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주의 노동있는 민주주의]'시럽급여' 논란, 헤프닝이 아니라 체제논쟁이다

공식 관리자
202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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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럽급여' 논란은 헤프닝이 아니라 체제논쟁이다

   

여진이 꽤 오래갈 것 같다. 정부가 실업급여를 ‘시럽급여’라고 멸칭하며 실업급여 수급자들을 “사넬 선글라스”와 “해외여행”이라는 단어를 동원해 교묘한 프레임으로 갈라치기 하려다가 역풍을 맞았다. 국민의힘이 즉각 논란의 진화에 나섰음에도 여진이 오래 가는 이유는 해당 사건이 현재 한국의 보수정당과 정부가 가지고 있는 멘탈리티의 근간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철저한 ‘시혜’의 시선이다. 마치 가난한 실업자들에게 지원을 해줄 수는 있지만 그에 걸맞는 비굴함을 보여야만 한다는 이야기다. 나아가 감히 해외여행이나 명품을 선망하는 소위 ‘선을 넘지 말 것’을 준엄하게 경고하는 귀족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나름은 여성청년들을 겨냥했지만 이제 그런 방식의 갈라치기는 그 효과가 떨어지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이번 '시럽급여' 논란은 꽤 오래 지속되는 하나의 해프닝만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지점을 가지고 있다. 고용보험제도가 운영되고 실업급여가 지급되는 이유는 우리가 자본주의 경제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고용과 실업은 현대 자본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현상 중 하나이다. 따라서 고용을 어떻게 늘리거나 유지하고 또 실업을 어떻게 줄이거나 조정할 것인가는 단순히 노동시장의 조율을 넘어 경제운영, 산업발전 등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한편 어떤 노동시장 정책을 운용할 것인가는 어떤 복지제도를 수립할 것인가의 전제와도 같다. 그런 의미로 인해 고용보험제도의 운용의 변화는 사실 한국의 노동시장 정책의 가장 근간에 관련한 주제이며 나아가 어떤 복지국가를 지향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시럽급여' 논란이 헤프닝이 아니라 체제논쟁이며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고용보험제도는 민주화 이후 김영삼 정부가 1995년 처음 도입하고 97년 IMF 외환위기 직후 김대중 정부가 실질적으로 확립했으며 2004년 노무현 정부에서 확대되었다. 강도의 차이가 있고 처해져있던 대외경제 환경의 처지가 달랐지만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는 모두 복지국가라는 지향을 가지고 고용보험제도를 확장해왔다. 이런 기조는 사실 박근혜 정부에서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서는 코로나19 펜데믹과 4차산업혁명의 와중에 미래에 닥쳐올 산업구조 전환과 노동시장의 변화에 맞게 <소득에 기반한 전국민고용보험>이라는 새로운 사회안전망의 초석을 놓았다. 개인적으로는 김대중 정부의 건강보험 통합, 기초생활보장제도 도입, 노무현 정부의 장기요양보험제도 도입에 맞먹는 역사적인 성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의 진보파는 한동안 문재인 정부가 보여준 사회안전망의 혁신과 성과를 발전시켜 나가기보다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기본소득이나 일자리보장제와 같은 아이디어 수준의 정책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물론 아이디어도 새로운 상상력도 필요하며 지속적으로 다듬고 발전시켜 나가야한다. 그러나 그것은 기본을 먼저 하고 나서의 일이다. 한국의 진보파가 고용보험과 같은 사회안전망의 혁신에 소흘할 때 윤석열 정부와 보수는 고용보험을 모럴해저드의 온상으로 매도하며 급기야 제도의 급진적 개악을 추진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번 ‘시럽급여’ 논란에서 보수파의 시도가 이번에는 실패했지만 앞으로도 실패할 것이라 낙관할 수 없다. 윤석열 정부는 앞으로도 각종 노동시장 정책과 복지제도에 대해서 더 교묘한 논리로 논쟁을 시도할 것이다. 한국의 진보도 어떤 미래로 갈 것인가를 둘러싼 체제논쟁을 위한 튼튼한 준비가 필요하다.