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주의 노동있는 민주주의]진짜 문제는 상속세가 아니라 소득세다!

공식 관리자
2025-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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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면세자를 줄여야 한다. 

 

| 수입은 줄고 지출은 늘어난, 21세기형 가난한 국가

21세기에 이르러 국가는 생각보다 돈이 많지 않다. 지난 30여 년간 신자유주의적 경제기조의 흐름은 감세정책으로 이어졌으나 복지, 사회인프라 등에 필요한 재정은 더 많아졌다. 인구고령화로 인해 복지와 의료, 노후보장 등에 대한 국가의 재정부담은 날로 증가하고 있으며 기후변화, 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각종 대응정책에 필요한 재정의 규모도 날로 증가하고 있다. 일본이 70세까지 더 오래 일하는 사회로 전환을 진행 중이고 유럽의 주요 선진국들도 연금/의료개혁에 나서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은 어떠할까? 세계 유례없는 초고령화와 경제변화를 겪고 있는 우리도 더 많은 재정이 필요하다. 

 

| 최저임금 근로자도 재벌도 세금은 싫다

하지만 세금을 더 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내가 땀 흘린 것에 비해 버는 돈은 적다고 느끼지만 내가 내는 세금이 다시 나에게 좋은 효과로 돌아온다는 체감은 작기 때문이다. 수천억의 재산을 가진 재벌들도 월 200만 원을 간신히 버는 서민들도 모두 입을 모아 세금에 불만이라는 점에서는 같은 입장이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025.2.19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에서 '100분 토론'에 출연해 발언하고 있다.

 

| 이재명이 쏘아 올린 상속세 논쟁

최근에 한국에서는 상속세가 논쟁이다.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가 중산층(서울에서 꽤 비싼 아파트를 소유한 계층이기 때문에 중상층 이상이라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의 아파트 등 부동산 상속을 원활히 하기 위해 상속세 개편을 제안하면서부터다. 최대 18억 원까지 상속세를 면제하자는 제안에 대해 오래전에 만들어진 기준을 현실에 맞게 바꾸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고, 실제 상속세 부과 대상이 전체의 6.8%밖에 되지 않는 상황에서 중산층이나 서민들을 위한 정책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 전체 조세 수입의 4.3%에 불과한 상속세

일반 시민의 입장과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상속세가 더 중요한 문제일까? 앞서 언급했듯이 이재명 대표의 제안대로 상속세를 개편한다고 해도 그 대상은 서울에 꽤 가격이 나가는 아파트를 한 채 이상 소유한 사람들의 문제다. 시민들의 표를 받아 권력을 획득해야 하는 정당이 증세를 말하기란 쉽지 않다. 당장 부자들한테 더 걷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반발이 나오게 된다. 정치인들이 전체 조세수입 규모에서 4.3%에 불과한 상속세와 같이 소수에게 적용되고 실제 큰 규모를 차지하지 않는 세금들에만 감세와 증세를 논쟁하는 이유다.

 

| 소득 상위 6%가 근로소득세 60% 부담

진짜 큰 규모의 세금, 국가의 재정 규모를 좌지우지하는 세금은 사실 국가 조세수입의 1/3이 넘는 ‘소득세’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척하고 있다. 전체 세수에서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는 근로소득세의 62.7%를 전체 근로소득자에서 6.4%를 차지하는 연 1억 원 이상의 근로소득자가 부담하고 있다. 이미 상위계층에서 소득세 대부분을 내고 있는 것이다. 

 

| ‘세금 0원’ 면제자는 근로자의 30%

한편 2022년 기준 사실상 근로소득세를 전혀 부담하지 않는 면세자 비율은 전체 대상의 33.6%에 이른다. 주요 국가들이 시민 전체의 8~90%가 과세 대상인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인 규모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이 면세자 비율이 줄어들어야 한다. 세금을 내지 못하는 이들이 세금을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문제는 불평등이 심화하고 생계가 실제 어려운 이들에게 소득세를 더 걷는 것은 형평성에도 어긋나고 정치적으로도 어렵다는 것에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 하후상박(下厚上薄)의 연대임금으로 세수 확대해야

국가 간 빈부격차 등을 연구하여 2024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대런 애쓰모글루’는 그의 저서 <좁은 회랑>에서 국가가 나서서 불평등을 적극적으로 해소하는 것이 오히려 국가가 여러 가지로 필요한 재정을 확보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고 역설한다. 저자에 의하면 ‘임금압착’, 그러니까 하위 계층의 임금을 더 올리고 상위 계층의 임금을 제어하는 하후상박(下厚上薄)의 연대임금 정책을 통해 중간을 두텁게 해 세금을 낼 수 있는 대상을 더 많이 만들고, 이를 통해 국가 재정을 튼튼히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하위계층의 소득을 보전해 주기 위해 사용하는 각종 재분배정책에 들어가는 재정도 오히려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 소득 불평등 해소 = 재정 건전성 확대

한국에 적용하면 소득 하위계층의 임금을 올려서 근로소득세의 면세자 비율을 줄이고 여기서 걷어진 근로소득세로 복지, 노후보장, 사회 인프라 확보 등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말이다. 부자증세 VS 부자감세의 지루한 논쟁을 거듭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평등을 적극적으로 해소하는 것이 곧 국가재정을 튼튼히 하는 길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은 진보와 보수가 이념적 차이를 넘어 합의하고 추진할 만한 내용이다. 

 

민주주의 정치는 유권자의 심기를 거스르기 참으로 어렵다. 하지만 민주주의 정치에는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때로는 ‘불편한 진실’도 외면하지 말아야 하는 책임도 함께 있다. 그 때문에 선거라는 치열한 경쟁을 통해 시민들이 정당들에 권력을 부여하고 정치인들을 선출하는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 정말로 필요한 세금 논쟁은 ‘상속세’가 아니라 ‘소득세’에 있음이 오늘날 우리의 ‘불편한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