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정치는 지방정치에서부터
- 조성주 정치발전소 상임이사
노동운동에서 흔히 노동정치를 이야기할 때 늘 그 범위는 ‘중앙’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대통령선거나 총선에 대한 정치방침 논의가 그러하고 ‘사회적대화’를 둘러싼 논의 역시 ‘중앙’ 차원의 사회적대화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노동정치’의 내실 있는 성과는 ‘중앙’보다는 ‘지방’에서 축적되고 있으며 그것이 더 튼튼한 노동정치의 기반을 만든다는 점에서 이제는 ‘중앙정치’보다는 ‘지방정치’를 주목할 필요성이 있다.
이미 한국정치가 지방자치를 시행한 지 30년이 넘었다. 이제는 ‘지방자치’라는 용어보다는 ‘지방정부’라는 용어가 정치적으로 더 유의미한 의미를 가진다. 사실 시민들이 직접 자신들의 대표를 선출하여 통치한다는 민주주의의 원리대로라면 지금 ‘지방자치’라는 용어보다는 시민들에게 대표성을 위임받았다는 의미에서 ‘지방정부’, ‘지방의회’ 등의 표현으로 정리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하겠다.
그간 지방정부와 노동조합이 관계를 맺어오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미 수십 년째 각 지방정부와 해당 지역의 노동조합들은 일정 정도의 관계를 맺어오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관계가 ‘노동정치’라는 영역으로 고민되기보다는 해당 지방정부와의 민원관계 정도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지방정부가 가지고 있는 몇몇 행정영역과 연관된 노동조합의 민원이나 근로복지기본법에 근거한 각종 ‘노동복지시설’ 제공 등에 그치고 있다.
노동조합이 ‘노동정치’의 영역을 ‘중앙’차원에 한정하여 좁게 해석하는 동안 정작 지방정부들의 정치영역은 큰 규모로 확장되었다. 지하철, 택시, 버스(마을버스 포함) 등 전통적인 교통정책 영역에서 최근에는 자전거, 전동킥보드 등 새로운 교통영역까지. 가스 등 각종 요금정책의 결정권한, 돌봄노동을 필두로 한 각종 복지정책의 대부분은 지방정부가 결정하거나 상당수 개입하는 영역이다. 이미 한국 시민들의 삶의 절반은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정부에 의해 결정되거나 영향을 받고 있다. 2011년 서울시를 시작으로 지방정부들이 앞다투어 ‘노동정책’을 만들고 ‘노동행정체계’를 수립하고 있는 것은 분명히 이러한 경향성을 대변한다.
그러나 이제는 지방을 넘어 전국적인 정치인으로 주목받고 심지어 대선후보군으로도 언급되는 주요 지방정부의 수장들이 노동정책과 행정의 영역을 넓혀오는 과정에서 ‘노동정치’가 얼마만큼 작동하고 개입했는가를 평가한다면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지방정부’ 차원의 ‘노동정치’는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민원’과 ‘건물’ 제공의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 ‘노동정치’ 역시 ‘지방정부’의 커진 위상에 걸맞게 그 깊이와 내용을 재정비할 필요성이 있다. 사실 노동정치는 큰 규모의 이해관계 집단 간 갈등과 국가정책의 복잡성으로 인해 큰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운 중앙정치와 비교하여 지방단위에서는 상대적으로 잘 조직화 된 목소리인 노동조합의 역할과 의회 내에서 개별 정치인의 1/N의 영향력이 큰 지방정치에서 상당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노동운동이 지방정부 차원에서 노동정치를 실현한다고 했을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동정치’라는 것이 단순히 ‘임금’과 ‘고용안정’을 넘어서 변화된 지방정부의 위상에 걸맞게 시민들의 삶 전반을 다룬다는 책임감과 그것을 담보할 실력이다. 이해당사자로서 해당 지방정부 정책에 개입하고 노동의 대표성을 가진 정치인들이 의회 차원에서 의견을 조직하는 것을 잘 배합하는 현명함도 필요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노동조합 역시 지방의회에 진출할 노동정치인들을 전략적으로 육성할 필요성이 있다. 단순히 노동의 대표성을 가진 후보자를 발굴하고 의회에 진입시키는 것을 넘어 해당 노동정치인이 단위 사업장 노동조합의 ‘민원창구’가 아닌 지방정부 차원의 노동정치를 실현하는 실질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내용적 준비를 갖추는 것을 함께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해당 지역의 산업, 행정, 의회 등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함은 당연하다. 무엇보다도 개별 사안에 대한 산발적 접근이 아닌 지방정치 및 행정체계의 기본부터 노동정치가 개입해 들어가는 역할이 필요하다.
최근 청주시 등에서 한국노총의 주도로 논의되고 있는 ‘노동기본조례’와 같이 노동행정의 기본체계부터 노동운동이 직접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다음으로는 다양한 전문가들과 함께 해당 지역 특성에 맞는 정책과제를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노동정치가 개입하여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지방정부의 정책영역들은 생각보다 넓다. 당장의 사업장 단위의 요구안을 제시하는 것을 넘어 교통, 환경, 복지 등 다양한 분야의 지역 전문가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지방정부의 폭넓은 정책과제들을 다루면서 좋은 노동정치의 모델과 대안을 만들어간다는 좀 더 장기적인 안목이 중요하다.
지방정부와 노동운동이 만들어낸 대표적인 성과로는 버스노동조합들이 서울시 교통정책에 개입하여 만들어 낸 ‘버스준공영제’ 제도를 들 수 있다. 시민들의 교통복지를 공공과 민간회사, 그리고 노동조합이 함께 책임지는 구조로 설계된 서울시의 ‘버스준공영제’는 운영과정에 소소한 문제점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나, 노동조합이 지방정부와 만들어낸 중요한 정책이자 노동조합 사업장 단위를 넘어 지역 차원에서 시민들의 삶에 변화를 만들어낸 모범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정치는 멀리 있지 않다. 시민들이 살아가는 현장에 늘 정치는 존재한다. 따라서 노동정치 역시 서울 종로구 효자동이나 여의도에만 있지는 않다. <끝>.
*이 글은 한국노총 기관지 <노동과희망>에도 실린 글입니다. 원문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news.inochong.org/detail.php?number=3056&thread=23r14
노동정치는 지방정치에서부터
- 조성주 정치발전소 상임이사
노동운동에서 흔히 노동정치를 이야기할 때 늘 그 범위는 ‘중앙’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대통령선거나 총선에 대한 정치방침 논의가 그러하고 ‘사회적대화’를 둘러싼 논의 역시 ‘중앙’ 차원의 사회적대화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노동정치’의 내실 있는 성과는 ‘중앙’보다는 ‘지방’에서 축적되고 있으며 그것이 더 튼튼한 노동정치의 기반을 만든다는 점에서 이제는 ‘중앙정치’보다는 ‘지방정치’를 주목할 필요성이 있다.
이미 한국정치가 지방자치를 시행한 지 30년이 넘었다. 이제는 ‘지방자치’라는 용어보다는 ‘지방정부’라는 용어가 정치적으로 더 유의미한 의미를 가진다. 사실 시민들이 직접 자신들의 대표를 선출하여 통치한다는 민주주의의 원리대로라면 지금 ‘지방자치’라는 용어보다는 시민들에게 대표성을 위임받았다는 의미에서 ‘지방정부’, ‘지방의회’ 등의 표현으로 정리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하겠다.
그간 지방정부와 노동조합이 관계를 맺어오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미 수십 년째 각 지방정부와 해당 지역의 노동조합들은 일정 정도의 관계를 맺어오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관계가 ‘노동정치’라는 영역으로 고민되기보다는 해당 지방정부와의 민원관계 정도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지방정부가 가지고 있는 몇몇 행정영역과 연관된 노동조합의 민원이나 근로복지기본법에 근거한 각종 ‘노동복지시설’ 제공 등에 그치고 있다.
노동조합이 ‘노동정치’의 영역을 ‘중앙’차원에 한정하여 좁게 해석하는 동안 정작 지방정부들의 정치영역은 큰 규모로 확장되었다. 지하철, 택시, 버스(마을버스 포함) 등 전통적인 교통정책 영역에서 최근에는 자전거, 전동킥보드 등 새로운 교통영역까지. 가스 등 각종 요금정책의 결정권한, 돌봄노동을 필두로 한 각종 복지정책의 대부분은 지방정부가 결정하거나 상당수 개입하는 영역이다. 이미 한국 시민들의 삶의 절반은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정부에 의해 결정되거나 영향을 받고 있다. 2011년 서울시를 시작으로 지방정부들이 앞다투어 ‘노동정책’을 만들고 ‘노동행정체계’를 수립하고 있는 것은 분명히 이러한 경향성을 대변한다.
그러나 이제는 지방을 넘어 전국적인 정치인으로 주목받고 심지어 대선후보군으로도 언급되는 주요 지방정부의 수장들이 노동정책과 행정의 영역을 넓혀오는 과정에서 ‘노동정치’가 얼마만큼 작동하고 개입했는가를 평가한다면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지방정부’ 차원의 ‘노동정치’는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민원’과 ‘건물’ 제공의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 ‘노동정치’ 역시 ‘지방정부’의 커진 위상에 걸맞게 그 깊이와 내용을 재정비할 필요성이 있다. 사실 노동정치는 큰 규모의 이해관계 집단 간 갈등과 국가정책의 복잡성으로 인해 큰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운 중앙정치와 비교하여 지방단위에서는 상대적으로 잘 조직화 된 목소리인 노동조합의 역할과 의회 내에서 개별 정치인의 1/N의 영향력이 큰 지방정치에서 상당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노동운동이 지방정부 차원에서 노동정치를 실현한다고 했을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동정치’라는 것이 단순히 ‘임금’과 ‘고용안정’을 넘어서 변화된 지방정부의 위상에 걸맞게 시민들의 삶 전반을 다룬다는 책임감과 그것을 담보할 실력이다. 이해당사자로서 해당 지방정부 정책에 개입하고 노동의 대표성을 가진 정치인들이 의회 차원에서 의견을 조직하는 것을 잘 배합하는 현명함도 필요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노동조합 역시 지방의회에 진출할 노동정치인들을 전략적으로 육성할 필요성이 있다. 단순히 노동의 대표성을 가진 후보자를 발굴하고 의회에 진입시키는 것을 넘어 해당 노동정치인이 단위 사업장 노동조합의 ‘민원창구’가 아닌 지방정부 차원의 노동정치를 실현하는 실질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내용적 준비를 갖추는 것을 함께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해당 지역의 산업, 행정, 의회 등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함은 당연하다. 무엇보다도 개별 사안에 대한 산발적 접근이 아닌 지방정치 및 행정체계의 기본부터 노동정치가 개입해 들어가는 역할이 필요하다.
최근 청주시 등에서 한국노총의 주도로 논의되고 있는 ‘노동기본조례’와 같이 노동행정의 기본체계부터 노동운동이 직접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다음으로는 다양한 전문가들과 함께 해당 지역 특성에 맞는 정책과제를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노동정치가 개입하여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지방정부의 정책영역들은 생각보다 넓다. 당장의 사업장 단위의 요구안을 제시하는 것을 넘어 교통, 환경, 복지 등 다양한 분야의 지역 전문가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지방정부의 폭넓은 정책과제들을 다루면서 좋은 노동정치의 모델과 대안을 만들어간다는 좀 더 장기적인 안목이 중요하다.
지방정부와 노동운동이 만들어낸 대표적인 성과로는 버스노동조합들이 서울시 교통정책에 개입하여 만들어 낸 ‘버스준공영제’ 제도를 들 수 있다. 시민들의 교통복지를 공공과 민간회사, 그리고 노동조합이 함께 책임지는 구조로 설계된 서울시의 ‘버스준공영제’는 운영과정에 소소한 문제점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나, 노동조합이 지방정부와 만들어낸 중요한 정책이자 노동조합 사업장 단위를 넘어 지역 차원에서 시민들의 삶에 변화를 만들어낸 모범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정치는 멀리 있지 않다. 시민들이 살아가는 현장에 늘 정치는 존재한다. 따라서 노동정치 역시 서울 종로구 효자동이나 여의도에만 있지는 않다. <끝>.
*이 글은 한국노총 기관지 <노동과희망>에도 실린 글입니다. 원문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news.inochong.org/detail.php?number=3056&thread=23r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