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위기시대의 노동운동 11 - (2) 여전히 노동운동이 민주주의의 희망이지만...①

공식 관리자
2026-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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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전히 노동운동이 민주주의의 희망이지만...①

목차


프롤로그

왜 여전히 ‘노동 있는 민주주의’인가? 


제1장. 민주주의와 노동운동

(1) 노동조합은 민주주의 경제적 ‘Voice’ : 엘버트 허시먼의 <exit, voice, loyalty>

(2) 갈등의 매개자, 노동조합 : 샤츠.슈나이더 <절반의 인민주권>

(3) 21세기 국가와 노동조합의 관계 : 대런 애쓰모글로우의 <좁은 회랑>

(4) 노동조합은 계급의 무기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인프라’


제2장. 민주주의의 위기와 노동운동

(1) 불평등과 기술발전, 그리고 내부로부터 침식되는 민주주의의 위기

(2)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와 노동운동

(3)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민주주의 위기


제3장. 노동시장 삼국지(三國志)

(1) 노동시장 이중구조에서 삼국지로: 독립노동의 부상과 새로운 노동세계의 도래

(2) 전통적 이중구조의 균열

(3) 노동시장 삼국지의 권력구도


제4장. 노동운동의 전략적 전환 : 임금에서 민주주의로

(1) 임금에서 민주주의로

(2) 여전히 노동운동이 민주주의의 희망

(3) 기후위기 시대, 노동운동의 새로운 사명 ― 정의로운 전환


제5장. 한국 민주주의의 재구성 

(1)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취약성

(2) 노동 있는 민주주의의 세 가지 기둥: 평등, 참여, 연대

(3) 노동정치의 갱신: 계급 대 결사체의 정치


에필로그

좋은 일자리를 넘어, 좋은 시민을 만드는 노동운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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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제시한 노동운동의 전략적 전환은 결국 민주주의의 회복과도 연결된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는 정치적 양극화나 제도적 교착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불평등한 사회구조가 시민의 참여를 분절시키고, 노동의 공통 기반을 약화시키며, 사회적 연대를 파괴하는 구조적 문제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경제적 불평등이자 정치적 불평등이다. 어떤 시민은 자신의 노동조건을 협상할 힘이 있지만, 또 다른 시민은 시장의 변화에 무력하게 노출되어 있다. 이런 상태에서 민주주의는 ‘한 사람, 한 표’의 형식만 남고, 실질적 참여의 평등은 사라진다. 그러므로 노동운동이 ‘임금’의 문제를 넘어서 ‘민주주의’의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임금에서 민주주의로”라는 전환은 노동운동이 임금인상 요구를 포기하자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임금 투쟁을 민주주의의 확장과 연결시키자는 제안이다. 노동의 평등, 임금의 정의, 사회적 대화의 포용성은 모두 민주주의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문제다. 노동운동이 기업 담장을 넘어 사회 전체의 대화의 주체가 되고, 불평등 구조를 교정하는 사회정책의 설계자로 자리 잡을 때, 민주주의는 더 넓고 더 깊게 작동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하고 또 반복되는 질문이 던져질 수 밖에 없다. 도대체 ‘어떻게!’ 노동운동이 그러한 ‘전환’을 하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인가? 라는 것이다. 사실 노동운동이 기업내부에서의 임금인상이라는 단기적 이익에 포획되지 않고 민주주의와 사회에 대한 자기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은 ‘당위’에 해당한다. 일부의 ‘낙관적 혁명론자’들을 제외하고는 노동계급이 단기적 이익을 포기하고 장기적 이익을 위한 전환에 스스로 나설 것이라는 전망을 가지는 이는 이제 없다. 


이전의 ‘전위’의 개념을 가져와 노동운동 리더들의 결단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란 전망에도 평범한 노동조합 간부들조차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노동운동 리더들이 그런 선택을 한다면 그들은 조합원들에 의해 배척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최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나 성과급 인상을 둘러싼 여러 논쟁에서 조합원들이 보여주는 선택이 바로 이를 방증한다. 최근에는 본래 자본으로부터 자주적인 노동조합의 설립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복수노조제도를 조합원들이 단기적 이익을 최대로 가져다 주는 지도부 또는 노동조합을 취사선택하기 위한 제도로 활용하는 현상이 다수 일어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노동운동이 어떠해야 한다는 당위로만 결코 ‘임금에서 민주주의’로의 전환이 일어나기 어렵다. 노동조합과 조합원들이 당위를 몰라서 그렇게 안하는 것이 아니라 당위보다 당장의 성과급과 이익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노동시장 이중구조 또는 노동시장 삼국지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노동운동이 특별한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이다.

 


노동운동은 스스로 전환한 적이 거의 없다


시선을 조금 달리해서 노동운동이 민주주의에서 가지는 역할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노동운동이 민주주의를 늘 개척해왔을까? 필자는 앞서 이에 대한 질문을 던진 바 있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민주주의를 개척하고자 했지만 배제되어 온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민주주의에서 참여자로 행위하기를 거부하고 있다가 경제적 이익의 최대화를 이루면서 ‘주류’가 된 것인가? 솔직히 필자는 후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노동운동이 시대 변화에 맞게 스스로의 역할을 바꾸고 주도적으로 전략을 전환해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봐도 87년 민주화 이후 노동자대투쟁 정도이며 97년 IMF외환위기 전후, 그리고 2010년대 디지털 환경변화와 산업구조 변화 등에 노동운동은 늘 변화에 수세적으로 적응해 온 것이 현실이다. 물론 이러한 적응이 오늘날 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이 높은 고용안정과 임금보장, 그리고 정치적으로 사회의 주류가 되는 결과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민주주의 전체로 보면 민주주의의 그림자도 그만큼 많이 만들어졌다. 


따지고 보면 혁명의 실패가 노동운동이 민주주의에 적응하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 민주주의와 노동운동의 관계에 대한 진실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렇게 과거 노동운동의 역할에 대한 해석을 조금 냉정하게 해본다면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노동운동의 전략적 전환의 가능성과 방법에 약간의 단초를 제공한다. 그 결론은, “노동운동은 변화를 스스로 만들거나 전략적 전환을 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적응> 할 것이다.”로 정리될 수 있다. 그리고 <적응의 조건>은 사실상 <노동의 위기>와 같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