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위기시대의 노동운동 ⓸ 21세기 국가와 노동조합의 관계 / 노동조합은 계급의 무기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인프라’

공식 관리자
2025-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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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위기시대의 노동운동 ⓸

- 21세기 국가와 노동조합의 관계 : 대런 애쓰모글로우의 <좁은 회랑>

- 노동조합은 계급의 무기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인프라’


(3) 21세기 국가와 노동조합의 관계 : 대런 애쓰모글로우의 <좁은 회랑>

  • 노동조합이 ‘국가’와 경쟁하는 ‘사회’의 대표다


국가와 사회의 균형

2024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의 주장들은 ‘사회운동’으로서의 ‘노동운동’이 민주주의 체제 안에서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지점들을 제공한다. 한국의 노동운동과 진보진영은 국가와 자유를 대립의 관계로 보는데 익숙하다. 권위주의적 국가에 대항해서 스스로 민주주의를 쟁취한 역사와 경험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런 애쓰모글루는 <좁은 회랑>이라는 책에서 자유가 단순히 국가의 약화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강한 국가(strong state)”와 “강한 사회(strong society)”의 균형적 긴장 속에서만 유지된다고 주장한다. 즉, 국가는 공공재를 제공하고 질서를 유지할 능력을 가져야 하지만, 동시에 사회는 그 국가를 감시하고 통제할 힘을 가져야 공동체가 ‘번영’할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저자들이 말하는 “좁은 회랑(narrow corridor)”이란, 국가가 너무 강하면 ‘권위주의적 지배(Leviathan unleashed)’가 되고, 사회가 너무 약하면 ‘무정부적 상태(absence of order)’로 흐르기 때문에, 둘 사이의 좁은 균형 구간에서만 ‘자유로운 질서(order of liberty)’가 유지되고 이 위에서 공동체가 발전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진보가 보수를 일컫어 국가를 동원해 권위주의를 강화한다고 비판하고 보수는 진보에게 사회운동이 지나쳐서 무질서를 퍼트린다고 비판하고는 하는데 공동체의 번영은 사실은 이 사이의 적절한 균형에 있다는 것이다. 


사회의 결집된 조직으로서의 노동조합

여기서 사회는 결집되어 그 힘을 강화하는데 사회의 ‘결집된 조직체’로서 노동조합은 저자들이 말하는 “강한 사회”를 구성하는 핵심적 제도이다. 노동조합은 개별 노동자의 ‘voice’(엘버트 허시먼)를 제도화한 형태로, 국가나 시장 권력에 맞서는 조직된 시민적 힘(civic power)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조합은 단순한 임금·노동조건 협상기구를 넘어, 국가를 상대로 사회 전체의 민주적 감시과 참여 기능을 수행하는 ‘느슨한 제도기구’로도 작동한다는 것이다.


구분

국가의 역할

사회(노동조합)의 역할

균형의 효과

권력의 균형

공공정책 수립·집행, 노동시장 규율

국가정책의 감시, 참여, 대안 제시

권위주의적 국가 팽창 억제

경제적 균형

효율성·경쟁 촉진

공정성·분배 정의 옹호

불평등 완화, 사회적 신뢰 형성

사회적 균형

사회보장 제도 구축

복지정책의 실질적 수혜자 참여

제도적 정당성 확보

민주주의 유지

법치·제도화된 절차 보장

시민적 목소리와 집단행동의 조직화

자유의 회랑 유지



이 관점에서 보면, 노동조합은 단순히 “국가에 대한 저항세력”이 아니라, 국가의 권력을 ‘좁은 회랑’ 안에 머물게 하여 권위주의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하고 자유를 수호하는 제도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즉, 민주주의의 건강성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의 힘을 균형 있게 제어하고 사회의 집합적 역량을 강화하는 ‘조정자(coordinator)’로서의 역할이 노동조합에게 있다.



위기의 시대, 노동조합은 자유의 제도적 수호자

21세기 들어 국가와 시장은 글로벌화·플랫폼화로 인해 점점 더 비대해지고 있다. 반면 모든 나라들에서 사회의 결집력은 현저히 약화되고 있다. 한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선진민주주의 국가에서 노동조합 조직률이 떨어지고 시민사회단체들의 활동력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때 노동조합의 역할은 단순히 기업내부의 임금협상에 머무를 수 없다. 


노동운동은 그 스스로 시민사회의 재조직화 기능을 해야 한다. 비정규직, 플랫폼노동자, 프리랜서 등 분절된 노동을 다시 사회적 주체로 연결하는 역할은 노동조합만이 할 수 있다. 나아가 정책 참여와 민주적 거버넌스를 강화해서 단순한 이익집단이 아닌, 복지·안전·환경·젠더 등 사회적 가치의 대표자로서의 역할 역시 노동조합에게 추가로 주어진다. 국가-시장 간 균형의 복원자로서 공공정책이 시장논리에 종속되지 않도록 ‘사회적 통제력’을 행사하는 것 역시 산업의 대표로서 노동조합의 중요한 역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좁은 회랑』이라는 책을 통해 저자들 강조하는 바는, 자유는 저절로 존재하지 않으며 “지속적인 투쟁과 조직된 균형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노동조합은 바로 이 “지속적 긴장과 균형”을 제도화한 대표적 사회기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대 민주주의에서 노동조합의 존재 이유는 임금교섭이나 복지확대에 그치지 않고, 자유와 민주주의의 회랑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적 파수꾼(institutional sentinel)’으로 재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4) 노동조합은 계급의 무기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인프라’

- 경제적 Voice를 시민적 Voice로 전환하는 노동조합


현대 민주주의는 참여의 확장과 불평등의 심화, 그리고 국가 권력의 재집중이라는 상충된 흐름 속에서 혼란과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불평등의 심화와 함께 일어난 노동시장의 분절화와 사회적 연대의 약화는 단지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기반을 잠식하는 정치적 위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2010년대에 이르러 권위주의적 국가가 다시 강화되고 거대 플랫폼 기업들의 지배력도 함께 비대해졌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위기는 노동조합의 역할을 재해석을 할 것을 노동운동에 요청하고 있다.



구분

샤츠슈나이더 

(E. E. Schattschneider)

엘버트 허시먼 

(Albert O. Hirschman)

애쓰모글루 & 로빈슨 

(Daron Acemoglu & James Robinson)

핵심저작

The Semisovereign People(1960)

Exit, Voice, and Loyalty(1970)

The Narrow Corridor(2019)

민주주의 핵심개념

갈등의 조직화 

(organization of conflict)

참여의 제도화 

(institutionalized voice)

국가–사회 균형 

(balance of power)

정치의 본질

갈등을 공적 영역으로 확장하는 과정

불만을 ‘voice’로 전환하는 참여 행위

자유를 유지하기 위한 지속적 긴장

사회조직의 역할

사적 갈등을 공적 정치로 변환

개인의 불만을 조직적 의사표현으로 연결

사회가 국가 권력을 견제하는 힘

민주주의의 위험

조직 없는 다수의 무기력

침묵과 이탈(Exit)에 의한 체제붕괴

국가의 과도한 팽창 또는 사회의 무력화

핵심 질문

누가 정치적 갈등을 정의하고 조직하는가?

누가 불만을 제도적으로 표현하는가?

국가와 사회는 어떻게 균형을 유지하는가?




앞서 함께 살펴본 세 학자의 주장을 통합적으로 보면, 노동조합은 민주주의의 “제도적 회로”를 구성한다. 샤츠슈나이더는 노동조합의 “갈등을 공론화하여 참여를 확장하는 정치적 동원기능”을, 허시먼은 “불만을 체계적으로 표현하고 개선으로 전환하는 내부적 조정”으로 기능하는 노동조합의 역할을, 애쓰모글루는 “국가권력과 사회권력의 균형을 유지하는 구조적 안정기능”의 핵심 조직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 노동조합의 세 가지 역할과 기능은 서로 순환하며 민주주의가 껍데기가 아닌 살아 움직이는 정치체제로서 작동할 수 있도록 한다. 반대로 노동조합이 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 할 경우 이 순환구조가 무너지며 민주주의는 쇠퇴할 수 있다.


샤츠슈나이더의 갈등이론, 허시먼의 참여이론, 애쓰모글루의 균형이론은 서로 다른 맥락에서 출발했지만, 모두 민주주의를 “정적 질서”가 아닌 “동적인 상호작용의 체계”로 설명한다. 그리고 이 체계안에서 노동조합은 민주주의의 주변적 존재가 아니라 핵심적 인프라이다. 따라서 노동조합의 재활성화는 단지 임금협상이나 고용보호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한 전략적 과제이다. 노동 없는 민주주의는 공허하며, 갈등 없는 민주주의는 허구적이다. 민주주의가 살아 숨 쉬려면, 조직된 노동이 그 심장부에 있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