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위기시대의 노동운동 ⓶
- 노동조합은 민주주의 경제적 ‘Voice’ : 엘버트 허시먼의 <exit, voice, loyalty>
1장. 민주주의와 노동운동
지금까지 한국 노동운동은 노동조합의 역할을 주로 계급의 무기(武器)로 인식해왔다. 이러한 인식은 자본주의 경제체제 에서 노동과 자본의 대립을 통해 분배와 평등을 촉진하는 노동의 역할을 설명해준다. 하지만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에서 노동이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명료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노동조합은 ‘이익단체’인가? 그냥 이익단체의 한 종류에 불과하다면 노동조합의 요구가 다른 여타의 이익단체의 요구보다 특별해야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특별히 평등이나 자유, 인권의 가치에 복무해야 할 이유도 없다. 그래서 노동조합은 이익단체란 말인가? 필자의 대답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이익단체’이지만 ‘특별한’ 이익단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다른 이익단체들과는 달리 민주주의 체제 안에서 매우 특별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현대’ 민주주의보다 자본주의가 먼저 도착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계급의 무기로서의 노동조합은 그 역할이 18세기, 19세기에 설정되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에 와서야 그 틀을 완성한 ‘현대민주주의’에서 노동조합의 역할은 ‘계급의 무기’만이 아니었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은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인프라’로서의 의미를 추가로 가지게 되었다. 자본과의 대립에서의 역할만이 아니라 민주주의 안에서 노동조합이 가지는 역할을 제대로 인식해야 노동운동도 민주주의 ‘밖’에서 “오지 않을 혁명”을 기다리며 구호만 외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안’에서 시민 다수를 설득하며 성장하고 확장해나갈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장에서는 현대 민주주의의 대표적인 이론가들의 논의를 통해 노동운동이 왜 민주주의에서 특별한 역할을 하는지를 함께 이야기 해보려 한다.

(1) 노동조합은 민주주의 경제적 ‘Voice’ : 엘버트 허시먼의 <exit, voice, loyalty>
엘버트 허시먼의 이론으로 보는 노동조합
엘버트 허시먼(Albert O. Hirschman)이라는 경제학자를 표현하는 수식어들은 독특하고 또 화려하다. ‘진보와 보수 모두에게 존경받는 사상가’, ‘학자들의 학자’, ‘혁명을 의심하고 반동에 저항한 실천적 이론가’, ‘20세기 가장 위대한 경제사상가’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고 화려하다. 유태인인 그는 독일에서 히틀러의 나치를 피해 망명하여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파시즘에 맞서 지하 레지스탕스 운동을 했으며 스페인내전과 2차세계대전에 모두 참전한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전쟁 이후 세계은행에서 제3세계의 경제발전전략을 자문하고 미국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세계적인 연구와 저작들을 남긴 진보적인 경제사상가이다.
엘버트 허시먼(Albert O. Hirschman)의 유명한 이론들이 많지만 그 중 하나는 사회 구성원들이 부정의나 불만에 직면했을 때 취할 수 있는 세 가지 행동 양식을 ‘Exit(이탈)’, ‘Voice(발언)’, ‘Loyalty(충성)’로 구분하여 분석한 것이다. 간단히 설명하면 Exit(이탈)은 불만이나 문제로 인해 조직이나 체제에서 떠나는 행위를 말한다. Voice(발언)는 말 그대로 목소리다. 저항이다. 내부에서 불만을 표현하고 개혁을 요구하는 행위를 말한다. Loyalty(충성)란 Exit(이탈)을 지연시키며 내부 개선의 가능성을 신뢰하며 기다리는 것을 말한다.
허시먼의 이론에 따르면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는 시민들의 다양한 ‘Voice’를 제도화한 체제를 의미한다. 따라서 다양한 시민들이 ‘결사의 권리’(단결권)를 통해 자신들의 Voice를 조직화하고 발언하는 것이 곧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노동운동은 단순한 경제적 행위가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과 권력관계 속에서 자신과 공동체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정치적 발언의 형태로 해석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노동운동은 오랜 세월 동안 자본과의 대결 구도에만 집중하느라, ‘Voice’의 본래적 민주주의적 의미를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
따라서 민주주의 체제에서 노동조합은 단순한 임금 교섭기구를 넘어, 경제 영역의 ‘집단적 시민권(citizenship)’을 보장하면서 민주주의를 확장하는 역할을 하는 민주주의의 핵심 인프라라고 할 수 있다. 노동자들은 개별적으로는 자본과 대등하지 않지만, 노동조합이라는 결사체를 통해 집단적 협상력을 확보하며 민주주의의 ‘경제적 차원’을 실현한다. 이를 통해 정치적 민주주의는 시장 내부로 확장되고, 사회 전체의 불평등이 완화되는 기반이 형성되게 된다. 이를 간단히 줄여서 ‘경제민주화’ 또는 ‘경제민주주의’라고 한다.
결론적으로 노동조합은 이익단체이지만 특별한 이익단체이다. 여타의 이익단체와는 달리 민주주의를 자본주의 경제체제까지 확장시키는 특별한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을 제외하고 어떤 결사체도 이러한 큰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1인 1표’의 정치적 원리가 ‘1원 1표’의 시장의 원리보다 우위에 있는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라면 당연히 ‘노동3권’을 보장해야만 하는 것이고 대한민국도 헌법에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권리로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Voice, Loyalty, Exit와 ‘노동시장 이중구조’
한편 허시먼의 이론은 최근 우리사회의 핵심 문제로 지적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와도 연결시켜 생각해볼 수 도 있다. 만약 노동시장이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내부노동시장과 중소기업 비정규직·하청·플랫폼/프리랜서 노동 등 의 외부노동시장으로 이중화되면, 노동조합의 대표성은 특정 집단에 집중될 수 밖에 없다. 이 때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동조합은 고용 안정성과 조직 자원을 기반으로 제도적 voice를 독점하게 되고, 외부노동시장에 속한 비정규직·플랫폼 노동자·이주노동자는 제도적 voice로부터 배제되는 결과가 초래될 위험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내부노동시장의 조합원은 높은 ‘loyalty’로 제도 안에서 voice를 행사하지만, 외부노동시장은 조직화가 어렵고 불만이 ‘exit’(이탈)로 표출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이탈은 체제의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고, 정치적 냉소나 포퓰리즘적 분노로 전환되게 마련이다. 미국에서 백인노동자들이 트럼프 현상의 핵심지지 세력이 되는 것도 이러한 배경이 작동한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속에서 ‘voice’의 편향은 결국 민주주의 전체의 불균형으로 이어진다. 정규직은 강한 voice와 높은 loyalty로 체제를 유지하지만, 비정규직은 voice를 상실한 채 exit을 반복하는 이러한 구조는 사회적 연대(loyalty)의 기반을 약화시키고,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침식시킨다. 그 결과, 민주주의는 “일부를 위한 민주주의”로 전락하고, 정치적 양극화와 사회적 분열이 심화된다.
이처럼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문제는 단순히 불평등의 심화로 일어난 결과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핵심가치를 훼손하는 문제이자 민주주의를 위기로 몰아넣는 핵심원인으로 작동한다. 정리하면 노동조합은 민주주의의 경제적 voice 제도이지만 현재의 노동시장 이중구조 속에서 그 voice는 부분적이고 제한적일 수 있다. 내부노동시장을 넘어 다양한 노동의 목소리를 제도화하는 것은 단순히 노동정책적 차원의 과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기반을 재구성하는 정치적 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장. 민주주의와 노동운동
지금까지 한국 노동운동은 노동조합의 역할을 주로 계급의 무기(武器)로 인식해왔다. 이러한 인식은 자본주의 경제체제 에서 노동과 자본의 대립을 통해 분배와 평등을 촉진하는 노동의 역할을 설명해준다. 하지만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에서 노동이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명료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노동조합은 ‘이익단체’인가? 그냥 이익단체의 한 종류에 불과하다면 노동조합의 요구가 다른 여타의 이익단체의 요구보다 특별해야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특별히 평등이나 자유, 인권의 가치에 복무해야 할 이유도 없다. 그래서 노동조합은 이익단체란 말인가? 필자의 대답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이익단체’이지만 ‘특별한’ 이익단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다른 이익단체들과는 달리 민주주의 체제 안에서 매우 특별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현대’ 민주주의보다 자본주의가 먼저 도착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계급의 무기로서의 노동조합은 그 역할이 18세기, 19세기에 설정되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에 와서야 그 틀을 완성한 ‘현대민주주의’에서 노동조합의 역할은 ‘계급의 무기’만이 아니었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은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인프라’로서의 의미를 추가로 가지게 되었다. 자본과의 대립에서의 역할만이 아니라 민주주의 안에서 노동조합이 가지는 역할을 제대로 인식해야 노동운동도 민주주의 ‘밖’에서 “오지 않을 혁명”을 기다리며 구호만 외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안’에서 시민 다수를 설득하며 성장하고 확장해나갈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장에서는 현대 민주주의의 대표적인 이론가들의 논의를 통해 노동운동이 왜 민주주의에서 특별한 역할을 하는지를 함께 이야기 해보려 한다.
(1) 노동조합은 민주주의 경제적 ‘Voice’ : 엘버트 허시먼의 <exit, voice, loyalty>
엘버트 허시먼의 이론으로 보는 노동조합
엘버트 허시먼(Albert O. Hirschman)이라는 경제학자를 표현하는 수식어들은 독특하고 또 화려하다. ‘진보와 보수 모두에게 존경받는 사상가’, ‘학자들의 학자’, ‘혁명을 의심하고 반동에 저항한 실천적 이론가’, ‘20세기 가장 위대한 경제사상가’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고 화려하다. 유태인인 그는 독일에서 히틀러의 나치를 피해 망명하여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파시즘에 맞서 지하 레지스탕스 운동을 했으며 스페인내전과 2차세계대전에 모두 참전한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전쟁 이후 세계은행에서 제3세계의 경제발전전략을 자문하고 미국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세계적인 연구와 저작들을 남긴 진보적인 경제사상가이다.
엘버트 허시먼(Albert O. Hirschman)의 유명한 이론들이 많지만 그 중 하나는 사회 구성원들이 부정의나 불만에 직면했을 때 취할 수 있는 세 가지 행동 양식을 ‘Exit(이탈)’, ‘Voice(발언)’, ‘Loyalty(충성)’로 구분하여 분석한 것이다. 간단히 설명하면 Exit(이탈)은 불만이나 문제로 인해 조직이나 체제에서 떠나는 행위를 말한다. Voice(발언)는 말 그대로 목소리다. 저항이다. 내부에서 불만을 표현하고 개혁을 요구하는 행위를 말한다. Loyalty(충성)란 Exit(이탈)을 지연시키며 내부 개선의 가능성을 신뢰하며 기다리는 것을 말한다.
허시먼의 이론에 따르면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는 시민들의 다양한 ‘Voice’를 제도화한 체제를 의미한다. 따라서 다양한 시민들이 ‘결사의 권리’(단결권)를 통해 자신들의 Voice를 조직화하고 발언하는 것이 곧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노동운동은 단순한 경제적 행위가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과 권력관계 속에서 자신과 공동체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정치적 발언의 형태로 해석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노동운동은 오랜 세월 동안 자본과의 대결 구도에만 집중하느라, ‘Voice’의 본래적 민주주의적 의미를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
따라서 민주주의 체제에서 노동조합은 단순한 임금 교섭기구를 넘어, 경제 영역의 ‘집단적 시민권(citizenship)’을 보장하면서 민주주의를 확장하는 역할을 하는 민주주의의 핵심 인프라라고 할 수 있다. 노동자들은 개별적으로는 자본과 대등하지 않지만, 노동조합이라는 결사체를 통해 집단적 협상력을 확보하며 민주주의의 ‘경제적 차원’을 실현한다. 이를 통해 정치적 민주주의는 시장 내부로 확장되고, 사회 전체의 불평등이 완화되는 기반이 형성되게 된다. 이를 간단히 줄여서 ‘경제민주화’ 또는 ‘경제민주주의’라고 한다.
결론적으로 노동조합은 이익단체이지만 특별한 이익단체이다. 여타의 이익단체와는 달리 민주주의를 자본주의 경제체제까지 확장시키는 특별한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을 제외하고 어떤 결사체도 이러한 큰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1인 1표’의 정치적 원리가 ‘1원 1표’의 시장의 원리보다 우위에 있는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라면 당연히 ‘노동3권’을 보장해야만 하는 것이고 대한민국도 헌법에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권리로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Voice, Loyalty, Exit와 ‘노동시장 이중구조’
한편 허시먼의 이론은 최근 우리사회의 핵심 문제로 지적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와도 연결시켜 생각해볼 수 도 있다. 만약 노동시장이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내부노동시장과 중소기업 비정규직·하청·플랫폼/프리랜서 노동 등 의 외부노동시장으로 이중화되면, 노동조합의 대표성은 특정 집단에 집중될 수 밖에 없다. 이 때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동조합은 고용 안정성과 조직 자원을 기반으로 제도적 voice를 독점하게 되고, 외부노동시장에 속한 비정규직·플랫폼 노동자·이주노동자는 제도적 voice로부터 배제되는 결과가 초래될 위험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내부노동시장의 조합원은 높은 ‘loyalty’로 제도 안에서 voice를 행사하지만, 외부노동시장은 조직화가 어렵고 불만이 ‘exit’(이탈)로 표출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이탈은 체제의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고, 정치적 냉소나 포퓰리즘적 분노로 전환되게 마련이다. 미국에서 백인노동자들이 트럼프 현상의 핵심지지 세력이 되는 것도 이러한 배경이 작동한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속에서 ‘voice’의 편향은 결국 민주주의 전체의 불균형으로 이어진다. 정규직은 강한 voice와 높은 loyalty로 체제를 유지하지만, 비정규직은 voice를 상실한 채 exit을 반복하는 이러한 구조는 사회적 연대(loyalty)의 기반을 약화시키고,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침식시킨다. 그 결과, 민주주의는 “일부를 위한 민주주의”로 전락하고, 정치적 양극화와 사회적 분열이 심화된다.
이처럼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문제는 단순히 불평등의 심화로 일어난 결과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핵심가치를 훼손하는 문제이자 민주주의를 위기로 몰아넣는 핵심원인으로 작동한다. 정리하면 노동조합은 민주주의의 경제적 voice 제도이지만 현재의 노동시장 이중구조 속에서 그 voice는 부분적이고 제한적일 수 있다. 내부노동시장을 넘어 다양한 노동의 목소리를 제도화하는 것은 단순히 노동정책적 차원의 과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기반을 재구성하는 정치적 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