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위기시대의 노동운동 ⓷
- 갈등의 매개자, 노동조합 : 샤츠.슈나이더 <절반의 인민주권>
(2) 갈등의 매개자, 노동조합 : 샤츠.슈나이더 <절반의 인민주권>
갈등의 이론가
E.E.샤츠슈나이더는 미국의 진보적 정치학자이다. 보통 그를 ‘갈등의 이론가’라고 부르며 ‘정당’과 ‘노동조합’이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조직임을 정치학으로 설명한 학자이다. ‘민주주의는 평범한 보통사람들을 위한 체제’라는 신념을 가지고 연구한 대표적인 정치학자이다. 연구가 잘 안 풀릴 때는 근처의 부두에 나가 항만노동자들과 어울리며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민주주의를 고민했다고 한다. 그의 갈등이론은 보통 ‘갈등’은 공동체에 나쁜 것이며 갈등을 줄이는 것이 좋은 사회를 위한 방향이라는 일반적인 상식에 역행한다. ‘갈등’이야 말로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수단이며 갈등이 오히려 사회를 통합하고 공동체를 발전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노동조합과 정당을 비롯한 ‘결사체’들은 바로 그것을 위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샤츠 슈나이더에 따르면 민주주의의 본질은 사회적 갈등을 억누르는 데 있지 않고, 갈등을 제도화하고 공적인 장으로 끌어올리는 데 있다. 샤츠 슈나이더는 『절반의 인민주권』(The Semisovereign People)(1960, 후마니타스)에서 “정치는 갈등의 조직화(organization of conflict)”라고 정의하며, 정치란 갈등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갈등을 공적 의제로 부상시키느냐에 의해 규정된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갈등이 곧 민주주의의 엔진’이라고까지 말한다. 그리고 ‘갈등’을 규정하는 것이 곧 ‘정치적 힘’이라고 설명한다.

노동조합은 갈등의 매개자, 갈등의 조직가
샤츠 슈나이더의 갈등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노동조합은 현대 민주주의에서 사회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을 제도정치의 장으로 끌어올리는 ‘갈등의 매개자(conflict mediator)’이자 ‘정치적 동원자(mobilizer)’로 기능한다고 할 수 있다.
샤츠슈나이더는 기존의 자유주의 정치학 이론에 대한 강한 비판에서 출발한다. 전통적 이론은 사회의 다양한 집단이 자유롭게 경쟁함으로써 정치적 균형이 유지된다고 보았지만, 샤츠슈나이더는 실제 현실에서는 “조직된 소수(organized minority)”가 “무기력한 다수(unorganized majority)”를 지배하는 현상을 비판했다. 따라서 “정치는 누가 참여하고, 어떤 갈등이 공적 영역으로 확장되느냐의 문제이다.”라고 지적하고 정치의 본질은 ‘이익의 조정’이 아니라 ‘갈등의 선택적 조직화’이며, 민주주의의 발전은 시민이 자신들의 이해와 불만을 조직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이때 정당과 노동조합과 같은 결사체는 ‘사적 갈등’을 ‘공적 의제’로 전환시키는 민주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통로이다. 만약 노동조합을 통해 자신의 갈등을 공적의제로 전환시키지 못한다면 그들은 무기력한 다수로 민주주의에서 배제되어 있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조합은 단순히 갈등의 통로가 아니라 갈등을 직접 조직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갈등조직자(conflict organizer)’라고도 불릴 수 있다. 노동조합은 시장과 국가의 권력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불만을 제도적 형태로 조직하여, 사적 갈등을 공적 정치의 장으로 끌어올리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처럼 노동조합은 ‘계급갈등’을 ‘정치적 의제’로 전환시키는 매개체로서, 사회의 갈등을 민주적으로 표현하고 제도화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따라서 이 과정은 단순한 경제적 이해를 둘러싼 투쟁만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확장하고 심화시키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과 운동이 만들어내는 ‘갈등’이 모두 민주주의를 심화시키는 의미있는 갈등으로 당연하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갈등인가도 중요하다. 노동조합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사적갈등’이 아니라 공동체의 ‘공적갈등’을 다루는 조직이다. 단순히 조합원 개인이 겪는 불만을 제기하는 조직이 아니라 노동시민들이 일터와 생활에서 겪는 다양한 문제들을 정리하여 그것을 ‘공적갈등’으로 전환시켜 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노동조합이 조합원의 고충처리기구가 결코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갈등을 선택하는 노동운동의 정치적 판단이 필요하다. 어떤 갈등이 지금 전체 노동시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갈등이 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노동운동 리더들의 역할이다. 노동운동 내부 특정 정파들의 사적이해관계나 일부 특정한 지위에 있는 노동자들의 이익을 가장 중요한 공적 갈등처럼 왜곡하는 일이 벌어져서는 결국 노동운동이 민주주의를 심화하는 것이 아니라 왜곡시키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정당정치와 노동조합
한편 샤츠슈나이더는 정당정치를 민주주의의 핵심으로 보았다. “정당 없는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Democracy is unthinkable save in terms of parties)”라는 그의 유명한 명제는, 갈등의 정치화라는 민주주의의 핵심기능이 정당이라는 제도적 통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노동조합은 이러한 정당정치의 중요한 사회적 기반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갈등은 존재하지만, 그것이 정치적 의제로 조직되지 못하는 ‘비정치적 갈등’ 상태에 머무는 노동시민이 많다. 대표적으로 플랫폼노동, 프리랜서,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문제나 중소기업 노동자, 여성, 청년 노동의 문제가 그러하다. 정당과 노동조합이 이들의 갈등을 정치적 의제로 바꿔내지 못하면서 오히려 극단적 정치경향들이 이들에게 손을 뻗을 가능성이 더 높아지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샤츠슈나이더의 갈등이론은 민주주의를 ‘합의의 질서’가 아닌 ‘조직된 갈등의 질서’로 정의한다. 이 관점에서 볼 때, 노동조합은 민주주의의 불가결한 제도적 기둥이다. 노동조합이 사적 불만을 공적 의제로 전환시키고, 사회적 갈등을 제도정치로 연결할 때, 민주주의는 생명력을 유지한다. 따라서 노동조합의 위기는 곧 민주주의의 위기이며, 노동조합의 재활성화는 단지 노동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재구성 문제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샤츠슈나이더 #절반의인민주권
(2) 갈등의 매개자, 노동조합 : 샤츠.슈나이더 <절반의 인민주권>
갈등의 이론가
E.E.샤츠슈나이더는 미국의 진보적 정치학자이다. 보통 그를 ‘갈등의 이론가’라고 부르며 ‘정당’과 ‘노동조합’이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조직임을 정치학으로 설명한 학자이다. ‘민주주의는 평범한 보통사람들을 위한 체제’라는 신념을 가지고 연구한 대표적인 정치학자이다. 연구가 잘 안 풀릴 때는 근처의 부두에 나가 항만노동자들과 어울리며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민주주의를 고민했다고 한다. 그의 갈등이론은 보통 ‘갈등’은 공동체에 나쁜 것이며 갈등을 줄이는 것이 좋은 사회를 위한 방향이라는 일반적인 상식에 역행한다. ‘갈등’이야 말로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수단이며 갈등이 오히려 사회를 통합하고 공동체를 발전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노동조합과 정당을 비롯한 ‘결사체’들은 바로 그것을 위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샤츠 슈나이더에 따르면 민주주의의 본질은 사회적 갈등을 억누르는 데 있지 않고, 갈등을 제도화하고 공적인 장으로 끌어올리는 데 있다. 샤츠 슈나이더는 『절반의 인민주권』(The Semisovereign People)(1960, 후마니타스)에서 “정치는 갈등의 조직화(organization of conflict)”라고 정의하며, 정치란 갈등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갈등을 공적 의제로 부상시키느냐에 의해 규정된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갈등이 곧 민주주의의 엔진’이라고까지 말한다. 그리고 ‘갈등’을 규정하는 것이 곧 ‘정치적 힘’이라고 설명한다.
노동조합은 갈등의 매개자, 갈등의 조직가
샤츠 슈나이더의 갈등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노동조합은 현대 민주주의에서 사회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을 제도정치의 장으로 끌어올리는 ‘갈등의 매개자(conflict mediator)’이자 ‘정치적 동원자(mobilizer)’로 기능한다고 할 수 있다.
샤츠슈나이더는 기존의 자유주의 정치학 이론에 대한 강한 비판에서 출발한다. 전통적 이론은 사회의 다양한 집단이 자유롭게 경쟁함으로써 정치적 균형이 유지된다고 보았지만, 샤츠슈나이더는 실제 현실에서는 “조직된 소수(organized minority)”가 “무기력한 다수(unorganized majority)”를 지배하는 현상을 비판했다. 따라서 “정치는 누가 참여하고, 어떤 갈등이 공적 영역으로 확장되느냐의 문제이다.”라고 지적하고 정치의 본질은 ‘이익의 조정’이 아니라 ‘갈등의 선택적 조직화’이며, 민주주의의 발전은 시민이 자신들의 이해와 불만을 조직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이때 정당과 노동조합과 같은 결사체는 ‘사적 갈등’을 ‘공적 의제’로 전환시키는 민주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통로이다. 만약 노동조합을 통해 자신의 갈등을 공적의제로 전환시키지 못한다면 그들은 무기력한 다수로 민주주의에서 배제되어 있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조합은 단순히 갈등의 통로가 아니라 갈등을 직접 조직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갈등조직자(conflict organizer)’라고도 불릴 수 있다. 노동조합은 시장과 국가의 권력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불만을 제도적 형태로 조직하여, 사적 갈등을 공적 정치의 장으로 끌어올리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처럼 노동조합은 ‘계급갈등’을 ‘정치적 의제’로 전환시키는 매개체로서, 사회의 갈등을 민주적으로 표현하고 제도화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따라서 이 과정은 단순한 경제적 이해를 둘러싼 투쟁만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확장하고 심화시키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과 운동이 만들어내는 ‘갈등’이 모두 민주주의를 심화시키는 의미있는 갈등으로 당연하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갈등인가도 중요하다. 노동조합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사적갈등’이 아니라 공동체의 ‘공적갈등’을 다루는 조직이다. 단순히 조합원 개인이 겪는 불만을 제기하는 조직이 아니라 노동시민들이 일터와 생활에서 겪는 다양한 문제들을 정리하여 그것을 ‘공적갈등’으로 전환시켜 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노동조합이 조합원의 고충처리기구가 결코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갈등을 선택하는 노동운동의 정치적 판단이 필요하다. 어떤 갈등이 지금 전체 노동시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갈등이 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노동운동 리더들의 역할이다. 노동운동 내부 특정 정파들의 사적이해관계나 일부 특정한 지위에 있는 노동자들의 이익을 가장 중요한 공적 갈등처럼 왜곡하는 일이 벌어져서는 결국 노동운동이 민주주의를 심화하는 것이 아니라 왜곡시키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정당정치와 노동조합
한편 샤츠슈나이더는 정당정치를 민주주의의 핵심으로 보았다. “정당 없는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Democracy is unthinkable save in terms of parties)”라는 그의 유명한 명제는, 갈등의 정치화라는 민주주의의 핵심기능이 정당이라는 제도적 통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노동조합은 이러한 정당정치의 중요한 사회적 기반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갈등은 존재하지만, 그것이 정치적 의제로 조직되지 못하는 ‘비정치적 갈등’ 상태에 머무는 노동시민이 많다. 대표적으로 플랫폼노동, 프리랜서,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문제나 중소기업 노동자, 여성, 청년 노동의 문제가 그러하다. 정당과 노동조합이 이들의 갈등을 정치적 의제로 바꿔내지 못하면서 오히려 극단적 정치경향들이 이들에게 손을 뻗을 가능성이 더 높아지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샤츠슈나이더의 갈등이론은 민주주의를 ‘합의의 질서’가 아닌 ‘조직된 갈등의 질서’로 정의한다. 이 관점에서 볼 때, 노동조합은 민주주의의 불가결한 제도적 기둥이다. 노동조합이 사적 불만을 공적 의제로 전환시키고, 사회적 갈등을 제도정치로 연결할 때, 민주주의는 생명력을 유지한다. 따라서 노동조합의 위기는 곧 민주주의의 위기이며, 노동조합의 재활성화는 단지 노동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재구성 문제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샤츠슈나이더 #절반의인민주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