와 삶의 조건을 근본에서 흔들고 있다. 탄소 감축 목표를 향한 산업정책이 본격화되면서, 기존 산업에 종사하던 수많은 노동자들이 전환의 불안에 직면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녹색 일자리’가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탄소 의존 산업’의 종사자들이 일자리 상실의 공포를 겪고 있다. 이것이 바로 기후위기가 노동운동에게 중요한 이유다. 기후위기는 곧 노동의 위기이며, 기후정의(climate justice) 없이는 노동의 정의도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기후 담론은 노동의 시각에서 충분히 다루어지지 못했다. 에너지 정책, 탄소세, 산업재편은 국가와 기업 중심으로 논의되어 왔고, 노동은 그저 ‘조정의 대상’으로 취급되었다. 하지만 기후위기의 충격은 특정 산업이나 지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제조업과 건설, 운수와 에너지, 돌봄과 서비스까지 모든 노동의 형태가 이 전환의 파고 속에 있다. 그렇다면 노동운동은 기후위기를 저항의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적 책무의 장으로 인식해야 한다. 다만 노동이 기후위기를 대응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이 위기와 변화에 대한 객관적이고 냉정한 인식도 필요하다. 이 장에서는 그런 지점에 대해서 검토해본다.
① ‘기후위기’가 곧 ‘자본주의 파국’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후위기라는 실존적이고 거대한 위협은 오히려 ‘권위주의’를 강화하는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이 이러한 지구적 위기, 그리고 오늘의 이해관계가 아닌 미래의 위협에 잘 대응하는 정치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이다. 때문에 오히려 시민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데 장점이 있는 민주주의 보다 오히려 일방적으로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장점이 있는 권위주의에 대한 선호를 더 강화시키기도 한다. 역설적으로 기후위기가 시급한 문제임을 강조할수록 다양한 이해관계의 당사자들의 의견이 주변화되는 결과로 귀결될 위험성도 그만큼 커진다. 때문에 우리가 민주주의라는 정체를 강조할 수록 위기의 규모에 비해 대응의 속도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통해 아슬아슬한 속도로 답답하게 진행될 수 밖에 없을 가능성이 크다. 이 답답함을 수용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민주주의가 아닌 권위주의를 선택하는 시민들의 증가하는 것을 목도할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한편 기후위기가 심화될 수록 오른쪽에서는 권위주의를 강화하는 결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만큼 왼쪽에서는 극단적인 체제변혁론이 더 주목받기도 한다. 기후위기가 곧 지금의 자본주의를 가능케 하는 체제의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에 기후위기에 대한 전환의 과정은 곧 자본주의 파국에 대응하는 체제변혁의 과정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파국론이 결국 수정자본주의의 출현을 만들어내서 체제개혁의 과정으로 귀결되었듯이 기후위기 역시 또 다른 수정된 자본주의 구조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AI와 반도체 산업, 그리고 전기자동차와 배터리 산업의 부상 등 역시 그러한 방향성이며 국제 무역질서 역시 새로운 질서로 재편되고 있다. 오히려 기후위기가 당장의 자본주의 변혁에 미치는 영향보다 노동의 입장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이러한 산업적 변화와 무역질서 등의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전략적 입장을 세우는 것이다.
지난 20세기 결국 노동운동이 자본주의 체제 변혁보다 수정과 개혁을 목표로 복지국가라는 과도기적 대안을 만들어냈듯이 더 현실적인 고민이 함께 필요해 보인다. 그리고 그래야만 노동운동이 내부의 구성원들을 설득할 수 있다. 올지 안올지 모르는 체제변혁에 대한 집착은 오히려 노동 내부의 구성원들에게 기후위기를 자신과 상관없는 먼 우주적 현상과도 같은 초거시적 문제로 인식시켜 결합력을 떨어트릴 위험성도 있기 때문이다.
② 정의로운 전환, 노동운동의 새로운 도전이자 전략이어야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탈탄소화와 산업 전환이 일자리의 파괴가 아니라 재구성의 과정이 되도록 만드는 전략이며, 환경정책을 노동정책과 결합시키는 사회적 기획이다. 그리고 나아가 민주주의의 원리에서 현재의 자본주의의 변화를 대응하는 가장 중요한 현실전략이다.
때문에 노동운동은 정의로운 전환의 정치적·사회적 주체로 나서야 한다. 첫째, 노동은 정책의 수혜자가 아니라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20세기 중반 고용보험, 노후연금, 산업안전 등의 영역에서 복지국가의 설계자로 노동운동이 기능했듯이 밀이다. 지금까지의 전환정책은 주로 정부와 산업계 주도의 ‘기술적·경제적 전환’으로 추진되어 왔지만, 진정한 정의로운 전환은 노동자의 참여를 통한 사회적 합의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노동조합은 산업별·지역별 차원에서 전환 계획 수립에 참여하고, 고용보장·직무전환·재교육 제도를 전환정책의 필수 요소로 포함시켜야 한다.
특히 지역 산업기반이 취약한 중소 제조업, 석탄화력·조선·자동차 등 탄소집약 산업의 경우, 노동조합이 중심이 되어 ‘지역 전환위원회’ 나 ‘산업별 기후대응협의체’ 를 구성해 고용·복지·교육이 통합된 전환 모델을 마련해야 한다. 노동 없는 탈탄소는 결국 불평등한 전환이며, 이는 사회적 저항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둘째, 노동운동은 노동시장 전환의 조정자이자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기후위기는 일자리를 없애기도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낸다. 재생에너지, 에너지 효율화, 녹색 건설, 공공 돌봄 등은 새로운 고용의 가능성이 열리는 영역이다. 문제는 이러한 일자리들이 제대로 된 임금, 안전, 권리를 갖춘 ‘양질의 녹색 일자리’ 로 자리 잡느냐는 것이다. 노동운동은 ‘기후 일자리’의 질적 기준을 제시하고, 고용보험·산재보험 등 기존 사회보장제도를 녹색산업 구조에 맞게 재설계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단순한 전직 훈련이나 지원금 수준을 넘어, 노동자의 권리와 안전을 보장하는 사회적 고용전환 시스템을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③ 위기를 사회연대의 새로운 기회로 활용해야
마지막으로, 노동운동은 정의로운 전환의 사회적 연대의 매개자가 되어야 한다. 기후위기는 세대 간, 계층 간, 지역 간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에너지 비용 상승은 저소득층 가계에 더 큰 부담을 주고, 환경재해는 사회적 약자에게 집중된다. 산업 내부에서도 대응력이 충분한 대기업 자본에 소속되어 있는가 아니면 대응력이 부족한 하청 중소기업에 소속되어 있는가에 따라 그 파급력이 크게 차이가 날 것이다. 따라서 정의로운 전환은 단지 산업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재조정이다. 노동운동은 시민사회, 환경단체, 지역공동체, 그리고 노동 내부의 다른 주체들과도 연대하여 ‘전환의 정의’를 먼저 규정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이 기후정책을 반대하거나 소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의로운 전환의 추진 세력으로 자리 잡을 때, 사회 전체의 신뢰와 연대가 강화된다. 이것이 기후위기를 민주주의의 위기로부터 구하는 길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는 위기 속에서도 ‘모두가 참여하는 전환’을 통해만 살아남는다.
한국의 노동운동이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기후정책이 산업정책으로, 산업정책이 노동정책으로, 노동정책이 곧 사회정책으로 이어지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은 이제 더 이상 ‘임금과 고용의 수호자’에 머물 수 없다. 기후위기 대응과 정의로운 전환은 노동운동의 새로운 민주주의 프로젝트다.
노동은 지구를 지키는 힘이자, 사회를 바꾸는 주체다. 과거의 노동운동이 권위주의에 맞서 자유와 평등의 공간을 열었다면, 오늘의 노동운동은 기후위기 속에서 지속가능한 민주주의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 노동의 미래는 “기후 없는 성장”이 아니라 “노동이 함께하는 전환”에 달려 있다. 정의로운 전환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과제이며, 노동운동이 이를 주도할 때 비로소 녹색 민주주의의 길이 열린다. 노동이 기후위기의 시대를 외면하지 않고, 새로운 정의의 언어로 대응할 때, 그 운동은 다시 한 번 사회의 미래를 이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