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노동운동의 전략적 전환 : 임금에서 민주주의로
(1) 임금에서 민주주의로
목차
프롤로그 왜 여전히 ‘노동 있는 민주주의’인가?
제1장. 민주주의와 노동운동 (1) 노동조합은 민주주의 경제적 ‘Voice’ : 엘버트 허시먼의 <exit, voice, loyalty> (2) 갈등의 매개자, 노동조합 : 샤츠.슈나이더 <절반의 인민주권> (3) 21세기 국가와 노동조합의 관계 : 대런 애쓰모글로우의 <좁은 회랑> (4) 노동조합은 계급의 무기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인프라’
제2장. 민주주의의 위기와 노동운동 (1) 불평등과 기술발전, 그리고 내부로부터 침식되는 민주주의의 위기 (2)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와 노동운동 (3)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민주주의 위기
제3장. 노동시장 삼국지(三國志) (1) 노동시장 이중구조에서 삼국지로: 독립노동의 부상과 새로운 노동세계의 도래 (2) 전통적 이중구조의 균열 (3) 노동시장 삼국지의 권력구도
제4장. 노동운동의 전략적 전환 : 임금에서 민주주의로 (1) 임금에서 민주주의로 (2) 여전히 노동운동이 민주주의의 희망 (3) 기후위기 시대, 노동운동의 새로운 사명 ― 정의로운 전환
제5장. 한국 민주주의의 재구성 (1)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취약성 (2) 노동 있는 민주주의의 세 가지 기둥: 평등, 참여, 연대 (3) 노동정치의 갱신: 계급 대 결사체의 정치
에필로그 좋은 일자리를 넘어, 좋은 시민을 만드는 노동운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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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노동조합은 오랫동안 임금과 근로조건의 향상을 중심으로 활동해왔다. 노동조합이 민주주의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채 국가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사회로부터 배제되어왔던 산업화 시기의 노동운동은 생존과 존엄의 최소조건을 쟁취하는 투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노동운동이 민주주의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고민해야 하는 시대다. 지난 시기의 성취를 넘어 노동조합이 사회를 어떻게 더 민주적으로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하는 시점이다.
노동운동이 ‘경제적 이해의 조직’을 넘어 ‘사회적 민주주의의 제도’로 발전하려면, 전략적 전환이 필요하다. 그것은 단순히 교섭의 방식의 변화만이 아니라, 노동조합이 스스로 어떤 사회적 역할을 자임하는가의 문제이다.
이 장에서는 기존의 기업별 교섭과 임금 중심 구조가 가진 한계를 짚고, 직무급제·산업별 교섭·사회적 대화 등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다. 더 나아가, 노동조합이 임금 인상보다 사회적 안전망·복지·평등한 기회의 확충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민주주의의 위기 속에서 노동이 시민사회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조합원의 이익만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공공적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이것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임금에서 민주주의로’의 전환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임금에서 민주주의로’의 전환은 노동운동의 탈정치가가 아니라, 오히려 정치의 본질로 복귀하는 과정이다. 이 장은 그 길을 구체적으로 그려본다.
(1) 임금에서 민주주의로
오늘날 노동운동은 다시 방향을 묻고 있다. 더 많은 임금, 더 좋은 복지, 더 안전한 일터를 향한 투쟁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국 사회가 마주한 구조적 위기를 뚫어낼 수 없다. 불평등이 구조화되고, 기술 변화가 노동의 형식을 해체하며, 민주주의가 내부에서 침식되는 시대에, 노동운동은 임금의 문제를 넘어 민주주의의 문제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임금에서 민주주의로”라는 새로운 전략적 전환의 의미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1987년 이후 민주화의 동력으로서 커다란 성취를 이뤘다. 그러나 그 성공은 동시에 기업별 교섭구조와 연공급 중심의 임금체계라는 한계를 내포했다. 기업별 노조와 교섭은 초기 산업화 단계에서 기업내부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향상시키고 구성원들의 평등을 유지하는데에 유효했지만, 오늘날의 분절화된 노동시장에서는 노동의 연대를 오히려 가로막는 제도적 울타리가 되고 있다. 노동조합은 동일 업종이나 동일 직무를 넘어 연대하기보다, 소속 기업의 이해를 지키는 ‘내부 이익집단’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실제 그렇게 작동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조직노동은 강한 교섭력을 확보했지만, 중소기업·비정규직·플랫폼 노동자는 여전히 제도 밖에 머물러 있다. 발언과 저항(voice)의 권리가 일부 노동자에게 집중되고, 나머지 다수의 노동은 민주주의 안에서 침묵하도록 방치된 구조다.
이러한 불균형은 임금구조에서도 반복된다. 호봉제와 연공급으로 대표되는 현재의 임금체계는 동일한 노동의 가치보다 근속과 연령, 기업의 규모를 기준으로 보상한다. 이는 장기 고용을 유지하던 과거 산업시대에는 ‘공정한 보상’으로 작동했지만, 고용이 불안정하고 이동이 잦은 현재의 노동시장에서는 오히려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제도로 전락했다. 같은 일을 해도 소속 기업과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다르고, 그 격차는 세대 간·기업 간 단절로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이제 노동운동은 ‘연공에서 직무로’, ‘기업에서 산업과 사회로’의 대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원칙은 단순한 임금 정의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 내부의 평등과 사회 전체의 민주주의를 확장하는 핵심 가치이다. 노동이 공정하게 평가받고, 일의 가치가 투명하게 정의되는 사회에서만 시민적 평등이 실질화된다.
노동운동의 전략적 전환은 임금체계의 개혁을 넘어 교섭 구조의 혁신으로 이어져야 한다. 기업별 교섭에서 산업별·직종별 교섭으로의 전환, 나아가 지역 단위의 사회적 대화체제 구축은 한국 노동운동이 직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다. 기업 내부의 교섭만으로는 더 이상 불안정 노동의 확대, 하청 구조의 고착, 플랫폼 노동의 확산을 다룰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술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산업구조 전환,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서도 기업내부에서의 교섭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아틀라스’와 같은 ‘피지컬AI’ 도입 문제 역시 기업단위에서 방어하기에는 어려운 주제임이 명확하다. 이것은 AI와 로봇을 어느 수준까지 받아들이고 활용할지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합의해야 하는 문제다. 민주주의가 기술과 산업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의 문제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제 노동운동은 산업 생태계 전체를 아우르는 조정자이자 정책 행위자로 스스로의 위치를 바꾸어야 한다. 산업별 임금기준과 직무평가체계, 공정거래 구조 개선, 하청 단가 보장, 기술변화/기후변화 대응 등의 의제를 사회적 대화의 중심으로 가져와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노동운동이 단순히 ‘조합원’을 대표하는 조직이 아니라, ‘노동 시민’을 대표하는 사회적 제도로 거듭나는 과정이다. 복지와 사회안전망, 고용보험, 산재보험, 공공의료와 주거정책 등은 더 이상 국가의 책임만이 아니라 노동운동의 전략적 의제가 되어야 한다. “사회정책의 행위자로서의 노동운동”이란, 노동조합이 정책의 수혜자가 아니라 설계자이자 감시자로 나서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사회적 대화는 더 이상 정부-재계-노조의 3자 합의 테이블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노동이 공정하게 대표되는 ‘열린 민주주의의 장’이 되어야 한다. 플랫폼 노동, 프리랜서, 여성·청년·이주노동자 등 새로운 노동 주체들이 그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사회적대화의 장에서 조직노동의 독점적 지위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조직노동이 다양한 사회의 목소리를 집약해내고 연대하는 과정으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목차
프롤로그
왜 여전히 ‘노동 있는 민주주의’인가?
제1장. 민주주의와 노동운동
(1) 노동조합은 민주주의 경제적 ‘Voice’ : 엘버트 허시먼의 <exit, voice, loyalty>
(2) 갈등의 매개자, 노동조합 : 샤츠.슈나이더 <절반의 인민주권>
(3) 21세기 국가와 노동조합의 관계 : 대런 애쓰모글로우의 <좁은 회랑>
(4) 노동조합은 계급의 무기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인프라’
제2장. 민주주의의 위기와 노동운동
(1) 불평등과 기술발전, 그리고 내부로부터 침식되는 민주주의의 위기
(2)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와 노동운동
(3)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민주주의 위기
제3장. 노동시장 삼국지(三國志)
(1) 노동시장 이중구조에서 삼국지로: 독립노동의 부상과 새로운 노동세계의 도래
(2) 전통적 이중구조의 균열
(3) 노동시장 삼국지의 권력구도
제4장. 노동운동의 전략적 전환 : 임금에서 민주주의로
(1) 임금에서 민주주의로
(2) 여전히 노동운동이 민주주의의 희망
(3) 기후위기 시대, 노동운동의 새로운 사명 ― 정의로운 전환
제5장. 한국 민주주의의 재구성
(1)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취약성
(2) 노동 있는 민주주의의 세 가지 기둥: 평등, 참여, 연대
(3) 노동정치의 갱신: 계급 대 결사체의 정치
에필로그
좋은 일자리를 넘어, 좋은 시민을 만드는 노동운동으로
한국의 노동조합은 오랫동안 임금과 근로조건의 향상을 중심으로 활동해왔다. 노동조합이 민주주의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채 국가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사회로부터 배제되어왔던 산업화 시기의 노동운동은 생존과 존엄의 최소조건을 쟁취하는 투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노동운동이 민주주의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고민해야 하는 시대다. 지난 시기의 성취를 넘어 노동조합이 사회를 어떻게 더 민주적으로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하는 시점이다.
노동운동이 ‘경제적 이해의 조직’을 넘어 ‘사회적 민주주의의 제도’로 발전하려면, 전략적 전환이 필요하다. 그것은 단순히 교섭의 방식의 변화만이 아니라, 노동조합이 스스로 어떤 사회적 역할을 자임하는가의 문제이다.
이 장에서는 기존의 기업별 교섭과 임금 중심 구조가 가진 한계를 짚고, 직무급제·산업별 교섭·사회적 대화 등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다. 더 나아가, 노동조합이 임금 인상보다 사회적 안전망·복지·평등한 기회의 확충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민주주의의 위기 속에서 노동이 시민사회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조합원의 이익만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공공적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이것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임금에서 민주주의로’의 전환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임금에서 민주주의로’의 전환은 노동운동의 탈정치가가 아니라, 오히려 정치의 본질로 복귀하는 과정이다. 이 장은 그 길을 구체적으로 그려본다.
(1) 임금에서 민주주의로
오늘날 노동운동은 다시 방향을 묻고 있다. 더 많은 임금, 더 좋은 복지, 더 안전한 일터를 향한 투쟁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국 사회가 마주한 구조적 위기를 뚫어낼 수 없다. 불평등이 구조화되고, 기술 변화가 노동의 형식을 해체하며, 민주주의가 내부에서 침식되는 시대에, 노동운동은 임금의 문제를 넘어 민주주의의 문제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임금에서 민주주의로”라는 새로운 전략적 전환의 의미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1987년 이후 민주화의 동력으로서 커다란 성취를 이뤘다. 그러나 그 성공은 동시에 기업별 교섭구조와 연공급 중심의 임금체계라는 한계를 내포했다. 기업별 노조와 교섭은 초기 산업화 단계에서 기업내부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향상시키고 구성원들의 평등을 유지하는데에 유효했지만, 오늘날의 분절화된 노동시장에서는 노동의 연대를 오히려 가로막는 제도적 울타리가 되고 있다. 노동조합은 동일 업종이나 동일 직무를 넘어 연대하기보다, 소속 기업의 이해를 지키는 ‘내부 이익집단’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실제 그렇게 작동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조직노동은 강한 교섭력을 확보했지만, 중소기업·비정규직·플랫폼 노동자는 여전히 제도 밖에 머물러 있다. 발언과 저항(voice)의 권리가 일부 노동자에게 집중되고, 나머지 다수의 노동은 민주주의 안에서 침묵하도록 방치된 구조다.
이러한 불균형은 임금구조에서도 반복된다. 호봉제와 연공급으로 대표되는 현재의 임금체계는 동일한 노동의 가치보다 근속과 연령, 기업의 규모를 기준으로 보상한다. 이는 장기 고용을 유지하던 과거 산업시대에는 ‘공정한 보상’으로 작동했지만, 고용이 불안정하고 이동이 잦은 현재의 노동시장에서는 오히려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제도로 전락했다. 같은 일을 해도 소속 기업과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다르고, 그 격차는 세대 간·기업 간 단절로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이제 노동운동은 ‘연공에서 직무로’, ‘기업에서 산업과 사회로’의 대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원칙은 단순한 임금 정의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 내부의 평등과 사회 전체의 민주주의를 확장하는 핵심 가치이다. 노동이 공정하게 평가받고, 일의 가치가 투명하게 정의되는 사회에서만 시민적 평등이 실질화된다.
노동운동의 전략적 전환은 임금체계의 개혁을 넘어 교섭 구조의 혁신으로 이어져야 한다. 기업별 교섭에서 산업별·직종별 교섭으로의 전환, 나아가 지역 단위의 사회적 대화체제 구축은 한국 노동운동이 직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다. 기업 내부의 교섭만으로는 더 이상 불안정 노동의 확대, 하청 구조의 고착, 플랫폼 노동의 확산을 다룰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술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산업구조 전환,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서도 기업내부에서의 교섭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아틀라스’와 같은 ‘피지컬AI’ 도입 문제 역시 기업단위에서 방어하기에는 어려운 주제임이 명확하다. 이것은 AI와 로봇을 어느 수준까지 받아들이고 활용할지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합의해야 하는 문제다. 민주주의가 기술과 산업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의 문제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제 노동운동은 산업 생태계 전체를 아우르는 조정자이자 정책 행위자로 스스로의 위치를 바꾸어야 한다. 산업별 임금기준과 직무평가체계, 공정거래 구조 개선, 하청 단가 보장, 기술변화/기후변화 대응 등의 의제를 사회적 대화의 중심으로 가져와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노동운동이 단순히 ‘조합원’을 대표하는 조직이 아니라, ‘노동 시민’을 대표하는 사회적 제도로 거듭나는 과정이다. 복지와 사회안전망, 고용보험, 산재보험, 공공의료와 주거정책 등은 더 이상 국가의 책임만이 아니라 노동운동의 전략적 의제가 되어야 한다. “사회정책의 행위자로서의 노동운동”이란, 노동조합이 정책의 수혜자가 아니라 설계자이자 감시자로 나서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사회적 대화는 더 이상 정부-재계-노조의 3자 합의 테이블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노동이 공정하게 대표되는 ‘열린 민주주의의 장’이 되어야 한다. 플랫폼 노동, 프리랜서, 여성·청년·이주노동자 등 새로운 노동 주체들이 그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사회적대화의 장에서 조직노동의 독점적 지위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조직노동이 다양한 사회의 목소리를 집약해내고 연대하는 과정으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