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정부’와 ‘용산 국방부 정부’를 넘어서
공간은 때로는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고, 자연스레 생각을 드러내기도 한다. 특히 정치처럼 상징 권력이 중요한 영역에서 공간이 가지는 의미는 남다르다. 유럽 중세 봉건영주들의 성과 장원의 구성과 동양에서 왕들이 기거하던 궁들의 배치는 모두 정치적 권력관계를 반영한다.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이 기거하고 업무를 보는 공간이 어디에 자리 잡고 있는가 역시 한국 사회에서 정치권력이 작동하는 방식과 떨어트려 생각하기 힘들다.

(연합뉴스) 서울 용산 대통령실의 외경. 2024.12.6
| 문재인의 ‘청와대 정부’
문재인 정부는 취임 직후 광화문 촛불집회를 ‘혁명’으로 칭송하며 대통령실을 ‘청와대’에서 광화문 광장으로 옮겨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고 야심 차게 선포했다. 그러나 집권 5년 동안 대통령실이 광화문 광장으로 옮겨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역대 정부 중에서 권력이 청와대로 가장 많이 집중된 국정운영으로 인해 입법부와 정당을 배제하고 민주주의를 우회한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정치학자 박상훈은 이를 ‘청와대 정부’라는 개념을 통해 분석하고 비판했다. 대통령의 비서에 불과한 수석비서관이 헌법 개정안을 발표하고 ‘청와대 게시판’을 통해 직접 여론을 동원하여 정치에 나섰다. 청와대에 권력을 집중시켜서 국정운영을 하니 굳이 대통령실을 ‘청와대’에서 ‘광화문’으로 옮겨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 윤석열의 ‘용산 국방부 정부’
윤석열 정부는 집권 초기 거의 모든 것을 ‘문재인 정부 지우기’에 몰두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진행된 각종 정책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와 수사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청와대를 아예 국민에게 개방하고 대통령실을 용산에 있는 국방부 건물로 이전했다. 문재인 정부가 ‘청와대 정부’였다면 윤석열 정부는 ‘용산 국방부 정부’였다. 문재인 정부는 청와대 비서관들의 권력과 직접적인 여론 동원 정치에 몰두하다가 역풍을 맞았다면 윤석열 정부는 말 그대로 군대를 통해 민주주의 정치를 제압하려 하다 실패했다. 무슨 ‘풍수지리’나 ‘역술’이 작용한 것이 아니다. 대통령과 참모들이 어떤 국정운영 철학을 가졌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이 곧 민주주의이며 개혁의 동력이라고 착각한 것이었고 윤석열 정부는 ‘결단하면 실행하는’ 군대가 민주주의의 갈등을 해결하는 조직이라고 망상했다.
| 대통령실의 청와대 복귀가 민주주의 회복?
대통령이 군대를 동원해 계엄을 선포한 초유의 사태로 더 이상 대통령실은 국방부 건물에 있기 어려워졌다. 이번 계엄 사태에 깊이 개입한 것으로 드러난 군 관련 인물들이 보여준 행태는 왜 정치권력이 군부와 가까이 있으면 안 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혹자들은 ‘원상복구’라는 측면에서 대통령실의 청와대로의 복귀를 주장할지 모르겠다. 그것이 곧 민주주의의 회복(?)이라고 말하기도 할 것이다. 그것이 과연 지혜로운 방향일지는 의문이다.
|‘청와대 원상복구’는 전 정부 지우기
대통령실은 용산 국방부 건물에 위치할 명분을 잃은 것은 명백하지만 다시 청와대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명분을 잃었고 다시 청와대로 돌아가기에는 보안상의 문제부터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행정적인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청와대 자리로 다시 돌아가자는 주장의 실제 의도는 매 정권마다 반복되는 ‘전 정부 지우기’의 일환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불필요한 갈등을 만들어낼 뿐이다. 오히려 대통령실을 아예 새로운 곳으로 이전하는 것이 더 나은 방향일 수 있다.
| 대통령실과 국회를 세종시로
이 기회에 대통령실을 세종시로 완전히 이전하고 국회도 제2국회를 세종시에 건립해서 국회운영의 대부분을 세종시에서 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수 있다. 행정수도 이전의 완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고 대통실과 국회라는 정치권력과 서울로 상징되는 경제 권력의 적절한 거리 유지라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오래전부터 대통령실과 국회를 세종시로 옮겨서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국토 균형발전을 지향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실행되지 못했다. 바로 지금이 기회일 수 있다.
우리 사회는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원상복구하거나 아예 지워버려서 해결하려는 경향이 크다. 아픈 역사의 잔재도 남겨서 보존하며 새롭게 의미를 부여해 활용하기 보다는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폭파시키거나 철거한다. 잘못된 결정을 바로잡는 방법이 반드시 원상복구라는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과거로의 후퇴를 의미할 수도 있다. 처음의 의도와는 달라진 결과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다시 뒤로 돌아갈 것이 아니라 방향성을 조금 더 조정해서 조금 더 나은 방향을 한 걸음 옮겨 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일 수 있음을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청와대 정부’와 ‘용산 국방부 정부’를 넘어서
공간은 때로는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고, 자연스레 생각을 드러내기도 한다. 특히 정치처럼 상징 권력이 중요한 영역에서 공간이 가지는 의미는 남다르다. 유럽 중세 봉건영주들의 성과 장원의 구성과 동양에서 왕들이 기거하던 궁들의 배치는 모두 정치적 권력관계를 반영한다.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이 기거하고 업무를 보는 공간이 어디에 자리 잡고 있는가 역시 한국 사회에서 정치권력이 작동하는 방식과 떨어트려 생각하기 힘들다.
(연합뉴스) 서울 용산 대통령실의 외경. 2024.12.6
| 문재인의 ‘청와대 정부’
문재인 정부는 취임 직후 광화문 촛불집회를 ‘혁명’으로 칭송하며 대통령실을 ‘청와대’에서 광화문 광장으로 옮겨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고 야심 차게 선포했다. 그러나 집권 5년 동안 대통령실이 광화문 광장으로 옮겨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역대 정부 중에서 권력이 청와대로 가장 많이 집중된 국정운영으로 인해 입법부와 정당을 배제하고 민주주의를 우회한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정치학자 박상훈은 이를 ‘청와대 정부’라는 개념을 통해 분석하고 비판했다. 대통령의 비서에 불과한 수석비서관이 헌법 개정안을 발표하고 ‘청와대 게시판’을 통해 직접 여론을 동원하여 정치에 나섰다. 청와대에 권력을 집중시켜서 국정운영을 하니 굳이 대통령실을 ‘청와대’에서 ‘광화문’으로 옮겨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 윤석열의 ‘용산 국방부 정부’
윤석열 정부는 집권 초기 거의 모든 것을 ‘문재인 정부 지우기’에 몰두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진행된 각종 정책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와 수사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청와대를 아예 국민에게 개방하고 대통령실을 용산에 있는 국방부 건물로 이전했다. 문재인 정부가 ‘청와대 정부’였다면 윤석열 정부는 ‘용산 국방부 정부’였다. 문재인 정부는 청와대 비서관들의 권력과 직접적인 여론 동원 정치에 몰두하다가 역풍을 맞았다면 윤석열 정부는 말 그대로 군대를 통해 민주주의 정치를 제압하려 하다 실패했다. 무슨 ‘풍수지리’나 ‘역술’이 작용한 것이 아니다. 대통령과 참모들이 어떤 국정운영 철학을 가졌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이 곧 민주주의이며 개혁의 동력이라고 착각한 것이었고 윤석열 정부는 ‘결단하면 실행하는’ 군대가 민주주의의 갈등을 해결하는 조직이라고 망상했다.
| 대통령실의 청와대 복귀가 민주주의 회복?
대통령이 군대를 동원해 계엄을 선포한 초유의 사태로 더 이상 대통령실은 국방부 건물에 있기 어려워졌다. 이번 계엄 사태에 깊이 개입한 것으로 드러난 군 관련 인물들이 보여준 행태는 왜 정치권력이 군부와 가까이 있으면 안 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혹자들은 ‘원상복구’라는 측면에서 대통령실의 청와대로의 복귀를 주장할지 모르겠다. 그것이 곧 민주주의의 회복(?)이라고 말하기도 할 것이다. 그것이 과연 지혜로운 방향일지는 의문이다.
|‘청와대 원상복구’는 전 정부 지우기
대통령실은 용산 국방부 건물에 위치할 명분을 잃은 것은 명백하지만 다시 청와대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명분을 잃었고 다시 청와대로 돌아가기에는 보안상의 문제부터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행정적인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청와대 자리로 다시 돌아가자는 주장의 실제 의도는 매 정권마다 반복되는 ‘전 정부 지우기’의 일환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불필요한 갈등을 만들어낼 뿐이다. 오히려 대통령실을 아예 새로운 곳으로 이전하는 것이 더 나은 방향일 수 있다.
| 대통령실과 국회를 세종시로
이 기회에 대통령실을 세종시로 완전히 이전하고 국회도 제2국회를 세종시에 건립해서 국회운영의 대부분을 세종시에서 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수 있다. 행정수도 이전의 완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고 대통실과 국회라는 정치권력과 서울로 상징되는 경제 권력의 적절한 거리 유지라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오래전부터 대통령실과 국회를 세종시로 옮겨서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국토 균형발전을 지향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실행되지 못했다. 바로 지금이 기회일 수 있다.
우리 사회는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원상복구하거나 아예 지워버려서 해결하려는 경향이 크다. 아픈 역사의 잔재도 남겨서 보존하며 새롭게 의미를 부여해 활용하기 보다는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폭파시키거나 철거한다. 잘못된 결정을 바로잡는 방법이 반드시 원상복구라는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과거로의 후퇴를 의미할 수도 있다. 처음의 의도와는 달라진 결과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다시 뒤로 돌아갈 것이 아니라 방향성을 조금 더 조정해서 조금 더 나은 방향을 한 걸음 옮겨 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일 수 있음을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