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노동시장 삼국지(三國志 )
(3) 노동시장 삼국지(三國志)의 권력구도와 노동의 대응
목차
프롤로그 왜 여전히 ‘노동 있는 민주주의’인가?
제1장. 민주주의와 노동운동 (1) 노동조합은 민주주의 경제적 ‘Voice’ : 엘버트 허시먼의 <exit, voice, loyalty> (2) 갈등의 매개자, 노동조합 : 샤츠.슈나이더 <절반의 인민주권> (3) 21세기 국가와 노동조합의 관계 : 대런 애쓰모글로우의 <좁은 회랑> (4) 노동조합은 계급의 무기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인프라’
제2장. 민주주의의 위기와 노동운동 (1) 불평등과 기술발전, 그리고 내부로부터 침식되는 민주주의의 위기 (2)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와 노동운동 (3)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민주주의 위기
제3장. 노동시장 삼국지(三國志) (1) 노동시장 이중구조에서 삼국지로: 독립노동의 부상과 새로운 노동세계의 도래 (2) 전통적 이중구조의 균열 (3) 노동시장 삼국지의 권력구도
제4장. 노동운동의 전략적 전환: 임금에서 민주주의로 (1) 임금에서 민주주의로 (2) 여전히 노동운동이 민주주의의 희망 (3) 기후위기 시대, 노동운동의 새로운 사명 ― 정의로운 전환
제5장. 한국 민주주의의 재구성 (1)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취약성 (2) 노동 있는 민주주의의 세 가지 기둥: 평등, 참여, 연대 (3) 노동정치의 갱신: 계급 대 결사체의 정치
에필로그 좋은 일자리를 넘어, 좋은 시민을 만드는 노동운동으로 |
(3) 노동시장 삼국지(三國志)의 권력구도와 노동의 대응

이러한 변화 속에서 이제 노동시장은 ‘이중구조’가 아닌 세 개의 ‘세계’로 나뉘고 있다. 바야흐로 노동시장 ‘삼국지三國志’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첫 번째 나라는 정규직-대기업의 세계다. 여전히 임금과 고용안정, 노조조직률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하지만, 산업재편과 인공지능 전환의 파고 속에서 가장 직접적인 불안에 직면하면서 미래가 불투명하다. 이 첫 번째 세계에 있는 노동자들은 세대에 따라 변화에 대한 대응이 다르다. 40대 중후반에서 50대의 노동조합의 주력을 차지하는 노동자들은 이러한 구조적 변화가 최대한 늦게 오기를 바란다. 더 정확히는 자신의 정년퇴직 이후에 본격적으로 닥칠 변화이기에 일단은 고용된 기간동안의 임금최대화에 집중하고 구조적 대응에 대해서는 고민의 뒤켠으로 미루어 놓는다. 젊은 세대 노동자들의 경우는 닥쳐오는 구조적 변화에 두려움을 크게 느끼면서 이에 대한 대응을 개인적 차원의 자산축적, 또는 자기계발을 통해 대응하려 하는 경향이 강하다.
두 번째 나라는 비정규직-중소기업의 세계다. 하청·용역·계약직 등으로 구성된 이 영역은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노동환경, 산업안전의 취약성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최근 20여년동안 주요 총연맹들이 노동조합 조직을 위해 노력했지만 여전히 노동조합 조직률은 2-3% 수준에 그치고 있다. 같은 정규직이라고 하더라도 중소기업에 있기 때문에 현실은 첫 번째 나라와는 상황이 다르다. 이들은 ‘정규직이면 뭐하나? 회사가 비정규직인데’라고 말한다. 따라서 이 세계 노동자들의 가장 큰 요구는 대기업의 정규직이 되거나 그곳으로 이직에 성공하는 것이다. 역시 AI와 산업재편으로 인한 구조적 변화가 걱정은 되지만 당장에 어찌할 방도가 보이지는 않는다. 여기까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말로 설명되는 우리에게 익숙한 세계다.
그리고 세 번째 나라, 새로이 부상한 세계가 바로 독립노동의 나라다. 이 나라는 고용관계가 없기에 ‘노동법의 보호 밖’에 있으며, 조직화된 힘도 가장 약하다. 그러나 기술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광범위한 연결성과 빠른 확산력을 갖는다. 전통적 노동세계가 집단적 단결을 기반으로 움직였다면, 독립노동은 연결과 접속의 논리로 움직인다. 정규직이 ‘단결의 정치’라면, 독립노동은 ‘연결의 정치’가 작동하는 세계다. 이 세계의 노동자들의 요구는 두 번째 나라의 노동자들처럼 정규직이 되는 것은 아닌 경우가 많다. 다만 정규직이 되고 싶지는 않지만 안정적인 소득과 사회보장에 대한 요구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소득보장 보다 사회안전망에 대한 요구는 더 높은 경우가 많다.
이 세 나라의 공존과 경쟁은 오늘날 한국 노동시장의 새로운 풍경이다. 고용형태, 소득구조, 사회보험 적용, 조직형태, 심지어 일의 의미까지 전혀 다른 세 집단이 한 시장 안에서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사회적 긴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일부 언론들이 조명하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이라는 단순구도와도 달라진 긴장과 갈등의 구도가 만들어지고 있다.
따라서 이렇게 새롭게 등장한 세 번째 나라, 그러니까 독립노동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노동의 상상력이 필요할 수 밖에 없다. 노동시장 삼국지의 현실은 기존의 노동정책과 법제도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할 것을 요구한다.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은 여전히 ‘사용자-근로자’라는 고전적 이분법 위에 서 있지만, 독립노동은 이 틀에 들어맞지 않는다. 근로자 추정제도나 ‘일터권리기본법’ 등 새로운 입법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으나, 본질은 “고용 없는 노동”을 어떻게 사회적 권리의 틀 안으로 포섭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그리고 구체적인 권리실현의 방법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리 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깊이 고민해야 할 지점들이 많다.
독립노동은 단지 새로운 고용형태가 아니라 노동의 패러다임 전환을 상징한다. 노동의 주체, 공간, 시간, 관계가 모두 다르게 구성되는 세계. 그것은 과거의 산업노동이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문명적 조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세계에서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노동운동이 강조했던 단결의 가치뿐 아니라 ‘연결의 가치’, 즉 네트워크 속의 연대와 사회적 협약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공장과 사무실의 노동을 넘어, 플랫폼과 데이터의 노동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사회적 계약이 필요한 것이다.
이제 노동은 더 이상 하나의 형태로 정의될 수 없는 것이 현실임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리고 독립노동이라는 세 나라가 공존하는 노동시장 삼국지의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이 삼국은 경쟁의 관계만이 아니라, 공존의 질서를 모색해야 한다. 독립노동이 단순히 제3의 주변부가 아니라, 새로운 사회적 주체로 인정받고 제도적 보호를 받는 순간, 한국 노동시장은 비로소 ‘이중구조의 굴레’를 벗어나게 될 것이다. 공장 대신 네트워크에서, 출근 대신 접속으로 일하는 시대로 노동의 형태는 달라졌지만, 노동을 통한 인간의 존엄과 사회적 연대의 필요성은 변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시대의 노동정치는 이제 “단결의 언어”와 더불어 “연결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
목차
프롤로그
왜 여전히 ‘노동 있는 민주주의’인가?
제1장. 민주주의와 노동운동
(1) 노동조합은 민주주의 경제적 ‘Voice’ : 엘버트 허시먼의 <exit, voice, loyalty>
(2) 갈등의 매개자, 노동조합 : 샤츠.슈나이더 <절반의 인민주권>
(3) 21세기 국가와 노동조합의 관계 : 대런 애쓰모글로우의 <좁은 회랑>
(4) 노동조합은 계급의 무기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인프라’
제2장. 민주주의의 위기와 노동운동
(1) 불평등과 기술발전, 그리고 내부로부터 침식되는 민주주의의 위기
(2)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와 노동운동
(3)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민주주의 위기
제3장. 노동시장 삼국지(三國志)
(1) 노동시장 이중구조에서 삼국지로: 독립노동의 부상과 새로운 노동세계의 도래
(2) 전통적 이중구조의 균열
(3) 노동시장 삼국지의 권력구도
제4장. 노동운동의 전략적 전환: 임금에서 민주주의로
(1) 임금에서 민주주의로
(2) 여전히 노동운동이 민주주의의 희망
(3) 기후위기 시대, 노동운동의 새로운 사명 ― 정의로운 전환
제5장. 한국 민주주의의 재구성
(1)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취약성
(2) 노동 있는 민주주의의 세 가지 기둥: 평등, 참여, 연대
(3) 노동정치의 갱신: 계급 대 결사체의 정치
에필로그
좋은 일자리를 넘어, 좋은 시민을 만드는 노동운동으로
(3) 노동시장 삼국지(三國志)의 권력구도와 노동의 대응
이러한 변화 속에서 이제 노동시장은 ‘이중구조’가 아닌 세 개의 ‘세계’로 나뉘고 있다. 바야흐로 노동시장 ‘삼국지三國志’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첫 번째 나라는 정규직-대기업의 세계다. 여전히 임금과 고용안정, 노조조직률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하지만, 산업재편과 인공지능 전환의 파고 속에서 가장 직접적인 불안에 직면하면서 미래가 불투명하다. 이 첫 번째 세계에 있는 노동자들은 세대에 따라 변화에 대한 대응이 다르다. 40대 중후반에서 50대의 노동조합의 주력을 차지하는 노동자들은 이러한 구조적 변화가 최대한 늦게 오기를 바란다. 더 정확히는 자신의 정년퇴직 이후에 본격적으로 닥칠 변화이기에 일단은 고용된 기간동안의 임금최대화에 집중하고 구조적 대응에 대해서는 고민의 뒤켠으로 미루어 놓는다. 젊은 세대 노동자들의 경우는 닥쳐오는 구조적 변화에 두려움을 크게 느끼면서 이에 대한 대응을 개인적 차원의 자산축적, 또는 자기계발을 통해 대응하려 하는 경향이 강하다.
두 번째 나라는 비정규직-중소기업의 세계다. 하청·용역·계약직 등으로 구성된 이 영역은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노동환경, 산업안전의 취약성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최근 20여년동안 주요 총연맹들이 노동조합 조직을 위해 노력했지만 여전히 노동조합 조직률은 2-3% 수준에 그치고 있다. 같은 정규직이라고 하더라도 중소기업에 있기 때문에 현실은 첫 번째 나라와는 상황이 다르다. 이들은 ‘정규직이면 뭐하나? 회사가 비정규직인데’라고 말한다. 따라서 이 세계 노동자들의 가장 큰 요구는 대기업의 정규직이 되거나 그곳으로 이직에 성공하는 것이다. 역시 AI와 산업재편으로 인한 구조적 변화가 걱정은 되지만 당장에 어찌할 방도가 보이지는 않는다. 여기까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말로 설명되는 우리에게 익숙한 세계다.
그리고 세 번째 나라, 새로이 부상한 세계가 바로 독립노동의 나라다. 이 나라는 고용관계가 없기에 ‘노동법의 보호 밖’에 있으며, 조직화된 힘도 가장 약하다. 그러나 기술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광범위한 연결성과 빠른 확산력을 갖는다. 전통적 노동세계가 집단적 단결을 기반으로 움직였다면, 독립노동은 연결과 접속의 논리로 움직인다. 정규직이 ‘단결의 정치’라면, 독립노동은 ‘연결의 정치’가 작동하는 세계다. 이 세계의 노동자들의 요구는 두 번째 나라의 노동자들처럼 정규직이 되는 것은 아닌 경우가 많다. 다만 정규직이 되고 싶지는 않지만 안정적인 소득과 사회보장에 대한 요구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소득보장 보다 사회안전망에 대한 요구는 더 높은 경우가 많다.
이 세 나라의 공존과 경쟁은 오늘날 한국 노동시장의 새로운 풍경이다. 고용형태, 소득구조, 사회보험 적용, 조직형태, 심지어 일의 의미까지 전혀 다른 세 집단이 한 시장 안에서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사회적 긴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일부 언론들이 조명하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이라는 단순구도와도 달라진 긴장과 갈등의 구도가 만들어지고 있다.
따라서 이렇게 새롭게 등장한 세 번째 나라, 그러니까 독립노동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노동의 상상력이 필요할 수 밖에 없다. 노동시장 삼국지의 현실은 기존의 노동정책과 법제도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할 것을 요구한다.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은 여전히 ‘사용자-근로자’라는 고전적 이분법 위에 서 있지만, 독립노동은 이 틀에 들어맞지 않는다. 근로자 추정제도나 ‘일터권리기본법’ 등 새로운 입법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으나, 본질은 “고용 없는 노동”을 어떻게 사회적 권리의 틀 안으로 포섭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그리고 구체적인 권리실현의 방법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리 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깊이 고민해야 할 지점들이 많다.
독립노동은 단지 새로운 고용형태가 아니라 노동의 패러다임 전환을 상징한다. 노동의 주체, 공간, 시간, 관계가 모두 다르게 구성되는 세계. 그것은 과거의 산업노동이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문명적 조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세계에서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노동운동이 강조했던 단결의 가치뿐 아니라 ‘연결의 가치’, 즉 네트워크 속의 연대와 사회적 협약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공장과 사무실의 노동을 넘어, 플랫폼과 데이터의 노동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사회적 계약이 필요한 것이다.
이제 노동은 더 이상 하나의 형태로 정의될 수 없는 것이 현실임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리고 독립노동이라는 세 나라가 공존하는 노동시장 삼국지의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이 삼국은 경쟁의 관계만이 아니라, 공존의 질서를 모색해야 한다. 독립노동이 단순히 제3의 주변부가 아니라, 새로운 사회적 주체로 인정받고 제도적 보호를 받는 순간, 한국 노동시장은 비로소 ‘이중구조의 굴레’를 벗어나게 될 것이다. 공장 대신 네트워크에서, 출근 대신 접속으로 일하는 시대로 노동의 형태는 달라졌지만, 노동을 통한 인간의 존엄과 사회적 연대의 필요성은 변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시대의 노동정치는 이제 “단결의 언어”와 더불어 “연결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