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주의 노동있는 민주주의]민주주의에 지름길은 있는가?

공식 관리자
2025-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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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주의에 지름길은 있는가?


드라마 <제로데이, Zero Day>가 우리에게 던지는 무거운 질문

 

드라마 <제로데이, Zero Day>는 넷플릭스(netflix)에 지난 2월에 공개된 정치드라마 시리즈다. 명배우 ‘로버트 드니로’가 미국의 전직대통령이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요즘 액션, 스릴러 드라마들에서 설정으로 많이 사용되는 <제로데이 공격>을 소재로 하고 있다. <제로데이 공격>이란 쉽게 이야기하면 일종의 사이버테러로 현대 문명이 고도로 네트워크화 되어있는 상황에서 네트워크에 대한 공격이 핵전쟁 이상의 위험이 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이 드라마는 최신 액션/스릴러 장르의 설정을 가져오지만, 실제 드라마의 핵심 주제는 ‘민주주의에 지름길은 있는가?’라는 상당히 무거운 질문을 다루고 있다. 

| 드라마 <제로데이>가 다루는 민주주의의 딜레마

드라마의 내용은 이렇다. 미국 전역에 <제로데이 공격>이 가해지고 수천 명의 시민들이 사망한다. 알 수 없는 이 테러로 인해 폭증하는 공포와 사회적 분열이 너무 커지자 미국 의회와 백악관은 여야가 합의하여 헌법을 초월하는 비상기구를 만들게 된다. 이른바 ‘제로데이 위원회’라는 이 위원회는 특별한 비상상황에서 이 사태의 진실을 조사하고 처리하는 역할을 맡으며 그 목적을 위해서 모든 기관의 견제를 초월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된다. 이렇게 소위 ‘비상대권(非常大權)’을 가진 위원회의 위원장을 주인공이 맡아 사건의 진상을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겪는 딜레마가 주된 내용이다. 

 

| ‘예외상태’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실제 민주주의 이론에서도 공동체의 큰 위험이 닥치는 일종의 ‘예외상태’의 경우에 어느 정도의 기본권 제한이 가능하다는 의견들이 있다. 우리 헌법에 대통령의 권한으로 ‘계엄선포’가 포함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돌아보면 우리는 몇 년 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이동, 집합 등의 기본권이 제한된 경험을 한 바 있다. 공동체 전체에 실질적 위협이 되었던 코로나19 펜데믹 역시 일종의 ‘예외상태’에 해당하기에 일정 정도의 기본권 제한이 가능하도록 시민들이 동의를 했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자의적 예외상태 선언과 민주주의의 위기

하지만 입법/행정/사법부의 합의로 예외상태를 규정한 드라마나 시민적 동의하에 기본권을 제한했던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와는 달리 윤석열 대통령은 자의적으로 예외상태를 규정했고 그것이 대부분의 시민에게 동의를 전혀 받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이 실패한 원인은 여기에 있다. 탄핵논쟁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질문은 드라마처럼 국가적 테러 상황이 아닌, 여야 간의 정쟁(政爭)이 격화된 상황 정도를 민주주의의 ‘예외상태’로 규정할 수 있는가? 이며 결국 이것이 반헌법적인지 아닌지가 작금의 탄핵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이다. 

 

| 비상대권이냐, 민주주의냐,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다시 드라마 내용으로 돌아오면 주인공은 자신의 손에 초헌법적 권력이 들어왔지만, 이를 사용하는 데에 매우 신중하다. 자칫 자신이 행한 조치가 민주주의의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비상한 테러 위협의 상황에서 더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도 직면한다. ‘제로데이’라는 드라마는 이러한 딜레마적 상황에서 주인공이 문제를 신속히 해결하기 위해 민주주의적 신념을 포기하고 비상대권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원칙을 견지하며 나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충돌시킨다. 드라마 속 주인공의 고뇌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제법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 분열된 한국 정치, 멈춰버린 민주주의

근래에 들어와 각 진영 간 대결이 고착화되고 사회가 분열하여 공동체를 위해 중요한 문제들이 해결되지 못한 채 공전하는 상황을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들이 경험하고 있다. 한국사회 역시 마찬가지이다. 초고령사회 진입과 초저출산 문제, AI와 기술발달로 인한 산업과 노동시장의 변화, 외교안보환경의 불안 등 중요한 국가적 문제들이 우리 앞에 있지만 한국의 민주주의 역시 이 앞에서 멈춰 있는 듯 보인다. 그래서인지 문제해결을 위해 민주주의를 우회하는 ‘지름길’을 선택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지지자들을 동원하여 이루어지는 진영 간의 극단적 대결 정치는 이를 더 나쁜 방향으로 이끈다. 우리 편의 승리를 위해서 때로는 절차와 합의를 무시하고 넘어가도 되겠다는 생각, 상대편의 패배를 위해서 상대방에게는 기본권을 무시해도 된다는 생각이 더 많아지고 있다. 

 

| 민주주의에 지름길은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또는 다행스럽게도 민주주의 정치의 과정에 ‘지름길’은 없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지름길’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장점으로 작동했기 때문에 평범한 시민들의 자유와 평등을 다른 체제보다 더 많이 가져다줄 수 있었다. 민주주의의 지름길이라 이야기되었던 많은 시도가 사실은 자유와 평등을 말살했던 ‘전체주의’로 가는 고속도로에 불과했다는 것을 역사가 말해준다. 그래서 결국 고통스럽고 느리지만 천천히 그리고 사려 깊고 신중하게 수풀을 헤치며 앞으로 걸어가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은 없다. 그래서였을까? 많은 정치가와 학자들은 이렇게 불평할 수밖에 없었다. “민주주의는 기존에 시도되었던 다른 모든 정치 체제들을 제외한 나머지 중 최악의 정치체제이다”, 결국 이 길 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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