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브리 이미지’로 포장해 주는 시대의 정치

공식 관리자
2025-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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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화려함 뒤에 숨은 시민 불안을 마주해야 한다

 

AI(인공지능)기술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최근 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화풍과 비슷한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AI프로그램을 둘러싸고 놀라움과 함께 저작권 논쟁까지도 일어나고 있다. 이미 시민들의 일상에서는 각종 AI 프로그램을 업무에 활용하는 팁을 소개하는 영상과 교육들이 넘쳐나고 이를 직접 활용해 보는 시민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에 대해 정치권은 어떠한 반응일까. 여야를 막론하고 미국과 중국의 높은 AI기술력을 쫓아가기 위해 국가적으로 산업육성과 지원을 해서 소위 한국형 ‘K-AI’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주장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긴급하고도 화려해 보이는 그런 논의 속에서 소외감과 위기감을 느끼는 시민들의 삶에 대한 고민은 부족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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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경쟁력이라는 목표에 가려진 시민들의 목소리

정치권의 주장대로 정말 한국형 ‘딥시크’니 ‘ChatGPT’가 만들어지면 시민들의 삶에 더 나은 결과로 다가오기만 할까? 우리는 놀라운 AI기술의 보편화 속에서 불안감을 느끼는 시민들의 모습도 함께 포착할 필요가 있다. 이 거대한 변화 속에서 평범한 능력밖에 없는 우리들의 삶은 유지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고 있는 시민들의 불안한 얼굴을 정치는 조금 더 깊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혁신을 외치는 엘리트

2000년대 이후 미국은 실리콘벨리의 IT산업과 월스트리트의 금융산업을 중심으로 경제를 재편하고 세계 경제를 리드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고학력 엘리트들과 정치인들은 미국시민들에게 기후위기 시대, IT산업과 금융산업의 시대에 낡은 기술의 일자리에서 더 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이제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더 미래지향적인 직업으로 옮겨가야 한다고 설득했다. 그것이 곧 혁신이고 미래를 향한 발전이라고 말했다. 2008년 이후 집권한 오바마 정부는 그러한 흐름속에서 미국시민들 다수가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며 ‘커뮤니티 칼리지’ 학비를 무상으로 하는 정책을 추진하기도 했다. 물론 이후 미국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펜데믹 등 여러 부침을 겪기는 했지만 현재에도 가장 뛰어난 AI기술과 금융산업으로 세계경제의 주요 리더의 역할을 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미국 시민들의 삶과 그들의 감정은 어떻게 되었을까? 

 

|미국이 겪은 혐오와 분노의 뿌리, 모욕감

이에 대해서 한국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으로 유명한 미국의 마이클 센델 교수는 미국의 기성 정치권와 엘리트들이 평범한 시민들이 느낄 수 있는 ‘모욕감’에 무지했다고 비판한다. 낡은 산업으로 지목된 제조업과 저임금 서비스업에서 일하던 평범한 미국 시민들에게 미국의 엘리트들이 전한 메시지는 사실 “여러분이 평생을 해온 그 일들은 이제 세상에 필요 없거나 오히려 세상을 나쁘게 만드는 일입니다! 이제 여러분들도 얼른 대학에 진학하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세요! 그것도 힘들다면 기본소득과 같은 최신정책으로 여러분들을 책임져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들리지는 않았을까? 이러한 메시지들은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왔던 어떤 시민들에게는 모욕으로 다가왔고 그러한 모욕감이 결국은 혐오와 증오 정치의 저수지가 되었고 한편에서는 트럼프 현상으로 나타났다는 것이 마이클 센델 교수의 지적이다. 

 

|한국 정치는 시민들의 불안에 응답해야 한다

한국의 진보 세력에게도 그리고 정치에도 뼈아픈 비판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기술과 산업의 등장 앞에서 국가경쟁력 강화만 외치며 시민들의 평범한 일상을 낡은 것 치부하는 정치와 세태에 대해서 한국 시민들의 일부 역시 미국의 시민들처럼 증오와 냉소의 감정을 가지지 않을까? 화려하고 찬란해 보이는 AI기술의 미래 속에 평범한 다수 시민들의 삶도 함께 포함되어 있는지 불안해하는 시민들에게 우리 사회는 조심스럽게 응답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이성’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민주주의 정치는 시민들 상호 간에 합리적 이성을 가지고 대한다는 전제로 이루어진다고 이해되어 왔다. 하지만 최근에 와서는 그러한 자유주의적 해석과 정치가 시민들이 느끼는 ‘감정’의 중요성에 대해서 간과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법철학자인 ‘마사 누스바움’은 시민들은 ‘감정’을 가진 존재이며 오히려 민주주의의 지속가능성과 시민들 간의 연대, 국가에 대한 신뢰를 위해서는 시민들이 느끼는 ‘정치적 감정’에 대해서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마찬가지로 수많은 기술 발전과 국가경쟁력 강화의 ‘이성적 논의와 계획’에 앞서 우리 정치가 먼저 이해하고 들어야 하는 것은 그 과정에서 소외될 수 있는 시민들이 느끼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어느 고전영화의 제목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처럼 어쩌면 우리의 일상을 화사한 지브리 이미지로 포장해 주는 AI시대, 어떤 시민들이 느끼는 불안은 민주주의의 영혼을 잠식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